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97)
콘서트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본의 아니게 은호와 은지가 앞서 너무 분위기를 띄웠던 탓일까.
후발주자였던 다른 가수들이 고생 아닌 고생을 많이 하긴 했다.
하지만 덕분에 관객들의 만족도는 최고였던 그런 콘서트가 된 것인지, 이후 쏟아진 기사들은 칭찬 일색이었다.
한편, 그날은 은호와 은지에게는 그다지 ‘좋은 날’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첫 번째 일은 콘서트가 정리되고 난 뒤에 일어났다.
은호와 은지가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향하고 있을 때였다.
“오빠, 잠깐만.”
에이슬이 다급하게 뛰쳐나와 은호의 소매 끝을 떨리는 손으로 붙잡았다.
“잠깐만, 나 좀…… 볼 수 있을까?”
“…….”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는 냉랭한 은호의 눈이 에이슬을 돌아봤다.
“난 너랑 볼일 없는데.”
은호가 무뚝뚝하게 대답한 그때였다.
짜악!
은지가 옆에서 은호의 엉덩이를 있는 힘껏 후려쳤다.
“이게 미쳤나……!”
은호는 화들짝 놀라며 은지를 사납게 돌아봤다.
“다녀와. 중요한 이야기인 것 같은데.”
“아니, 말로 하면 되잖아. 왜 ‘빵디짝’을 후려치는데.”
진심으로 열 받은 듯 은호의 말투에는 진한 사투리가 녹아 있었다.
“……푸훗.”
에이슬은 웃으면 안 된다고 머리로는 생각했지만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흘러나왔다.
조금 수치스러웠는지 귀가 붉어진 은호는 은지를 신경질적으로 쏘아보다 한숨을 내쉬며 다시 에이슬을 돌아봤다.
일단 먼저 해결할 본론은 이쪽이었으니까.
“저기, 지금 니가 무슨 말 할진 모르겠는데 여기서 말하기 난감한 말이면 난 그냥 안 했으면 하는데.”
다른 사람이었다면 왜 이렇게까지 피하나 싶을 정도로 은호는 에이슬과의 거리감을 유지하고 있었다.
서운할 법도 했지만 에이슬은 과거의 제 죄를 알기에 이렇게까지 피하려는 은호의 심정을 알고 있었다.
많이 늦어 버렸지만, 이제라도 미약하게나마 이해하고 있었으니까.
에이슬은 마음의 준비를 하려는 듯 깊은숨을 들이쉬며 한숨을 흘렸다.
이어서 본론을 말했다.
“그게, ‘다른 시간’에 대해서 할 이야기가 있어.”
‘다른 시간.’
이야기를 들은 순간, 은지는 마지막 퍼즐 조각을 찾은 아이처럼 후련한 미소를 띠었다.
‘역시.’
마찬가지로 에이슬 또한 은지의 눈치를 봤다.
‘언니는 역시 알고 있었던 거구나.’
에이슬과 은지는 서로의 시선이 마주친 순간.
그간 서로에게 ‘회귀 전의 기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의심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여기서 머리가 혼란스러운 건 은호 하나뿐이었다.
“마침 여기 비었네. 이야기하고 와. 먼저 가 있을게.”
“야, 잠깐!”
은지가 밀어 넣은 탓에 은호는 에이슬과 함께 빈 대기실 안으로 떠밀려 들어왔다.
에이슬이 ‘다른 시간’을 밝힌 직후에는 솔직히 혼란스러운 마음이 더 커서 무슨 말을 하는지 곧장 이해하진 못했었다.
하지만 이해한 순간.
“…….”
은호의 얼굴에 그간 에이슬을 볼 때마다 뒤집어썼던 무표정이라는 가면이 벗겨졌다.
“우와. 하하. 그 표정 되게 오랜만에 보는 거 같다.”
진심이 드러난 은호의 얼굴에는 명백한 혐오만이 가득 들어차 있었다.
