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90화 (290/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90)

리허설이 한창인 무대 위.

스피커에선 ‘Same day, Same time’이 흘러나오고 스태프들은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다.

은호와 은지는 아직 머리에 핀을 꽂은 상태로 무대 중앙에 서 있다.

“……시절 미련흔흠 서로가―, 허칠었던 어린 숨…… 흔적뿐인 가치가…….”

허밍에 가까울 정도로 흥얼거리던 은호는 한 스태프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노래는 화려한 드럼 반주가 더해지며 분위기가 180도 달라진 하이라이트로 향했다.

은호는 조금 전 앞부분을 부를 때처럼 허밍이 아닌 제대로 노래를 이어 갔다.

Same day Same time

Same day other crime

나서야 했던 새벽길에

걸어야 했던 새벽길을

기존의 Same day Same time보다 훨씬 화려해진 드럼 연주였다.

은지가 콘서트를 위해 편곡을 한 덕분이었다.

곡은 순식간에 분위기가 반전되며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악몽조차 되지 못한 그 기억이―

더는 널 시리게 하지 않게

두 번 놓지 않을게 다신 잃지 않을게―

은호는 가뿐하게 반주에 맞춰 음역을 끌어 올렸다.

간단한 애드리브를 섞으며 샴페인을 터뜨리듯 시원한 고음이었다.

“크흐……! 내 동생 잘한다.”

“캬―! 역시 은호.”

무대 아래에서 다음 리허설을 준비하며 구경하던 승연과 송민 그리고 예찬.

“은호 옵퐈, 멋져요옷!!!”

“꺄아―!”

승연과 송민은 짓궂을 정도로 과장된 리액션을 보이며 물개 박수를 쳤다.

“…….”

둘과 함께 은호를 지켜보고 있던 예찬은 둘의 호들갑 때문인지 한숨을 쉬었다.

예찬이 참다 참다 안 되겠는지 나긋한 목소리로 둘을 말렸다.

“얘들아, 소리가 크다. 방해될 정도로.”

승연과 송민은 리더인 예찬에게 연습생 시절부터 자주 혼난 ‘짬(?)’으로 예찬이 지금 진심으로 짜증 났음을 눈치챘다.

예찬이 진짜 화났을 때 나오는 후폭풍이 무서웠는지, 둘은 더 까불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얌전히 입을 닫았다.

한편, 시원한 고음을 내지른 은호는 잠시 반주를 끊어 달라는 몸짓을 취했다.

노래가 끊어지고 노랫소리에 목소리도 잘 들리지 않던 콘서트장은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드럼 사운드가 커서, 보이스를 조금 더 키워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잠시…….”

은호는 신경 쓰이는 게 있는 듯 오른쪽 귀를 만지작거리며 스태프를 불렀다.

출연진이 많은 만큼 새벽 일찍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시간은 상당히 촉박했다.

쫓기듯 진행되는 리허설에도 불구하고 은호에게서는 여유가 느껴졌다.

이 바닥에서 10년은 넘은 듯한 차분한 여유에 상당한 경력이 있는 스태프조차도 은호의 여유에 기가 눌렸다.

“무슨 문제 있어요?”

“인이어가, 소리가 자꾸 끊기고 찢어지는 소리가 나요.”

은호의 피드백에 스태프는 다급하게 새 인이어로 교체하며 은호의 세팅을 점검했다.

은호는 마이크 테스트 겸 무반주 상태로 최근 연습 중인, 곧 나올 신곡의 일부를 불렀다.

알고 싶지 않은

네가 떠난 시간을 실감하게 해―

하지만 장비의 문제였는지 세팅을 다시 해도 은호는 여전히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어 보였다.

“아, 왜 이러지?”

은호가 인상을 쓰자, 스태프는 은호의 은빛으로 반짝거리는 커스텀 마이크를 잠시 달라 한 뒤 무전기를 통해 소통하며 무언가를 조정하는 듯했다.

잠시 후 다시 마이크를 건네받은 은호는 이번엔 ‘해가’의 일부를 테스트 겸 불렀다.

