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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78화 (278/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78)

“…….”

굳어 있던 시우는 은지의 시선을 피하며 고개를 돌렸다.

“왜 저러지?”

은지는 입을 삐죽이며 중얼거렸다.

식사 준비를 하기 전, 카메라 배터리를 교체하기 위해 잠시 찾아온 쉬는 시간.

의상에 불편한 부분이 있었는지 은지는 슬기와 함께 잠시 자리를 비웠다.

은지를 쫓아가려던 연탄은 주변을 돌아봤다.

‘다른 녀석들보단 그래도…….’

은지의 껌딱지처럼 은지만 쫓아다니던 연탄은 은호 옆으로 향했다.

은지가 돌아오기 전까지만 여기 있을 생각이었다.

“안녕하세요, 선배님.”

누워 있는 연탄이 곁으로 마린이 다가왔다.

“저, 혹시 얘가 연탄이에요?”

“네.”

은호는 마린에게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마린은 은호의 반응에 잠시 머뭇거리다 다시 연탄을 돌아보며 물었다.

“혹시, 만져도 되나요?”

은호는 연탄에게 짧게 곁눈질을 보냈다.

연탄은 ‘싫어’라는 답을 눈치껏 보냈다.

하지만 은호는 그런 연탄의 대답을 무시한 건지 아니면 못 알아챈 건지.

은호는 마린에게 알아서 하라는 듯 어깨만 들썩였다.

뻗어 오는 마린의 손이 연탄의 머리에 닿기 직전이던 그때였다.

“내가 왔다. 이은호.”

“니가 왔는데 뭐, 어쩌라고.”

때마침 슬기와 함께 돌아온 듯 은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연탄은 기다렸다는 듯 은지의 옆으로 뛰쳐나갔다.

얼마나 좋은지, 나른하던 황금색 눈에 생기가 맴돌 정도였다.

“연탄이가 은지 선배를 많이 따르나 봐요!”

마린은 그런 연탄이를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다가 은호에게 또 한 번 물었다.

“쟤가…….”

은호는 대충 은지가 연탄의 ‘주인’이라고 하려다 입을 닫았다.

뜬금없이 연탄이 사람처럼 변했던 모습이 떠오른 탓에 저걸 ‘동물’로 생각해야 할지 사람으로 생각해야 할지 헷갈렸다.

“이은호한테 물어봐도 몰라요. 연탄이는 나만 따르거든요.”

마린의 질문엔 은지가 답을 대신했다.

‘잘했어.’

마린의 손길을 피하고 자신한테 온 것을 칭찬하듯 은지는 격하게 연탄의 이마를 긁어 주었다.

“촬영 들어갈게요!”

촬영이 재개된다는 한 스태프의 외침이 마당에 퍼지고 흩어졌던 멤버들이 다시 마당에 모였다.

이후 평소와 다름없는 식사 준비를 시작하며 촬영이 이어졌다.

* * *

식사에 오랜만에 고기가 있어서일까.

촬영하는 내내 오랜만에 굉장히 기분이 좋았다.

“앗, 어쩌지. 은지 씨, 지금 방이 다 차서.”

“아.”

취침 시간이 오기 전까지는 그랬다.

최근 ‘같이 쫌 살자’는 화폐가 되는 포인트를 부족함 없이 나눠 주고 있다.

그 덕분에 새로운 규칙이 하나 생겼는데, 이제 실내 취침권에 인원 제한이 생겼다는 것이다.

제한 인원은 일곱.

포인트가 넘쳐도 이용권이 매진되면 구매할 수가 없는 상황.

그리고 그게 내 상황이라는 말이었다.

도대체 우리 멤버들은 언제 다들 취침권을 구매했던 걸까.

심지어 오늘 처음인 마린에게는 누가 취침권을 사야 한다고 알려 준 걸까.

“아으아아.”

“아까 다른 오빠도 줬는데, 우리 언니도 이거 써.”

아줌마를 연기 중인 스태프는 걱정하는 척을 하며 텐트를 내밀었다.

야외 취침을 하라는 말이었다.