에이슬은 웃으면서 말했지만,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받는 혐오의 시선은 맹독이 발린 화살을 맞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가슴에 박힌 독은 퍼져 가며 심장을 죄인다.
“내가 자초한 일이라지만, 이렇게 다시 보니까 가슴이 아프긴 하네…….”
“너랑 더 길게 이야기하고 싶은 생각 없으니까 빨리 본론이나 말해.”
은호는 에이슬이 중얼거리듯 하는 말을 시원하게 씹으며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게…….”
“…….”
에이슬은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은호의 눈썹이 불쾌하게 비틀렸다.
“뭐 하냐.”
“사죄.”
“……하.”
어이가 없다는 듯 은호의 허탈한 한숨이 터졌다.
“양심이 있으면…….”
“아니야.”
에이슬은 들고 있던 고개를 바닥에 닿을 정도로 숙이며 말을 이었다.
“용서해 달라는 의미에서 하는 게 아니야.”
“…….”
사죄는 하지만 용서를 바라지 않는다는 말에 은호의 입이 닫혔다.
“미안해.”
내가 오빠한테 붙들고 협박했던 그 이야기의 무게를 몰랐던 시절의 잘못들.
그걸 너무 늦게 깨달은 것도.
차마 하나하나 입에 올리기엔 핑계밖에 되지 않을 걸 알기에.
이 ‘미안해’라는 세 글자조차 자신에겐 과분한 것임을 이젠 알기에.
그 말조차 재차 더하지 않았다.
몇 번을 하든, 그 무게가 말 몇 번으로 덜어질 만한 일이 아니었으니까.
에이슬은 여전히 엎드린 채였다.
은호는 그 모습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며 에이슬을 불렀다.
“인제 와서 이러는 게 더 불편하니까 일어나라.”
에이슬이 천천히 몸을 일으키는 동안, 은호는 하지도 않을 용서는 제치고 궁금한 점을 물었다.
“언제부터였어.”
“……거짓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믿어. 거짓말 아닌 거.”
은지, 연탄, 과거부터 연결된 꿈까지.
‘거짓말’이라고 치부하기엔 이미 지난날 동안 겪은 일이 많았다.
하지만 에이슬은 전혀 예상치 못한 말을 들은 듯 놀랐다.
다만 은호와 오래 눈을 마주치는 건 힘들었는지 에이슬은 다시 시선을 떨구며 말을 이었다.
“‘같이 쫌 살자’ 첫 촬영 이후부터였어.”
“…….”
“그때 이후로 매일 밤, 꿈처럼 계속 다른 ‘나’를 봤어.”
“꿈이란 말이지.”
“응……. 나도 처음엔 단순히 꿈인 줄 알았는데, 그냥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이렇게 저렇게 맞춰 보니…….”
“우리도 그때 기억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지 않고서야, 오빠가 지금처럼 나랑 이야기하지도 않았을 테니까.”
에이슬은 씁쓸하게 웃으며 은호를 눈에 담았다.
은호는 다른 곳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었다.
꽤 긴 침묵이 이어졌다.
먼저 입을 뗀 건 은호였다.
“이미 흘러간 시간은 원래 주워 담을 수 없어.”
“응…… 알고 있어.”
“하지만 넌 적어도 운 좋게 주워 담았잖아.”
“……?”
“착각하지 마. 용서한다거나 그런 말은 아니니까.”
“아, 응…….”
“너 때문에 난 적어도 앞으로 몇 년은 더 여자는커녕 도 닦고 지낼 판이다.”
은호의 이야기에 에이슬은 순간 속이 끓었다.
미안한 와중에도 ‘너 때문에’라는 그 말에 기묘한 기쁨을 느끼는 자신이 혼란스러워서.
하지만 기쁨도 잠시, 은호는 확실한 선을 그었다.
“너도 기억이 있다고 하니까. 잘됐네. 앞으로 귀찮게 방송 아니고서는 아는 척하지 말고 서로 모르던 때처럼 지내자.”
