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93)
은호의 보고서를 살피던 창석이 놀란 눈으로 물었다.
은호는 태연한 것을 넘어 무감정하게 덤덤히 말했다.
“이걸 걔들이 할까?”
“안 하면 그렇게 만들면 되죠.”
은호의 간결했던 대답과 달리 은호의 제안을 들은 톡신 멤버들은 일제히 드러누웠다.
‘흐음.’
은호는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온 형들을 여유롭게 웃으며 바라봤다.
“……역시 아무리 형들이라도 역시 ‘나이’가 있으니 힘드시려나요?”
“…….”
“저희는 젊은 피라 거뜬하지만, 뭐 형님들은 어쩔 수 없죠. ‘나이’가 있으니…….”
눈에 뻔히 보이는 도발이었다.
넘어오라고 하는 도발인 걸 톡신 멤버들은 당연히 알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새끼 봐라?’
‘저거, 저거! 표정 겁나 재수 없어!’
‘은호한테 저런 면도 있는 줄은 몰랐는데, 아. 하긴 쟤 은지랑 한 핏줄이었지.’
‘얘 사람 긁을 줄 아네……?’
‘이거, 이대로면 우리 애들, 특히 한 놈은 100% 넘어갈 텐데…….’
일부러 이러는 걸 아는 것과 넘어가지 않는 것은 별개였다.
“형님들은 연달아 달리는 건 힘드시다? 맞죠?”
“힘든 건 아닌데…….”
“힘들다는 게 아니라…….”
승연과 송민이 동시에 말을 꺼내다가 민망했는지 서로를 쳐다봤다.
“아이, 괜찮아요. 형, 다 이해해요.”
은호는 이때다 싶었는지 틈을 파고들며 말을 이었다.
“다들 삼, 사십 대면 이런 건 힘들 만도 하죠. ‘핑계’ 대실 필요 없어요. 하하.”
은호의 공격은 도발이라는 걸 알면서도 한마디 한마디가 톡신 멤버들에게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특히 ‘핑계’라는 단어를 강조한 그 순간.
은호를 바라보는 톡신 멤버들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어지간했으면 항상 평정을 유지하는 예찬과 태현까지 말이다.
은호가 아끼는 동생만 아니었으면 일단 한 대 쥐어박고도 남았다는 듯 다섯 명은 하나같이 살벌한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어쩔 수 없네요. 저나 은지는 완전 가능한데, 쯧.”
은호가 혀를 차자 움찔거린 다섯 명.
“후배된 도리로 형님들을 고생시킬 순 없으니까요. ‘형님들을 위해서’. 얼마나 줄이면 될까요?”
“…….”
까득.
송민의 이 가는 소리에 은호가 힐끔 눈치를 봤다.
하지만 은호는 이런 강한 반응을 바랐는지 오히려 입꼬리가 만족스럽게 길어졌다.
“두 곡? 그냥 짧게 하나만 할까요? 아! 맞다! 앞에 형님들 노래하고 난 직후이실 텐데, 흠, 그럼 어떻게 해야 하려나…….”
그때였다.
“아, X바! 더는 못 참겠다. 너 이리 와. 야, 이은호 잡아!”
승연이 벌떡 일어나며 은호에게 뛰쳐나갔다.
“왜요! 저는 형님들을 위해서, 어? 줄여 드린다니까요? 아아악!!!”
은호가 까불며 놀란 척을 하자 더는 못 참겠다 싶었는지 승연이 다른 막내 멤버들을 모아 은호의 손발을 포박했다.
태연하게 듣고 있긴 했지만 기분은 마찬가지였던 걸까.
은호가 포박당하자 태현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태현 형, 지금이야! 간지럽혀!”
“악! 형! 잘못했어요! 미안해욬!!! 악!!! 살려 줘!!!”
태현은 큰 손을 이용해서 미친 듯이 간지럽혔다.
솔직히 말이 ‘간지럽혔다’였지 진심을 담은 탓인지 정말 아팠다.
즉, 은호의 살려 달라는 말은 ‘진짜’ 살려 달라는 외침이었지만, 자업자득이랄까.
제 죄였다.
“허억…….”
겨우 막내들의 손에서 탈출한 은호는 한숨을 내쉬며 얼얼한 옆구리를 문질렀다.
그동안 은호를 놓친 막내들은 은호에게 큰소리치며 경고했다.
“두고 봐.”
“둘이 숨 한 번 헐떡이기만 해 봐라. 은호 넌 무대 뒤에서 빤스만 입고 얼차려 받을 각오 해라.”
절반은 장난이었다.
하지만 그 말은 곧 절반은 진담이라는 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셋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은호는 비웃음 섞인 웃음을 피식 흘렸다.
“형! 저, 저거 봤지! 쟤 방금 우리 비웃었어!”
