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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92화 (292/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92)

저벅저벅.

소리가 잠시 잦아지고, 구두 소리에 맞춰 예찬과 함께 은호가 무대 중간으로 걸어 나왔다.

예찬은 깔끔한 흰 정장 차림이었다.

함께 등장한 은호는 맨살이 드러난 찢어진 민소매 위, 무릎까지 오는 풀어 헤친 긴 와이셔츠를 망토처럼 펄럭였다.

은호와 예찬의 걸음이 멈춰 서면서 구두 소리가 잦아들자 이번엔 관객들의 환호가 마치 길처럼 깔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자니 주연은 왠지 모르게 가슴이 벅차졌다.

우연히, 어쩌면 필연이었는지 모를 지예찬의 컴백 쇼케이스 날.

데뷔조차 하기 전이었던 은호를 마주했던 그날.

그리고 지금.

이렇게까지 진심으로 누군가의 성공에 기뻐해 본 적이 있었을까.

쇼케이스 당시 은호는 환호는커녕 누구 하나 봐 주던 이가 없었다.

하지만 은호는 자신을 봐 달라는 듯 간절하게 노래했었다.

그리고 그 간절함은 주연의 시선을 잡아냈고, 인연은 지금까지 이어졌다.

거울처럼 닮은 동생과 함께 신인 듀오로 등장했던 그때.

이후 투웨니스 라이브 바에서 E―UNG가 홍보차 노래하던 그때.

당시 은호와 은지는 직접 전단지를 돌려 가며 자신들을 홍보했었다.

그때 그랬던 ‘내’ 가수가 지금은 관심을 갈구하지 않아도 이런 환호를 받으며 소식만으로도 화제를 불러 모은다.

동경해 마지않던 ‘E―UNG’의 성공을 곁에서 지켜본 초창기 팬이었기에 느낄 수 있는 깊이 있는 감동.

톡신을 좋아할 무렵엔 자신이 너무 어렸기에 느낄 수 없던 감정이었다.

E―UNG가 이런 무대에 서기까지의 시간 동안 자신 또한 회사원에서 한 가게의 사장이 되었다.

E―UNG에 관심이 없던 친구는 다니던 유명 기업을 떠나 E―UNG의 소속사인 NRY 엔터테인먼트에 취업했다.

그리고 은호와 은지의 코디가 되었다.

‘성덕’도 저런 ‘성덕’이 또 없다.

이 벅차다 못해 몸이 떨리는 감동은 흐른 시간을 따라 쌓인 서사의 무게 때문이었다.

그사이 멈췄던 노래가 다시 이어졌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듯 무대 위 댄서들이 일제히 화려하게 안무를 이어 갔다.

거짓말이라고 해 줘

우리 아직 여전하잖아 yeah─!

노래는 바쁘게 달려 클라이맥스에 다다라 가던 그때였다.

“다 같이!!!”

은호가 관객들을 조련하듯 소리쳤다.

‘이때만을 기다렸다!’라는 듯 관객들은 일제히 ‘Co-Sign’의 클라이맥스를 떼 지어 노래했다.

그 풍경 자체가 예술이었다.

주연 또한 그 거대한 예술품 같은 소리 속에 속해 노래했다.

시간은 당장 치료제가

되지 못해 네가 아니면

어렵게 들어간 박자였지만 관객들은 은호의 노래를 발맞춰 따라왔다.

은호는 그런 관객들에게 잘했다는 듯 진심 어린 미소를 보이며 뒷부분은 믿고 마이크를 맡겼다.

(당장 치료제가 되지 못해)

(내 마지막 사인)

(이건 날 떠나지 말라는 기도)

은호가 마이크를 관객들에게 넘기자, 마치 물결처럼 많은 관객의 목소리가 하나가 되어 일렁거리는 것 같았다.

마지막 훅이 다가오자 주인공을 빼앗길 생각은 없는 듯 은호는 관객에게 넘겼던 마이크를 다시 자신에게 가져갔다.

