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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83화 (283/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83)

외전: 어리석은 연정

한창 은호와 은지가 이응의 데뷔 이래 첫 정식 앨범 준비로 밤늦게까지 회의로 바쁘던 시기.

집에 긴 시간을 홀로 있던 검은 고양이 한 마리.

연탄은 평소와 다름없이 은지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현관 앞에 누워 있었다.

하지만 평소와는 조금 다른 상태.

누워 있던 연탄의 몸 주변으로 일렁이는 검은 연기들이 피어올랐다.

평소 형체를 바꿀 때 올라오던 연기라기엔 연탄의 표정이 어딘가 아프기라도 한 듯 일그러져 있다.

누워 있던 연탄은 고양이의 형태에서 나체로 새우잠을 자는 사람의 형태로 변했다.

은지가 봤더라면 기겁했을 모습이었지만, 일이 바빠서 보지 못한 게 어찌 보면 다행이었다.

“으……!”

꿈속에서 몸부림이라도 치는 듯 연탄은 고개를 미약하게 뒤척이다 번쩍 노란 눈을 크게 떴다.

“…….”

……여기가 어디야.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바쁘게 눈을 굴려 주변을 확인했다.

“아…….”

시선이 거실에 놓인 낮은 상에 닿았다.

아이라 뭐라는 물건과 쉐도라는 것.

그리고 뷰러인지 부럼인지 속눈썹을 찍는 요상한 기구와 벨 수가 없는데 ‘쿠션’이라고 부르는 것들.

하나같이 이상한 이름을 가진 화장품들이 지저분한 브러시들과 옷들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다.

「“쌤이랑 회의 있는데 늦었으어어어!!!”」

오늘 은지가 늦잠을 자면서 아침부터 급하게 화장하더니 뛰어나간 흔적들이었다.

그 난장판을 보고 나서야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새삼 실감이 났다.

그러다 테이블 위에 놓인 은지의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보게 됐다.

“…….”

이럴 리가 없다.

“왜, 벌써…….”

고양이의 형체가 풀어지면서 나체의 모습으로 앉아 있는 내 모습.

무언가가 단단히 잘못됐다.

나는 급하게 손을 보며 쥐었다 폈다.

내 지금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움직이는 것에는 아직 문제가 없다.

후욱.

순식간에 온몸을 뒤덮는 짙은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다.

몸이 다시 서서히 작아지면서 눈앞의 시야도 낮아졌다.

고양이의 형체로 돌아온 이후.

나는 급하게 서랍장 위로 뛰어오르며 거실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얼마 전까지는 건전지가 다 닳아서 단순히 벽 장식처럼 걸려만 있던 멈춰 있던 시계.

「“연탄아, 시계 건전지 갈아 놨어. 적어도 이 바늘이 여기 1에 닿기 전에는 들어올 수 있게 노력해 볼게.”」

무슨 변덕인지, 은지가 시간을 편하게 확인하라며 장식이었던 시계에 건전지를 갈아 끼워 줬다.

내가 시계를 볼 줄 모른다고 생각했는지 은지는 바늘의 시침과 분침부터 가르치기 바빴었다.

이미 TV를 통해 웬만한 문물은 다 접했는데 말이다.

하지만 시계의 건전지를 갈아 준 건 큰 도움이 됐다.

덕분에 내 상태를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게 됐으니까.

시간을 확인한 순간, 고양이의 작은 심장이 불안하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

오전 11시.

원래 오후까지는 형체를 유지하던 시간이 점차 짧아지고 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이렇게 속도가 빨라졌을 줄이야.

『얼른 결정해야 하는데…….』

은지에게 반드시 밝혀야만 하는 것이 있다.

내가 이 오누이를 기다린 이유이자, 마지막 거짓말.

『내가 단순히 ‘말’을 하는 걸로도 그렇게 속상해하던 은지한테…….』

머리가 무겁고 가슴 한편이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손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여기서 또 거짓말을 했었다고…….』

나는 며칠간 각오를 다잡았다.

미움과 원망 어린 말을 들을 각오를.

하지만 거듭 마음을 다잡을수록 은지를 따라, 사람들이 널려 있던 그 시골집에 갔던 그날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춥지는 않았다.

은지와 함께 텐트에서.

그것도 같은 침낭 속에서 함께였으니까.

『모든 게 계획대로 됐는데, 정작 이루려던 목표를 이룰 수가 없게 됐네. 하하…….』

범으로 태어나 수천 년을 이승에 얽매여 살며 복수를 다잡았건만.