“……응.”
모르던 때처럼.
이건 각오했던 이야기 중 하나였다.
다만, 이후 은호의 이야기는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갔다.
“지금은 실수하기 전인 어이슬이니까.”
“하하…….”
어이슬.
‘정말 싫어했던 이름인데…….’
오빠가 부르는 이름은 싫지 않다.
오히려 그 이름이 오빠 입에서 나올 때면 가슴이 뛴다.
이제 다시는 볼 수 없는 사이가 될 텐데도, 미련하게.
“적어도 이번엔 그 실수 반복하지 않게 똑바로 살아.”
“응.”
눈물이 날 것 같은데, 울어선 안 되니 이를 악물며 에이슬은 눈물을 참았다.
“참, 그…….”
“응.”
“연애라고는 쥐똥만큼도 관심 없던 애가…….”
갑작스럽게 튀어나온 ‘연애’라는 단어에 에이슬의 머리 위로 수십 개의 물음표가 떠올랐다.
“니가 나 쫓아다니던 모습이 부러웠다더라.”
하지만 이어지는 말을 듣고서야 에이슬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다.
“언니? 은지 언니가?”
“어.”
은호는 허공을 보던 눈을 굴려 에이슬을 바라봤다.
“너도 이해 안 되냐? 나도 내 동생이지만 머리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겠다.”
“…….”
“근데 적어도 걔 시선에 그렇게 보일 정도로 그때 너는 나한테 진심으로 노력했었나 보다 싶더라고.”
은호의 한마디 한마디는 무관심한 듯 다정했다.
은호에게서 그런 면이 드러날 때마다 에이슬은 미칠 것 같았다.
그 사실을 본인은 모른다는 것까지.
다 포기하려고 이야기를 꺼낸 건데 허망하리만큼, 정작 그 장본인이 마음을 쥐고 흔들어 대니까.
“이번에는 너도 너를 좋아해 주는 사람한테 그러라고, 나 같은 놈 말고.”
또 한 번 침묵이 내려앉았다.
이번 침묵은 길지 않았다.
“아무튼, 잘 지내라고. 난 간다.”
은호는 인사를 끝으로 그대로 대기실을 떠나버렸다.
‘마지막까지 그러고 가 버리면…….’
은호가 나가고, 에이슬은 심장 부근을 움켜쥐며 주르륵 흘러내렸다.
가장 힘들었던 시기였다.
주변 사람들이 모두 떠나버린 시기.
하지만 자신은 잘못한 것 따위 없다고 이기적으로만 생각하던 시절.
뒤늦게 돌아보면 잘못한 것도 맞고 사람들이 싫어할 행동, 버릇 같은 걸 다 가지고 있었다.
그 누구도 버티지 못하고 떠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그 시기에 끝까지 곁에 남은 사람이 은호였다.
은지를 위해서였다고는 하지만.
비록 협박으로 만들어진 관계였지만.
은호는 끝까지 있었다.
박창석 대표라든가.
충분히 능력 있는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서 어떻게든 자신을 정리할 방법은 많았을텐데도 은호는 끝까지 직접 상대하는 쪽을 택했다.
에이슬을 혐오했지만, 동시에 망가진 에이슬에게서 어린 시절 막무가내였던 은지의 모습이 보여서, 그래서 놓지 못한 것도 있었다.
욕이나 시원하게 하고 떠날 수 있었음에도 잘 살라는 말을 한 것도.
순수하게 원망하고 미워하기엔 결국 미운 정도 정이었으니까.
그렇게 에이슬에게 은호는 첫사랑이자 가장 고마운 사람이자 가장 미안한 존재가 됐다.
“……미안해. 고마워. 미안해…….”
은호가 이미 떠난 빈 대기실 안에는 에이슬의 목소리와 코 먹는 소리만 공허하게 맴돌았다.