“하하, 비웃은 건 아닌데~.”
그 모습을 발견한 승연이 예찬에게 이르듯 은호에게 삿대질을 하며 소리쳤다.
격한 승연의 반응에도 은호는 뻔뻔할 정도로 능글맞게 웃으며 반박했다.
다른 대선배한테 이렇게 행동하면 물론 큰일 난다.
하지만 은호와 톡신은 그간 쌓인 돈독함이 있어, 이쯤은 그저 조금 짓궂은 장난―※주의, 아닐 수도 있음※― 정도였다.
“아니. 근데 형, 나 진심으로 형들 다 쓰러져도 이은지랑 난 멀쩡할 것 같아서 하는 말이야.”
“너……!”
“아니, 우린 젊잖아~.”
이번에도 은호가 능글거리며 경고했다.
멤버들의 눈에는 당연히 새파란 꼬맹이의 도발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멤버들 중 특히 승연은 상대가 초등학생이라도 최선을 다하는 참(?) 어른.
“야, 떠! 시바!”
“오! 형, 진짜?”
“그래! 시바! 내기해! 다 해! 시바!”
“왜 자꾸 없는 시바를 찾으셔. 뭐, 나야 좋지. 그럼, 내가 이기면―.”
이어지는 은호의 제안에 톡신 멤버들이 일제히 굳었다.
“어? 뭐야, 형들 쫄려?”
은호가 눈을 휘며 묻자, 그 표정이 진심으로 꼴 받았는지 승연이 발끈하며 소리쳤다.
“아, 해! 안 쫄려! 해, 샛갸!”
“난 솔직히 좀 쫄리는―.”
오현이 그 순간 중얼거리며 말을 얹던 그때였다.
“현아, 쉿.”
자애롭게 웃고 있지만, 어딘가 뒤틀려 보이는 예찬이 조용히 뼈 있는 경고를 했다.
어느새 예찬까지 넘어온 모양.
그 사실을 눈치챈 은호의 입꼬리는 더 사악하게 말려 올라갔다.
리더를 낚은 이후는 어렵지 않았다.
팀은, 특히 톡신은 리더 아래 하나였으니까.
톡신 멤버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존심을 살살(?) 긁는 은호의 도발에 못 이겨 위험한 제안을 받아들였다.
물론 가장 먼저 발끈해 버린 승연은 그 대가로 다른 멤버들에게 신나게 두들겨 맞았다.
은호 또한 겨드랑이 아래와 옆구리에 멍이 들 정도로 호되게 당하긴 했다.
하지만 결국 결과는 은호가 바라던 대로였다.
“그걸 한다고 했어? 하하하하!”
다음 날이었다.
“하하하하, 하여간 저 콧대 높은 놈들을 굴리는 건 은호 너밖에 없을 거다. 하하. 아. 후……! 그래서? 그 ‘내기’에는 서로 뭐 걸었어?”
은호는 ‘예쁘다’라는 말이 잘 어울리는 미소를 지어 보이며 입을 열었다.
“형들 포르미카 계정 싹 ‘다’요.”
“포…… 뭐?”
창석은 운동, 고양이, 아내(철수) 외 게임 같은 것에는 전혀 흥미가 없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포르미카는 물론, 그 게임이 톡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또한 전혀 몰랐다.
“뭐 고작 그런 걸 걸었어?”
창석은 그렇게 말했지만 포르미카는 톡신 멤버들 전체가 푹 빠져 있는 게임이다.
멤버의 집이긴 하지만 값비싼 본체와 인테리어까지 끝낸, 톡신의 ‘포르미카 전용’ PC방을 손수 차릴 정도로 깊은 애정이 있는 게임.
은호는 그 사실을 태현과 함께 게임을 했던 날 뼈저리게 느낄 수 있었다.
은호는 그날 이후 언젠간 사용할 비장의 카드로써 그 사실을 잘 기억해 뒀었다.
게다가 당시만 해도 단 한 명뿐이었던 마스터 티어가 현재는 다섯 명 중 셋이나 있다.
그것도 한 명은 얼마 전에 ‘마스터’를 찍은 따끈따끈한 계정이었다.
이번 콘서트에는 톡신과 은호 사이에 ‘캐삭빵’까지 걸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한편.
톡신과 반대로,
이제 고작 할 줄 알게 된, 아직 초보 딱지조차 떼지 못한 은호에게 걸린 것은 ‘포르미카 랭킹 마스터 찍기’.
팀 전체 계정 삭제와 마스터 하나 찍기가 급이 맞나 싶은 사람도 있겠지만…….
일단 은호의 실력으로는 약 2년 정도는 앨범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포르미카’의 가치를 모르는 창석은 그저 톡신 멤버들이 전부 ‘OK’ 한 것도 모자라, 연습에 단 한 번도 안 빠지고 꾸준히 참여하는 모습이 마냥 기쁠 뿐이었다.
