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96)
“이거, 넣자. 꼭 넣자.”
“예? 아니, 그래도 녹음은…….”
“녹음이야 니들이 알아서 하겠지. 넣어!”
‘인사’ 가사를 본 대표님은 이건 반드시 넣자더니 앨범에 들어가 있던 마지막 곡을 빼 버리고 ‘인사’를 넣어 버렸다.
“아니, 잠시만요. 우리 마지막 글자 맞춘 건요!”
“마지막 글자가 뭐였는데?”
“‘G’요.”
“흠, G, G…… Greeting?”
“아.”
“됐지?”
“……예.”
이걸 바로 픽을 해 버릴 줄은 몰랐다.
심지어 사내에서도 반대하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을 줄은 더더욱.
그렇게 ‘인사’는 우리 ‘GIFT’ 앨범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됐다.
다만, 녹음하기 전 문제가 하나 있었다.
“혼자 해.”
이번 곡의 가사를 본 은지가 갑자기 자기는 도저히 안 되겠다며 녹음 포기를 선언했기 때문이다.
난 이 소식을 곧장 대표님에게 전했다.
“은지는 못 하겠다는데요, 대표님.”
난 대표님이 적어도 물리려는 행동을 한 번은 하실 줄 알았다.
‘그럼 어쩔 수 없지, 원래 곡으로 가자.’라든가.
하지만 대표님의 대답은 간단했다.
“그럼 너 혼자 하면 되잖아.”
“예?”
“너 어차피 솔로 해 보고 싶다고도 했었으니까.”
“이미 한 곡 있잖아요. 그 완벽한…….”
“아, 몰라. 하나 더 해.”
이건 무슨 투정도 아니고…….
난 왠지 이런 상황이 혼란스러워서 물었다.
“왜 이렇게 밀어주는 거예요?”
“내가 너 언제 안 밀어줄 때도 있었냐?”
“아니, 그 말이 아니잖아요. ‘인사’ 곡이요.”
“흐음…….”
대표님은 콧김을 한 차례 뿜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건 처음이잖냐.”
“뭐가요?”
“너희가 그분 이야기하는 건 종종 있었지만, 노래로 이렇게 만든 건 처음이잖냐. 은지는 아직 시간이 더 필요한 것 같지만…….”
“…….”
“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다행이지. 자식이 둥지 밖으로 걷는다는데 부모가 돼서 등 한 번은 밀어 줘야지. 안 그러냐?”
대표님 말을 들으니 납득하고 싶지 않아도 납득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인사’는 이번 앨범에 들어갈 내 두 번째 솔로 곡이 됐다.
* * *
셋, 둘, 하나.
나는 인이어를 통해 넘어온 피아노 반주에 맞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은지도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기타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머물던 자리에 어느덧 자라난 높은 잔디가 아픔을 끌어안은 당신의 눈물이
커 버린 내 모습이
지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질 알려 와
눈가를 적시는 눈물의 차가운 온도는
알고 싶지 않은
당신이 떠난 시간을 실감하게 해
대표님의 말마따나 이건 지금까지 노래로만큼은 꺼내 보인 적 없던 이야기였다.
몇 번이고 끄적인 적은 있었다.
실제로 가사 노트에는 꽤 많은 시 같은 가사들이 여러 곡 있었다.
하지만 그걸 은지에게, 대표님에게 넘기진 않았었다.
덤덤하게 부를 자신이 없어서 그랬다.
나는 울고 있었어
당신이 보고 싶어서
몇 번이고 해 주고 싶던 말이 있었는데
끝내 하지 못해 나는 후회해 왔어
나는 그간 사람들의 이름을 들으면 무조건 외우려고 노력했다.
가장 기억하고 싶었던 사람의 이름을 잊어버렸기에…….
혹시라도 비슷한 이름을 듣는다면 언젠간 문득 그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까 싶어서.
이건
그때 전하지 못했던 안녕이라는 인사
내가 하려던 이야기보다는 짧지만
그 속에 든 뜻은 깊고 깊기에
당신만은 알아주겠지
여기서 이 이야기를 하면…….
당신에게 들릴까요.
들어 줬으면 좋겠다.
지금이 딱, 내가 바라는 그 순간이니까.
안녕
내게 처음 사랑이란 걸 알려 준 당신
안녕
참지 못해 나온 두 글자가
눈가를 다시 적셔 와
이 노래를 오늘 반드시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리허설 때였다.
리허설을 위해 무대 위에 섰을 때, 그 순간 생각했다.
이렇게 꽉 찬 무대를 본다면.
내 노래에 호응하고 함께 해 주는 관객들을 본다면.
원 없이 노래하는 순간에 그 옆에 이은지가 함께 있다면.
