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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89화 (289/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89)

연말

띵―! 띠링―!

막 반죽을 끝낸 주연이 깨끗한 타올에 손을 닦으며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목이 많이 말랐는지, 주연은 휴대폰을 보며 나머지 빈손으로는 정수기에서 물컵을 꺼냈다.

주연이 보고 있던 화면은 사용 중인 아라 카드 어플에서 보낸 흔한 하나의 광고 알림이었다.

이상한 점은 E-FAN 어플과 거의 동시에 알람이 왔다는 점인데…….

“……어?”

그 이상한 점에 관해선 내용을 읽어 가면서 이해할 수 있었다.

《아라 카드와 디바이드가 준비한 연말 기념 BIG 선물, DI 뮤직 엔터테인먼트와 NRY 엔터테인먼트의 합동 콘서트! 별들이 전하는 그들의 이야기 》

주연이 출연자를 확인하며 컵을 입으로 가져가던 그 순간, 얼음이라도 된 듯 멈췄다.

《TOXIN, E-UNG, PosterA, Xylitol, 화랑, ZIKI, 에이슬…….》

물을 마시지 않아서 천만다행이었다.

하마터면 거하게 뿜어 버릴 뻔했으니까.

주연은 흥분하며 소리쳤다.

“미쳤, 미쳤나 봐, 미쳤나봐미쳤나봐!!!”

현재 주연은 E-UNG의 팬이다.

커스텀 마이크를 선물할 정도로 E-UNG에게 굉장히 푹 빠져 있다.

하지만 주연의 학창 시절은 톡신과 함께했다.

톡신의 역사가 곧 주연의 학창 시절일 정도로, 그녀는 긴 시간 일편단심으로 톡신만 바라봤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현 최애’와 ‘전 최애’가 모두 출연하는 콘서트를 한다?

거기다 ‘현 최애’인 E-UNG에게는 이렇게 큰 콘서트는 처음이기까지.

‘이건 무조건이다.’

주연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주연은 만들던 마카롱 반죽도 잊은 채 곧장 티켓팅이 어디서 시작되는지부터 살폈다.

E-FAN과 온갖 SNS에는 갑작스럽게 뜬 콘서트 소식으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흥분의 강도만큼이나 ‘티켓팅’이라는 전쟁의 서막을 알리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며칠 뒤.

고대하던 티켓팅 날.

“……말도 안 돼. 왜! 왜!!!”

주연은 노트북을 흔들며 절규했다.

결과만 말하자면 주연의 티켓팅은 처참하게 실패했다.

처음엔 사이트에서 렉이 걸리더니 이어서 신호 없음이 떴고, 그렇게 10분 동안 휴대폰, 노트북 등등 모든 기계를 동원하며 접속을 시도해 봤으나…….

그렇다.

접속 후 급하게 카드를 긁어 봤으나 티켓은 이미 ‘Sold out’.

「4만 5천 좌석이 단 10분도 되지 않아 전석 매진되어…….」

「예상보다 더 많은 동시 접속자로 인해 서버가 마비되는 현상이…….」

주연은 이후 기사를 통해 자신이 무슨 상황을 겪었는지 이해했다.

“나만 못 가…….”

가게 구석, 주연은 맨바닥에 쪼그려 앉아 하얗게 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짤랑.

문에 달린 종이 밝은 소리를 내며 울리는 것도 눈치채지 못한 채 말이다.

“뭐 해?”

“재가 되는 중이야.”

“엉……?”

주연의 가게에 들어선 사람은 슬기였다.

은지의 당을 채워 주기 위한 간식을 사러 온 듯 보였다.

“……!”

그 순간, 주연은 떠올렸다.

“참!”

주연은 슬기에게도 E-UNG에게도 부담이 될까.

일부러 슬기가 코디라는 것을 의식적으로 잊고 지내려 노력했다.

은호가 가게를 온 날 이후로 더더욱 부담 주고 싶지 않은 마음에 그렇게 했었다.

* * *

“나 오늘 우리 골목 앞까지 구급차 온 거 보고 놀랐잖아.”

“누구 쓰러졌나 보네.”

“그런가 봐. 근데 그게 그 CCTV 떡칠 된 연예인 집이 있는데, 거기인 것 같더라고.”

“여기에? 이 동네에 연예인이 살아? 연예인, 누구?”

가게에 온 손님들이 디저트를 고르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구급차가 왔다고……?’

주연은 손님이 말한 연예인이 단번에 누구를 말하는지 알았다.

