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82화 (282/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82)

여기가 회사인지, 시장통인지 모르겠다.

하지만 은호도 은지도 심지어 박 대표도 이 분위기가 나쁘지만은 않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데.’

은호의 시선에선 적어도 NRY에서는 수많은 사공으로 인해 마치 모터보트 같은 속도를 내며 달리는 것 같았다.

약 저녁 9시를 넘어가기 전까지는 그랬다.

저녁 9시 전, 은지가 만든 수십 개의 가이드 곡 중 약 20곡 정도.

곡들이 선별됐다.

앨범에 넣기에는 너무 많은 양인만큼 ‘이응’의 곡이 될 것들 외에도 NRY 엔터테인먼트 소속의 다른 가수들에게 줄 곡들도 선별된 곡이 포함된 수가 총 20곡 정도였다.

문제는 그 스무 곡이 넘는 분량에서 또 한 번 선별을 거치는 일이었다.

“성민 씨, 그건 아니죠. 이걸 왜 빼요!”

“맞아. 오히려 이거야말로 이응이 불러야 할 노래죠! 이걸 별로라니!”

“제가 언제 별로라고 했어요? 이번 앨범 색깔에 어울리지 않으니까 빼자는 거죠. 안 그래요? 송주 씨?”

“뭐, 여기서 별로인 곡이 어디 있겠어요.”

“맞아요. 이제 저희가 제작할 앨범의 콘셉트를 생각하자, 이런 말인 거죠.”

“저, 저는 이 곡도 충분히 이번 콘셉트에 맞는다고 생각해요.”

“전 아닌 것 같은데요. 외딴 섬처럼 동떨어진 느낌이잖아요.”

절대 쉽지 않았다.

수십 개의 가이드 곡에서 선별할 때보다 더 많은 토론이 이어졌으니까.

심지어는 토론을 넘어 감정이 격해진 탓인지 직원들 사이에서 살짝 큰 소리가 나왔다.

“그―!”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박 대표는 참다못해 소리를 냈다.

하지만 박 대표의 말이 끝까지 이어지진 못했다.

짤랑.

박 대표가 입을 뗀 그 순간.

회사 사옥의 유리문에 달린 종이 울렸다.

회의실 문이 열려 있어서 직원들과 박 대표는 들어오는 사람이 누군지 곧바로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불이 커져 있길래 와 봤는데.”

“하이요!”

회사 안으로 들어선 사람들은 익숙한 얼굴이었다.

오랜만에 사옥을 찾은 클라우드 댄스 팀.

에나(오별님) 오달님 남매, 인혁과 로아였다.

다들 살짝 상기된 얼굴을 보아하니 클라우드 멤버들과 근처에서 한잔 걸친 모양새들이었다.

한편, 집 방향이 이쪽인 멤버들만 있는 걸로 봐선 이제 막 흩어지던 중에 회사 앞을 지나가다 늦은 시간까지 불이 켜져 있어서 들러 본 것 같았다.

예상치 못한 인물들의 등장에 살짝 살벌해지던 분위기가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잔잔해졌다.

그때, 취기가 상당히 오른 에나가 밝은 목소리로 소리쳤다.

“보영 언니!”

“오! 에나도 왔구나!”

NRY 직원 중 인맥이 정말 다양하기로 유명한 보영.

마당발임을 자랑하듯 보영은 언제 에나와 가까운 사이가 된 건지.

두 사람은 서로를 반갑게 끌어안으며 인사를 나눴다.

에나의 키가 은지만큼 큰 탓일까.

직원들 중에서도 키가 작은 편이었던 보영은 마치 안기는 모양새였다.

둘의 인사를 가만히 지켜보던 클라우드의 리더 로아.

로아는 회의실 한구석 놀란 눈으로 자신들을 보고 있는 은호와 은지를 돌아보며 웃었다.

“지지랑 랑이도 있었구나.”

“……언니! 그렇게 부르지 좀 말라니깐.”

‘지지’라는 별명의 유래는 ‘더러운 방’이라서 그런지 은지는 인사도 하기 전에 투정이라도 부리듯 로아에게 투덜거렸다.

“그래서, 다들 뭐 하고 있었어요?”

비교적 다른 멤버들에 비해 술에 덜 취해 보이는 같은 인혁이 차분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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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란한 이 별처럼

몸이 들썩거리는 음악이 깔린 회의실 안.

흐트러진 빈 맥주 캔들.

저녁 9시가 넘는 시간.

‘회사’라기엔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었기에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회사에서 회식 중인 거예요?”

“오늘 곡 정산 날이거든요.”

“곡 정산?”

은호의 대답에 인혁은 ‘곡 정산’이라는 말을 처음 들어 이해하기 어려운 듯 갸웃거리기만 했다.

그때, 보영이 에나에게 말했다.

“에나도 옆에 와서 맥주 한잔하면서 노래 좀 들어 봐!”

“회사에서 그래도 돼요?”

“응. 대표님도 허락했는걸.”

