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84화 (284/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84)

이하늘과의 통화에서 은호의 실력을 새로이 확인한 창석은 그날 저녁, 은호를 회사로 호출했다.

은호가 회사에 들어선 그 순간.

창석은 은호를 가뿐히 들쳐 메고 곧장 테이블로 향했다.

은호를 자리에 앉히자마자 창석이 물었다.

“어떻게 했냐.”

“네? 뭘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은호는 혼란스러운 상황에 당황하며 되물었다.

창석은 뒤늦게 설명이 부족했다는 걸 깨달은 듯 한숨을 내쉬며 말을 덧붙였다.

“오늘…….”

창석은 오늘 이하늘 보컬 트레이너에게 전화가 왔고, 그때 은호의 노래를 들었다며 사옥에 부른 이유를 간단히 상황을 설명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냐.”

“뭐가요?”

“너 보컬 말이야.”

창석의 눈빛이 날카로웠다.

은호의 발전은 창석의 근간을 뒤엎을 변화였기 때문이다.

창석은 지금껏 생각했었다.

연예인으로 사는 녀석들은 대부분이 그 업을 타고났다.

발전 가능성과 한계치는 그 끝이 있기 마련이라고.

……은지를 뛰어넘은 은호는 직접 확인하기 전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은호가 그 사상을 뒤엎었다.

‘이게 노력으로 가능한 영역이라면…….’

창석은 앞으로 들어올 NRY 엔터테인먼트의 새로운 연습생을 뽑을 때 기준이 달라져야 했다.

“제 보컬이 왜요?”

“왜요? 갑자기 없던 댐핑이 생기다 못해서 은지를 씹어 먹는 수준이 됐잖아.”

“……저 지금 혼나는 거예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창석이 하는 이야기는 좋은 말인 것 같은데 정작 말을 하는 창석의 얼굴이 7시간 잔소리를 하던 그때 얼굴이라 너무 무서웠다.

“칭찬 중이다.”

“칭찬을 뭐 그렇게 무서운 얼굴로 말씀하세요.”

“진짜 은지를 씹어 먹었나?”

“예? 허.”

창석이 진지하게 고민하자 은호는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이 터졌다.

과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창석은 진심으로 하는 말이었다.

‘댐핑’은 ‘연습’으로 되는 영역이 아니고 타고나는 것으로 생각했었으니까.

은호는 고민하는 창석을 보며 그간의 보이지 않던 자신의 노력을 인정받은 기분이었다.

상황이 이해되고 나서야 은호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저 이제 잘해요?”

“넌 예전부터 잘했어. 은지랑 가진 매력이 달랐던 것뿐이지.”

“지금은요?”

“지금은…….”

창석은 손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리다 입을 열었다.

“보컬로는, 은지의 필요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성장했다.”

“하하, 감사합니다.”

극찬이었다.

그것도 칭찬에 인색했던 그 창석에게서 나온 극찬.

왠지 가슴이 울렁거리는 기분이지만 은호는 애써 감동을 무덤덤하게 넘겼다.

“그래서, 비법이 뭐냐.”

“뭐긴요. 그냥 연습한 거죠.”

“단순히 연습으로 될 리 없잖아. 내가 너 옛날 연습량도 모를까.”

창석의 말의 의미는 ‘너 예전엔 지금보다 더 열심히 연습했었는데 이런 변화는 없었잖아.’라는 말이었다.

은호는 그 속뜻을 알아챈 듯 장난스럽게 웃었다.

“궁금해요?”

“그래. 궁금하다. 엄청.”

“옛날이랑 다르게 지금은 은지랑 같이 활동하면서 가까이에서 볼 수 있게 됐잖아요.”

옛날.

은호가 말한 두 글자에 창석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옛날이라면, 연습생 때 말이냐?”

“아.”

은호는 순간 버릇처럼 회귀 전을 말했다.

“네. 네. 맞아요. 네. 여, 연습생 때.”

뒤늦게 창석에게 그 시절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없음이 떠올리며 척 봐도 무언가 숨기듯 다급하게 긍정하며 이야기를 넘겼다.

“그, 은지랑 저랑 하도 주변에서 생긴 게 비슷하다고 많이 들었잖아요.”

“…….”

“인정하긴 싫지만.”

은호는 이야기하다 살짝 불만 있는 얼굴로 중얼거렸다.

“하하.”

창석은 그런 은호의 뒷말에 웃음이 터졌다.