함께할 게 더 오래

후회라는 것을 배웠기에 시간이 모자라

됐나요?

스태프가 눈을 반짝거리며 은호를 지켜봤다.

“라리― 라― 라라, 후우― 우―.”

짧은 애드리브로 재차 테스트를 진행한 후에서야 은호는 만족한 듯 웃으며 ‘OK’ 사인을 보였다.

“E―UNG 갈게요.”

스태프는 안심한 듯 숨을 뱉으며 무전기로 이야기를 전달했다.

잠시 후 하이라이트 부분 테스트 도중에 끊어졌던 ‘Same day, Same time’이 다시 이어졌다.

은지는 주연이 선물해 준 금가루가 흘러내리는 듯한 검은색 커스텀 마이크를 입가에 가져다 댔다.

Same day, Same time

꿈만 꿨던 Prime 부족했던 Cash.

그럼에도 놓지 못한 여전한 Wish

깐깐했던 은호의 점검이 끝나고, 은지는 은호가 맞춰 준 세팅이 괜찮았는지 아무렴 됐다는 듯 노래를 이어 갔다.

“다른 음향은 괜찮으신가요?”

“네. 좋아요.”

“다른 것 다 괜찮은가요?”

“네.”

은호와 은지는 번갈아 가며 음향 감독에게 대답했다.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은호와 은지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한 뒤 무대를 내려왔다.

은호와 은지가 떠난 무대에는 이어서 다른 가수들도 줄줄이 올라왔다.

급한 진행 때문일까.

비슷한 기간에 활동을 시작한 다른 그룹은 잘하긴 했으나 정신없는 일정에 드문드문 버벅대는 모습을 보였다.

신인 그룹은 음향에 문제가 있음에도 선배들이 많은 탓인지 눈치를 보느라 말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기도 했다.

그동안 은호와 은지는 무대 아래에서 리허설을 구경하다가 대기실로 향하고 있었다.

앞서 걷던 은호는 현우와 이야기 중으로, 그렇게 셋이 복도에서 한 그룹을 지나치던 그때였다.

“어, 야. 이은지! 이은지다!”

“X친놈아, 아는 척하지 말라곸.”

“야, 어쩌려고!”

은호는 이야기하느라 못 들은 듯 가던 길을 그대로 가 버렸다.

은지도 그랬어야 했다.

하지만 성깔 때문에 모르는 척하지 못하고 멈춰 섰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목소리가 들린 곳을 바라보니, 아까 그 그룹이었다.

“나 알아요?”

은지가 날이 선 채 묻자, 양 사이드의 두 사람이 움찔거리며 은지의 시선을 피했다.

“그럼, 알죠. 안녕하세요, 이은지 선배님.”

그때, 중간의 남자는 뻔뻔하게 고개를 숙였다.

“자일리톨 메보(메인 보컬), 박영훈입니다.”

은지는 선후배 관계에 크게 연연하는 편은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마주친 적도 없는 사람이 이따위로 부르는 걸 좋게 받아들이는 타입도 아니다.

게다가 이런 뻔뻔한 부류는 더더욱.

“최시우 여친이시죠?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최시우 이번에 회사에서 그렇게―.”

“그런데요?”

“네……?”

은지와 영훈을 쳐다보는 다른 자일리톨 멤버 두 사람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걸 느꼈다.

최시우는 자일리톨의 멤버가 될 예정이었던 연습생이었다.

하지만 잦은 여자 문제와 실력 문제로 인해 마지막 테스트에서 떨어졌다.

대신 자일리톨보다 몇 개월 늦긴 했지만, 끝내 솔로로 어떻게 데뷔하긴 했다.

이름도 알렸다.

곡으로 뜬 게 아니라 참여 중이던 ‘같이 쫌 살자’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으며 편승한 거지만…….

자일리톨 멤버들은 시우와 그다지 나쁜 사이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좋은 사이인 것도 아니었다.

자일리톨은 자신들과 시우는 ‘급’이 다르다고 생각했다.