그 순간은.
지금껏 살아온 내 평생 중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기왕 부르게 된다면 그때 이 노래를 부르고 싶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내 기억 속 그때
풍겨 오던 골목길 어귀의 그 향기를
나는 평생 잊을 수 없겠죠
하지만 그간 지낸 시간과 마침내 꿈에서 보게 된 아저씨의 이름을 찾아냈기 때문일까.
아저씨의 이름을 찾은 순간.
꿈속에서 흐려졌던 아저씨의 얼굴을 다시 마주했던 순간.
우리를 떠나보내던 아저씨의 표정을 본 그 순간.
아저씨는 우리를 떠나보내고 싶지 않았던 표정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행복하길 바랐기에 보내야만 했다.
그래서 나도 가장 행복한 순간에 전해 주고 싶었어요
당신에게도 선물이 되도록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아저씨.
또 회귀 전에는 알지 못했던, 잊고 있었던 당신의 이름도 이젠 알게 됐어요.
빵집 아저씨.
우리 아저씨.
금종 아저씨.
낯선 이름이지만 낯설지 않은 당신의 이름.
지금껏 차오르지 않던 숨이 조금 가빠 온다.
하지만 지금만큼은 울고 싶지 않았다.
혹여나 아저씨가 듣고 있다면, 잔정 많은 우리 아저씨한테 괜한 걱정 시키고 싶진 않으니까.
고마워요
그 어린 나를 구해 줘서
고마워요
그 어린 나를 살려 줘서
고마워요
한번 뱉으니
인사가 쉬지 않고 흘러나와
바다를 이루죠
가사를 본 은지가 했던 말이 문득 다시 떠오른다.
「“나, 나는 이거 못 불러. 못 해. 나는 아직 아니야…….”」
내가 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 줬고, 아저씨의 이름도 알려 줬지만 은지에게는 아직 때가 아니었던 것 같다.
분명 그랬다.
하지만 마지막 파트가 되자, 은지는 기타 연주를 멈추고 대신 마이크를 들었다.
은지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된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안녕
내게 처음 사랑이란 걸 알려 준 당신
안녕
이젠 아프지 말아요
안……녕
은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이 되자, 이젠 나까지 떨고 있다.
그간 미뤄 왔던 인사를 이제 하네요
이건 정작 중요한 때 전하지 못했던 짧은 인사
내가 하려던 이야기보다는 짧지만
그 속에 든 뜻은 깊고 깊기에 당신만은 알아주겠지
안녕
노래가 끝나고, 조명은 꺼졌다.
곡을 추가하느라 쉬는 시간도 없이 꽉꽉 채웠다.
고로, 이젠 진짜 내려가야 할 때라 정작 관객들에겐 인사조차 못 하고 발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하지만 등 뒤로 쏟아지는 박수갈채와 격앙된 감정 때문일까.
“허어어어엉. 끅, 흐, 끄흐어어어엉.”
은지는 계단을 내려오는 내내 어린 시절 아저씨와 헤어지기 싫다며 울었던 그때처럼 고개를 쳐들고 소리 내 서럽게 울었다.
나는 우는 은지의 손을 붙잡아 이끌며 대기실로 향했다.
대기실로 가는 복도를 걷는데,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애초에 뭐가 보여야 신경을 쓰든지 말든지 하지.
무대에서 참았던 만큼 나 또한 어린 시절 초등학생 꼬맹이로 돌아간 건 마찬가지였나 보다.
멈추지 않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못 한 채 뚝뚝 흘리며, 돌아왔던 기억을 더듬어 우리 대기실 방향으로 걸었다.
* * *
은호와 은지의 무대를 본 직후, 에이슬은 두 사람이 지녔던 지난 삶의 무게를 새삼 실감하고 있었다.
‘…….’
동시에 지난 과거에 자신이 벌였던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에이슬은 은호의 노래 속 존재를 세상이 알기 전에 먼저 알고 있었다.
처음 그 사람을 알았던 건 지난 시간이었다.
당시에는 은지를 끌어내릴 약점을 찾고 싶었고, 그 과정에서 자연히 그 사람의 존재가 나왔다.
하지만 알아낸 거라고는 그 사람도 힘든 사정을 가졌다는 것뿐.
그건 은지에게 있어 약점조차 되지 않을 부분이라,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며 버린 정보 중 하나였었다.
한 가게의 주인이 길거리를 떠돌던 아이들을 거뒀고, 본인의 가게에서 지내면서 꽤 짧지 않은 기간을 함께 있었다.
그는 건강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들을 보냈다.
그게 끝이었다.
이후 뭐라도 나올까 싶어서 뒤를 캐다 보니 알게 된 건…….
