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94화 (294/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94)

달궈진 아스팔트 해가 뜨거워

이미 떠난 널 보내 주라며

비 대신 나를 달래듯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머리 위 해조차 곧

찾아올 밤을 위해 하늘을 색칠해―

힘든 와중에도 은호가 터뜨린 함성을 멎게 만들고 싶지 않았던 송민은 온 힘을 끌어 올리며 다음 파트를 이어 갔다.

‘……오랜만이다.’

이렇게 쓰러지기 직전까지 열심히 해 본 게 얼마 만일까.

톡신은 현재 액면가가 어려서 그렇지, 모두가 30대 후반.

막내라 해도 하나 같이 나이는 적지 않게 먹었다.

톡신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자리를 잡은 이후부터였을까.

한숨을 숨겨 줄 떨어지는

빗소리가 그리워

지나간 시간처럼 증발한 물 자국처럼

정각에 떠오른 이 해가

지나가면 네가 다시 돌아올까

한숨을 숨겨 줄 떨어지는

그 빗소리가 그리워

송민의 파트가 끝나고 은호가 곧장 호흡을 이어받았다.

송민은 마이크가 없어도 콘서트를 집어삼킬 것만 같은 은호의 분위기에 압도됐다.

‘이게 이제 데뷔 1년 차라고…….’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절로 흐른다.

송민은 문득 주변의 모든 것들이 느리게 느껴졌다.

객석에서 들리는 울려 퍼지는 물결 같은 노랫소리, 함성 소리.

번쩍거리는 조명에 눈을 부릅뜬 자신.

가쁜 숨이 몰아치지만 이미 한계를 넘어선 본능의 영역에서 몸을 움직이고 있는 멤버들.

이 순간이 마치 ‘꿈’ 같았다.

‘이런 기분을 느껴 본 게 언제였더라…….’

생각났다.

‘세더티브’로 처음 쇼케이스 무대에 섰을 때, 기자들 앞에서 긴장했던 우리.

「“즐기자! 할 수 있어!”」

당시만 해도 조금 더 밝은 분위기였던 예찬이 자신들을 이끌었던 그 첫 무대.

그때의 꿈 같던 순간이 당연한 것처럼 익숙해진 지 몇 년일까.

연습도, 무대도, 녹음도, 정말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해 온 힘을 퍼부었던 옛날.

올해―2016년―를 기준으로 톡신은 곧 10주년을 앞뒀다.

그간 많은 노하우가 생기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렇게 되면서 우리는 무대 하나하나에 온 힘을 다하는 일이 줄었다.

말은 ‘최선을 다하겠다.’라고 해도 신인 때 만큼의 ‘최선’은 절대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영역이나 마찬가지였다.

애초에 나이가 가진 무게를 무시할 수 없는 것도 문제였다.

같은 동작, 같은 노래를 해도 예전과 비교해 힘에 부치는 것이 종종 느껴진다.

힘이 부족해진 만큼 사소한 일에 온 힘을 써 버리면 정작 힘을 쏟아부어야 할 때 모자랐다.

……사실 이런 것도 나름의 ‘핑계’ 중 하나였다.

어른이란 게 그렇다.

살아온 세월만큼 ‘영악함’이라는 것이 길러지기에, 입으로는 ‘난 할 땐 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정작 그 ‘할 때’라는 것이 어린 시절에 비해서 그다지 잘 찾아오지 않는 게 현실이었다.

그 ‘할 때’가 찾아오려면 일부러 시간을 내어 공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경력이란 것은 다져진 노하우로 그 ‘때’가 오기 전에 처리하는 일이 더 많다.

지금까지 역시 그랬다.

누가 박자를 절었는지, 지금 발이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함께 무대를 해 온 시간의 힘 덕분에 우린 무대 위에서 서로의 움직임을 굳이 보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알 수 있었다.

톡신 멤버들은 누구 하나 빠짐없이 지금, 이 순간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데뷔 10년 차인 우리가 저 고작 데뷔 1년 차인 ‘E―UNG’ 남매를 이기기 위해 말이다.

지나간 시간처럼

떠나간 빈자리처럼

이번엔 송민을 포함한 은호와 승연이 함께 부르는 파트였다.

송민은 이 부분을 녹음하던 당시만 해도 아무런 생각도 느낌도 없었다.

하지만 황금색 깃털이 끊임없이 흩날리며 많은 관객들이 그 깃털을 손에 쥐기 위해 팔을 뻗는 지금.

수많은 그 손짓들을 보고 있자니, 송민은 자신들을 고생시켰던 은호와 은지에게 품었던 원망이 어느새 자신을 향하고 있는 걸 느꼈다.

체력, 호흡. 심지어 가창력까지.

모든 면이 여유롭게 무대를 즐기는 은호와 은지보다 부족하다.

그 점이 너무 아쉬워서.

