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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86화 (286/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86)

은호와 은지에게는 한없이 너그러운 창석.

하지만 창석이 모두에게 그런 건 아니다.

〔일이 끊임없이 몰아치고 놀고 있으면 대표님이 직접 자리까지 찾아와서 눈치 줌〕

〔업무 강도는 업계+중소 중에서도 최상. 근데 복지와 휴식과 머니가 대기업 안 부러울 정도〕

〔대표님 따라서 탈모 올 수준의 고생. 하지만 머리 빠진 만큼 돈은 확실하게 챙겨 줌〕

〔내 할 일만 다 하면 정시 퇴근 눈치 안 보고 할 수 있음〕

〔일은 힘들지만 배울 점은 많은 회사〕

〔일 빡샘, 근데 회식 때 법인 카드 주고 자유롭게 먹게 해 주는 건 좋음 (소 만세!!!)〕

이건 최근 일자리 사이트에 올라온 NRY 엔터테인먼트 내부 직원들이 쓴 회사 평가다.

NRY 사옥의 직원들이 늘 칼같이 퇴근할 수 있는 이유.

거기엔 창석이 직원들을 그만큼 시간 안에서 빽빽하게 굴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직원들 중 누구 하나 힘들다는 불만을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다.

모든 직원들을 포함하여 가장 많은 일을 하는 건 대표인 창석, 본인이었으니까.

‘월급 루팡’이라며 직원들은 농담처럼 말을 던지지만, 실상은 단 10분도 월급을 도둑질하는 데에 성공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창석은 더 일할 땐 그만큼의 보상을 해 줬으며, 굴리는 만큼 휴식은 확실히 챙겨 주는 대표였다.

그 때문인지 내부에 흔히 있을 회사에 대한 불만은 타 기업과 비교하면 유독 적은 편이었다.

창석의 압박은 화랑과 톡신 멤버들에게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런 창석이 유독 은호와 은지에게는 ‘적당히 일해라’라며 강조하는 이유는 단 하나.

은호와 은지는 지금껏 창석이 만난 사람 중 가장 독한 놈들이기 때문이었다.

일은 중요하다.

하지만 살아 있어야 일도 하지 않는가.

고생을 그만큼 해 봤기 때문인지 은호와 은지는 그 ‘독함’의 기준이 남달랐다.

그래서 창석은 은호와 은지가 일에 푹 빠질 때면 진심으로 걱정이 많았다.

이 녀석들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정말 일에 목숨까지도 걸 것 같아서.

‘언젠간 이런 일이 벌어질까 봐. 지금껏 신경 썼건만.’

은호와 은지를 향한 ‘압박’은 사내에서도 금지하는 조항 중 하나였다.

이런 일이 생길까 봐 그랬다.

하지만 이번엔 합동 콘서트와 함께 몰려 있는 일이 상당히 많았다.

‘거기다 생각보다 더 길어진 은지의 곡 작업 기간까지.’

창석의 예상보다도 결정해 둔 일정이 다소 빡빡하게 흘러 버린 것이 문제였다.

자신도 모르게 그 일 중독자 남매에게 ‘틈’을 줘 버린 격이 됐다.

병원에 실려 갔다는 말을 들었을 땐 드디어 올 게 왔구나 싶은 심정이었다.

하지만 막상 병원에 도착한 직후 마주한 은호의 상태는 너무 예상과 달랐다.

창석은 은호가 일어나면 은지와 함께 적당히 일하라 하지 않았냐며 간단히 잔소리만 할 생각이었다.

‘병원에 PTSD가 있다니…….’

의사에게 들은 은호의 행동은 ‘은호가?’라는 의심이 들 정도로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당황스러웠다.

‘PTSD’라는 건 익숙한 단어지만 정확하게 ‘어떤 상태’인지는 모르는 터라, 창석은 확인차 인터넷에 검색을 해 봤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아래에 쓰인 긴 지문을 읽어 내려가던 창석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사람이 전쟁, 고문, 자연재해, 사고 등의 심각한 사건을 경험한 후 그 사건에 공포감을 느끼고 사건 후에도 계속된 재경험을 통해 고통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이상했다.

은호와 은지가 자신과 함께 지내는 동안에는 이렇게까지 충격을 받을 만한 일이 없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면 어릴 때 그런 경험이 있는 건가?

아니면 은지와 둘이 살면서 그렇게 된 적이 있었던 걸까?

하지만 아무리 그랬다고 한들, 은지가 자신에게 연락을 안 했을 리 없다.

“윽…….”

그때였다.

은호가 약에 취해 뻗어 버린 와중에도 미간을 구기며 흐느끼는 소리를 냈다.

마치 무언가에 시달리듯 괴로워하는 얼굴.

창석은 손을 뻗어 구겨진 은호의 미간을 풀어 줬다.