그가 본인의 재산 및 사망 보험금 전액을 은호와 은지의 후원금으로 갈 수 있도록 해 뒀다는 것.
솔직히 그건 조금, 아니.
그 비뚤어진 당시에도 그의 행동만큼은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었다.
‘그땐 너무 멍청했고, 생각이 어렸으니까.’
이런 것조차 핑계일지도 모르지만…….
에이슬은 헛헛한 웃음을 흘렸다.
‘그땐’이라며 치부했지만, 지금 또한 자신은 어리긴 매한가지인 것 같았다.
처음에 은호가 이 곡을 부를 때였다.
‘은호 오빠,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나?’
노래하는 은호의 표정과 그 목소리에 묻어난 감정이 깊다 못해 너무나 애절하고 절절해서 그렇게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뒤에 이어진 ‘그 어린 나를 구해 줘서’, ‘그 어린 나를 살려 줘서’라는 가사.
그 가사를 들은 순간 에이슬은 부끄러워졌다.
‘…….’
포기하겠다고 마음먹은 직후였으면서.
오해하다 못해서 마음 한편에 은호에게서 그런 감정을 끌어낸 존재에게 질투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진짜, 너무 싫다. 나…….’
노래가 이어지는 동안, 에이슬은 많은 생각을 정리했다.
‘이야기하고, 확실하게…… 대답을 듣자.’
나 자신이 더 싫어지기 전에.
더 싫은 생각을 하기 전에.
무대가 끝나고, 에이슬은 곧장 복도로 향했다.
오늘이야말로 자신의 모든 걸 정리하기 위해서, 은호에게 찾아가려 했다.
하지만 에이슬은 복도로 나선 순간 놀랐다.
다들 두 사람 공연에 감명받은 걸까.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은호와 은지를 맞이하려 복도로 나와 있었다.
“……끄흐어어어엉.”
박수라도 치려고 모여 있던 것 같았는데…….
정작 주인공이 등장했음에도 사람들은 누구 하나 소리를 낼 수 없었다.
에이슬 또한 굳어 버렸다.
나 자신이 더 싫어지지 않게, 상처받지 않으려고 이야기하려 한 그 생각조차 이기적인 생각이었음을.
복도에 들어선 은호와 은지를 보고서야 깨달았다.
소리 내 엉엉 우는 은지의 손을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꽉 붙잡은 채.
은호는 사람들이 비켜 서며 만든 길목을 척척 걸음으로 지나갔다.
은호의 표정은 언제나 그렇듯 덤덤하고 또 냉랭하던 그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런 표정으로도 감춰지지 않는 감정이 보였다.
얼마나 아꼈기에.
또 얼마나 슬프기에.
저렇게까지 우는 걸까 싶을 정도로.
은호가 지나간 길에는 눈물방울들이 뚝뚝 떨어지면서 두 사람의 흔적이 만들어져 있었다.
당시 알고도 ‘별일’이 아니라고 넘겼던 그 일이.
두 사람에겐 전혀 다른 무게였구나.
눈물로 만들어진 길을 보자, 에이슬은 도망치다시피 처음의 계획과 달리 다시 대기실로 돌아왔다.
차마 갈 수 없었다.
“나 진짜 나쁜 년이었구나…….”
에이슬은 어이가 없는지 헛웃음을 흘렸다.
입 밖으로 이런 말을 뱉은 순간에도 굳은 얼굴로 눈물을 흘리던 은호의 얼굴을 떠올리는 자신이 우스웠다.
저렇게 아픈 시간을 빌미로 관계를 협박했던 자신이 말이다.
에이슬은 문득 은호가 했던 오래전에 들었던 말이 떠올랐다.
「“미안하다니까! 내가 미안하다고 했잖아! 한 번만 받아 주는 게 그렇게 힘드냐고!”」
인생 처음으로 도시락도 싸 주고, 커피차도 보내는 등.
마음에 들어 보겠다고 귀하게 자란 자신이 온갖 짓을 다 함에도 제 감정을 하나 받아 주지 않는 게 억울하고 미웠던 때였다.
‘나 참 뻔뻔했구나.’
알고 있지만, 새삼 또 한 번 깨닫는다.
한편, 에이슬은 그때 은호가 했던 말도 이어서 떠올랐다.
「“넌 ‘미안하다는 말도 사치다’라는 문장 의미를 알아야, 적어도 내 마음을 개미 발톱만큼이라도 이해할 것 같다.”」
미안하다는 말도 사치다.
“오빠 말대로…… 딱 개미 발톱만큼 이해한 것 같네…….”
먼 길을 돌고 돌아왔음에도 이제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