정각에 떠오른 이 해가

지나가면 다시 돌아올까

마지막 파트를 함께 부르는데, 그 가사에 심장이 죄이는 느낌이었다.

‘정각에 떠오른 이 해’라는 가사가 지금 머리 위 환한 조명처럼 느껴져서.

끝난 사이일까

은호의 쓸쓸함 실린 마지막 목소리가 경기장에 울린다.

이 조명이 꺼지면 이 무대에서 떠나야 한다.

‘지금’이라는 건 ‘돌아오지 않는 시간’을 뜻한다.

같은 무대에 다시 오른다고 해도 그건 결국 ‘지금 이 순간’은 아니었다.

왈칵.

송민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서른 후반이나 돼서 무대 위에서 눈물이 터지는 자신이 우스웠지만, 불가항력이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시간이 있을 때 조금만 더, 열심히 할걸.

멤버들을 돌아보자, 조명에 흘러내린 땀들이 마치 보석처럼 반짝인다.

간주가 끝나고.

침묵이 맴도는 것도 잠시.

“와아아아아!!!”

객석에서 온몸의 근육이 저릿할 정도의 굉장한 함성이 쏟아졌다.

* * *

무대가 한창 진행 중이던 당시 에이슬의 대기실 안.

DI 뮤직 엔터테인먼트 소속 아이돌 및 몇몇 가수들은 에이슬의 대기실에 모여 함께 현재 무대를 비춰 주는 모니터를 시청했다.

“도대체 왜 내 대기실에…….”

“이슬이 네 대기실이 우리 중에 제일 넓고 좋은 곳이잖아.”

“맞아. 우리 대기실이랑은 모니터 화질도 다르다고.”

소속사 대표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는 만큼 이런 편애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심지어 창석이 어석배 대표에게 잔소리를 해 줄인 지원임에도 남들보다 좋은 대우였다.

한편, 훨씬 더 큰 모니터로 순서를 기다리며 화면을 보던 DI 뮤직 소속의 가수들.

그들은 시간이 흐르며 차차 얼굴이 희게 질려 갔다.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톡신과 E―UNG의 공연이 끝난 후에는 E―UNG의 단독 공연이 남아 있다.

대선배급인 선배들 옆에서도 저 정도 역량을 보이는 애들이 본인들만의 무대에서는 어떻게 뛸지…….

거기다, 그 무대가 끝난 뒤에는 곧장 자신들이 바로 저 다음 무대에 출전해야 한다.

“미쳤다. 아니…….”

“……이거 너무한 거 아니야?”

“우리 합동 콘서트가 아니었어?”

“톡신 선배님들은 살랑거리면서 노래만 불러도 이번 콘서트에서 충분히 주목받으실 텐데……!”

“저거 엔딩이야? 아니, 금 깃털 뭔데!”

“그러니까! 저기 NRY 엔터 중소 아니야?”

“중소가 중간 무대에 뭐 저렇게 돈을 때려 넣어! 미친 거 아니야?”

“나 금 깃털 보자마자 순간 저기가 엔딩 무대인 줄 알았다…….”

“그러니까 말이야…….”

“나도…….”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안 볼걸…….”

누가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지막 말을 들은 가수들은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깃털은 객석 방향으로 발사되어 무대는 간단히 정리만 하면 설 수 있는 상태였기에 별다른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보단, 저 하늘을 찌를 듯 높아진 관객들의 기대감을 그 이상으로 충족시키는 일이 문제였지.

“이슬아, 우리 급하게 뭐 끌어다 쓸 수 있는 거 없을까…….”

“맞아, 네가 어석배 대표님한테 말이라도 해 봐. 응?”

몇몇은 자본력을 끌어올 수 있는 에이슬에게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매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매달렸던 에이슬은 입을 꽉 틀어막은 채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X나 멋있어!!!’

에이슬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오히려 곧 있을 무대 때문에 저 객석에 자신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이 아쉽다 못해 미칠 지경이었다.

‘나도, 나도오! 은호 오빠 노래하는 모습 내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

조금 전 늦게 들어왔던 것을 빌미로 매니저에게 붙잡힌 에이슬은 절규했다.

가까운 곳에 있음에도, 같은 장소에 있음에도 직접 볼 수 없는 점은 한 명의 E%로서 가슴이 아픈 일이었으니까.

한편, ‘더운 오후’를 끝으로 E―UNG과 톡신의 콜라보 무대는 끝이 났다.

톡신은 이후 엔딩 공연이 남아 있어서 일찍 휴식을 취하기 위해 먼저 무대를 내려갔다.

무대 위에는 은호와 은지만 남았다.

“은호 씨! 은지 씨! 시간 좀 끌어 줘!”

이어질 무대는 ‘E―UNG’의 무대였다.

하지만 조금 전 공연으로 무대까지 날아온 깃털 정리도 필요했고, 심지어 장비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는지 무대 아래 스태프들이 상당히 분주해 보였다.

