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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91화 (291/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91)

은호와 은지가 복도에서 소소한 말다툼이 있던 그때, 그곳을 지나가야 자신의 대기실로 갈 수 있던 한 사람이 있었다.

“……그, 그냥 나갈 걸 그랬나?”

에이슬은 숨어서 훔쳐 듣는 행동이 민망해,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

“……NRY 기획팀장 이은호입니다…….”

소리가 자세히 들리진 않았다.

은호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그 전화를 받은 상대는 자일리톨이 두려워하는 존재인 양 그들이 도망치듯 떠났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에이슬은 상황에 호기심을 느끼는 것도 잠시.

이후 은호와 은지는 금세 톡신 멤버들을 이끌고 복도를 떠났다.

다들 사라졌음을 확인한 후에서야 에이슬은 구석에서 나와 대기실로 향했다.

달칵.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매니저는 에이슬을 많이 걱정했는지 에이슬을 보자 소리를 지르며 다가왔다.

“이슬아!”

“언니.”

“너는 금방 오겠다던 애가 왜 이제야 오는 거야!”

“어, 어?”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지? 어디 봐 봐. 어디 다친 거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화장실 갔다가 길을 잃어버렸―.”

“애가, 애가! 이렇게 칠칠찮아서, 정말……!”

에이슬의 매니저는 마저 잔소리를 하려다 이내 한숨을 내쉬며 에이슬을 품 안에 끌어안았다.

“걱정했잖아. 정말로.”

에이슬은 자신을 끌어안은 매니저의 등에 손을 올렸다.

그리고 그 순간, 문득 최근 몇 달간 머리를 어지럽힌 ‘다른 기억’ 속의 ‘나’를 떠올렸다.

다른 기억.

은호와 은지가 ‘회귀 전’이라고 칭하는 그때의 기억이었다.

에이슬이 처음 회귀 전을 떠올렸을 때.

당시엔 단순히 또렷한 악몽이라고 생각했었다.

필연적으로 ‘같이 쫌 살자’를 통해 은호와 은지와 함께하는 활동을 하면서부터였다.

기억의 댐에 생긴 작은 구멍의 균열은 점점 몸집을 키웠다.

꼭 촬영이 끝나면 그날 또는 다음 날 낯선 ‘나’를 보는 꿈을 꿨다.

그리고 그것들은 무엇 하나 단순한 ‘꿈’으로 치부하기엔 너무나 또렷했다.

그리고 생생했다.

누구에게도 설명할 수 없지만, 그 꿈속의 에이슬이 본인임을 자연히 알게 됐다.

그건 단순한 꿈이나 기억 같은 게 아닌 또 다른 자신이 했던 행동이었음을.

‘언니…….’

매니저는 회귀 전 철없던 에이슬을 어떻게든 품어 주려 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에이슬이 해선 안 되는 행동을 할 땐 막으려 했던 유일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끝까지 마음을 열지 않는 에이슬에게 지친 듯 그녀는 에이슬의 곁을 떠났다.

에이슬은 그 공허함을 메우려 은호에게 더 악독하게 굴기도 했고 집착도 했다.

꿈속의 자신은 자신이 생각해도 끔찍했다.

당시 가장 큰 피해자는 단연 은호였다.

에이슬은 퍼즐을 맞췄다.

그땐 각각 솔로로 활동하던 두 사람이 지금은 함께 활동한다.

당시 자신에게 정보를 팔았던 ‘조광수’.

그는 현재 스스로 터뜨린 폭탄에 정작 본인이 터져, 죗값을 치르고 있다.

자신이 과거에 쥐고 협박을 했던 치부는 현재 은호와 은지, 두 사람이 스스로 세상에 밝혔다.

그 결과 누군가는 그들을 무시하지만, 누군가는 두 사람의 과거에 위로를 얻었다.

당시 은호의 목줄을 쥐게 했던 ‘과거’는 더 이상 약점이 아니게 됐다.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때와 달라진 중요한 것들을 보며 에이슬은 생각했다.

‘……두 사람도 알고 있는 건 아닐까?’

은호와 은지에게도 자신과 같은 ‘그’ 기억이 있지 않을까.

그런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있다 하더라도.

감히 자신이 그때의 이야기를 입 밖에 내기엔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은호와 은지가 회귀 전과 같은 후회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것처럼.

에이슬 또한 그때처럼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결정을 내렸다.

“언니.”

“응?”

“이번 콘서트가 끝나면, 나 큰 아빠가 제안했던 그 유학 관련해서 할 말 있어.”

에이슬의 대기실 안은 곧 올라갈 무대에 긴장할 여력이 없을 정도로 혼란에 휩싸였다.