“……나 같은 게 오빠 좋아해서 미안해. 다 미안해. 끅, 은지 언니랑 순서, 끅, 그때, 바꿔서 미안해. 나 때문에, 끅. 언니가 그렇게 된 건데…… 끅, 언니가, 끅 살아 있어서 다행이다. 오빠한테, 언니가 남아있어서 다행이다. 끅, 다행이야…….”
혼자에게만 들릴 작은 목소리였다.
진심으로 사랑했다.
시작은 비틀렸을지언정.
그 마음만은 진심이었다.
그래서 더더욱 자신이 끔찍했다.
사랑했던 사람한테 준 아픔이 미안해서.
그 죄책감 때문에.
시작은 추억 속 질투가 끓어올라 오랜만에 부린 심술로, 무대의 순서를 바꾼 것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나비의 작은 날갯짓은 폭풍이 되어 돌아왔다.
가해자는 음주운전 상태.
국도에서 역주행 중이던 음주운전 차량은 정면에서 다가오던 은지의 차량을 발견하자 속도를 올렸다.
매니저는 다급하게 핸들을 돌렸지만 가해 차량이 속력을 올린 탓에 피할 수 없었다.
쾅.
은지의 차량은 굉음을 내며 엎어졌다.
안전띠를 한 매니저는 중상.
운이 좋게 큰 사고였음에도 목숨은 건졌다.
‘하지만 은지 언니는…….’
실제로 사고를 낸 건 에이슬이 아니었다.
하지만 사고가 난 이유에 에이슬이 완전히 배제되는 것도 아니었다.
은지의 매니저에게 도착한 마지막 연락이 스태프에게서 에이슬 자신과 순서가 바뀌었으니 얼른 오라는 연락이었으니까.
가족이었던 은호에게는 당연히 이 사실이 모두 전달됐다.
에이슬은 당연히 은호에게 연락이 올 줄 알았다.
욕이라도 듣는다면 후련해질까.
그땐 미치기 전이었는지 정신없는 와중에도 그렇게 이기적으로 생각했었다.
하지만 은호는 원망스러웠음에도 그 부분에서만큼은 원망하지 않으려 애썼다.
에이슬은 그런 은호의 마음을 알고 나서야 함께 곪아 갔다.
울음을 그치고 숨을 골라 낸 에이슬은 휴대폰을 꺼내 아직 읽지 않았던 메일을 확인했다.
매니저를 통해 이야기했던 내용이 그사이 전달됐던 듯 ‘제이든 큰아빠’에게서 메일이 하나 와 있었다.
「We always welcome you.
When are you going to leave?」
자신이 은호에게 해 줄 수 있는 최고의 이별 선물.
눈앞에서 사라져 주는 것.
에이슬은 본래 변덕이 심했다.
어릴 적엔 꿈이 가수였지만, 에이슬은 일찍이 가수 활동에 흥미를 잃었다.
다른 시간에서 열심히 했던 이유 또한 라이벌, 은지를 이기겠다는 것 하나였다.
그 라이벌조차 사라진 지금.
에이슬은 더 연예계에 남아 있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더 많은 것, 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살다 보면 오래 묵어 버린 이 감정도 언젠간 털어지겠지.’
에이슬의 아버지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태어나기도 전이었다.
능력이 넘쳤던 엄마는 자신을 책임졌고, 삼촌인 어석배는 자연히 그 책임을 이어 갔다.
때마침 정리하던 중에 오랜 기간 연락이 없었던 아버지 쪽 가족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에이슬은 날 때부터 가진 게 많았던 만큼 인복도 마찬가지였는지, 은호와 은지와는 다르게 일찍이 친가에서 또한 에이슬을 책임지길 원했다.
남은 건 에이슬의 선택뿐이었고, 에이슬은 선택했다.
성인이 되기 전에 가는 편이 생활할 때 적응도 빠르게 할 수 있어 더 편할 테니까.
에이슬은 눈물을 훔친 후 자판을 찍으며 친아빠의 형인 제이든에게 답장했다.
「It will take about two weeks.
I want to see you so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