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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95화 (295/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95)

외전: 두 마리

평소에 가수에 관심이 있느냐 묻는다면 단연, NO.

이 공연을 보러 온 건 단순히 카드 포인트나 쓸 겸이었다.

마침 이번에 할인 이벤트도 한다고 하고, 유명한 가수들이 많이 온다기에 몇 년 동안 안 하던 문화 생활이나 좀 해 볼까 싶어서 온 콘서트였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 이슬이가―.”

혼자는 아니었다.

마침 이번 콘서트에 출연하는 가수 중 팬인 놈이 하나 있어서 민망하게 혼자 가는 것보다야 나을 것 같아서 같이 왔다.

하지만 난 그 생각을 후회했다.

“이번에 신곡이 좋아하는 남자의 행복을 빌어 준다고 떠나보내는 그런 느낌인데, 갑자기 어렸던 동생이 철든 것처럼 막…….”

귀에서 피가 흐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대기하는 한 시간 내내 에이슬인지 에이솔인지 이야기를 계속 들어야만 했다.

한편, 친구 녀석의 에이슬 이야기나 피할 겸 입장 전 주변을 둘러보는데.

나처럼 누군가의 팬이 아닌 사람도 적진 않았지만, 아이돌로 넘치는 DI 뮤직이 참여한 탓인지 다양한 아이돌들의 팬들이 눈에 띄었다.

알록달록한 응원봉을 든 사람들은 마치 한 그룹이라도 이루듯 그들끼리 모여 있었다.

“……저기는 응원봉 되게 특이하네.”

“어디?”

그때, 내 혼잣말을 들은 듯 친구 놈이 머리를 빼며 같은 방향을 바라봤다.

한글을 안다면 시선이 갈 수밖에 없었다.

대놓고 ‘이응(ㅇ)’이라고 떡하니 박혔는데, 내가 잘못 봤나 싶어 다시 보기까지 했었으니까.

“하하, 뭐 저런 봉이 다 있냐.”

그 ‘이응’ 모양의 응원봉은 친구와 내 웃음 벨과도 같았다.

거기다 마침 자리를 잡은 곳도 그 ‘이응’ 모양의 응원봉들이 가득한 팬 석의 바로 옆자리이기까지.

“이것도 인연인데, 이따 번호나 따 볼까.”

“에이슬인지 그 사람 팬이라며, 너.”

“에이, 말하자면 거긴 ‘신의 영역’인 거고 나는 신자인 거지, 신자도 결혼은 해야 하지 않겠냐.”

“예예…….”

“이슬 님은 신이고, 나는 인간이니까. 큽!”

“니가 인간이었냐.”

과장하는 친구 놈이 조금 쪽팔렸다.

그래서 놀린 건데, 쏘아보는 시선이 살벌했다.

“하하.”

다급하게 고개를 돌린 그때였다.

기가 막히게 타이밍이 맞아떨어졌다.

무대는 드디어 시작이라는 듯 화려한 조명이 쏟아졌다.

이름도, 얼굴도 생전 처음 보는 가수들이 무대를 나와 노래를 하고 들어갔다.

딱히 감명을 받거나 그런 건 없었다.

뭐, 그나마 친구 녀석이 말하던 그 ‘신의 영역’인지 뭔지 그건 조금 이해가 됐다.

남자고 여자고, 다들 하나같이 인형처럼은 생겼더라.

딱 그 정도 감상이 고작이었다.

“오. 톡신이다.”

“오.”

그 감상이 깨진 건 지예찬이 등장한 순간부터였다.

지예찬.

톡신의 리더.

한국에서 2000년대를 보냈다면 얼굴은 몰라도 톡신의 노래는 길 가는 사람 누구를 붙잡아도 한 소절을 따라 부를 수 있을 정도로 높은 인지도를 가진 가수.

특히 그들은 이런저런 고생으로 뉴스에도 많이 올라왔던 그룹이라서 팬은 아니라도 애잔한 마음이 많았던 그룹이었다.