아무리 예술 같은 ‘떼창’이라지만, 그 중심에 선 주인공은 이길 수 없었다.

바닥이 무너─져

세상이 흔들─려─!

풍부하면서도 벅차오르는 시원한 음색.

당시에도 좋았었다.

하지만 그사이 성장한 은호의 실력 덕일까.

온몸에 전기라도 오르듯 주연을 포함한 다른 관객들은 떼창도 잊고 감탄했다.

Tell me Baby

Don’t Leave Baby

이어서 예찬의 깔끔한 마무리를 끝으로 환호와 함께 ‘Co-Sign’의 무대가 끝났다.

와아아아!!!

주연도 무대와의 거리가 상당했지만 은호에게 닿으라는 일념 하나로 소리를 내질렀다.

은호와 예찬은 Co-Sign 무대를 끝마친 직후 가볍게 서로의 등을 두드리며 인사했다.

은호는 이후 자신이 있을 자리가 아니라는 듯 아쉬움 없이 무대를 내려갔다.

* * *

은호가 무대를 떠난 뒤, 모든 조명이 꺼졌다.

쩌적.

잠시 후 유리에 금이 가는 소리와 함께 무대 위 스크린 속 검은 화면에 붉은빛을 내뿜는 크랙이 생겼다.

쩌적, 쩌저적.

불안한 소리가 이어지며 크랙도 차츰 커지던 그때였다.

잠시 후.

콰차창!

시원하게 박살 난 거대한 스크린을 찢어발기며 익숙한 얼굴들이 등장했다.

예찬을 제외한 네 명의 톡신 멤버들이었다.

멤버들은 모두 예찬과 비슷하지만 디테일이 조금씩 다른 흰 정장 차림을 하고 있었다.

굉장한 카리스마를 풍기며 오현, 송민, 승연, 태현이 긴 무대를 걸어 나왔다.

네 사람이 걷는 동안 바닥의 스크린에는 사진 필름처럼 톡신의 지난 시간을 비췄다.

그에 맞춰 음악 또한 지금껏 불러 왔던 톡신의 노래들이 짤막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서브 스크린을 통해 바닥의 필름을 확인한 ‘포션’들 중 몇몇은 눈물샘이 터진 듯 꺽꺽 울었다.

그동안 다섯 명은 모두 중앙의 작은 서브 무대에 모였다.

찢어졌던 스크린은 어느새 그림자에서 일한 스태프들에 의해 정리됐던 걸까.

톡신 멤버들이 멈춰 서자 기다렸다는 듯 메인 스크린에 또 다른 영상이 떠올랐다.

새하얀 배경 속 다섯 갈래로 나뉜 화면에는 각각 멤버들의 모습이 보였다.

가장 왼편에 있는 예찬은 정갈한 제복을 차려입었고, 두 번째 오현은 친절한 얼굴을 하며 웃고 있었다.

세 번째 송민은 사제복으로 보이는 차림으로 자애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네 번째 승연은 교복을 입은 차림으로 얼굴 곳곳에 거즈와 채 가려지지 않은 생채기와 흉터들이 가득했다.

한편, 그런 승연의 표정은 상처들과 달리 모든 고통을 감내하다 끝내 아무런 감정도 남아 있지 않은 듯 덤덤하기만 했다.

다섯 번째 태현은 입에 붉은 테이프로 X를 그려 두었다.

‘포션’들은 이번 콘서트가 끝나고 반드시 영상으로 한 번 더 보고 싶다는 생각을 반짝이는 눈동자에 그대로 드러냈다.

잠시 후, 스크린 속 톡신의 배경이 흥건한 핏물에 물들 듯 붉은 배경으로 바뀌었다.

동시에 흘러내리는 붉고 끈적한 물결을 따라 멤버들의 모습도 다르게 바뀌었다.

예찬은 깔끔한 제복을 풀어 헤치고 맨살을 드러낸 채, 마치 늘어진 듯 왕좌에 퍼져 있는 모습으로.

