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98)
현우와 이야기를 나누던 은지는 인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왔어?”
“너…….”
은호는 짜증이 잔뜩 오른 얼굴로 은지를 쏘아보며 불렀다.
“잘 안 풀렸어?”
“풀 게 뭐가 있냐.”
“졸라 많으면서.”
“니가 신경 쓸 일 아니야.”
은호가 선을 긋자, 은지는 잠시 서운한 기색을 보이다 이내 받아들인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오늘 잘 풀린 거 같지.”
“……어.”
은호의 대답은 한 박자 늦었다.
하지만 은호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머물러 있다.
“그렇게 서러웠냐.”
“X쳐라.”
은호가 장난스럽게 묻자, 은지가 신경질적으로 대꾸했다.
“흐웨에에엥― 하핰. 악.”
은호가 은지의 울던 모습을 따라 하며 놀리자, 은지의 매서운 주먹이 은호의 어깨를 내려찍었다.
아픈 와중에도 놀리는 걸 멈출 생각은 없는지 은호는 은지의 울음소리를 계속 따라 하고 있었다.
“아, 이은호 짜증 나!!!”
“짜증 날 땐 짜장…… 악!”
“솔직히 이건 진짜 처맞을 만했다. 니도 인정하지?”
“이건 쏘리. 하핰핰.”
짧은 침묵이 흘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은호도 슬기도 현우도 은지가 그런 폭탄 같은 말을 던질 줄은 몰랐다.
“나는, 가수가 안 맞나 봐.”
“……?”
“……?”
슬기와 현우는 앞 좌석에 앉아 은호와 은지의 대화를 듣고 있었다.
슬기와 현우가 놀란 눈으로 은지를 돌아봤다.
은호는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물었다.
“너…… 뭐, 사람 기만하냐?”
“하하.”
은지는 잠시 웃더니 생각에 잠긴 눈으로 창밖을 돌아봤다.
“오빤 어떨 때 제일 좋은데? 이 일 하면서.”
“뭔 말이야. 활동할 때 말하는 거야?”
“우리 직업이 가수잖아. 이 일을 할 때 말이야.”
“당연히 노래할 때지.”
은호는 앞서 대답한 뒤, 잠시 곰곰이 생각하더니 뒤에 살포시 조건을 덧붙였다.
“……무대 위에서.”
“하핰.”
잠시 웃던 은지는 창밖을 보며 표정이 굳어졌다.
“우린 참, 살면서 닮았다는 말은 지긋지긋하게 듣는데, 분야만 비슷하지 길은 너무 다르다…….”
“뭔 소리야, 넌 아니야?”
이 일을 할 때 가장 즐거울 건 ‘당연히’ 무대 위에서 노래할 때 아닌가?
은호로선 이해할 수 없는 은지의 말이었다.
“뭐랄까, 나한테 그건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인 거지. 가장 즐거운 순간은 아니거든.”
* * *
조금 충격받았다.
아니, 조금 많이 일지도.
무대 위에서 노래하는 순간.
그건 진심으로 내 인생을 몇 번을 반복한다고 해도 절대 놓지 못할 정도로 소중하고, 또 그만큼 중요한 순간이었다.
“그럼 넌 언젠데.”
“나? 니가 내 노래할 때.”
“…….”
은지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와, 소름 돋을 정도로 오글거린달까.
“넌 뭐 민망하게…….”
“이게 사실인데 뭘.”
은지는 냉소적으로 웃었다.
“오빠랑 같이 활동하는 건 확실히 혼자 할 때보단 훨씬 재미있긴 한데, 나한테 있어선 그때만큼은 아닌 것 같더라고.”
그 대답 하나가 얼마나 지나온 내 시간을 돌아보게 했는지 모른다.
회귀 전 이은지가 하는 모든 것은 화제가 됐다.
나오는 곡은 앨범 전곡이 차트 인을 할 정도였고, 톡신의 다섯 명과 비견될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끌어왔었다.
