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79)
헤어지기 1시간 전.
“타, 은지야.”
“웬 차야?”
“나 차 있었는데?”
“음, 그래? 매번 나한테 오라고 했지. 네가 온 적은 없으니까. 난 당연히 없는 줄 알았거든.”
“아…… 미안, 그럴 걸 그랬네. 하하.”
은지는 딱히 어떤 ‘생각’을 가지고 한 말은 아니었다.
말 그대로 ‘차가 있었으면 니가 좀 오지’라는 의미였다.
‘지난 6일간 한 번이라도 봤으면 마음이 좀 달랐을까.’
은지는 운전하는 시우를 빤히 바라봤다.
“왜, 왜?”
시우는 은지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당황하며 물었다.
“그냥, 너랑 키스하는 거 상상했―.”
“어? 뭐라고? 헉.”
너무 놀란 나머지 시우는 자신도 모르게 운전 중에 옆을 돌아봤다.
금방 커브가 나오는 길이라 다급하게 다시 앞을 볼 수밖에 없었다.
‘기회인가? 기회 맞나?’
시우는 마른침을 넘기며 힐끔힐끔 은지를 쳐다봤다.
은지는 말이 잘린 탓에 기분이 좋지 않았다.
‘드디어!’라는 생각에 설렌 시우는 은지의 기분 변화를 알아챌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은지의 말은 시우의 기대감을 단번에 죽여 버렸다.
“촬영 때 했던 막대 과자 게임 말이야.”
“어? 어어…….”
꼴깍.
조금 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마른침이 삼켜졌다.
“안 그래도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그…… 알잖아. 방송인 거, 이해해 주라. 미안.”
“아, 그건 괜찮아. 딱히 사과 들으려고 꺼낸 이야기도 아니고.”
“그, 그래?”
마린과 미션을 할 당시 사심이 없었느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할 말이 없다.
마침 방송이겠다.
은지와 사귀는 사이가 밝혀지지도 않았으니, 이때가 기회라는 생각으로 그 순간을 즐겼으니까.
“저기, 은지야. 혹시 질투했어?”
질투라는 단어에 은지는 진심으로 피식 웃음이 터졌다.
“하하, 안 났어. 난 네가 열심히 해서 더 좋았어.”
“어?”
“내가 제대로 이겼다는 거 알았을 때 그 덕분에 더 기분 좋았거든. 그리고…….”
시우로서는 은지의 생각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은지의 대답에는 크게 마음이 동했다.
“방송인데 당연히 열심히 해야지. 그게 맞지. 일인데.”
시우는 진심으로 놀랐다.
지금껏 만나 온 많은 여자 친구 중에서 자신을 여기까지 이해해 준 여자는 처음이라서.
은지의 넓은 이해심에 오히려 사심을 담아서 게임을 했던 자신이 민망할 지경이었다.
“은지, 너는 처음 만났을 때도 특별했지만 이런 면이 되게 편해서 좋다.”
“무슨 면?”
“그러니까 음…… 질투나 잔소리를 안 하는, 안 귀찮은 면이 없는 거.”
은지가 갸웃거리며 시우를 바라봤다.
시우는 설명이 더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인 듯 다급하게 말을 덧붙였다.
“그, 나는 여자 친구가 꽤 있었거든.”
“그래?”
“응. 근데 항상 오래 가진 못했어.”
“왜?”
“음…….”
시우는 눈치라도 보는 듯 은지를 힐끔거리며 식은땀까지 흘렸다.
“말해, 말하다 말 거면 애초에 시작하지 말든가.”
침묵이 길어지자 기다리는 걸 못 하는 은지는 진심으로 짜증을 냈다.
“그, 그게 내가 DI 뮤직 연습생이었잖아? 너도 알겠지만, 연습생 시절에는 이런저런 춤을 많이 배우잖아.”
“그렇지.”
“그때 이성 파트너도 가끔 있고, 끈적한 춤도 있고…….”
“맞아. 있지. 호흡을 맞춰 봐야 배우는 부분도 있으니까.”
은지는 클라우드 댄스 팀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내 전 여친들은 내가 다른 여자 연습생들하고 자주 어울리는 걸 별로 안 좋아했거든.”
“아, 오늘 아침처럼?”
“어? 아, 봤어?”
오늘 아침.
은지는 텐트에서 나오며 마린과 새벽 산책을 다녀온 시우와 정확히 눈이 마주쳤다.
그리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배운 바로는 그건 애인이 있는 사람이 하기에 ‘바람직한’ 모습은 아니라는 것.
시우도 좋은 행동이 아니었다는 건 알고 있는지 민망한 듯 빈 목을 긁적이며 핑계를 덧붙였다.
“그게, 마린이 뒤에 텃밭을 궁금해하더라고…….”