‘처음 만났을 땐 조금 날카롭긴 했어도 꽤 철없는 면도 많이 보였던 것 같은데…….’

문득 TaKa 엔터테인먼트 사옥 앞에서 은호와 은지를 처음 만난 그 순간이 떠올랐다.

창석은 감이 좋다.

그 ‘감’을 통해 능력을 펼친 덕분에 이 바닥에서 지금껏 이름을 알렸고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안 그래도 애늙은이 같던 은호가 10년은 더 나이를 먹어 버린 것처럼 훌쩍 더 ‘어른’이 됐다.

‘이유가 뭘까.’

창석은 지금껏 오랜 기간 TaKa 엔터테인먼트를 포함하여 많은 아이돌을 관리해 본 만큼 ‘보면’, 안다.

이들이 무엇을 목표로.

어느 지점을 ‘목표’로 두고 노력하는지, 활동을 하는지 말이다.

은호와 은지는 외모도, 성격도 상당히 닮은 구석이 많았다.

하지만 은호와 은지는 서로 바라보는 목표가 다르다.

은지의 목표는 좋아하는 곡을 만드는 것, 그 곡을 통해 팬들과 소통하는 것.

마치 1등은 지겨울 정도로 해 봤다는 듯 은지는 성적에 대해선 기뻐하긴 하지만 항상 여유로운 태도를 보인다.

심지어 ‘저주’가 1등을 했던 당시에는 오히려 당연히 해야 할 것을 했다는 듯한 여유로움을 보였다.

거기에 쉽게 자만할 법도 하건만.

은지는 1등의 축배를 어느 정도 즐기더니 바로 다음 곡을 위해 집중했다.

은지에게 높은 성적 같은 것은 부가적인 즐거움일 뿐인 것 같았다.

이제 데뷔한 지 갓 1년이 되어 가는 신인의 여유라기엔 경이로운 수준의 마음가짐이었다.

창석은 의자를 끌어와 은호가 누운 침대 옆에 앉았다.

‘은지랑 다르게 은호는…….’

은호를 바라보는 창석의 안색이 어두웠다.

은지는 겉과 속이 같다.

가만히 지켜보다 보면 그 속내가 훤히 보일 정도로 투명한 아이다.

하지만 은호는 마치 안개와 같았다.

바로 앞에 무엇이 있는지 다가가지 않고서야 모르는 그런 짙은 안개.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창석조차 은호가 무엇을 목표로 두고 있는지를 모르겠다.

단순히 노래를 잘하는 것?

‘아니야.’

팬들에게 잘 보이는 것?

그것도 아니다.

은호는 노래하는 그 행위 자체를 즐기듯, 팬이 없어도 열심히 노력하던 녀석이었으니까.

그럼 은지를 넘는 것?

그렇다기엔 은호는 지금도 은지보다 보컬 실력이 뛰어날 정도로 성장했다.

혹시 다른 것도 넘으려고 하는 건가?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다.

‘이응’으로 활동을 시작한 이후 은호는 은지와 마치 대결처럼 공격적으로 실력을 키우는 행동을 멈췄다.

지금 은호의 노력은 오롯이 자신을 위한 건강한 방향에 가까웠다.

‘더 좋은 곡’을 위해, ‘자신의 성장’을 위한 그런 노력 말이다.

‘그럼, 음원 차트 1등이 목표인 건가.’

의심은 했지만 이것도 아닌 것 같다.

‘저주’가 1등을 했던 당시 은호도 분명 기뻐하긴 했다.

하지만 축배를 잠깐이라도 들던 은지보다도 은호의 기쁨은 더 짧았었다.

은호는 순위에 연연하는 것 같으면서도 막상 1등이 눈 앞에 닥치자 의외로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고작’ 음원 차트 1위는 은호의 갈증을 채워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창석은 은호가 왜 그렇게 숨 막히게 자신을 옥죄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창석은 꼬리를 무는 생각을 털어 내기 위해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생각은 뜻대로 털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거듭하면 거듭할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은호와 은지는 ‘이응’으로의 데뷔는 성공적이었다.

‘이후에 학교 폭력이니 뭐니 이런저런 일이 있긴 했었지만…….’

오해는 해명했고 오히려 그것을 기회로 과거를 잘 이겨 냈다.

현재는 높은 인지도와 곡의 성적도 그만큼 준수하게 내고 있기까지.

[희귀한 ‘남매’ 아이돌! ‘이응’. 따끈따끈한 NRY 엔터테인먼트 내부 소식! “현재 ‘이응’ 남매는 엄선된 곡들로 첫 정식 앨범을 작업 중으로…….”]

이번에 두 사람이 곡 작업에 들어갔다는 소식만으로도 온갖 곳에서 기대감 섞인 기사가 떠올랐다.

그만큼 은호와 은지에게 관심이 쏠려 있다는 말이었다.

창석은 한숨을 흘리며 조심스럽게 제 머리를 쓸어 올렸다.

