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87)
악몽
투명한 플라스틱 바구니 속에 누워 있는 아기가 있다.
간호사인지, 친절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 여자가 아기를 곰돌이 그림이 그려진 이불에 꽁꽁 싸맨 후 행복하게 웃는 한 부부에게 건넸다.
부부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그 아기가 누구인지 알았다.
부부 중 여자의 얼굴은 마치 내가 거울을 보고 있을 때처럼 얼굴이 똑같았다.
한편, 남자의 얼굴에는 이은지의 눈과 특유의 교만함이 가득한 입매가 보였다.
우리와 닮은 그 부부의 정체를 깨달은 순간 나는 직감했다.
‘이건 꿈이구나.’
부부가 세상 행복하게 마치 보물이라도 건네받듯 조심스럽게 안아 든 아이의 정체는 자연히 알게 됐다.
‘나’라는 걸.
어린 시절의 내가 보인다.
그것도 은지가 없던 시절의 내가.
시간이 흐르고, 어린 내가 몸을 뒤집기 시작할 무렵이 됐다.
행복해 보이는 가정이다.
꽤 부유한 집인 듯 집도 넓고 내 방인 듯 아기자기한 방 안에는 90년대 당시임에도 꽤 값이 나갈 법한 비싼 물건들이 많다.
어린 나는 갑자기 표정을 찡그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여자가 다급하게 달려와 다정하게 안아 주며 등을 토닥였다.
그녀의 토닥임에 어린 나는 언제 울었냐는 듯이 울음을 그쳤다.
내내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던 나는 그제야 피식 웃음이 흘렀다.
어린 내가 그러했듯, 옹알이 시절 은지도 토닥여 주면 울음을 그쳤었다.
나쁘지 않은 집에서 평범하게 자라나는 아이.
낯설긴 하지만, 이건 모두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 여자가 둘째를 가졌다는 소식을 남자에게 전했다.
남자는 여자를 번쩍 들어 올리며 환호했다.
기뻐 보였다.
하지만 여자를 들어 올린 건 실수였다는 듯 남자는 여자를 조심스럽게 내려 주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를 눈에 꿀이 뚝뚝 흐를 듯 다정하게 바라봤다.
그래.
시작은 그랬다.
나와 이은지는 평범한 가정에서, 아니.
오히려 더 좋은 가정에서 태어나서 길거리를 경험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다.
그 ‘부부’가 조금 더 현명한 선택을 했더라면 말이다.
흔히 책이든 TV든 ‘부모’라는 단어를 신성한 것을 다루듯 대한다.
‘자식’이라는 존재에게 무한하고도 대가 없는 사랑을 내어 주는 숭고한 존재처럼 말이다.
하지만 ‘부모’라는 이 존재 역시 ‘사람’이다.
사람은 다들 다르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겐 원수가 되기도 하듯이.
모두에게 ‘좋은 사람’일지라도 누군가는 그 '좋은 면'을 질투하며 그 좋은 사람을 싫어하고 폄하하고 원망하기도 한다.
그게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이 ‘부모’라는 이름을 가진다고 해서 갑자기 그 단어의 인식만큼 신성해지고, 숭고해지고, 완전해지진 않는다.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1995년 10월.
곧 아이가 태어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리듯 여자의 배가 정말 많이 불어났다.
하지만 아이의 탄생이 모든 집에 축복은 아니었는지 막 퇴근한 듯 집에 들어오는 남자의 안색이 어둡다.
남자가 술을 마셨는지 여자는 남자에게 풍기는 술 냄새가 지독하다고 투덜거리는 것 같다.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큰 소리를 낸다.
평온하고 행복해 보이기만 하던 부부에게 처음으로 큰 소리가 나기 시작한 날이었다.
시간은 계속 흐른다.
은지가 태어났지만 나를 안아 들었던 때와 달리 남자와 여자의 얼굴이 어둡다.
1996년 말.
집 안의 분위기는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집 안 곳곳의 물건들에 붙은 낯선 붉은 종이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의 시작이라고 해야 할지…….
남자는 나라의 경기가 나쁜 와중에 갑작스럽게 어디선가 큰돈을 벌어왔다.
그곳은 처음부터 남자를 낚기 위해 짜인 판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그것을 자신의 운이 좋아서 이뤄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건 부부의 모든 것을 박살 냈다.
짜고 친 판에서 얻은 단 한 번의 승리.
그건 마치 마약과 같아서 얻은 그 배를 잃어도 남자를 다시 그 자리에 찾아오도록 만들었다.
남자는 따로 물건을 숨겨 뒀던 장소가 있는지 돈이 떨어지자 갑자기 집 바닥의 나무판자를 뜯어냈다.
그 속에서 남자는 상당히 두툼한 돈다발을 꺼냈다.