마지막으로 소식을 들었던 것이라고는 그들이 속한 TaKa 엔터테인먼트가 망해서 다른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였던가.

“쟤들도 복귀했었구나.”

“참, 그러고 보니까 우리 이슬이가 하는 예능에도 톡신 멤버들 나온다고 하더라?”

“‘하더라’는 뭐야. 에이슬 팬이라면서 챙겨 봐야 하는 거 아니야?”

“일하기 바쁜데 그런 거 챙겨 볼 시간이 어딨냐? 오늘 이것도 팀장한테 몇 턱을 쏴서 어떻게 겨우 얻어 낸 날인데.”

친구 녀석의 말이 이해는 됐다.

나 또한 최근 일에 치여 듣는 노래라고는 출퇴근 길에 들리는 가게에서 튼 곡들이 고작이었다.

운전할 때도 듣는 건 추억의 2000년대 노래 같은 것들뿐이라…….

최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뉴스 말고는 접할 길이 없었다.

‘뭐지?’

한편, 지예찬의 무대에 함께 나온 다른 남자가 먼저 노래를 시작하자, 왠지 ‘이응’ 모양의 응원봉을 들고 있던 옆자리 팬들에게서 남다른 열기가 흘러나왔다.

잠시 후 열기만큼이나 어마어마한 함성이 옆에서 쏟아졌다.

뒤늦게 스크린에 남자의 얼굴이 클로즈업 돼서 띄워졌는데, 와.

저 함성의 이유가 적어도 하나는 이해가 됐다.

‘와, 씨, 세상 혼자 사나. X나 잘생겼네!’

지금까지 나온 아이돌들과는 달리, 뭐랄까…….

“와, 쟤는 무슨 아이돌이 아니라 배우같이 생겼다.”

“그래! 그거다.”

“엉?”

친구 놈의 말이 정확했다.

배우상.

드라마나 영화에서 보일 것 같은 그런 잘생김이 묻은 얼굴이었다.

거기다 이어서 노래까지 잘하는 걸 들으니 왠지…….

세상이 원망스러워졌다.

이후에는 톡신의 무대가 이어졌다.

곡은 모르는 곡이라, 추억 속 그룹을 눈으로 구경하는 즐거움만 느끼며 보고 있던 그때였다.

노래가 갑자기 다른 멜로디로 바뀐 건가 싶던 그 순간, 낯선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짜 둔 계획이―

목소리가 완전 취향이라고 생각하던 그 순간, 리프트를 타고 한 여자가 등장했다.

아까 나왔던 그 남자와 굉장히 닮았지만, 신기할 정도로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였다.

한편, 옆자리의 그 ‘이응’ 봉을 든 팬들은 남녀 구분 없이 하나가 되어 비명 같은 환호를 지르기 시작했다.

“와아아아!!!”

근데 이번엔 거기에 나도 포함이었다.

“하하. 아까는 나 전혀 이해 안 된다는 듯이 심드렁하게 있더니 뭐 하냐?”

환호하는 내 모습을 보며 친구가 놀리듯 물었다.

하지만 그놈이라고 다를 건 없었다.

리프트를 올라온 여자가 앞머리를 넘기며 웃는데, 그 장면이 스크린 속에 가득 찬 그 순간.

아웃이었다.

나를 놀리던 친구 녀석은 한 마리의 구애하는 오랑우탄이 되어 본인 한번 봐 달라는 듯 ‘우오오오오!!!’거리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다.

“우오오오오!!!”

* * *

추억

길에서 주운 페트병 속에 모래 조금과 돌멩이 조금, 녹슨 드럼통과 페트병은 은지에게 있어 귀한 악기가 된다.

내 손에는 이곳 공터까지 오는 길에 주운 일회용 숟가락 하나.

그건 곧 내 전용 마이크가 되고 우린 무대에 올랐다.

아침이 올 거라 믿어

의심치 말아 너에게 항상 말했어

가라앉아 푸르러진

너의 하늘에 해가 들기를

네 아침이 내가 되길 빌고 빌어 봐

지금 내가 있는 곳은 분명 공연장 중심의 무대 위인데, 분명 무대 위가 맞는데.