태생이 짐승 아니랄까, 정작 가장 중요한 것을 간과했다.

다시 그때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내 이마로 다가온 온기가 다시 느껴지는 것만 같다.

은지의 다가오는 얼굴만큼 내 얼굴도 함께 뜨거워진다.

그때, 그날.

침낭 속에서 예상하지 못했던 은지의 그 입술이 문제였다.

그 낯선 것이 이마에 닿은 그 순간.

나는 내가 은지에게 그간 느끼고 있던 이 낯설기만 한 감정의 이름을 본능적으로 알아 버렸다.

‘이래서 그 이슬이라는 아이에게 그런 미래가 보였구나.’

뒤늦게 깨달았다.

작은 미물의 심장이 설레는 감정을 따라 두근거린다.

하지만 그 설렘은 곧 고통으로 돌아왔다.

아프다.

연모하게 된 여인에게서 날아올 사나운 눈빛이 떠올라서.

더는 그날처럼 곁에서 함께할 수 없게 될 훗날이 두려워서.

『그걸 다 어떻게 주워 담아…….』

거짓말은 뱉은 만큼 그것의 배로 거짓이 늘어나게 되는 법이다.

내가 지은 죄다.

내가 뱉은 죄다.

내가 엮은 죄다.

결국 그때 악에 받친 그 저주대로 모든 것이 이뤄져 버렸다.

『범 가는 데 바람 간다더니, 하하…….』

인연을 엮었다고 감정까지 엮여 버렸다.

지금까지는 ‘단순한 변덕’이라고.

‘미움받게 되면 끝나 버리니까.’

이곳에서 버티기 위해서라고 스스로 되새겼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감을 잡지 못할 정도로 수천 년이라는 긴 시간을 그녀만 본 탓인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운명처럼 다시 만난 그 순간이 시작이었나.

아니면, 갑자기 고양이의 형태가 풀어져 본의 아니게 나체를 온전히 보여 버린 날.

‘부끄러운 게 물론 가장 컸다만…….’

수줍어하면서도 자꾸만 내 몸에서 눈을 떼지 않던 은지.

그 시선에 수천 년 만에 생전 처음으로 ‘식욕’이 아닌 ‘색정’이라는 본능적인 욕망을 느낀 것이 시작이었을까.

정말 몰랐다.

이 내가 진정으로 연정을 품게 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리석다.

너무나 어리석어.

속이기 위해 시작한 소꿉놀이에 저가 가장 취해선…….

복수도 잊고 자신을 저주했던 존재에게 연정을 품어 버린 놈.

그런 아둔한 놈이 어디 있냐 묻노라면 나 자신을 가리켜 말하노라. 바로 여기 있다고.

『다 망했다. 망했어…….』

계획을 모두 바꿔야 한다.

엎어야 한다.

이젠 대답이고 뭐고, 은지를 살려야 하니까.

수천 년간 복수에 눈이 멀어 살아온 나였지만, 처음으로 연모하게 된 여인을 내 손으로 끝낼 만큼 못난 수컷은 아니니까.

하지만 그러려면 지금껏 내가 엮은 이 인연과 운명을 끊어야 한다.

나와 엮인 모든 것을 내 손으로 모두 지워야 한다.

마치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 * *

결핍

콘서트 전에 앨범 발매를 하기 위해 은호와 은지는 온 머리를 짜냈다.

은지는 손가락의 굳은살이 떨어질 때까지 기타를 치고, 건반을 두드리고, 펜을 잡았다.

은호는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음악을 들으며 가사를 써 내려갔다.

심지어 치료를 받으면서도 말이다.

‘마음 같으면 제발 쉬라고 하고 싶은데…….’

창석은 항상 은호와 은지의 건강을 염려하던 사람 중 하나다.

하지만 첫 ‘정규’ 앨범이기 때문일까.

은호와 은지는 정말 모든 능력을 쏟아 넣을 듯 최선을 다하고 있어서 그 창석마저도 이번만큼은 두 사람을 막을 수 없었다.

‘내가 무슨 괴물을 키워 낸 건지…….’

은지는 안 그래도 뛰어난 작곡의 역량이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당장 몇 개월 전만 해도 은지가 만든 수십 곡 중 절반은 내쳐지거나 다듬을 곳이 많이 보였다.

하지만 최근 정산 날 들은 은지의 곡들은 박 대표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가능하다면 모든 곡을 발매하고 싶을 지경이었으니까.