그 모습을 본 여자는 비명을 질렀다.
그사이 여자는 어쩐지 꿈이 시작될 때의 모습에 비해 눈에 띄게 말라 버린 모습이다.
한편, 어린 은지는 큰 소리에 놀란 듯 울음을 터뜨렸다.
그런데 그렇게 우는 어린 은지가 누워 있는 아기 침대에도 그 낯선 빨간 종이가 붙어 있다.
어린 나는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낯선 이름을 말하며 중얼거린다.
지금껏 들리지 않았던 ‘소리’가 처음으로 들린 순간이었다.
“몰라. ―는 이런 거 몰라. 싫어.”
그때, 남자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출생신고 안 하길 잘했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남자가 이어서 한 말은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여자의 희게 질려 가는 얼굴을 보아하니, 상상도 못 할 정도의 이야기를 한 건 분명해 보였다.
그 순간.
마지막으로 들은 남자의 말.
“적어도 우린 살 수 있잖아.”
‘부모’도 사람이다.
부모도 ‘사람’이다.
이타적인 사람도 있지만, 이기적인 사람도 있다.
지구에, 아니.
우리나라에 사람은 많고 그 수만큼 ‘부모’도 많다.
그리고 그 부모 중에선 자신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자식을 버리는 부모도 있다.
그래.
그중 하나가 내 부모라는 작자들이었다.
시간이 흘러, 남자가 도박하러 다니던 그 ‘하우스’에 버려진 나랑 은지.
나는 어렸고, 은지는 더 어렸던 시기.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랄까.
하우스의 주인처럼 보이는 이모와 삼촌.
그들은 떠넘기듯 나와 은지를 도박 빚 대신 팔아 버린 남자를 욕하며 우리에게 최소한의 의식주는 제공했다.
그 ‘최소한’의 기준이 하우스에서 기르던 개보다도 못한 수준이었던 게 조금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러다 사고가 벌어졌다.
시간이 흘렀다.
심각하게 마른 어린 나는 나보다 더 작은 은지를 등에 업고 길거리를 헤맨다.
노숙자 그룹을 만나 숨어 살던 우리 남매의 모습.
이어서 지나가는 시간은 기억하고 있는 익숙한 시간이었다.
꿈이라기엔 선명하게 느껴지는 모든 것들.
몰랐던, 잊고 있었던 많은 것들이 몰아치며 쏟아진다.
파도에 휩쓸리듯 세상을 떠난 은지가 되살아난 ‘회귀’도 경험했는데 인제 와서 과거의 일을 선명한 꿈처럼 다시 겪는다고 해서 그다지 놀랄 건 없다.
오히려 평생 알고 싶지 않았던.
떠올리고 싶지 않았던 친부모의 얼굴을 알게 돼서 거기에 불만이 조금 있었다.
익숙한 골목이 눈 앞에 펼쳐지기 전까진 그랬다.
절로 눈이 커진다.
익숙한 골목.
그 구석에 있는 익숙한 빵집.
기억하던 모든 풍경이 선명하게 몰아친다.
‘아…….’
꿈이라면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아야 하는 거 아닌가.
짙게 풍기는 익숙한 빵 굽는 향기에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왈칵 눈물샘이 터져 나온다.
그땐 글자를 잘 못 읽어서 제대로 읽을 수 없었던 간판이 보인다.
다시 마주한 빛바랜 간판은 이젠 숨 쉬듯 읽혔다.
‘에덴 빵 가게’
조금 전에만 해도 이 꿈에 불만이 많았는데, 모든 불만이 사라졌다.
이 순간만큼은 지금이 그저 꿈이 아니길 바랐다.
오히려 잊힌 이때를 이렇게라도 다시 볼 수 있게 돼서 다행이다.
어떻게 된 일인지 몰라도, 지금은 그저 감사한 순간이었다.
그때, 가게의 문이 열렸다.
단 한 번만.
찰나라도 좋으니 딱 한 번만.
세상을 살아가며 다시 보고 싶었던 사람.
아저씨.
우리 아저씨.
단순히 이 모든 것을 마치 TV를 보듯 지켜만 보던 내 몸이 처음으로 움직였다.
마치 본능처럼 난 아저씨한테 달렸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지만, 목청껏 ‘아저씨’를 부르짖었다.
아저씨는 나를 봤다.
정확하게는 어린 내가 도망치듯 떠났던 그 골목을 보는 것이었지만…….
‘아저씨, 이 당시에 주름이 더 많았었구나.’
시간은 계속 흘렀다.
그다지 좋지 않은 기분으로 바라봤던 꿈의 초반과 달리 지금 나는 모든 순간을 즐겼다.
아저씨와 함께 보던 ‘용가리볼’ 애니메이션을 다시 보기도 하고, 아저씨가 빵을 어떻게 만드는지도 구경하는 등.