자신들은 합격해서 그룹으로 데뷔했고, 시우는 떨어졌으니까.

자신들보다 아래라고 여겼다.

그랬던 시우가 최근 잘나가는 E―UNG의 천상계급인, 과분할 정도로 ‘쩌는’ 이은지를 사귄다는 말을 들었을 때.

셋은 모두 배탈이 났다.

배가 아팠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시우가 풀어 주는 은지와 있었던 진짜와 가짜가 섞인 이야기는 자연히 셋의 입방아에 자주 올랐다.

실제로는 이야기 한 번 나눠 본 적 없으면서 자주 입방아에 올리다 보니 은지를 자연히 자신들과 같은 ‘급’이라고 생각했다.

또는 자신들보다 더 덜떨어진 시우와 사귄 여자이니, 그 최시우와 같은 ‘급’이라고 생각했었다.

최시우가 그간 만났던, 최시우한테 매달리던 미련한 그 ‘여자 친구들’처럼.

“그쪽 뭐 저랑 아는 사이에요?”

“그, 그건 아닌데, 그 시우 소식을 전해 드리려고…….”

“내가 그쪽한테 물어봤나요?”

“…….”

은지는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으며 물었다.

살아온 환경에서 워낙 적이 많았던 탓에 은지는 적대적인 감정은 일찍 알아채는 편이었다.

“그, 그게 시우 소식 듣겠다고 연락하는 여자들 꽤 많았거든요.”

“네. 맞아요. 그래서 혹시 선배님은 안 그러신가~ 해서……, 하하.”

핑계랍시고.

같은 멤버랍시고.

아귀 트리오처럼 똑같이 생긴 것들이 양쪽에 나란히 붙어 돕는 꼴을 보니 더 어이가 없다.

“이―!”

“너 여기서 뭐 하냐?”

당장이라도 욕 한 사발 들이부으려던 찰나였다.

돌아온 이은호 목소리에 내 날아가던 인내심을 아슬하게 낚아챘다.

한편, 자일리톨 셋은 은호와 눈이 마주치자 굳었다.

“…….”

은지는 불이다.

아주 활활 타오르는 불.

반대로 은호는 얼음이었다.

싸늘하다 못해서 소름 돋는 무관심이었다.

은호는 은지를 붙들고 있던 세 사람을 슬쩍 보다가 눈길을 흘리며 은지에게 말했다.

“바쁜 시간에 뭐 하는데, 왜 여기서 시간 끌고 있어.”

“그게, 이 사람들이 갑자기 나 아는 척하더라고. ‘어, 야. 이은지! 이은지다!’라면서.”

은지는 영훈이 했던 말을 그대로 흉내 냈다.

“너무 아는 사이처럼 편하게 부르길래. 내가 혹시 잊은 친구인가 했지.”

“…….”

은호의 시선이 다시 자일리톨 세 사람에게 옮겨 왔다.

자일리톨 셋은 은호가 낀 이런 상황까지는 예상하지 못한 듯 입도 뻐끔 못 한 채 얼었다.

몇 개월 차이 나지 않지만, 은호와 은지는 자일리톨보다 선배였다.

그것도, 앨범이 나온 줄도 모르는 자신들과 달리 ‘앨범을 준비 중’이라는 말만 꺼냈음에도 화제가 된.

자일리톨 세 사람은 새삼 본인들이 나눴던 그 ‘급’의 오류를 깨달은 순간이었다.

안 그래도 숨통이 턱턱 막히던 상황이었는데, 그때였다.

“은호야, 은지 찾았어?”

“어, 형. 여기 붙잡혀 있었더라.”

가요계의 대선배이자 연예인의 연예인.

톡신의 지예찬과 오현이 다가오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리허설 이후 마지막 무대의 연출과 관련해서 짧게 회의차 잠시 모이기로 했었다.

은호가 리허설을 하던 내내 예찬이 아래에서 구경하며 기다렸던 이유이기도 했다.