게다가 은호는 딱히 포르미카가 아니더라도 창석의 기대 이상으로 톡신을 제대로 굴릴 줄 알았다.
톡신 멤버들은 전부 안무를 잘 외우는 편이다.
‘잘 외우기 때문에 연습에 빠져도 된다?’
은호는 막내 라인, 특히 승연의 핑계를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사악한 미소를 띠었다.
“하늘 쌤.”
이하늘은 NRY 엔터테인먼트 전문 안무가이자 댄스 트레이너로, 은호는 곧장 이하늘을 찾았다.
“저희 좀 더 특별한 대형은 없을까요?”
“응? 더 특별하게? 흐음.”
“네. 특히 다 외웠다고 안무 자주 빠지는 형들 위주 수정이면 더 좋고요.”
“……아.”
은호의 말을 단번에 알아듣진 못했는지 이하늘이 잠시 굳었다.
그것도 잠시.
은호의 말을 이해한 순간, 이하늘은 크게 웃으며 만족스러운 ‘OK’를 만들어 보였다.
“……아하하하하! 그거 굉장히 귀찮긴 하지만 그 꼴통들한테는 베리 굿 아이디어네!”
이건 그 결과였다.
“또, 또요?!”
종종 포인트 안무와 대형이 뒤바뀌면서 농땡이는 생각지도 못하게 된 막내 라인.
연습 기간 내내 특별히 고생이 많았던 송민과 승연.
두 사람은 은호가 뒤에서 그런 공작을 펼쳤다는 사실을 콘서트가 다 끝난 뒤에서야 전해 들을 수 있었다.
“야 이!!! 이은호, 이 쓰레기야!!!”
* * *
“푸훅, 후욱…….”
어느새 거칠어진 톡신 멤버들의 호흡.
하지만 그런 멤버들을 놀리듯, ‘Wise’가 끝난 뒤에 바로 자연스럽게 ‘더운 오후’로 연결됐다.
그 순간, 은호는 타이밍에 맞춰 유연하게 노래를 이어 갔다.
햇빛을 숨겨 줄
떨어지는 빗줄기가 그리워
지나간 시간처럼
내리던 소나기처럼
거친 숨 한 번 쉬지 않는 은호의 깔끔한 노래에 톡신은 일제히 의식하지 못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은호의 다음 파트는 송민이었다.
해가 높아 내 기분도 high했서허―
창 너머로 보인 손이 반가워허
송민의 파트가 시작되고, 첫 음 처리와 호흡은 잘 처리했으나 이내 송민은 거친 숨소리를 완전히 숨길 수 없는 단계까지 닥친 것 같았다.
「“……형들 다 쓰러져도 이은지랑 난 멀쩡할 것 같아서…….”」
은호가 자만하듯 던졌던 그 말.
톡신은 뒤늦게 그 말이 단순 빈말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나설 때만 해도 좋았던 기분이었어
근데 왜 지금 나는 울고만 싶을까아―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승연을 지나 다시 돌아온 파트에서 은호의 깔끔 시원한 고음이 경기장을 울렸다.
그때였다.
펑―!
은호의 하이라이트 타이밍에 맞춰 폭죽이 터졌다.
단순한 꽃가루나 반짝이를 생각했던 관객들은 예상치 못한 내용물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황금색 깃털이 조명에 반짝이며 경기장 하늘을 화려하게 수놓았다.
객석에서는 탄성과 함께 함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은호는 여유롭게 수많은 관객들의 함성을 뚫고는 풍부하고도 깔끔한 고음을 쉬지 않고 이어 갔다.
‘E%’들조차 ‘어라?’ 할 정도로 은호의 실력 변화가 눈에 띄게 들린 순간이었다.
한편, 톡신 멤버들은 백기를 들었다.
아끼던 포르미카와의 이별을 준비해야 했다.
그중에서도 은호에게 내기를 제안했던 승연은 좌절했다.
‘아, 왜 내기를 받아서, 아! 내, 내, 내 마스터 계정!!!’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르는 부분은 소리를 내뿜기에 스킬만 있다면 거친 호흡을 능력껏 감출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소리를 약하게 낼 때.
특히 공기가 많이 필요한 간드러진 소리로 불러야 할 때는 달랐다.
난 여전히……
믿기지 않는데……
조금이라도 헐떡이는 순간 느끼함이 더해져 앞서 받은 감동을 깨부수게 될 정도로 큰 ‘미스’가 되니까.
하지만 은호는 깔끔했다.
기가 막힐 정도로 완벽했다.
은지는 은호를 뿌듯함 가득한 눈길로 바라보며 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여러분, 저게 우리 집 우럭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