즐거웠다.
‘이제, 너희 이름을 이 나라에 공식적으로 올려 둘까 하는데.’
‘우리 이름이요?’
‘그래. 아, 이거 한번 봐 볼래? 우리나라는 출생신고라는 걸 하면 나중에 너희가 성인이 됐을 때 이런 게 나오거든.’
지금도 여전히 소리는 들리지 않음에도 내가 겪었던 순간이기 때문일까.
입 모양만으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생생하게 들리는 것 같았다.
그때였다.
‘아.’
아저씨가 주민등록증을 보여 주던 그 순간.
「이금종」
나는 잊었던 은인의 이름을 되찾았다.
그리고 시간은 계속 흐르며 반갑지 않은 이별 또한 찾아왔다.
그래도 아저씨가 사라진 우리에겐 대신 아저씨의 성씨를 따른 이름이 남았다.
나보다 작던,
등에 업혀 다니던 꼬맹이 이은지.
이놈은 갑자기 어디서 주워 온지 모를 막대기를 허공에 휘저으며 나보다 한 발자국 앞서 나간다.
눈을 감았다가 뜨자 어느새 은지의 손엔 막대기가 아닌 마이크가 쥐어져 있다.
거기다 걷는 우리 주변은 우리가 더는 혼자 있으려 해도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빼곡했다.
이 꿈인지 아닌지 모를 과거의 길을 다시 돌아보며 느낀 게 있다.
나는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오히려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이 지옥에서 버텨야 할 삶에서 ‘가치’를 찾는 건 반드시 해야하는 하나의 숙제라고 생각했다.
어린 동생을 등에 업고 길거리를 떠돌던 때, 당연한 말이지만 나 역시 작은 꼬맹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더 작았던 은지는 그런 내 등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인 양 업히기만 하면 금세 깊이 잠에 빠져들었다.
그때 그 작은 숨소리는 자연히 내 삶의 첫 가치가 됐다.
하지만 그때 당시에도 지금도 ‘너는 내가 지키겠어!’ 같은 손가락이 안으로 말릴 것 같은 말은 하고 싶지 않다.
나는 나를 잘 알았다.
그리고 내가 본 ‘나 자신’은 누굴 지켜낼 정도로 그렇게 잘나고 대단한 사람이 아니었다.
심지어 나중엔 은지가 오히려 나를 지켜 줄 수 있을 정도로 강해지기까지.
그런데,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내 삶의 가치를 은지에게 뒀었다.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하지만 도리어 그래서 은지가 세상을 떠난 그 순간, 내 세상은 무너졌다.
나는 새로운 내 삶의 가치를 찾아야 했다.
은지가 남긴 유언대로 계속 살아가기 위해선 그래야만 했다.
‘여기까지 꿈이 흘러갈 줄은 몰랐는데…….’
빵집 아저씨를 보며 잠시나마 행복했던 기분이 나락을 향한다.
혼자 남은 가족으로서 은지의 입관(시신을 관에 넣는 과정)을 진행하던 그 순간.
단언하건대, 내 인생에서 가장 끔찍했던 순간 중 하나였던 이 순간.
팬분께 받은 초콜릿을 나눠 줬던 그 손 위에 노잣돈을 쥐여 준다.
이 당시의 기분은 그야말로 가슴이 난도질을 당하는 기분이었는데…….
그걸 지켜보는 지금 역시 너덜너덜해지는 건 마찬가지다.
은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짜잔 장난이었지롱’이라고 말하며 일어날 것처럼 생생한데, 항상 열기가 넘치던 피부에 섬뜩하리만큼 찬 기운만 맴돈다.
숨이 멎을 것처럼 눈물만 흘러나왔다.
이때의 난 은지에게 잘 가라며 빌면서도 한편으로는 당장이라도 눈을 떠 주길 바랐다.
모든 것이 거짓이길 간절하게 바랐다.
하지만 은지의 피부에 손이 닿은 순간.
냉동고에 있다 나온 탓에 손으로 전해지는 낯선, 그 섬찟한 찬기가 은지가 정말 세상을 떠났음을 확실하게 알려 왔다.
입관을 내 손으로 마치고 진행 중이던 장례식장 안 은지가 활짝 웃고 있는 영정 사진 앞으로 돌아온 그 순간, 나는 흘러내리듯 무너졌다.
계속.
정말 계속.
목이 갈라지고 쉴 때까지 울고 또 운다.
화장터에 도착해서 은지가 누워 있는 관이 화로 속으로 들어간 이후 그 수십 분간 계속.
나는 정말 계속 울었다.
은지의 장례식은 은지의 숨이 멎었던 그 병원의 지하에서 치렀다.
그래서 나는 병원만 오면 은지를 보낸 그 순간이 떠올라 숨통이 옥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