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85)
성공적으로 녹음이 끝났기 때문일까.
그간 긴장이 풀리면서 그대로.
은호와 은지는 동시에 눈동자에 흰자를 드러내며 풀썩 쓰러졌다.
* * *
“화랑아.”
“네?”
“은호랑 은지한테 가려고?”
“네. 오랜만에 일찍 끝난 겸, 얼굴 보고 오려구요.”
“그래. 오늘 밥 잘 챙겨 먹었는지 확인도 해 줘. 내가 최근에 다른 일이 많아서 못 갔거든.”
“네!”
화랑은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옥을 나와 근처 은호와 은지의 집이자 녹음실이 있는 주택으로 향했다.
“여기가 예전엔 NRY 사옥이었다니…….”
회사 사옥이라고 하면 보통 현재 NRY 엔터테인먼트 같은 상가 주택을 떠올리기 마련이었다.
화랑은 그 사실을 얼마 전에 알게 되면서 굉장히 놀랐었다.
띵동.
대문 옆 벨을 눌렀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화랑은 이미 몇 차례 방문하면서 비밀번호를 알고 있었다.
예의상 벨을 누른 거라, 안에 들어가서 인사를 해야겠단 생각으로 일단 비밀번호를 풀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하지만 그 순간, 조금 불길한 기분이 엄습했다.
작업 중이라면 조금이라도 북적한 소리나 어느 정도의 인기척은 나야 하는데, 집이 너무 고요했다.
1층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아, 2층으로 향한 화랑.
문을 똑똑 두드렸지만 알루미늄 문은 쾅쾅거리며 화랑이 두드린 힘에 비해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울렸다.
“냐옹.”
돌아오는 건 은호와 은지가 기르고 있는 연탄이의 울음소리뿐.
문은 열리지 않았다.
「“……내가 최근에 다른 일이 많아서 못 갔거든.”」
그때 화랑은 문득 창석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설마.’
설마.
아무리 작업이 즐겁거나 집중을 한다 해도, 설마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안고 다급하게 1층으로 내려온 화랑은 평소와 달리 노크도 없이 녹음실로 들어섰다.
벌컥, 문을 열자 펼쳐진 풍경은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기에 충분했다.
똑 닮은 남매가 녹음실 소파에 시체처럼 널브러져 있었기 때문이다.
“은, 은지야!!! 은호야!!!”
화랑은 기겁하며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설마’, ‘제발’이라는 간절한 심정으로 화랑은 은지의 코끝에 손가락을 대며 귀를 기울였다.
다행히 숨을 쉬고 있는 은지.
은호에게도 손을 대자 마찬가지로 숨은 쉬고 있다.
하지만 척 봐도 피골이 상접한 모습은 며칠간 굶은 게 확실해 보였다.
“은호야, 은지야! 일어나!”
화랑은 소파에 널브러진 은호와 은지를 온 힘을 실어 흔들어 깨웠다.
하지만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은호와 은지.
“어떡해, 어쩌지.”
화랑은 숨을 쉬고 있다는 걸 확인했지만 혹여나 깨어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이 컸다.
불안하게 덜덜 떨리는 손으로 화랑은 급하게 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 저기, 이응이 매니저님 맞으시죠? 지금 녹음실에 은지랑 은호가…….”
* * *
최근 톡신의 활발한 활동 탓에 유닛이 나뉘게 됐다.
톡신 멤버들 중 가장 바쁜 예찬은 개인 매니저인 영희가 있어서 그나마 괜찮았다.
하지만 다른 멤버들이 문제였다.
그동안 톡신의 멤버들은 딱히 필요가 없다며 따로 매니저를 두지 않았었다.
박 대표는 이 점을 알고 최근 면접을 보고 있긴 하지만 아직 면접 단계일 뿐.
사내에 현재 전문 매니저는 현우와 도진이 전부였다.
톡신의 팀이 두 팀 이상 갈라질 땐 현재 ‘같이 쫌 살자’ 외에는 활동이 없는 은호와 은지였기에 현우가 톡신의 활동에 지원을 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문제가 됐다.
“도진 씨, 부탁할게.”
“네. 형님, 얼른 가 봐요. 큰일인 것 같은데.”
“미안해.”
화랑의 연락을 받은 현우는 급하게 도진에게 상황을 맡기고 달렸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약 30분 남짓한 거리였지만, 위험하더라도 무리하게 속력을 내 겨우 늦지 않게 도착할 수 있었다.