‘은호와 은지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인제 보니 그런 생각 자체가 자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창석은 의자에 등을 기대며 잠든 은호를 가만히 바라봤다.

창석은 문득 은호가 종종 흘렸던 말이 생각났다.

「“……저는 은지 같은 천재가 아니잖아요.”」

은호의 미간은 펴졌는데, 오히려 창석의 미간이 구겨졌다.

“바보 같은 소리.”

정말 그런 바보 같은 말이 또 없다.

은지의 천재적인 면모는 쌓인 파일을 통해 직접 접하기에 쉽게 눈치챌 수 있다.

하지만 은지는 그 잘 만든 곡을 대중에게 어떤 이미지로 표현할지에 대해서는 그다지 고민하지 않는 편이다.

은지의 말을 빌리자면, 은지는 자신의 ‘머릿속 곡’을 현실에서 최대한 흡사하게 완성한 것이라고 했다.

그 제작된 곡을 관객들에게, 팬들에게 몰입하도록 유도하는 것.

‘어떤 이야기’를 통해 사람들에게 그 곡을 더 깊이 와닿도록 표현할지.

그러나 대개 그 ‘이야기’를 풀어내는 방법은 주로 뮤직비디오와 무대, 춤 등 시각적 이미지를 이용한다.

은지는 그런 ‘시각’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편이다.

시각 역시 음악과 마찬가지로 창작과 예술의 영역.

곡 못지않게 중요한 부분이라는 말이다.

은호는 ‘이응’의 노래에서 뛰어난 보컬뿐만 아니라, 곡의 ‘시각적 묘사’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은호의 재능은 거기서 빛을 발했다.

「“저희 곧 있을 합동 콘서트 때, 무대에 스토리를 넣으면 단순히 즐기는 것 이상으로 새로운 재미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 지난번 미니 앨범 제목에 계절을 표현하면서 ‘TIME’으로 잡았었잖아요? 이번에는 ‘GIFT’로―.”」

「“이번 ‘GIFT’ 앨범 제목을 따라서 우리 E%들만 알아볼 수 있는 메시지를 넣어 볼까 하는데―.”」

은호는 숨 쉬듯 수많은 아이디어를 흘린다.

그것들은 곧 ‘이응’의 무대로, 앨범으로, 뮤직비디오로 만들어진다.

팬들을 은지가 만든 ‘음악’뿐만 아니라 은호의 ‘이야기’에도 열광한다.

그중 하나였던 뮤직비디오 속 두 사람을 캐릭터화한 ‘지냥’과 ‘호냥’.

길 가는 사람 아무나 붙잡아 물어봤을 때 은호와 은지와 ‘이응’은 모르는데 ‘지냥’과 ‘호냥’이 나오는 장면과 굿즈는 ‘본 적 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은호가 제작한 캐릭터는 큰 인지도를 얻었고.

굿즈같은 데서 들어오는 부가적인 수입 역시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었다.

거기다 최근엔 ‘지냥’과 ‘호냥’ 캐릭터로 옴니버스식 단편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 싶다는 업체의 커넥션까지 들어왔다.

「“……저는 은지 같은 천재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은호가 그런 말을 할 때면 어떤 말을 해 줘야 할지 모르겠다.

하늘 같은 선배인 톡신의 뮤직비디오 전반적인 부분을 맡았으며, 심지어 성공적인 평가를 받았다.

심지어 현재 진행 중인 ‘연결’ 프로젝트.

‘연결’은 NRY 엔터테인먼트 내에서의 작품들이 연결되도록 자연스러운 세계관을 만드는 작업이다.

이 장기 프로젝트의 책임자 역시 은호가 맡고 있다.

‘자연스러운 세계관’을 형성하는 것이 절대 쉬운 일은 아님에도, 은호는 잘 해내고 있다.

지금도 은호는 이응의 앨범 준비와 동시에 화랑과 톡신의 신곡 뮤직비디오의 스토리를 구상 중이기도 했다.

그 결과, 현재 NRY에서 제작된 수많은 작업물은 반드시 은호의 손을 거친다.

우리 회사는 수평적인 분위기라 티가 잘 안 나는데다, 은호가 은지와 함께 아티스트로 활동하는 탓에 직원이 아닌 이상 잘 모르는 사실이 하나 있다.

현재 은호는 사내에서 발언 하나하나가 상당한 힘을 가지고 있다.

그런 은호의 직급은 NRY 엔터테인먼트의 기획팀장.

말이 팀장이지 사내에서 가진 힘은 임원급에 가까웠다.

‘이 많은 일을 감당하면서 활동까지 겸하고 있는데, 이런 애가…….’

창석은 식은땀으로 범벅이 된 은호의 이마에 열이라도 재듯 손을 올리며 속삭였다.

“그런 니가 ‘천재’가 아니면 뭐겠냐, 은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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