순간 이 시간이 꿈인가 싶은 착각이 들 정도로 우리를 따라 노래하는 관객들의 하나 된 목소리.

멀리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이응(ㅇ)’ 모양의 EG봉들.

그리고 함께 노래하고 있는, 죽었다 살아난 내 동생까지.

새삼 연탄이 녀석한테 고마워졌다.

눈앞의 그림은 꿈에 그리던 그 풍경이었으니까.

우리 떨어지지 말자

쉽게 올리기엔

이 무게를 알기에 바라지 않아

아주 아주.

아주 어릴 적부터 꿈에 그려 왔던 그 풍경이었다.

함께할게 더 오래

후회라는 것을 배우기엔

우린 시간이 모자라

보일 게 더 많아

내가 가졌던 시간에

배워 온 것이 많으니

한창 노래를 하던 그때였다.

난 은지를 잠시 돌아봤다.

얘도 조명 때문인지 아니면 관객들의 열기 때문인지, 열이 오른 듯 땀방울이 튀고 있다.

있잖아

우리는 매일 말했어

우리에게도 아침이 올 거라

믿었어 그래서

우린 지금 여기 있어

은지가 이쪽을 돌아봤다.

시선이 마주치자 웃음이 날 수밖에 없었다.

시선으로 느껴지는 은지의 질문 때문이었다.

‘오빠도 지금 ‘그때’ 생각 중?’

같은 핏줄 아니랄까.

이럴 땐 사람들이 말하는 ‘거울 같다’라는 말을 인정하게 된다.

‘당연하지.’

대답을 담아 옅게 고개를 끄덕이자 은지가 웃었다.

낡은 판자 위에서 열창하던 그 ‘콘서트 놀이’가 현실이 된 순간이었다.

웃는 은지의 눈가에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방울이 맺혔다.

뭐 이런 거에 울고 그래, 쟤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단

신비롭던 이야기를 믿기까지 셋

평온했던 이 일상을 찾아

너와 나 끝을 잇기까지 둘

네가 가진 시작을 위한

마지막 하나

조금 전엔 뭘 울고 그러냐고 비웃었는데, 큰일 났다.

가라앉아 푸르렀던 우리

이 새벽에도 빛이 들어와

이미 마침표를 찍어 버린 이별을

다시 이어 가 보자

이건 그러니까, 그래. 클라이맥스라서.

이런 신나는 반주에 그렇지 못한 가사 때문에.

그래서 그렇다.

강렬한 일렉 기타의 연주에 심장이 간질거린다.

나이를 먹긴 먹은 건지, 몸은 젊어졌지만 지나간 세월은 무시할 수 없는 건가.

아저씨처럼 감수성이 풍부해져서 주책도 이런 주책이 없다.

아낄 게 더 많이

함께할게 더 오래

그래서 나는 지금 여기 있어

그래서 우린 지금 여기 있어

눈가가 젖어 가는 것 같다.

이 풍경이 너무 행복해서.

이 행복이 혹시나 깨질까, 너무 소중해서.

‘……다음 곡.’

그건 반드시 이 순간, 이 무대여야 했다.

추가하길 잘했다.

그래

나는 지금

여기 있어

드럼의 마무리에 노래는 끝이 났다.

하지만 뒤늦게 터진 내 감수성은 멋대로 이제 시작이라는 듯 눈물샘을 쥐어짜 버렸다.

그때였다.

“아핰핰핰핰. 야, 이은호 운다!!!”

망할 이은지.

저 호박 대가리.

저 빡대가리.

저, 저……!

“닥, 아니. 킇, 조용해.”

급하게 눈가를 찍어 내며 눈물을 닦아 봤지만 이게, 아이, 씨.

미치겠다.

눈물을 닦으려 눈을 찍으면 버튼이라도 되는 듯 눈물이 찍찍 더 뿜어져 나온다.

“핰핰핰핰핰!!!”