‘어떻게 끌어야 하냐’라고 묻기도 전에 스태프는 말만 던져 버리고 쌩하니 바쁘게 떠나 버렸다.

‘어떻게 끌지…….’

은호는 주변을 둘러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은지에게 떠넘기듯 눈치를 줬다.

“어……?”

젊어진 덕분에 원 없이 기운을 쏟아 내며 무대를 하긴 했지만 솔직한 심정으로 은호와 은지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엉?”

특히 은지는 무대에 푹 빠져 있다가 현실로 돌아오려니 제정신이 들기까지 약간의 로딩이 필요한 듯 아직까지도 얼빠진 얼굴이었다.

‘답이 없네.’

적어도 은지보다는 이성을 쥐고 있던 은호는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며 귓가를 만지작거리면서 마이크를 입으로 가져갔다.

격한 안무에 인이어가 살짝 빠진 것 같아 정리하는 행동이었다.

“무대를 좀 정리해야 해서, 잠깐 우리 이야기나 할까요?”

네에!!!

와아아!!!

오늘은 분명 E%들만 모여 있는 콘서트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조금 전 무대가 끝난 직후라서 그런가.

관객들의 대답은 E%들만 있을 때와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다.

“대답, 좋다.”

은호는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하지만 마이크를 통해 들려 버린 걸까.

“꺄아아!!!”

“우와아아!!!”

하이 톤의 고음이 쏟아졌다.

그 틈에서 한 박자 늦은 묵직한 한 남자의 환호는 특히나 다른 환호성에 섞이지 못하고 은호의 귀에 날아 박혔다.

“하하하. 방금 누구야. 하하.”

은호의 웃음에 관객석에서도 물결 같은 웃음소리가 흘렀다.

“어디 보자, 여러분 크리스마스에는 뭐 하고 지냈어요?”

집에 있었다, 데이트했다, 아무것도 안 했다, 게임 했다 등등 여러 대답이 섞여 웅성거림이 됐다.

“오, 우린…….”

은호가 말을 끌자 언제 시끄러웠냐는 듯 관객들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궁금해요?”

“네!!!”

“그래?”

한마음 한뜻 같은 시원한 대답에 은호의 입가에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떠올랐다.

“그럼 안 알려 줄래.”

우우우아아아아악!!!

은호가 장난스럽게 웃자, 야유였던 소리는 자연스럽게 환호로 이어졌다.

“하하핰핰.”

오늘따라 은호는 웃음보따리가 터지기라도 한 듯 웃음이 헤퍼졌다.

E%들은 귀한 구경 원 없이 하기 바빴고, 팬이 아닌 관객들 또한 웃는 얼굴에 침 뱉으랴.

기분이 좋기는 마찬가지였다.

“아까 형들이랑 했던 무대 어땠어요?”

“좋았어!!!”

“최고야!!!”

환호 사이에서 좋은 이야기가 쏟아지자 은호와 어느새 로딩이 끝난 듯 정신을 차린 은지의 입가에도 밝은 미소가 피어올랐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은호와 은지가 동시에 같은 대답을 하자 객석에서도, 은호와 은지 본인들도 서로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때, 한 스태프가 무대 아래에서 폴 동작을 크게 하며 무언가 수신호를 보냈다.

신호를 받은 은호는 기다렸다는 듯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마이크를 입가로 가져갔다.

스태프를 바라보던 은호의 시선은 빼곡하게 가득 찬 객석을 돌아봤다.

리허설 당시 상상했던 그 모습 그대로인 지금 풍경이 너무 좋았는지, 은호는 활짝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네에에!!!”

“나랑 이은지는 아직 덜 놀았는데, 체력 괜찮아요?”

“네에에!!!”

“괜찮아!!!”

“그럼. 이거 다음 곡으로 우리 ‘해가’ 부를 거거든요?”

“와아아아!!!”

“그리고 그다음으로 여기서 진짜, 처음으로 곧 나올 신곡 부를 건데…….”

“와아아아아아!!!”

“여러분들 반응 별로면 그냥 ‘해가’만 부르고 들어갈 거예요.”

“아아아아아―.”

“원해요?”

“원해!!!”

“그럼 우리가 확신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소리 질러!!!”

“와아아아아악!!!”

은호의 외침에 조금 전 은호의 체력 괜찮냐던 걱정을 무산시킬 만큼 거친 함성이 쏟아졌다.

“좋아. 가자!!!”

잔잔한 발라드였던 ‘해가’.

하지만 은호가 목청껏 소리친 그 순간.

♪♪―!!!

“놀아 보자!!!”

은지의 외침과 동시에 상상치도 못했던 록 스피릿이 떠오르는 강렬한 전자 기타의 화려한 독주가 시작됐다.

“와아아아아악!!!”

객석의 환호성과 뒤섞인 그 순간.

은호와 은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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