“비슷하기만 하겠냐, 생긴 건 찍어낸 것처럼 똑같지.”

“……뭐, 그렇다고 치고요.”

이젠 대꾸하기도 지친다는 듯 은호는 손을 저으며 말을 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닮았다면 저도 은지처럼 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닮은 사람들은 목소리도 비슷한 경우가 종종 있다는 자료를 본 적 있었다.

그렇다면.

‘나도 이은지처럼 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연구를 해 보니 이 이론이 꽤 신빙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방면으로 연구해 봤거든요. 대표님이 듣기에도 좋아졌다면 연구 결과가 괜찮았나 봐요.”

“은호 네가 연구했어? 언제부터?”

“듀오 발매 이후부터 꾸준하게 했죠.”

은호는 생각에 잠긴 듯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좋은 소식이었다.

좋았다.

하지만 아쉬운 마음이 클 수밖에 없었다.

이걸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회귀 전에 이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그렇게 쥐어짜 내듯이.

‘그때 나는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지나간 시간의 ‘무의미한 노력’을 하던 자신이 안타까워서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은호야.”

왠지 기운 없는 은호의 모습에 창석은 은호의 어깨를 누르며 말했다.

“고생했다.”

‘저음’에서의 부족한 힘은 은호의 약점이었다.

하지만 은호는 자신의 약점을 강화하다 못해 자신의 무기로 만들었다.

그 방법은 다른 편법이 아닌 오롯이 연구와 연습이었다.

창석은 그것에 놀랐다.

놀람과 동시에 은호가 너무나 장했다.

은지의 타고난 재주는 천재적이다.

흔히 그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천재’.

그게 은지였다.

물론 은호 또한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서는 천재에 가까웠다.

하지만 유일한 가족인 은지가 ‘천재’이기에 은호는 평생을 평범한 ‘범재’로만 살아왔다.

창석은 차별 없이 은호와 은지를 바라보고 싶었다.

마음은 그랬다.

하지만 결국 능력을 우선하는 사업가였기 때문일까.

마음은 달랐지만,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은호는 은지보다는 두 번째로 밀리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고 ‘두 번째’는 응원하던 그 마음까지도 두 번째라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고생했어.”

“…….”

창석은 은호의 어깨를 꽉 쥐며, 한 번 더 많은 감정을 담아 넣어 나지막이 흘렸다.

항상 하면 확실하게 해내는 은호.

이번 역시 늘 그래 왔듯이 은호답게 해냈다.

“고생했다.”

같은 말을 세 번이나 반복했다.

하지만 박 대표 나름 이게 최선이었다.

더 말이 길어졌다간 괜스레 뭉클해진 마음 때문에 울먹거리는 목소리가 나올 것 같았으니까.

자식들 앞에서 우는 아버지는 되고 싶지 않은, 창석 나름의 자존심이었다.

하지만 은호 또한 그런 창석의 마음을 알고 있다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알아주셔서.”

* * *

「“이걸 이은호가 솔로로 불렀으면 해서요.”」

은지의 솔로곡 제안 이야기에 창석은 마침 잘됐다는 마음으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오늘은 가사까지 은지가 쓴 ‘Perfect’의 녹음 날.

“근데, 은지 너도 참…….”

“……?”

창석은 가사를 읽다가 새삼 황당한 마음이 들어 중얼거렸다

“고작 일주일 만나고 이런 가사를 쓰는 너도 참 난놈이긴 난놈이다.”.

화면을 보고 있던 은지는 창석의 말을 들은 듯 ‘뭐요.’라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창석은 은지의 표정을 보더니 웃으며 말을 이었다.

“어디서 데리고 온 건지 몰라도 내 새끼들 참 잘났다고.”

“제가 좀 잘나긴 했죠?”

“그래. 은호도 잘났고.”

“에이, 이은호보단 제가 낫죠.”

창석이 껄껄거리며 웃던 그때였다.

“이은지, 헛소리하지 마.”

은호가 녹음실 유리창 너머에서 말했다.

은지는 순간 화들짝 놀라며 손에 들고 있던 토크 백을 확인했다.

“뭐야. 안 눌려 있는데?”

토크 백 버튼을 누르지 않으면 녹음실 바깥 소리가 안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고로, 은호는 은지의 이야기를 못 들었다.

못 들어야 정상이었다.

“너 버튼 안 누른 거 맞아.”

“X친, 소름.”

은지가 기겁하는 동안, 은호는 여유롭게 녹음실 창 너머에서 가사지를 보며 대답했다.