“그래서 마린 씨한테 네가 친절하게 알려 줬고?”
“……응.”
“뭐, 잘했네.”
“……미안, 어?”
“뭘 미안해 해. 잘했다고.”
놀라는 시우에게 은지는 재차 칭찬했다.
때마침 차도 신호에 걸렸겠다, 시우는 은지에게 확실하게 하고 싶다는 듯 돌아보며 물었다.
“저기. 은지야, 너는 이런 게 안 서운해?”
“응. 그러게? 안 서운하네?”
은지는 오히려 개운한 콩나물국을 사발로 들이켠 듯 시원하다는 표정이었다.
시우는 은지의 표정을 보더니 길게 할 이야기라도 있는 듯, 은근슬쩍 차를 그늘진 갓길에 멈춰 세웠다.
“아까 내가 질투 안 해서 편하다던 말 때문에 억지로 그러는 거면 안 그래도 돼. 서로 불편하잖아.”
시우가 걱정하듯 말했지만, 그 걱정에 은지는 웃음만 났다.
오히려 은근슬쩍 허벅지 위로 올라온 시우의 손이 더 불편했다.
은지는 웃는 낯을 한 채 시우의 손을 밀어냈지만, 손은 마치 원래 제 자리인 양 자꾸만 허벅지를 위로 돌아왔다.
“시우야.”
“응.”
“있지. 질투도, 서운한 마음도, 내가 일단 너한테 관심이 있어야―.”
“응. 그렇지. 맞아.”
정신이 허벅지에 올라온 손에 가 있는 듯 시우는 은지의 말을 자르며 공허하게 답했다.
좋게 말해선 안 되겠다 싶어, 은지는 시우의 손을 뒤집으며 슬쩍 손깍지를 꼈다.
시우가 기대감을 드러내며 활짝 웃었다.
은지도 그런 시우를 따라 활짝 웃어 주며 깍지 낀 손에 힘을 줘 주먹을 쥐었다.
은지의 악력은 ‘최소’ 70kg.
지금은 진심으로 시우의 손을 으깨 버릴 듯 강하게 쥐었기에 절대 장난으로 치부하고 넘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아악!!! 이!!!”
아니나 다를까.
시우의 웃고 있던 얼굴이 희게 질리더니 금세 비명이 터져 나왔다.
정말 아팠는지 시우는 은지가 쥐었던 손을 쥔 채 사납게 쏘아봤다.
“아프잖아!!!”
“이제 내 말이 좀 들려? 아깐 정신이 내 허벅지에만 팔려 있길래.”
“허벅, 아니. 팔린 게 아니라! 네가 먼저 신호 줬잖아. 키스하는 걸 생각했다며!”
발끈하는 시우를 보며 은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래. 한국말은 좀 끝까지 처들어, 새끼야.”
“뭔.”
“난 너랑 키스하는 거 생각하니까 기분이 X같았다고 말하려던 거였어. 하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그게―.”
“또 또 말 좀 그만 자르고 끝까지 들어 줄래?”
“…….”
“이젠 입 다물고 있겠다는 거면 차라리 그러든가. 아무튼.”
은지는 ‘후’ 한숨을 흘리며 차에 탄 직후부터 하고 싶었던 말을 드디어 꺼냈다.
“우리 헤어지자고.”
“뭐? 아니, 갑자기? 왜? 마린이랑 어울렸던 것 때문에 그래?”
“아니야. 난 니가 마린인지 뭔지, 걔랑 물고 빨든, 뭘 하든, 전혀 관심 없어.”
“허……! 역시 질투했잖아!”
“뭔…….”
은지는 황당하게 시우를 쳐다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다 문득 어젯밤 비가 오는 텐트 안에서 침낭에 자리를 만들어 주자 품을 파고들던 연탄이 떠올랐다.
이마 뽀뽀 한 번에 후끈해졌던 침낭을 생각하자 짜증이 가득했던 은지의 얼굴에 다시 스멀스멀 미소가 피어났다.
시우는 그동안에도 어떻게든 핑계를 대려 애를 쓰고 있었다.
“은지야, 마린은 네가 말했던 대로 방송이라 어쩔 수 없던……!”
“최시우.”
“……그런 거였다고.”
“그때 난 그게 다른 여자랑 헛짓거리 한 거라는 것도 나중에 알았을 정도로 바보였거든. 그러니까 그만 핑계 대도 돼. 진짜 그거 때문 아니니까.”
시우는 황당한 숨을 터뜨리며 물었다.
“그럼 진짜 마린이 때문이 아니라고?”
“어. 그냥, 내가 너한테 우리 집 고양이만큼의 관심도 없어서 그래.”
“너희 집 고양이라면, 연탄이 말하는 거야?”
“그래.”