은지는 은호에게 이야기했던 그대로, 예찬과 오현에게도 말했다.

“그게, 이 사람들이 갑자기 ‘어, 야. 이은지! 이은지다!’라면서 너무 편하게 부르길래.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물어보고 있었어요.”

오현과 예찬은 은호와 똑같은 시선으로 자일리톨 트리오를 바라봤다.

“그랬더니 이름을 알려줬는데, 음. 저는 처음 뵙는 분이라, 하하.”

은지가 가식적으로 ‘하하’ 웃던 그때였다.

아끼는 후배를 건드렸기 때문일까.

순하디순한 오현의 눈빛이 살벌해졌다.

재차 확인하려는 듯 오현은 은지에게 다시 물었다.

“아는 사람 아니지?”

“앞으로 그렇게 될 일도 없을 것 같은데요.”

은지의 답에 이번엔 예찬이 보기 좋게 입술을 비틀며 말을 이었다.

“우리 때는 선배님한테 반말은 생각도 못 했는데 말이야. 요즘 애들은…… 이 바닥 참 편해졌나 봐.”

사람 좋아 보이는 얼굴을 하고서 ‘나 때는~’을 이야기하는 예찬.

은지는 제 편을 들어 주는 것이라도 무서웠다.

거기에 한술 더 뜬 건 은호였다.

“안녕하십니까, 대표님. NRY 기획팀장 이은호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은호는 그 자리에서 어석배 대표에게 직통으로 전화를 걸어 버리는 한 수를 뒀다.

* * *

“으이그, 아무리 연애하고 싶다고 해도 그건 너무 아무나 만나는 거잖아. 만나도 좋은 사람을 만날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아무나 만나면…….”

오현은 은지에게 조목조목 따져 가며 잔소리를 했다.

오현과 예찬은 은지의 연애(?)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듣는 거였다.

한편, 은호도 오늘에서야 은지가 ‘연애를 해 보고 싶어서’ 아무나 붙잡고 사귀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대놓고 말하진 않았지만…….

‘가까운 사람이 제대로 된 연애는 아니었지만 여자 친구가 있었다는 게 부러웠다’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였다.

은호는 자연히 머릿속에는 회귀 전 에이슬과의 일이 떠올리며 그제야 은지가 자신 때문에 연애에 욕심이 생겼다는 걸 알게 됐다.

“기가 찬다. 기가 차. 아이고, X신아…….”

“아, X쳐! 그럴 수도 있지!”

은지의 연애 이야기가 지나간 뒤에는 다시 자일리톨 이야기로 화재가 돌아왔다.

자일리톨 멤버들은 은호가 어석배 대표에게 전화를 건 직후 하얗게 질린 얼굴로 ‘죄송합니다!’를 외치며 그 자리에서 도망쳤다.

“거기서 전화 거는 척을 한 은호도 대단해.”

“……?”

은호는 무슨 말이냐는 듯 오현과 예찬을 바라봤다.

시선을 마주친 예찬과 오현의 눈이 서서히 커졌다.

“너 설마.”

“진짜 했어?”

“네. 왜요?”

“와……씨, 니가 제일 무서워.”

“……은호는 진짜 건들면 안 되겠다.”

경악하는 예찬과 오현 사이에서 은지만이 은호를 보며 웃었다.

‘하여간, 저 인간도 예전이랑 똑같네.’

나는 복잡한 건 머리 아프고 싫어서 주먹질로 다 푸는 타입이다.

반면, 이은호는 ‘더 깔끔하게 처리할 방법이 있다’며 유독 주먹 쓰는 일을 싫어했다.

「“폭력으로 해결하면 합의금으로 생돈 깨지고 결국 둘 다 잘못했다는 말만 듣잖아.”」

그런 의미에서 이은호의 방식은?

정신적, 물리적, 물질적으로 괴롭혀, 상대를 지하로 끌어 내려간 뒤 스스로 말라비틀어지게 만들어 버린다.

‘그게 더 징글징글해…….’

나는 절대 이해할 수 없는, 이은호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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