“남매 가수. 그, 그, 이름이 뭐더라?”

“남매뮤지션?”

“아니. 걔들 말고, 아이돌 쪽.”

“아, 그그 ‘히읗’이었나?”

차마 E%로서 넘어갈 수가 없던 부분이라, 주연은 손님들이 고른 빵을 봉투에 담아 넣다가 대답해 버렸다.

“이응이에요.”

“네?”

“제, 제가 그분들 팬이라…….”

주연은 당황하며 되묻는 손님에게 다급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다행히 손님들은 상황이 재미있었는지 웃으며 알려 줘서 고맙다고 맞장구를 쳤다.

주연은 마침 궁금한 점도 있겠다.

커밍아웃도 해 버린 겸사겸사 얼굴에 철판을 깔며 손님에게 물었다.

“구급차가 왔다니 무슨 소린가요?”

* * *

우연히 은호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들은 이후, 이틀이 지났다.

주연은 참다 참다 안 되겠는지, 결국 잠시 가게를 닫고 가장 큰 디저트 상자에 이것저것 일단 담아 곧장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을 찾았다.

‘역시 너무 오버했나…….’

건물 앞에 오긴 했으나 들어가기는 민망했는지, 가지고 온 간식이라도 문 앞에 놓고 가려던 그때였다.

“어! 그, 그 언니?”

은지였다.

비록 이름은 바로 떠올리지 못한 모양이지만, 주연의 얼굴은 알아본 듯 은지가 반갑게 인사했다.

“주연이에요.”

“맞다! 주연 언니!”

이름을 알려 주자 은지가 활짝 웃었다.

“여긴 웬일이에요?”

주연은 내려 두려던 빵을 엉거주춤 은지에게 내밀었다.

“저, 며칠 전에 쓰러지셨다고 우연히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걱정이 돼서…….”

“아.”

주연은 부끄러운 행동을 하다 걸린 것처럼 붉어진 얼굴로 은지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그, 그, 패, 팬심도 있지만, 저희 가게 단골이시기도 하고, 아프시다고 하시니까 챙겨 드리고 싶어서, 해 드릴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다가 제, 제가 해 드릴 만한 게 이런 것뿐이라…….”

“아하. 움.”

은지는 주연의 상자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상자를 받지 않고 주연의 손목을 붙잡으며 이끌었다.

“기왕 온 김에 같이 가요. 마침 지금 병원 가려던 참이거든요.”

“네? 아. 헉, 설마 아직 퇴원 못 하신 거예요?”

큰 병인가 싶어, 걱정되는 마음에 주연이 희게 질리자 은지는 안심하라는 듯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저는 보다시피 괜찮은데, 이은호가 아직이라서요.”

그때였다.

“……?”

마침 박 대표에게 은지를 데리고 오라는 명령을 받은 도진이 회사 사옥에서 나왔다.

도진은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파악 중인 듯 은지와 주연을 번갈아 바라보며 멈칫했다.

“병원 같이 가게요.”

은지는 도진에게 웃으며 주연의 손을 들어 보였다.

도진은 못마땅한 듯했지만, 은지가 막무가내로 주연을 차에 태워 버려 어쩔 수 없이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 * *

주연은 살아 있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하.”

‘덕후는 계를 못 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주연은 그 말이 자신에게는 어쩌면 예외인지 모르겠다는 자만을 잠시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퇴사한 회사의 상사 덕에 갔던 예찬의 쇼케이스에서 그날 무대에 올랐던 은호의 팬이 된 이후.

투웨니스 라이브 바에서는 우연히 무대 시간 전에 대화를 나눌 기회를 얻었었다.

그때, 은지에게 반한 단짝 슬기는 다니던 회사에서 E-UNG의 칼럼을 쓰고는 부서가 정리되자, ‘모은 돈도 있겠다’라며 NRY 엔터테인먼트에 입사하기까지.

‘지금까지 벌어진 인생에 모든 행운을 다 끌어 썼다고 해도 대만족인데.’

주연은 마치 신이 내려 준 보물이라도 되는 양, 편지 하나를 테이블에 놓아 뒀다.

이후 그 앞에 앉아, 꿀이 뚝뚝 흐르는 눈으로 그것을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다.

그건 슬기가 방문한 날 선물이라며 놓고 간 봉투였다.

「“은호랑 은지가 병문안 고맙다고 너한테 전해 달래.”」

안에 든 것은 주연이 고대했던 ‘그’ 티켓이었다.