빈말이 아니라 정말이었다.
나는 질투가 많은 편이다.
그 대상이 시우가 아니었을 뿐이지.
시우가 마린이랑 있을 땐 정말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저, 혹시 얘가 연탄이에요?”」
오히려 마린이 연탄이를 불렀을 때.
「“혹시, 만져도 되나요?”」
마린이 이은호한테 그렇게 물었을 때.
나는 지퍼를 잠가 주던 슬기 언니의 손도 밀어내고 마당으로 달려갔다.
「“내가 왔다. 이은호.”」
마린에게 뭐라 하기엔 유치한 것 같고 나 자신도 민망해서 괜히 이은호를 불렀다.
그때, 기다렸다는 듯 반짝거리는 눈을 하며 내 품으로 달려오는 연탄이는 정말…….
귀엽다 못해서 사랑스러워서 미치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하지만, 야, 이은지 니가 먼저 고백했잖아!”
시우는 속이 타는 듯 핸들을 때리며 소리쳤다.
“음, 그랬지. 그건 좀 미안하네.”
시우는 정신이 빠지다 못해 영혼이 탈탈 털린 얼굴이었다.
‘근데 그땐…….’
나도 애인이라는 걸 만들고 싶긴 했지만, 시우가 이렇게 다른 여자한테 추파를 던지고 다니는 놈인 줄은 몰랐다.
마린 씨와 그렇게 붙어 있는 모습을 안 보였더라면, 좋아하려고 노력이라도 해 봤을까.
‘죄’가 있으니 ‘탓’을 한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나는 솔직히 시우가 나에게 정말 잘했더라도 잘됐을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
욕심이 나서 가져 봤지만, 생각보다 별거 없었다.
‘오히려 일할 때 방해만 되고.’
특히 일할 때마다 연락 오는 게 제일 불편했다.
‘이런 걸 보면, 그냥…….’
나는 애초에 연애라는 것과 더럽게도 안 맞는 타입인가 보다.
그걸 이번 경험을 통해 이제야 깨달은 것뿐이다.
시우도 시우 나름 나한테 불편했던 점이 있었을 것이고, 나 또한 시우를 이용했던 것이었으니까.
“우리 그냥, 다 없던 걸로 치자.”
“……하, 그래. 그러자. 그게 좋겠네.”
시우의 목소리는 신경질적이었지만 뜻은 통하는 것 같았다.
그것도 잠시.
시우는 절대 좋은 놈이 아닌 건 확실했다.
“내려. 너 때문에 거절했던 마린이나 바로 만나러 갈 거니까.”
그렇게 시우의 차에서 쫓겨났다.
이후 시우의 차는 아쉬움 없이 속도를 올리며 떠났다.
양심이라는 게 있는지라, 나도 차마 집까지 태워 달라는 말은 못 했다.
시간을 보자 12시가 넘었다.
‘딱 일주일은 채웠네.’
왠지 허탈하다.
집에나 돌아가기 위해 매니저 오빠를 부르거나 지도를 켜려던 그때였다.
픽―.
휴대폰 액정이 꺼졌다.
‘설마.’
설마설마했지만, 현실이다.
“배터리 다 나갔어?!”
평소에 하루 이상 가던 배터리가 친구들과의 단톡방을 만든 이후부터 유지 시간이 매우 짧아졌다.
“인생…….”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거라면 운동화를 신고 나온 걸까.
불행 중 다행이었다.
‘여기 어디지?’
무작정 걷다 보니 멀지 않은 곳에 버스 정류장이 보였다.
이은호와 길거리를 떠돌았던 경험 덕분에 적어도 버스 정류장에 걸려 있는 지도는 잘 볼 자신이 있었다.
“미X, X같은 시우 놈 더럽게 멀리도 왔네.”
막말이 안 나오려야 안 나올 수가 없다.
걸어서 족히 한 시간은 가야 할 것 같은거리.
생각보다 막막한 거리에 그 자리에 쪼그려 앉아 좌절했다.
하지만 다시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쩌겠어. 내가 뿌린 씨앗인데.
“에휴.”
당시 현우 오빠의 대표님한테 말하지 말라던 그 말을 들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적어도 밤중에는 도착하고 싶었기에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다들 ‘데이’만 되면 모두
나만 빼고 데이트를 해
행복해 보여서 그땐 나도
그래야만 할 것 같았어
오랜만에 늦은 밤하늘을 보며 걷다 보니 상황이 상황이기 때문일까.
기대한 원 플러스 원
벗
기대만큼 좋지 않던 그 시간
평소엔 잘 나오지도 않던 가사가 막힘없이 멜로디와 함께 흘러나온다.
봐
이 꺼져 버린 폰
봐
내 폰 배터리도
내 사랑보단 오래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