오현은 친절한 미소가 아닌 시기와 질투가 역력한 사나운 모습으로.

송민은 정갈했던 모습은 어디 갔는지, 얼굴과 몸 곳곳에 입술 자국들이 가득했다.

승연은 상처가 사라진 대신 광기 어린 얼굴로 만족스럽다는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태현은 입에 붙은 X 모양의 테이프를 스스로 뜯어 내며 입을 벌렸다.

뒤틀린 클리셰 이건 내 낙이라

좋을까 나쁠까

동전을 던져 골라 봐 앞뒤

절대 네가 Never 바라던 답이 여긴 없어

태현이 속삭이듯 일정한 스냅에 맞춰 짧은 랩을 했다.

스크린에는 태현의 입이 클로즈업됐다.

태현의 입이 어느새 큰 스크린 한가득 들어찼다.

하지만 클로즈업은 벌어진 그 입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멈추지 않았다.

잠시 후, 스크린 속에는 다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이 찾아왔다.

곧 검은 화면에 작은 빛이 점처럼 하나 나타났다.

카메라 셔터 소리가 쏟아지며 화면 속 빛도 서서히 몸집을 불렸다.

화면을 가득 메운 빛 덕에 새까만 스크린은 어느새 하얀빛으로 환해졌다.

찰칵.

마지막 셔터 소리를 끝으로 스크린이 번쩍였다.

곧이어 스크린에는 서브 무대에 선 멤버들이 나타났다.

그동안 스피커에선 몽글몽글한 피아노 연주가 드럼 박자에 맞춰 나왔다.

조용히 영상을 감탄하던 관객들의 환호성이 뒤늦게 쏟아졌다.

그때, 승연이 검지를 입가에 가져가며 ‘쉿’ 소리를 내자 스피커로 흘러나오던 피아노 연주도 멈췄다.

수많은 관객 또한 일제히 고요해졌다.

고요한 그 순간, 승연이 마치 시 한 편을 읽듯 담담히 가사를 읊었다.

눈을 뜬 순간

난 네 생각을 해

네 목소릴 들어

‘들어’ 부분에서 멈춰 있던 반주가 폭발하듯 다시 터져 나왔다.

비틀고 뒤틀어

결국은 닿겠지

사랑받는 클리셰

맞아 이건 클리셰

나만 홀로 동떨어진

해피 엔딩 클리셰

한 편의 시 같던 노래는 몸을 가만히 둘 수 없는 정도로 신나는 댄스곡으로 탈피했다.

이전 곡에서도 그랬듯 훅 부분에 맞춰 관객들도 하나 된 목소리로 노래했다.

톡신의 ‘클리셰’가 끝났다.

하지만 반주는 원곡을 모르는 사람이 들었다면 뭐가 달라졌는지 모를 정도로 자연스럽게 다른 곡으로 바뀌어 있었다.

벗어나려 했지만 늦었나

첫 만남이 실수였나

조금 늦었지만, 곡의 변화를 눈치챈 ‘포션’과 ‘E%’들은 목청껏 소리를 질렀다.

내가 짜 둔 계획이

네 등장 하나에 무너졌어

하루에 수십 번 달라지는 너

그게 날 미치게 만들어

팬들의 예감은 정확했다.

잠시 후 리프트가 올라오며 익숙한 긴 머리칼의 여자가 나타났다.

나 나나 나 Red Light

나 나나 나 Red Night

와아아아악!!!

무대 위에 등장한 은지가 흘러내린 앞머리를 쓸어 올리며 씨익 웃었다.

스크린에 그런 은지의 얼굴이 크게 잡히자, 환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커졌다.

나 나나 흐트러졌어

너라는 작은 변화 하나에

다가오는 이 밤 위

지금 나오는 ‘Red’는 콘서트를 위해 은지가 직접 조금 더 화려하게 편곡했다.

그 덕분인지 ‘포션’과 ‘E%’뿐만 아니라 순수한 관객들 또한 열광적으로 공연을 즐기고 있었다.