보영의 뻔뻔한 대답에 박 대표는 ‘내가 언제!’라는 표정을 지었지만 클라우드의 참여는 듣던 중 반가운 말이었는지, 박 대표는 다시 웃으며 말했다.

“어차피 클라우드가 같이 활동할 곡이니까. 미리 들어서 나쁠 건 없겠지. 시간 있으면 듣고 가.”

안 그래도 시장통인 회의실이 더 북적였다.

잘 지내니

인사를 보내기엔 내 양심이

나도 알아 못났다는 거

많은 곡이 흘러가고, 돌고 돌던 그사이.

스피커에는 ‘퍼팩트(Perfect)’라는 가제가 생긴, 은지가 시우와 이별 후 작사, 작곡을 한 곡이 다시 흘러나왔다.

네가 없는 나 홀로도 완벽했기에

너 없이도 잘난 나는 이게 나기에

곡이 다 끝나 가던 그때였다.

술이 조금 깬 듯 한결 멀쩡해진 모습으로 에나가 놀란 눈을 하며 소리쳤다.

“어! 지금 이 곡, 이거 은지가 썼지!”

에나의 말에 성민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지금까지 들은 모든 곡을 은지 씨가 썼죠.”

“아니, 나는 이거 노래가 아니라 가사를 말한 거거든요!”

에나가 발끈하며 말하자 은지가 살짝 놀란 얼굴이 되었다.

“맞구나!”

“어, 응. 맞아. 어떻게 알았어?”

“은호는 저런 가사 잘 안 쓰잖아.”

에나가 웃으면서 대답하자, 이번엔 은호가 인상을 구기며 발끈했다.

“내가 뭘.”

“아니, 저런 자존감 높은 가사 말이야.”

“나도 자존감 높아요. 난 그냥 그 곡에 어울리는 가사를 쓰는 것뿐이거든요.”

“누가 뭐래? 너한테 안 물어봤는뒙.”

생긴 건 다르지만 은지와 자매처럼 보일 정도로 큰 키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클라우드 멤버 에나.

심지어 오달님과 남매이기까지.

유독 은지와 닮은 점이 많아서 그런가.

“아, 꼴 받아.”

평소 덤덤하던 은호는 박 대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나의 말에 발끈했다.

“아핰핰핰핰!!!”

은호가 당하는 게 속이 후련한지 은지는 숨넘어갈 듯 깔깔거리며 화난 은호를 손가락질했다.

“확, 그냥.”

은호가 은지의 약 오르는 손가락을 붙잡으려 손을 뻗었다.

그 순간, 은지는 여전히 깔깔 웃으면서 손가락을 접었다.

덕분에 붙잡을 손가락이 사라진 은호의 손은 민망하게 허공을 휘저었다.

“핰핰핰핰, 멍청잌, 앜핰핰핰.”

“푸훕―!”

그 순간, 두 남매의 싸움을 안주 삼아 입에 막 맥주를 머금었던 기훈이 맥주를 분수처럼 뿜어 버렸다.

“아, 기훈 씨!!! 하하하하!!!”

하하하하핰!

마치 연쇄 작용처럼, 회의실 안 모두가 은지처럼 터졌다.

다들 웃는 중에 낯이 뜨거워진 은호는 헛기침하며 모른 척 몸을 돌렸다.

“형, 은호 형.”

이곳에서 유일하게 은호를 가장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은호에게 다가왔다.

에나의 동생, 오달님이었다.

달님은 마치 위로라도 하듯 은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원래 짐승이랑 사람은 싸우는 거 아니래요.”

“야, 오달님, 너 뭐라고?”

“응?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조용히 ‘멕이는’ 한마디에 어떻게 들은 건지 에나가 발끈하며 되물었다.

하지만 달님은 뻔뻔하게 어깨를 들썩이며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은 표정을 지어 보였다.

“……하핰핰핰.”

다들 웃는 와중에 유일하게 안 웃던 은호도 결국 오달님의 위로 아닌 위로에 웃음이 터졌다.

“아, 오별님 이제 나이 먹어서 귀도 안 들리고 어떡하냐.”

“뭐래, X신이. 그런 지는 오늘 안무 맞출 때 지 자리도 못 찾았쥬?”

“야, 그건 오별님 니가 이상한 방향 알려 줘서 그렇게 된 거잖아!”

“그러게, 누가 나한테 물어보래? 못 외운 니 머리가 문제쥬?”

에나가 발끈한 달님을 놀리며 남매끼리 투덕거리고 있던 그때였다.

은지는 그 모습을 보며 웃다가 마침 떠오른 게 있는 듯 직원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저 근데, 퍼팩트에는 전 참여 안 하면 안 될까요?”

하하호호 웃던 회의장에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이응은 듀오인데?”

“당연히 같이해야죠.”

직원들은 하나같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은지를 바라봤다.

“왜.”

그때, 박 대표가 나지막이 이유를 물었다.

“그게, 음, 이유는 나중에 따로 전화로 말해도 돼요……?”