당장 내놓아도 차트권에 들 것 같은, 귀를 사로잡는 노래들.

그걸 고작 몇 달 동안 수십 곡을 뽑아낸 저 재능이 이젠 무서운 지경이었다.

그런 성장에 조금 자만하고 나태해질 만도 하건만, 은지는 ‘공장장’이라는 별명 그대로 쉬는 법이 없었다.

한편, 원래도 가사를 잘 쓰던 은호 또한 점점 다양한 곳에서 성장하고 있다.

은호의 작곡 실력도 작사 못지않게 늘었긴 하지만 그중 가장 놀란 건 보컬과 댄스다.

그중에서도 특히, 보컬이 대단했다.

오늘 녹음하는 곡은 반주에 잔잔한 피아노 연주밖에 없는 발라드다.

최근 발매된 곡들 외에 은지가 만든 곡 중에서도 가장 허전하고 단순한 곡이었다.

어느 정도냐면, 정산 날에 가장 첫 번째로 떨어졌던 곡 중 하나였다.

이 곡이 기적적으로 다시 택해진 이유는 단 하나.

은호가 쓴 가사 때문이었다.

머물던 자리에 어느덧 자라난 높은 풀이

작은 아픔을 끌어안은 네 눈물이

지난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려 와

박 대표는 은호의 녹음을 지켜보며 입을 못 다물었다.

은호는 본래 높은 가성을 주로 사용하는 보컬이다.

그래서 그런지 은호는 유독 ‘댐핑’이라 불리는 묵직하고 단단한, 특유의 힘 있는 느낌이 항상 모자란 편이었다.

그래서 은지와 함께 활동하는 동안에는 그 모자란 댐핑을 은지가 채웠다.

은호는 반대로 은지에게 모자란 시원하게 쳐 올리는 고음 부분을 맡았었다.

그게, 처음 창석이 ‘이응’을 구상하던 시기에 생각한 그림이었다.

하지만 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느낌의 곡들을 스스로 만들고 가장 어울리게 바꿔 가면서 무언가 깨닫기라도 한 걸까.

은호는 어느 순간 진성으로 부르는 자신의 낮은 음역대에 익숙해져 가는 듯했다.

물론 특유의 시원한 고음과 간드러진 가성으로 부리는 묘기 같은 은호만의 스킬들 또한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 말이다.

하지만 창석은 거기까지라고 생각했다.

처음 지예찬의 녹음실에서 갑작스럽게 달라진 은호의 실력에 받았던 충격은 여전히 살면서 가장 놀란 일 중 베스트에 든다.

은호가 저음도 이젠 상당히 잘 다룰 줄 알게 되었다는 걸 알고 있다.

다만 그렇다고 한들 기존에 잡혀 버린 색안경은 쉽게 벗기 힘들었다.

그래서 박 대표는 여전히 저음에서는 은지가 더 낫다.’라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익숙해졌을 뿐.

그래도 은호니까.

은호는 여전히 은지만큼 특유의 쫀득한 느낌은 잘 살리지 못할 것이다.

……라고 정산 날이 있기 전, 이하늘 보컬 트레이너에게 연락 한 통을 받기 전까지는 그랬다.

“대표님, 대표님! 휴대폰 귀에 딱 대고 있어요!”

“응? 갑자기 무슨…….”

뜬금없는 연락이었지만, 박 대표는 오래 지나지 않아서 이하늘의 뜻을 알게 됐다.

통화 너머에서 이하늘은 다급하게 어디론가 뛰어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이어진 방음 부스의 문이 열리는 달칵거리는 소리.

이어서 들리는 은호의 목소리.

MR은 없었다.

‘이건, 대체 무슨 노래야…….’

오롯이 은호의 목소리만 들렸다.

용서하기엔 지난 세월이

지난 시간에 내가 겪은 것들이

흉터로만 남아 그땐 그랬어

자국이 되어 떠올리게 만들어

환장하리만큼 갑작스럽게 좋아진 이 말도 안 되는 댐핑은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천재도, 범재도 아닌 수재.

박 대표의 색안경은 벗겨지다 못해서 박살이 났다.

노래는 하이라이트 부분이 아닌 듯했음에도 훅 못지않게 귀에 끈적하게 남아, 아쉬움을 남겼다.

은호가 그토록 바랐던.

창석에게 있어, 보컬에서 은지를 앞지르며 한 발자국 더 앞서 나아간 첫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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