몇몇은 은지가 머리를 쓸어 올리며 웃는 그 순간 팬이 된 사람도 적지 않았다.

Red Light Red Light

너라는 존재 하나 끊지 못해

Red Night Red Night

이렇게 끝나나 싶던 그때.

사이렌이 울렸다.

♩♩♩♩

사이렌 소리 사이에 느린 심벌 연주가 섞였다.

What are you doing now?

은지가 끈적한 목소리로 물었다.

이번 곡 역시 은지의 손을 거친 듯 원곡보다는 훨씬 더 풍부하고 거친 소리로 바뀌어 있었다.

그때였다.

저녁이 곧 내게 인사할 거야

은호의 목소리였다.

무대 위로 그사이 의상을 갈아입은 은호가 나타나자 또 한 번 함성이 쏟아졌다.

(Hear no evil)

목소리를 들었다면 귀를 막아

(See no evil)

그 녀석이 보였다면 눈을 감아

하나의 곡처럼 ‘클리셰’, ‘Red’, ‘Wise’가 연달아 이어지고 있었다.

이 모든 곡들은 심지어 안무가 딱히 쉬운 곡들도 아니었다.

그래서 톡신 멤버들은 자신의 파트에 노래하면서도 거친 숨소리가 새어 나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 했다.

게다가 그 상대가 은호와 은지였기 때문에 더더욱.

(Speak no evil)

후욱, 혹여라도 소릴 낼까 입을 가려

하지만 입을 가리는 안무에서 오현의 마이크로 거친 숨이 새어 나가 버렸다.

오현의 얼굴이 순간 터질 듯 붉어졌다.

오현은 힐끔 은호와 은지의 눈치를 봤다.

아니나 다를까.

은지와 은호가 똑 닮은 얼굴로 히죽거리며 웃고 있었다.

‘너희 때문이잖아!’

오현은 발끈한 건지 두 사람을 원망스럽게 쏘아보며 시선으로 장난스럽게 질타했다.

‘우리가 뭐요.’

‘우린 괜찮은데?’

은호와 은지는 서로를 쳐다보더니 다시 오현을 돌아보며 보란 듯 어깨를 들썩였다.

Three wise monkeys

현명한 원숭이가 손을 내밀어

잡아선 안 될 손을 잡아

혹시 모르잖아 괜찮을 거야

자존심에 금이 간 오현은 지지 않겠다는 듯 은호와 함께하는 다음 파트에서는 깔끔하게 노래했다.

톡신 멤버들은 오현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허억, 독한 놈들…….’

‘재들, 인간 아니야…….’

‘다시는 쟤들하고 같은 무대 안 해…….’

그들의 원망이 은호와 은지를 향한 이유는 하나였다.

이번 무대의 연출을 짠 사람이 두 사람이었으니까.

* * *

쉬는 시간 하나 없는 이런 편곡은 은지가.

이런 연출 자체는 모두 은호가 기획팀장으로서 제안했다.

처음 은호의 보고서를 받아 본 박 대표는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톡신은 현재 가요계의 대선배다.

톡신은 경력이 쌓인 만큼 그들만의 고집 또한 강해졌다.

그 탓인지 예전 신인 때에 비해 박 대표의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쉽게 말해, 이젠 머리 좀 컸다고 말을 잘 안 듣는다는 말이다.

‘클리셰’를 준비하는 동안에도 톡신은 마찬가지였다.

노하우가 쌓인 만큼 안무 습득이 빨랐던 멤버들.

특히 오현을 제외한 막내 라인, 송민과 승연.

두 사람은 자주 몸 상태를 핑계로 연습을 빠졌다.

그리고 이를 의심하던 은호는 귀신같이 포르미카에 접속하여 한창 열심히 ‘랭겜’을 하고 있던 두 사람을 검거했다.

창석은 축포를 터뜨렸다.

예상치 못하게 아주 가까운 곳에 저 말 안 듣는 녀석들을 잡을 비장의 무기가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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