우리가 시간을 거슬러 오기 전의 나는 바쁜 은지를 부러워했었다.
정말 많이 말이다.
그래서 은지에게 어쩔 수 없이 눈길이 갔던 것 같다.
당시에는 질투심에 사로잡혀서 눈치채지 못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이상하긴 하다.
무대 위에서 은지는 진심으로 웃은 적이 몇 번 없다.
재미있는 해프닝이 생긴 게 아니고서야 말이다.
은지의 행사는 단순했다.
무대에 올라서 열심히 노래한다.
준비했던 공연이 끝나면 그 즉시 무대를 내려와서 다음 스케줄로 향한다.
신곡이 나올 때 또한, 은지는 순위와 쌓여 가는 트로피보다는 사람들의 반응만 궁금해할 뿐이었다.
「“오빠! 이거 들어 봐! 이번에 내 신곡인데…….”」
은지가 진심으로 즐거워할 때…….
과거를 돌아보며 은지의 모습을 생각하자, 진심으로 푹 빠져서 즐길 때를 떠올려 봤다.
방에 틀어막혀서 건반을 만질 때.
녹음기를 켜고 흥얼거릴 때.
본인만의 세계에 취해 있을 때.
곡이 완성됐을 때.
그 곡을 들은 사람들에게서 좋은 대답이 돌아왔을 때.
그랬다.
노래를 부를 때 행복한 건 나였지, 은지가 아니었다.
하지만 아무리 되짚어 봐도 은지의 재능은 방치하기엔 아까운…….
‘아.’
뭔가, 그간 흐렸던 세상이 환하게 변한 느낌이다.
방치하기엔 아까운 재능.
그건 회귀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은지는 그 재능 때문에 끌려다니며 오늘과 같은 무대를 수십, 수백 번을 올랐다.
은지에게 있어서 무대는 어찌 보면 마냥 즐겁기만 한 장소는 아니었다는 것.
이번엔 그 장소에 내가 함께 있었기에 조금 달랐을 뿐…….
나는 그동안 회귀 전 높은 탑에 있던 은지를 생각하며 우리가 함께 활동하는 ‘E―UNG’를 그 높이만큼 오르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줄곧 이은지가 바라던 일이 뭔지 알 것 같은 지금.
그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
그래서 되짚어 봤다.
그럼 나는 왜 그렇게 노력한 건지.
창밖의 차들이 신호에 걸려 붉은 브레이크 등을 켠 채 빽빽하게 서 있다.
신호가 바뀌자, 차들은 일제히 빨간 등을 끄고 달려 나간다.
회귀 전 나도 많은 무대에 올랐다.
은지와 비교하는 데에 지쳐, 그 무대를 온전하게 못 즐기기는 했지만…….
적어도 관객들의 환호성이 쏟아지는 그 순간.
내 손에 마이크가 쥐어져 있고, 땀이 튈 정도로 최선을 다해서 내가 보여 주려 노력해 온 것들을 선보이는 그 순간만큼은 항상.
정말 ‘항상’ 황홀했다.
그래서였다.
이젠 함께 활동하게 된 만큼.
은지는 마땅히 1위에 있어야 하기에 한 노력도 물론 있었다.
하지만 열심히 연습할 때나 녹음할 때, 최선을 다한 이유는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대 위에서 이 공연을 볼 사람들에게 기억에 남는 무대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계속 노래하고 싶었다.
무대 위에서 모든 걸 쏟아 내고 싶었다.
그것으로 관객들을 계속 환호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우린 참, 살면서 닮았다는 말은 지긋지긋하게 듣는데, 분야만 비슷하지 길은 너무 다르다…….”」
그러게.
다르다.
곡이 만들어지는 순간은 솔직히 나한테 있어선 그저 무대에 오르기 위한 수단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은지에게 있어선 그게 곧 목표였을 정도로, 우리는 달랐다.