은지가 토크 백을 누르며 물었다.

“어떻게 알았대.”

“니가 욕하면 귀 간지럽거든.”

“개소리하네.”

‘개소리’는 토크 백을 누르고 한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은호는 창 너머로 보이는 은지의 익숙한 입 모양을 보고 알아들은 듯.

“멍.”

은지를 놀리듯 짖었다.

투덜거리며 장난하던 것도 잠시.

다시 녹음에 돌입하자 은지는 진지한 눈빛을 하며 가사지와 화면을 살폈다.

스피커에는 조금 전 은호가 녹음했던 파트가 반복하며 흘러나오고 있다.

잘 지내니

인사 보내기

and 내 양심이

나도 알아 못났다는 거

은지는 녹음 중 사소한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골똘히 고민하다 토크 백을 누르며 은호를 불렀다.

“야, 이은호.”

“뭐.”

“좀 더…… 뭐라 하냐, 이걸. 그 있잖아.”

“없어.”

녹음실 유리창 너머에서 돌아온 무뚝뚝한 은호의 대답.

“저 개…….”

은지가 욕을 중얼거리다 뒤에서 지켜보는 박 대표의 눈치를 보며 차분히 본론을 말했다.

“‘그땐 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어’랑 ‘못났다는 거’ 더블링 쌓고, 이어서 쭉 가자.”

“일단 가던 거 마저 다 가고 하지?”

“느낌 보고 가게.”

“귀찮게 하네.”

“내가 디렉팅하잖아. 하라면 X치고 해. 쫌.”

“X치면 노래를 못 하는데?”

“…….”

은지는 은호의 장난을 무시하며 신경질적으로 곧장 트랙을 재생했다.

살벌한 상황과 달리 스피커로는 간결하지만 감미로운 피아노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이어서 나른한 은호의 목소리가 더해진 트랙이 재생됐다.

창석은 싸우는 은호와 은지에게 한마디 하려다 오히려 웃음이 터져 나왔다.

행복해 보여서

그땐 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어

(그땐 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어)

그게 나는 맞는 건 줄만, 그런 줄만

알았어

안 들어줄 것처럼 하더니 정작 녹음을 할 땐 은지의 요구를 정말 정확하게 들어줬기 때문이다.

잘 지내니

인사 보내기

and 내 양심이

나도 알아 못났다는 거

(못났다는 거)

은지 또한 은호의 첫 솔로 곡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본인이 가사를 쓴 이번 생의 첫 곡이기 때문일까.

창석의 시선에 은지 또한 은호 못지않게 이번 곡에 상당한 공을 들이는 게 눈에 보였다.

“나는 먼저 들어가마.”

“엇? 어? 벌써 가시려고요?”

창석의 가겠다는 인사에 은지가 놀라며 물었다.

창석은 평소 같으면 초과 작업을 하진 않는지, 식사는 제때 먹는지 확인할 때까지 곁에 붙어 있었을 사람이었다.

몸을 버려가며 일에 중독인 은호와 은지에 대한 걱정이 정말 많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 은호와 은지는 관리 중이랍시고 식단에 영양이 꽤 모자란 편이다.

영양제를 챙겨 먹고는 있다지만, 그게 제대로 된 ‘식사’의 역할을 해 줄 리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창석은 이번 작업만큼은 두 사람을 말릴 수 없었다.

지금 녹음 중인 곡들은 지난 ‘TIME’ 미니 앨범 1집 이후 ‘이응’으로 낼 첫 정식 앨범의 수록 곡들.

‘최고의 작품을 만들고 싶다’라는 마음으로 은지는 수십 개의 곡을 쉬지 않고 뽑았다.

은호는 미친 듯 연구하며 끝내 은지 이상의 보컬 능력을 끌어 올렸다.

그렇게 노력했던 그 마음을 이해하기에.

차마 이번만큼은 창석이라도 말릴 수가 없었다.

“이따 식사는 꼭 챙겨 먹고.”

창석이 해 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이런 짧은 걱정 섞인 말 한마디와 말없이 테이블에 놓고 가는 검은 색 법인 카드 한 장뿐이었다.

NRY 사옥 직원들이나 클라우드 멤버들이라면 신나게 긁었을 그 법인 카드였다.

하지만 은호와 은지는 그날 녹음이 끝날 때까지, 아니.

이후 녹음실에서 실려 나올 때까지도 그 카드의 존재를 몰랐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