* * *

“귓구멍 닳겠다. 그만 좀 후벼!”

근질근질한 귀를 새끼손가락으로 쑤시고 있자, 은지가 질겁하며 말했다.

“아, 간지러운 걸 어떡하라고. 누가 내 이야기 하나.”

“개소리하네. 그냥 드러운 거지.”

난 은지 헛소리에 반박하기도 귀찮아, 오른손 중지를 뻗어 보였다.

이런 것에 가만히 있을 이은지는 아닌지, 은지도 바로 날 따라 똑같이 중지를 치켜들었다.

“으, 좀 씻고 살아.”

“허!”

진심으로 어이가 없었다.

‘저거 진짜 지가 할 말이라고 생각하나?’

난 황당한 마음을 담아 은지를 가만히 쳐다봤다.

하지만 은지는 시원하게 그런 내 시선을 무시하며 몸을 돌렸다.

바깥에서는 드디어 시작인지, 둥둥거리는 베이스가 무대 뒤편을 뒤흔들었다.

이어서 시끌시끌한 함성도 쏟아졌다.

드디어 본 무대가 시작된 모양이다.

무대 초반엔 분위기를 띄우는 겸 DI 뮤직과 NRY 엔터테인먼트 각 회사의 신인들이 투입됐다.

‘NRY에 무슨 신인?’이라는 반응도 있겠지만.

어쩐 일인지 최근 우리 회사에는 상당히 많은 연습생이 들어왔다.

작은 크기의 사옥에 비해 기이할 정도로 많은 연습생들 탓에 대표님은 편의점에서 과자 하나를 사듯, 건물을 한 채 더 구매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사옥 인근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곳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실제론 같은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나나 은지는 연습생들의 얼굴 한 번 못 본 연습생이 대부분이었다.

쿵쿵거리는 울림과 스피커로 뿜어내는 노랫소리.

또렷하진 않지만, 대략적으로나마 현재 순서가 어디까지 왔는지 알 수 있었다.

슬슬 차례가 다가오기 때문일까.

웬일로 은지는 긴장한 건지 팸플릿을 비틀었다가 접었다가 찢었다가 하는 등 너덜너덜해질 정도로 괴롭히고 있었다.

“호박아, 쫄리냐?”

“닥쳐, 우럭아.”

은지를 힐끔 휴대폰을 쥐고 있는 내 손을 쳐다보더니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지가 더 긴장했으면서.”

“아니거든.”

말은 그렇게 했는데.

‘아.’

뒤늦게 내 손을 보고 나니까 좀 민망했다.

휴대폰을 쥔 손이 떨리다 못해서 휴대폰에 습기가 어릴 정도로 축축해져 있었다.

‘나 긴장하고 있구나.’

하긴, 어떻게 태연할 수 있을까.

그래 보였다면 그런 척이었던 거다.

리허설을 위해 잠시 무대에 올라갔을 때.

난 비어 있는 드넓은 관객석을 눈에 담자, 순간 숨통이 턱 틀어막혔다.

‘나중에 다시 이곳에 오를 땐, 여기가 가득 차 있겠지.’

그 장면을 상상하자 그 순간 심장이 바쁘게 뛰는 게 느껴졌었다.

“이유엔쥐(EUNG)? 아, 이은호 씨, 준비할게요!”

우리 팀명을 잘 모르는 스태프가 무대에 오르는 순서를 알리는지 큰 목소리로 외치고 바쁘게 자리를 떠났다.

“은호?”

잠시 후 우리 대기실 문을 노크하며 익숙한 얼굴이 빼꼼히 머리를 내밀었다.

“형.”

예찬 형이었다.

예찬 형이 나를 찾은 이유는 곧 있을 무대 때문이었다..

오늘 나는 ‘이응’으로 무대를 서기보다 예찬 형과 처음 무대를 섰던 ‘Co-Sign’으로 먼저 오른다.

톡신이 등장하기 전, 형의 싱글로 분위기를 띄우기로 했는데 내가 피처링을 맡았던 곡이라 마침 잘됐다며 참여하기로 했다.

“풉…….”

“너 또 제목 생각했구나.”

“아, 형 죄송해요. 하핰.”

형 얼굴을 보자 잠시 잊고 있었던 이야기가 하나 떠올랐다.

‘Co-Sign’에는 예찬 형의 슬픈 이야기가 하나 있다.

‘해외에는 종종 있다고는 했지만…….’

본래 형의 의도는 ‘공동 서명’이라는, 어떻게 보자면 당시 무명이었던 날 밀어주기 위해 제목을 바꿨었다.

하지만 발매 이후 제목은 형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이야기가 흘러갔다.