차 안에는 침묵이 내려앉았다.
슬기 누나와 현우 형은 우리가 만든 공기의 무게에 눌려 차마 그 어떤 말도 얹지 못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별말씀을, 얼른 들어가서 쉬어.”
“형이랑 누나도요.”
“은지는…….”
“……나는 먼저 들어갈게요. 피곤해서.”
은지는 상태가 좋지 않은지 멍하게 허공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집 문을 열자, 나는 낯선 집 분위기에 잠시 멈춰 섰다.
“뭐지? 뭔가…….”
“…….”
집 안이 조용하다.
‘평소’와 ‘똑같이’.
‘아무도 없는’ 집인데.
* * *
이은호가 에이슬과 대화를 잘 마친 듯 괜찮은 표정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차에 올라,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왠지 가는 내내 불안한 느낌이 가시질 않는다.
‘뭘까, 왤까.’
문득, 창밖을 보고 있으니 예전 일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주마등 속에서 나는 계속 일만 했다.
나한테 있어서 노래를 부르는 일은 ‘업무’였다.
물론 즐겁기도 했었다.
내가 만든 노래를 부르는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때때로 회사에서는 내 곡이 아닌 다른 작곡가의 곡을 가져올 때도 있었다.
그땐 정말, 다 때려치우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다.
내가 왜 이 고생을 해야 하나 싶을 만큼 말이다.
“나는, 가수가 안 맞나 봐.”
문득 그때를 떠올리며 말하자 언니나 오빠나 이은호까지 나를 이상하다는 듯 봤다.
단 한 번도 즐긴 적이 없었냐고 묻는다면, 나도 사람인데 그건 당연히 아니었다.
「“노래는 니가 만들면 되잖아.”」
회귀 전 시간과 기억이 뒤섞이긴 했지만, 적어도 이은호가 했던 그 말은 뇌리에 똑똑히 박혀 있었다.
그 순간은 회귀 전 기억이 돌아오기 전이었음에도…….
이은호가 그렇게 말한 순간 난 온몸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심장이 떨렸다.
내가 바랐던 일을 드디어 의식하게 된 순간이었으니까.
오늘.
옆에서 같이 노래하던 이은호를 직접 보면서 많은 생각이 들었다.
저 우럭 자식한테 할 말로는 오글거리긴 하지만…….
무대에서 마이크를 쥐고 모든 걸 쏟아 낼 듯 노래하는 이은호는 빛난다.
빈말이 아니라, 너무 눈부셔서 모든 사람의 눈길이 그쪽으로 쏠리게 만든다.
「“세상에, 은지 너 노래할 때 너무 멋있다…….”」
사람들은 모른다.
이은호도 모른다.
나는 무대에서 내 노래를 즐기며 이은호를 따라 할 뿐이었다.
이은호는 무대에만 서면 지금껏 연습한 걸 모두 보여 주겠다는 듯 사람들에게 선보인다.
가수는 그래야 하는 거구나.
나한테 이은호는 가수의 표본이었고, 또 라이벌이었다.
연습할 때나 무대에서 이은호한테 지지 않으려 ‘나도’라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했다.
내가 이 직업을 제대로 즐기던 순간은 지금 생각하면 무대 위에서는 없었다.
나는 내 머릿속 노래가 내 손을 통해 이 세상에 현존하게 될 때.
그리고 그걸 내가 바라는 가수가 열창하고 환호를 얻을 때.
그 순간이 나한텐 ‘당장 죽어도 좋을 정도’로 좋았다.
물론 이은호가 알면 기겁할 이야기지만.
그리고 오늘이 그랬다.
톡신 멤버들을 포함해서 우리가 지금껏 공개했던 곡을 모두 선보였던 순간.
이은호가 내가 만든 노래를 열창했다.