대문 앞 골목에서 불안하게 손톱을 물어뜯던 화랑은 현우를 보자 밝아진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매니저님!”
“대표님한테는 연락했어요?”
“네. 대표님이 지금 근처 병원에 연락해서 구급차 보냈다고 했어요.”
“알겠습니다. 화랑 씨는 일단 회사로 가 계세요.”
“저도 같이…….”
현우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화랑 씨, 저녁에 촬영 있으시잖아요. 지금 피곤한 안색으로 카메라 앞에 서 봐야 좋은 말은 못 들을 겁니다.”
현우는 여기저기 투입되는 데다, 현재 팀장급인 위치만큼 화랑의 일정도 꿰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다소 냉정한 말이긴 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아무리 동료가 걱정돼도 일은 해야만 하니까.
게다가 그 동료가 ‘일’이 그 어떤 것보다 중요한 은호와 은지니까.
화랑은 고민 끝에 은호와 은지의 동료라면, ‘일에 집중하는 게 맞다’라고 판단을 내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화랑은 은호와 은지가 잠든 1층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다, 현우에게 맡기고 회사로 몸을 돌렸다.
화랑을 보내고, 간단히 상황을 전해 듣기만 한 현우는 현재 사태를 파악하기 위해 녹음실 안으로 향했다.
화랑이 덮어 준 건지, 은호와 은지는 소파 양 끝으로 긴 다리를 내어놓은 채 담요를 덮고 잠들어 있었다.
다른 곳을 돌아보니 작업실 테이블에 무수하게 쌓여 있는 빈 생수 통들.
현우는 상황을 본 즉시 두 사람이 닷새 내내 목이 갈라질 때만 물을 먹으면서 계속 녹음을 이어 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멍청이들이…….’
현우는 험한 말을 참고 싶었지만 이 상황은 미련하다는 말을 넘어서 어이가 없었다.
현우가 한숨을 흘리며 은호와 은지를 살피려던 그때였다.
바깥이 시끌시끌해졌다.
때마침 박 대표가 불렀다던 병원 응급실 차량이 온 모양이었다.
병원에서 알게 된 바로는 화랑이 은호와 은지를 발견한 건 꼬박 하루가 지난 후였다는 사실이다.
* * *
쓰러진 은호와 은지 중 먼저 정신을 차린 건 은호였다.
은호가 끔뻑거리며 눈을 뜨자, 시선에 가장 먼저 보인 건 주변을 둘러싼 낯선 커튼이었다.
이어서 상체를 일으키려 팔을 짚자, 익숙한 매트가 아닌 낯설고 딱딱한 침대의 촉감에 화들짝 놀라며 손을 뗐다.
“뭐야, 여기 어디야.”
은호는 팔에 연결된 고무 호스를 멍하니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은호의 시선이 호스를 따라 올라가며 연결된 약을 확인했다.
링거라는 것을 확인한 그 순간.
은호의 눈동자가 불안하게 흔들렸다.
입고 있는 옷도 병원복임을 깨달은 그때부터였다.
“……병원, 병원이다. 병원이야…….”
풀린 눈으로 중얼거리던 은호의 호흡이 불안하게 흐트러졌다.
차라리 그때 은지를 봤으면 덜했을까.
옆에는 은지가 누워 있었음에도 커튼이 쳐진 상황인지라 직접 확인할 수가 없었다.
‘헉, 헉, 헉.’
분명 숨을 쉬고 있다.
하지만 마치 공기가 없는 곳에 잠긴 것처럼 폐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차지 않는 끔찍한 기분.
은호는 목 아래를 틀어쥐며 가쁜 숨을 내쉬었지만, 증상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다.
차라락.
정신이 아득해질 때쯤, 커튼이 걷히고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은호야!”
“……형.”
현우는 은호가 일어난 줄 몰랐는지 놀라 소리쳤다.
“잠시만, 벨이…….”
“형……. 나…… 숨이…….”
“뭐? 숨이 왜!”
헉헉거리며 가쁜 숨을 뱉던 은호는 그대로 눈에 힘이 풀리더니 흘러내렸다.
좁은 병원 침대에서 떨어질 뻔한 은호를 받아 든 현우가 침착하게 벨을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간호사와 의사들이 병실로 달려왔다.
“방금까지 일어나 있었는데, 갑자기 숨쉬기 힘들다고 하더니…… 쓰러졌습니다.”
현우 또한 놀라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최대한 침착하게 의사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의사는 곧장 은호의 상태를 살폈다.