마이크를 쥐고 웃는 이은지 목소리에 더 미쳐 버릴 것 같았다.

무대 위라서 쥐어박을 수도 없고, 수치심에 얼굴이 뜨겁다.

“핰, 하, 앀, 끅. 아, 이은호 때문이야. 아.”

왜 저래.

순간 진심으로 은지가 미친 줄 알았다.

미친 듯이 웃을 땐 언제고 갑자기 왈칵 울더니 이젠 갑자기 내 탓을 한다.

“하하핰.”

바보 같은 은지 반응에 이번엔 내가 웃음이 터져버렸다.

그나마 울고 있는 건 우리뿐만은 아닌 듯 객석에서도 눈물을 훔치는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울먹이는 팬들과 관객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려 바라보며 겨우 입을 뗐다.

“이거 우리 다음에 나올 사람들 큰일 났네. 신나게 놀고, 울고, 우리가 다 해 먹어서 이거 어쩌나…….”

“하핰.”

울던 은지도 그제야 뒤 차례가 남아 있다는 걸 깨달았는지 웃음을 터뜨렸다.

“뭐, 뒤는 뒷사람들이 알아서 할 일이고, 우리는 아까 예고했듯이 마지막 곡 해야죠.”

“와아아아!!!”

“이 곡은, 저희 곧 앨범 나오는데, 거기 수록될 곡이거든요. 그냥, 오늘 이 자리에 여러분이 와 주신 게 감사한 마음에 특별히 가지고 나와 봤어요.”

“와아아아악!”

“이거 우리 대표님도 모르는 일이니까, 안 좋아도 좋다고 해 줘야지 저 덜 혼나요. 알겠죠? 나 여러분 믿어요?”

이건 사실이기도 했지만, 대표님도 아마 알고는 계실 거다.

……아닐 수도 있고.

“네에에!!!”

“…….”

열띤 대답에 절로 입꼬리가 말려 올라간다.

“어떡하냐, 나 오늘 너무 행복하다.”

“어쩌라고. ……앗.”

혼잣말이었는데, 저 멍청이가.

본인한테 한 말인 줄 알았던 건지 은지가 버릇처럼 마이크를 들고 반박했다.

본인이 놀라기는 덤이었다.

“넌 진짜…….”

관객들은 이젠 익숙해졌다는 듯 우리 대화를 한편의 콩트처럼 받아들이며 웃었다.

한편, 스태프의 신호를 보아하니 준비했던 노래를 시작할 시간이 다가온 모양이다.

“난 그럼…….”

그때였다.

은지가 들어갈 듯 행동하자 객석에서는 아쉬워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은지는 억울하다는 듯 객석을 돌아보며 말했다.

“여러분, 왜 나 갈 생각도 없는데 보내려고 그래요? 나도 들을 거예요.”

은지가 투덜거리자, 아쉬워하던 소리는 웃음소리가 되어 일렁거렸다.

은지는 무대로 올라오는 스태프에게 무언가를 건네받고 자리로 돌아왔는데, 은지의 손에 쥐어진 기타를 본 사람들은 또 한 번 환호했다.

한편, 은지가 한 ‘들을 거예요.’에 의문을 드러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난 미리 음향 감독님과 맞췄던 손 모양을 하고 팔을 번쩍 들었다.

“이번 곡 제목은 ‘인사’라고, 딱 지금처럼 저희 다음 앨범 마지막 곡에 들어가 있는 곡이에요. 저희한테 정말 큰 의미가 있는 곡이라서, 나오면…… 많이 사랑해 주세요.”

관객들의 대답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 다음 곡을 알리는 피아노 연주가 터져 나왔다.

이번 곡은 은지가 대뜸 가지고 온 곡이었다.

하지만 대충 가사를 끄적이고 붙이자…….

사실 민망해서 얼버무리려고 했다만, 진짜 ‘대충’ 지은 가사는 아니었다.

그냥…….

누군가를 생각하며, 그 사람에게 편지 쓰듯 써 내려간 가사다.

닿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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