게다가 그사이 무슨 짓을 한 건지, 이은호의 보컬 실력은 월등히 올라가서 이젠 따라잡을 생각조차 안 들 정도였다.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그래서 더 좋았다.
이 무대에 차라리 이은호만 있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만큼, 좋았다.
내가 만든 멜로디를 팬들이, 관객들이 떼창한다.
처음엔 아저씨한테 마지막 인사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또 이런 무대를 할 수 있을까.
기타를 치며, 나는 무대 위에서 10년 뒤의 미래를 상상했다.
분명 이은호가 무대 위에 있는 모습은 생생하게 그려지는데…….
어쩐지 조금 씁쓸하지만 나는 그 무대 위에 없다.
내가 바라는 일은 이런 무대 위에 서는 일이 아님을 새삼 실감한 건 이은호가 ‘더운 오후’를 부를 때였다.
더운 오후는 지예찬 선배가 작곡한 곡이지, 내가 만든 곡이 아니다.
편곡 또한 내가 아닌, 지예찬 선배와 함께 일해 온 오태진 기사님이 건드셨었다.
내 손길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곡이었다는 말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은호는 빛났다.
내가 노래하는 그 이은호의 동생이라는 사실이 자랑스러울 정도로 빛났다.
회귀 전, 나는 대표님한테 무대에서의 일로 혼난 적이 한 번 있다.
다른 작곡가의 곡을 부를 때, 내가 무대를 열심히 하지 않는 모습이 티가 났다는 게 문제였다.
사실 이번에도 그랬다.
회귀한 기억이 돌아오기 전이었던 것 같은데, 페이옵의 곡을 처음 들었을 때였다.
내 손으로 뜯어고치고 싶은 부분이 한 트럭이었다.
안 그래도 거지 같은 곡을 자꾸 나노 단위로 끊어 내는 데다, 자꾸 디렉팅 한답시고 머리 위에 군림하려는 꼴까지.
그 꼴을 보니 속이 뒤집혀서 노래를 부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이은호는 아니었다.
그 거지 같은 곡에도 최선을 다했었던 놈이니까.
난 여전히……
믿기지 않는데……
‘더운 오후’의 클라이맥스.
강약 조절을 정말 잘해야 하는 곡이라 어려운 곡임에도 이은호는 그걸 완벽하게 해낸다.
그 모습을 바로 옆에서 보고 있자니, 머리에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은호는 무대 위에 있어야 하는 사람이구나.’
나는 재능이 있다는 말을 지긋지긋하게 들어 왔다.
그 재능 때문에 반강제로 붙들려, 딱히 가수를 하고 싶지 않았음에도 하게 되었으니까.
정작 가수가 되고 싶었던 이은호는 항상 내 뒤로 밀려났다.
그런데, 오늘 이은호가 제대로 된 큰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며 느꼈다.
재능이 있는 사람이 노력하면 못 이긴다는 말이 있다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재능이 있고 노력을 해도, 간절한 사람은 못 이기니까.
진짜 간절한 사람은 시선을 끌고 기적을 만들어 낸다.
이은호가 그랬다.
오늘 콘서트에서 나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오지 못했다.
다들 이은호를 봤다.
여자라는 이유로, 외모에 이끌려 나를 본 사람들도 이후에는 이은호의 노래에 이끌려 다시 고개를 돌렸다.
“당연히 노래할 때지. ……무대 위에서.”
이은호다운 대답이었다.
“우린 참, 살면서 닮았다는 말은 지긋지긋하게 듣는데, 분야만 비슷하지 길은 너무 다르다…….”
진심으로.
뭔가.
생각이 복잡해지면서 마음이 더 갑갑해진 기분이었다.
집에 가서 연탄이나 끌어안고 털이 휘날리도록 만지며 힐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뚝.
무언가 ‘선’ 같은 것이 끊어진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내가 방금 뭘 만지고 싶다고 했었지?’
나는 소중한 것을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