여러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현우는 지금까지의 상황을 창석에게 연락해서 전달했다.
* * *
급한 미팅을 마치고 병원으로 온 창석.
“애들은!”
“왔어?”
의사와 창석은 가까운 사이인 듯 의사는 창석에게 편안한 말투로 은호의 상태에 대한 설명을 이어 갔다.
“검사해 봤는데, 영양 결핍으로 인한 수치 문제 외에 다른 이상은 없었어.”
“이놈들이 밥 좀 잘 챙겨 먹으라고 몇 번을 말했는데…….”
“그, 이은지 환자는 아무 이상 없어서 눈 뜨자마자 식사 마치고 바로 퇴원 절차 밟았어.”
“괜찮은 거야?”
“괜찮아. 그보단 이은호 환자 쪽이 문제인데…….”
“은호는 왜 그런 거야?”
“……여기나 보셔.”
창석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빤히 노려보자, 의사는 그런 창석의 시선을 차트 쪽으로 옮기며 말했다.
“혹시 환자분 병원에서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겪은 적 있었어?”
“……내가 알기로는, 딱히.”
“흠.”
무언가 걸리는 것이 있는 듯 의사는 생각에 잠긴 얼굴이었다.
은호는 검사 도중 눈을 떴었다.
「“이은지…… 창백한, 은지가…….”」
그땐 다행히 의사가 곁에 있었기에 깨어난 은호를 곧장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은호의 상태는 매우 좋지 않았다.
정확히는 정신 상태가 좋지 않다.
자꾸만 의미 모를 말을 중얼거리는 불안한 상태였다.
은호는 당시 다급하게 현우에게 물었다.
「“형, 도진이 형, 여, 여기 어디예요?”」
「“여기 병원이야. 너 쓰러져서…….”」
갑자기 튀어나온 ‘도진’이라는 이름에 현우는 잠시 갸웃거렸지만, 대답은 잘 해 줬다.
하지만 은호는 오히려 ‘병원’이라는 단어를 듣자 급격하게 상태가 다시 나빠졌다.
특히, 뒤늦게 대기하고 있던 의사를 본 그 순간.
은호의 상태는 더더욱 뒤틀렸다.
“발작하더라고.”
“널 보고? 왜?”
“신체나 머리에는 딱히 다른 문제가 없어서 PTSD로 의심되는데, 본인한테 이야기를 들을 수 없으니, 나야 모르지.”
창석은 당시 이야기를 의사에게 전해 들으며 함께 은호가 입원한 1인실 문 앞에 섰다.
“그, 갑자기 창문으로 뛰어내리려고 하고, 위험한 행동을 보여서 어쩔 수 없었다.”
“…….”
의사의 설명에 의문이 있던 창석은 은호가 입원하고 있던 입원실 문을 열자 상황을 이해했다.
은호는 약에 취해 잠들어 있었다.
잠든 은호를 쓰린 시선으로 바라보던 창석의 한숨이 깊었다.
“병원이 낯설어서 그런 경우는 없냐. 얘들 어릴 적에 나랑 같이 건강검진 받으러 갔을 때 말고는 병원이란 곳을 잘 안 다녔거든.”
창석이 조심스럽게 묻자, 의사는 ‘글쎄.’라며 의문만 보일 뿐이었다.
“그런 걸로 그렇게까지 불안에 떠는 경우는 적어도 난 못 봐서.”
“그렇냐.”
“일단 나는 가운 좀 갈아입고 올게. 진료하려면 적어도 의사인 거 티를 안 내는 편이 좋을 것 같더라고.”
“그래.”
의사는 은호가 흰 가운을 보고 발작하던 모습을 설명한 후 잠시 자리를 비웠다.
현우는 화랑의 저녁 일정에 매니저로 투입된 터라, 1인실 안에는 창석과 은호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이게 무슨 일이냐, 은호야.’
창석은 걱정 가득한 시선으로 은호를 바라봤다.
처음엔 밥을 안 먹고 일만 해서 병원까지 실려 가는 상황을 만들었다는 것에 화를 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병원에 실려 온 이후.
창석은 은호의 현재 상태를 보고 밥을 먹지 않은 것이 급한 문제가 아님을 깨달았다.
은지는 은호를 따라 노력한다.
곡을 만드는 것이 즐거워서 작업을 한다.
하지만 은호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까지 악을 쓰고 노력하는 건지, 창석은 지금껏 그 ‘이유’에 대해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