눈치 싸움에서 실패한 대가였다.

텐트를 설치하러 마당에 나오자 이미 텐트 하나가 먼저 설치되어 있다.

“은지도 야외 취침이구나?”

“선배.”

텐트의 주인은 승연 선배.

“그럼 난 먼저 자러 들어갈게.”

선배는 조금 피곤한 듯 하품을 하며 텐트의 지퍼를 열었다.

선배의 텐트 입구가 닫히고 나는 혼자 끙끙거리면서 1인용 텐트를 설치했다.

“도와줄까?”

한창 텐트를 설치하고 있을 때, 뒤에서 약 오르는 목소리가 물었다.

이은호였다.

이은호는 멤버들 중 포인트가 가장 많다.

그 덕분에 이은호는 아침 일찍부터 가장 먼저 실내 취침권을 구매했다.

그리고 그 포인트는 원래 내가 받아야 할 포인트를 사기 쳐서 얻었고!

“아, 꺼져!”

지금은 저 인간이 제일 밉다.

내가 성질을 내자 이은호는 낄낄거리면서 날 비웃다가 춥다면서 호들갑을 떨며 방 안으로 사라졌다.

‘재수 없어!’

이은호를 향한 분노를 담아 후다닥 텐트 설치를 끝마쳤다.

지이익.

지퍼를 열고, 이제 익숙하다 못해서 적응되어 버린 텐트 안으로 엉금엉금 기어 들어왔다.

사실 텐트가 나쁘진 않다.

아늑하고 나름의 낭만도 있으니까.

다만, 내가 남들보다 ‘늦었다’라는 게 조금 자존심을 건들 뿐이었다.

“먀옹. 먀―옹.”

그때, 바깥에서 익숙한 울음소리가 들렸다.

지이익.

다시 입구의 지퍼를 열자 앞에 연탄이 얌전히 앉아 있다.

“같이 자고 싶다고?”

“먀옹.”

나는 연탄이가 들어올 수 있도록 지퍼를 아래까지 열었다.

연탄이가 발을 털며 안으로 들어온 뒤 곧장 지퍼를 다시 잠갔다.

그때였다.

투둑투둑.

낯선 무언가가 텐트를 두드리는 소리가 점점 많이 들렸다.

바깥은 스태프들이 정리하는 소리로 분주해졌다.

“곧 비 오는 거 알고 들어오겠다고 한 거야?”

“먕.”

연탄은 그렇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할 줄 아는 거 많네.”

연탄은 진짜 고양이처럼 머리를 내 손등에 비비며 애교를 부렸다.

“들어오실?”

침낭에 작게 자리를 만들며 묻자, 기다렸다는 듯 연탄은 침낭 안을 파고들었다.

심장 부근에 머리를 기대더니 그르릉거리며 기분 좋다는 의미의 소리를 냈다.

“변태 고양이.”

내가 중얼거리자 연탄이의 수염이 씰룩거리는 게 느껴졌다.

인간처럼 변했을 때는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왜일까.

연탄이를 볼 때면 진심으로 미워하는 게 쉽지 않다.

심지어 때때로 연탄이가 사람처럼 변했을 때, 그 특이한 까만 혀와 눈 아래의 콕콕 찍힌 점의 특징 때문일까.

이따금 그 모습이 보고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실수로 중요 부위를 본 그때 이후로는 보고 싶어도 민망해서 도저히 변신을 허락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고양이 형태일 땐 그냥 존재 자체가 사랑스러우니까 봐줄 수 있지만.

난 고개를 숙여 연탄이 이마에 짧게 입을 맞췄다.

놀란 건지 나비라도 앉은 것처럼 연탄의 귀가 파닥거렸다.

곧이어 침낭 안이 연탄이 온도로 점점 후끈해진다.

“변태.”

안 들리는 척을 할 심산인지 연탄은 내 팔뚝 방향으로 급하게 얼굴을 파묻었다.

“하핰.”

투두툭두둑둑,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는 점점 굵어졌다.