은지는 이유가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지, 나중에 말하겠다며 말을 아꼈다.

“그래. 그럼, 작업하면서 변경될 수도 있지만, 일단은, 은호 솔로로 빼 두마.”

“감사합니다.”

“은호는 괜찮냐?”

“네. 괜찮습니다.”

다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었지만, 박 대표는 은지를 믿기에 뜻대로 해 주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은호 또한 마침 솔로 욕심이 없지 않았기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렇게 은지와 듀오로 활동하게 된 이후 처음, 은호의 솔로곡이 결정된 날이었다.

* * *

외전: 둘째 계획

하루 전.

「“은호랑 은지처럼 남매로다가 ‘둘’ 어때?”」

창석은 아내 철수와 2세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오늘.

“……못 외운 니 머리가 문제쥬?”

“머리는 나보다 지가 더 나쁘면서.”

“야, 너 누나한테 ‘지’가 뭐냐? 째깐한 새끼가.”

“난 남자 평균이거든? 은지는 예쁘지만 오별님은 키만 멀대같이 커선, 그게 자랑이냐?”

“어. 자랑인데? 너 오늘 나한테 깝죽거린 거 그대로 엄마한테 이를 거다.”

“20대 중반이나 나이 처먹고 아직도 엄마한테 이르냐? 유치하게.”

“응. 맞아. 나 X나 유치해. 근데 넌 20살 먹고 야X 보다가 엄마한테 회초리 맞았죠?”

“아, 그걸 여기서 왜 말해! 미친 X아! 그것도 니가 일러서 혼난 거잖아!”

“응. 그러니까, 오늘도 일러서 혼나게 해 줄게―.”

은호와 은지에게서도 흔하게 보였던 싸움의 흐름이랄까.

익숙한 투덕거림이었다.

그리고 그걸 가만히 지켜보던 창석은 마치 해탈한 부처님 같은 얼굴로 조용히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아내 철수에게 깨톡을 보내기 위해서였다.

[나(박창석) ― 여보]

[마눌님 ― (갸웃거리며 ‘???’를 띄운 하얀 곰돌이 이모티콘)]

[나 ― 어제 내가 했던 말 잊어 줘]

[마눌님 ― 갑자기?]

유치하게 싸우는 오 남매와 이 남매를 동시에 마주한 덕분에 깨달았다.

[나 ― 우리 자식은 그냥 하나면 충분할 것 같아요...]

[마눌님 ― ㅋㅋㅋㅋㅋㅋ]

철수는 이어서 눈에 훤히 보인다는 듯 한마디를 덧붙였다.

[마눌님 ― 오빠가 이런 소리 하는 거 보니까]

― 오늘 은호랑 은지 말고 다른 남매가 또 사고 쳤구나]

[나 ― 우리 마눌님 너무 정확하시다~]

― ㅋㅋㅋㅋ나 사업 망하면 여보가 밖에서 돗자리 깔면 되겠어]

[마눌님 ― ㅋㅋㅋㅋㅋㅋㅋㅋ]

― (싸늘하게 정색하는 하얀 곰돌이 이모티콘)]

― 헛소리 금지 박창석]

[나 ― ㅈㅅ;;]

― (손 비비면서 잘못했다고 비는 파리 이모티콘)]

그로부터 몇 주 뒤.

“응? 이게 뭐야?”

철수는 퇴근하고 돌아온 창석에게 상자 하나를 내밀었다.

얼떨떨하게 상자를 받아 든 창석은 상자를 연 순간 얼어붙었다.

상자 안에는 선명하게 두 줄이 생긴 임신 테스트기와 함께 초음파 사진이 놓여 있었다.

아무 말도 못 꺼내는 창석에게 철수는 웃으며 말했다.

“축하해요. 늦둥이 아빠. 아!”

철수는 실수였다는 듯 손뼉을 치며 인사를 정정했다.

“다시, 잘못 인사했어.”

“응?”

“축하해. 늦둥이, ‘쌍둥이’ 아빠.”

“……어?”

창석은 활짝 웃던 얼굴 그대로 얼어붙었다.

“여기 까만 점이 아기집이고, 안에 하얀 작은 점이 아기래.”

철수는 얼어붙은 창석에게 초음파 사진을 보여 주며 설명을 이어 갔다.

“근데 여기엔 까만 점이 두 개지? 아기집이 두 개면 쌍둥이래. 아직 남매인지 자매인지 형제인지는 모르지만…….”

대답이 없는 굳은 창석을 걱정스럽게 올려다본 철수는 활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창석의 얼굴이 웃다 못해서 울컥 눈물이 터질 것처럼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어서였다.

“괜찮아? 둘인데?”

“당연히, 괜찮고말고.”

창석은 맺힌 눈물을 닦은 즉시 철수를 끌어안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오히려 두 배로 행복해.”

창석은 생각했다.

기왕 둘이라면, 태어나는 우리 아기는 은호랑 은지보다는 덜 싸우길.

그리고 은호랑 은지처럼 서로 제 몸처럼 아껴 주는 아이들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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