특히 유독 중간고사, 기말고사 기간이 다가올 때면 라디오에서 자주 들렸다.

이유라고 한다면, 단연 그 ‘코사인’이라는 그 제목 때문이었다.

「“우리 2XXX 친구가 보내 줬네요.

‘중학교 때 포기했던 코사인 법칙을 여기서 다시 만나게 될 줄 몰랐는데, 덕분에 저는 곧 시험을 망칠 고딩 1이 되었어요. 오빠.’

흐음, 근데 우리 친구는 우리 공부 중인데 어떻게 라디오를 듣고 있지? 하하.

우리 친구를 위로할 엄선해서 고른 곡을 틀어 드려야겠네요. 지예찬의 코사인.”」

한 라디오 영상이 밈처럼 인터넷을 떠돌며 형의 곡은 마치 시험 기간만 다가오면 좀비처럼 차트에 꾸물꾸물 기어 올라왔다.

마치 그 벚꽃이 필 때면 연금처럼 차트에 올라온다는 그 곡처럼 말이다.

형에게는 다행이거나 어쩌면 아쉬울지도 모르겠지만…….

‘Co-Sign’이라는 이 제목 외에는 관계있는 부분이 전혀 없기 때문인지 그 유행이 그렇게까지 길진 않았다.

그리고 예찬 형은 이후 신곡에 제목을 짓기 전 반드시 포털 사이트에 검색을 해 보는 습관이 생기게 됐다.

‘Co-Sign’의 일화를 생각하며 긴장이 한결 가신 기분이었다.

그사이 예찬 형과 난 무대에 오를 준비를 끝마치고 대기하고 있었다.

“넌 어떻게 하나도 안 떠는 것 같냐. 아직 신인이면서.”

형이 신기하다는 듯 묻기에 난 장난 섞인 뻔뻔함을 더하며 대답했다.

“제가 좀 타고났거든요.”

예찬 형은 잠시 웃은 뒤에서야 말을 덧붙였다.

“그래, 은호야. 젊은 피인 네가 오늘 형 좀 캐리해 주라.”

누가 게이머 그룹 아니랄까.

뜬금없는 익숙한 단어에 남아 있던 긴장마저 풀리며 웃음이 흘러나왔다.

“예, 형.”

* * *

DI 뮤직 측 팬들에 비해 NRY 엔터테인먼트 소속 가수의 팬들은 E―FAN 어플 덕분에 콘서트장에 도착해 팬 석에 앉기까지의 이동이 힘들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앞서 여러 신인의 무대를 구경하는 동안 주연은 단순히 ‘와아’ 하는 감탄 정도가 고작이었다.

하지만 본격적인 무대는 이제 시작이라는 듯 스크린 한가득 오래전처럼 보이는 다섯 명의 어린아이들 사진이 빠르게 지나갔다.

이후 연습생 시절의 모습이 등장했을 때, 주연은 곧 나올 그룹이 누구인지 단숨에 파악할 수 있었다.

측, 측 츠즈즈즈즈르르―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어지는 장난스러운 스네어 인트로에 주연의 눈이 커졌다.

「“들었다시피 벌스와 브리지 파트를 맡아 준 친구가 있어요. 은호라고…….”」

지예찬의 쇼케이스에 갔다가 학창 시절부터 톡신밖에 몰랐던 자신을 홀리듯 빠져들게 했던 그 노래였다.

수십 번을 들어서 당시에 ‘E―UNG’의 존재를 알기 전이었던 슬기가 제발 그만 좀 들으라며 잔소리를 했던 그 노래 말이다.

잠시 후 노래는 벌스의 돌입을 알리듯 색소폰의 매력적인 연주가 이어졌다.

그 위로 얹어진 퇴폐미 가득한 으르렁거리는 목소리.

내 느낌이 경고해

아직 네가 오기 전인데

순간, 들고 있던 EG봉을 쥔 주연의 손에 힘이 실렸다.

울컥한 감정에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이 새삼스럽게도 와닿은 느낌이어서였던 것 같다.

와아아아―!!!

주연처럼 E―UNG의 다른 팬들도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알고 있다는 듯 환호를 쏟아 냈다.

와아아―!!!

잠시 후 주연이 한때 최고로 애정했던 지예찬이 은호와 함께 무대 위에 등장했다.

‘어? 헉! 예찬 오빠도 있었어……!’

예찬의 싱글 곡인지는 알고 있었지만 은호만 보던 주연은 예찬의 존재를 다른 팬들의 환호를 듣고서야 눈치챘다.

E―UNG과 톡신에게 나뉘어 있던 마음의 무게가 언제부터였을까.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그 애정의 무게 추가 E―UNG 남매의 쪽으로 어느새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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