하지만 내 침낭 안은 이 털 뭉치가 있어선지 난로라도 켜 둔 것처럼 따뜻했다.

* * *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촬영은 다음 날 아침에 마무리됐다.

다들 비몽사몽 한 상태로 인사를 건네며 제각각 차량에 올랐다.

“여기, 휴대폰.”

촬영 땐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휴대폰을 매니저 오빠한테 맡겨 뒀다.

하지만 꼬박 하루 뒤에 받은 탓일까.

“와…….”

쌓인 전화와 문자 그리고 친구들과의 단톡방은 300개가 넘는 메시지들로 가득 차 있다.

퇴근을 위해 집에 돌아가는 길.

단톡방에 쌓여 있는 친구들의 집단적 독백을 책이라도 되는 양 읽어 내려갔다.

한 절반까지는 그랬다.

너무 많은 양이라 그 아래는 읽기를 포기하고 쭉 내려 버렸다.

[나― 퇴근 중!]

― 야외에서 잤는데 연탄이 껴안고 자니까 덥더라 ㄷ; (부채질하는 검은 고양이 이모티콘)]

― 어제 촬영 때 엘핀 마린 나왔는데 실물 대박 귀여워 작아 ㅋㅋㅋㅋ]

― 아 맞아 그리고 나 막대 과자 게임 1등 함 ㅋㅋㅋㅋ]

촬영 내내 여러 가지 일이 있었던 만큼 친구들에게 지난 하루 일을 늘어두던 그때였다.

[혜경 ― 막대 과자 게임?]

[나 ― ㅇㅇㅇ 그 최대한 짧게 남기면 이기는 겜]

[혜경 ― 시우 씨랑 방송에서 그걸 했다고?]

[나 ― 아니ㅋㅋㅋㅋ 시우는 마린이랑 하고 나는 이슬이랑 했어]

― 둘이 엄청 짧게 남겨서 내가 좀만 못했어도 질 뻔 ㅋㅋㅋㅋ]

입이 가벼운 친구들도 아니었기에 난 친구들에게 시우와의 관계를 일찍이 알렸었다.

덕분에 친구들한테는 많은 이야기를 편안한 마음으로 털어 둘 수 있었다.

이번 역시 늘 그랬듯 아무 생각 없이 꺼낸 일상 이야기였다.

그런데 친구들은 무슨 문제라도 있는 듯, 뜨겁다 못해 휴대폰에 열이 오를 만큼 열띤 대화를 쏟아 냈다.

[혜경 ― 짧았다고?]

[세원 ― 미췬(입을 떡 벌리는 여우 이모티콘)]

친구들이 가장 분노한 부분은 아슬하게 졌을 정도로 시우와 마린이 짧은 길이만 남겼다는 점이었다.

[나 ― 그게 왜?]

[혜경 ―왜? 왜에에에? 왜라는 말이 나와?!!! (머리를 쥐어뜯은 공룡 캐릭터 이모티콘)]

단순히 게임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친구들에게 다시 물었다.

그리고 내 질문에 혜경이가 폭발했다.

[고은 ― 은지야 너 시우 결과물 보고 어떤 생각 들었어?]

[나 ― ㅇ?]

― 와 질 뻔했다!]

[세원 ― 화는 안 났어?]

[나 ― 응 게임인데 화날 게 뭐 있어]

[혜경 ― (거품을 물고 쓰러진 병아리 이모티콘)]

― 있지 당연히 있지!!!]

― 그게 여친 앞에서 할 만한 행동이 아니잖아!]

[나 ― 근데 방송이잖아?]

― 안 하면 그게 더 이상한걸..?]

혜경이와 세원이는 속이 답답한 듯 화를 내는 이모티콘을 쏟아 냈다.

다른 친구들이 화를 내는 동안, 고은이는 나를 위로하려는 듯 말했다.

[고은 ― 기분 나빴겠다 우리 은지 ㅠ]

하지만 나는 그런 고은이에게 차마 아무런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친구들의 반응을 봐선 기분이 나빠야만 정상인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시우와 마린이 무엇을 하든 간에 기분이 나쁠 것 같지 않다.