시간은 흘러, 기대하던 콘서트 날이 다가왔다.

* * *

명품 브랜드에서 협찬해 준 가죽 곱창 끈.

끈을 이용해 포니테일 스타일로 머리를 묶은 은지는 만족스러운 듯 거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마음에 들어?”

“완전! 대박이에요! 실장님.”

“하하, 은지 얼굴이 다 살린 거지.”

“뭐, 제 얼굴도 한 보탬 했죠. 히히.”

머리를 담당하던 실장은 은지의 장난 섞인 밝은 대답에 따라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은지는 보란 듯 뿌듯한 얼굴로 은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깔끔한 머리 모양을 위해 구레나룻에 흰 종이를 붙이고 있던 은호.

“어때?”

“…….”

다운 펌을 받던 중인 은호는 은지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휴대폰만 보고 있었다.

“야, 이은호! 어떠냐고!”

은지가 신경질적으로 목소리를 높이자, 은호는 그제야 힐끔 은지에게 눈길을 줬다.

“어때, 어때, 대답할 때까지 한다. 어때어때어때어때어때, 어떻냐고.”

은지가 곧 주먹이라도 들 것처럼 슬슬 성깔이 드러나자, 은호는 그제야 E-FAN 어플에서 눈을 떼며 답했다.

“호박에 이파리 자랐네.”

“…….”

“아, 저게 도랐나.”

은지는 대꾸 대신 웃으며 은호의 허벅지를 휴대폰 모서리로 콱 찍은 후 도망쳤다.

은호가 발끈한 그 순간, 은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극대노한 슬기의 손에 붙들렸다.

“내가. 머리 흐트러지니까. 오늘은. 제―발. 얌전히. 있으라고. 몇 번이나. 말한 거 같은데, 은지야. 안 그러니?”

마침표가 찍힌 순간순간마다 은지는 엄청나게 화난 슬기에게 짓눌려 핑계 하나 대지 못하고 은호의 옆자리로 다시 끌려왔다.

“풉, ……X신.”

“아, 언니! 이은호가 막 욕해!”

은호가 은지만 들릴 정도로 작게 말하자, 은지는 곧장 슬기에게 일러바쳤다.

“은호는 인정이지. 지금까지 은지가 해 온 게 있잖아.”

“너무해!”

은지가 삐쳤지만, 모두가 익숙하다는 듯 삐친 은지를 무시하며 제 할 일에 집중하기 바빴다.

“이…… 씨…….”

처음에 장난으로 삐친 척을 했던 은지는 이쯤 되자 진짜 서운했는지, 입술이 댓 발 튀어나온 채 울먹거렸다.

그때, 메이크업 담당 실장이 다급하게 외쳤다.

“은지야! 울면 안 돼!”

“이쒸…….”

은지는 서럽긴 하지만 그렇다고 메이크업을 망칠 마음은 없었다.

“실장 언니, 빨리, 면봉 주세요…….”

은지가 고개를 쳐들며 손을 내밀자, 실장은 다급하게 깨끗한 면봉 하나를 은지의 손에 올려 줬다.

면봉을 받아 들자 조심스럽게 눈가에 가져다 대며 솜에 눈물을 흡수시켰다.

“……푸훕, 하핰핰핰핰, 아핰핰핰핰!”

씩씩거리면서도 얌전히 말을 듣는 은지를 보자, 은호는 참다 못했는지 진짜 웃음이 터졌다.

은호가 웃을 때 하는 버릇 탓에 자연스레 이마와 머리에 손을 올리려던 그때였다.

“은, 은호 씨, 손 조심!”

이번엔 슬기가 다급하게 외쳤다.

“아. 하핰, 죄송해요. 안 댔어요.”

은호는 손을 봉인하려는 듯 팔짱을 낀 채 이어서 끅끅거렸다.

“웃지 마, 우럭 새끼야.”

“욕하지 마, 호박아.”

“새끼는 어리다는 뜻이지, 욕 아니거든.”

“응. 아니거든. 니 입에 올라가면 다 욕이거든. 그러니까 입 열지 말고 있어라. 좀.”

“응. 니나.”

은지가 가운뎃손가락을 들자, 손톱에 붙인 작은 미러 테이프들이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오늘 첫 콘서트가 있는 녀석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평소와 같이 여유로운(?) 두 사람의 모습.

슬기를 포함한 실장들은 일제히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무대 위에서는 진짜 멋진 애들인데, 이럴 때 보면 그냥 초등학생 둘이 있는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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