그보단, 애초에 관심이 없달까.

[나 ― 이거 기분이 나빠야 하는 건가?]

[혜경 ― 니가 무슨 보살이야?

― 당연하지!!!]

[세원 ― 좋아하니까 사귄 건데 내 남친이 딴 년이랑 그러고 있으면 당연히 기분 나쁘지]

이어진 세원이의 진지한 대답에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좋아하니까.

좋아하니까?

어? 근데, 나는…….

[나 ― 근데 나는 시우 딱히 안 좋아하는데....?]

[혜경 ― ?]

[고은 ― 응?]

[세원 ― ........]

단톡방이 일제히 조용해졌다.

[나 ―그냥 연애 해 보고 싶어서 시우랑 사귀자고 한 건데...]

고요함이 민망해서 어떤 말이든 덧붙였는데.

살짝, 뭔가 잘못됐다는 건 그때쯤 깨달았던 것 같다.

[혜경 ― 근데 은지야]

― 그래도 네가 여자 친구고 시우 걔한테는 은지 너가 애인인 건 맞잖아]

[나 ― 그치?]

[세원 ― 시우가 그냥 남사친은 아니잖아?]

내가 시우에게 고백한 건 나도 ‘연애’라는 걸 해 보고 싶어서였다.

그냥 시작부터 관계에 대한 호기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을 뿐.

시우와 첫 데이트 날 떨린 것도, 어떻게 보자면 드디어 ‘남자 친구’가 생긴다는 것에 두근거렸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연애를 시작하니, 이건 오히려 신경 쓸 것들이 더 많아서 피곤하기만 했다.

일을 하던 중에도 종종 울리는 휴대폰 때문에 방해받는 게 싫어서 꺼 버린 적도 있었고 말이다.

기대와는 다른 현실에 실망이 더 컸다.

시우와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던 때 이후로 따로 만난 적이 없어서 그런 걸 수도 있겠지만, 그냥.

‘좋아하느니 뭐니.’

내가 시우에게 그런 감정을 느끼기에 지난 6일이란 시간은 턱없이 짧기만 했다.

그런 생각에 빠지자 문득 궁금해졌다.

[나 ― 근데 얘들아 나 뭐 하나만 물어봐도 돼?]

[혜경 ― 이번엔 무슨 말을 하려고]

[고은 ― 이번엔 머가 궁금해 우리 은지 ㅋㅋㅋㅋ]

[세원 ― 난 이제 왜 쟤가 무섭냐 ㅋㅋㅋㅋㅋ]

[나 ― 무섭다니 ㅋㅋㅋ 그냥]

― 아까 남사친 소리 했잖아?]

[세원 ― ㅇㅇ]

[나 ― 남사친이랑 남친이랑 차이가 뭔가 해서]

내 한 줄의 질문은 단톡방에 또 한 번 열띤 토론이 일어나게 했다.

고은이는 ‘남녀 사이에 친구는 없다’라며 ‘발전 가능성이 남아 있는 이성이다’라는 이론을 펼쳤다.

[세원 ― 에이 고은아 그건 아니지]

세원은 고은이에게 반발하며 ‘남녀 사이에 친구는 있다’라고 외쳤다.

다만, 친구가 아닌 그 이상의 이성적 호감을 느끼는 사이에서 ‘‘친구’라는 이름을 이용하는 게 문제다’라는 식으로 반론했다.

마지막으로 혜경이는.

[혜경 ― 스킨십 차이지]

[나 ― 스킨십?]

[혜경 ― 엉]

― 키스가 가능하다 vs 역겹다]

― 솔직히 난 여기서 다 갈린다고 생각하는데]

고은이와 세원이의 말은 어려운 단어들이 있어서 단번에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혜경이의 이론은 단순 무식하게 상상 한 번에 생각이 정리됐다.

‘내가, 시우랑? 키스?’

대상을 확정한 그 순간 난 소름이 돋으면서 확신했다.

그때 때마침 시우에게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최시우 ― 은지야 잠깐 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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