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77)
“와, 진짜요?”
“진짜라니까요? 하하, 저 아네모네 안무도 다 외우고 있어요.”
“와, 감사합니다. 아하핫.”
시우가 마린이 소속된 걸 그룹 엘핀의 팬이라는 이야기를 한창 나누고 있던 그때였다.
“악!”
마린은 걱정스럽게 소리가 난 은호와 은지의 방향을 돌아봤다.
시우는 늘 있는 일이었기에 ‘또 시작인가?’라는 표정이었다.
‘같이 쫌 살자’ 촬영 때 ‘은지와 은호가 함께 있다.’라는 상황이 오면 열에 일곱은 은호의 비명이나 은지가 화를 내는 소리가 나온다.
고로 익숙한 일상이었다.
다만, 시우는 고개를 돌린 은지와 시선이 마주치자 찔리는 것이라도 있는 듯 휙 시선을 피해 버렸다.
‘…….’
시우는 은지가 기분이 상했거나 여태껏 많은 전 여자 친구들이 그랬듯 서운해하리라 생각했다.
곁에 마린이 있어, 시우는 티 나지 않게 한숨을 흘렸다.
그걸 달래 줘야 할 걸 생각하니 왠지 속이 조금 답답해져서였다.
하지만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어?’
시우의 예상과 달리 은지는 시우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헐! 이, 아니. 오빠, 나 방금 역대급으로 좋은 아이디어 떠올랐어! 이거다!”
“뭐.”
“라잌 뎃 느는는느 슷 미 뜨뜨르 윗 미 음 라잌 뎃, 뜨뜨르 더 그래 네가 는느르르―.”
오히려 은지는 은호와 들뜬 목소리로 다른 이야기를 하기 바쁜 것 같았다.
* * *
TV나 오튜브를 통해서 이응 남매를 데뷔 전부터 알고 있었다.
한동안 알고리즘을 타고 매운맛 남매 영상을 접하기도 했었으니까.
이후에는 대표님이 끔찍이도 아끼는 에이슬 때문에 딱히 사지 않았음에도 앨범이 생겼다.
노래는 솔직히 들어 본 적 없었다.
그러던 와중, 이응 남매와 함께 예능의 고정으로 출연하게 됐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난 그저 ‘재밌겠다.’ 정도만 생각했었다.
그렇게 서울역 앞에서 실물로 이응 남매를 마주했을 때, 솔직히 그날 이후로 카메라를 믿을 수 없게 됐다.
카메라가 담긴 남매는 그저 ‘매운맛’에 하는 행동이 웃긴 정도였던 것 같은데…….
실제로 만난 남매에게는 그 어떤 영상으로도 느낄 수 없던 벽과 아우라 같은 게 풍기는 것 같았다.
‘와, 사람이 어떻게 저런 분위기가 나지?’
자신 또한 어린 시절부터 나름 떡잎이 남달랐다던가 하는 칭찬은 많이 들었었다.
실제로 연예계에 발을 들이기 전만 해도 외모나 노래 실력에 자존감이 높았으니까.
하지만 난다 긴다 하는 사람들이 몰리는 이곳은 연예계.
하늘 위에 또 다른 하늘이 있다.
새삼 그걸 깨달은 건 은지와 은호 형을 처음 본 그때부터였다.
그리고 이후 은지가 고백했을 때.
상황이 조금 갑작스러웠을 뿐, 여자에게 고백 받는 일 자체는 종종 겪어봤던 일이었다.
덕분에 친구들한테 재수 없다는 등의 질투를 받은 적도 많았다.
하지만 다른 세계에 있는 것 같던 은지가 나한테 고백을 한 건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은지의 고백을 처음 들었을 땐 내가 뭘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한편으로는 ‘나 아직 살아 있네.’라고 조금 자만하는 마음도 있긴 했다.
하지만 이후 나는 은지가 나한테 하는 행동에서 묘한 거리감 같은 것을 느꼈다.
[나 ― 굿모닝]
은지에게 깨톡을 보내도 답은 족히 2시간이 넘어서야 한 번, 그것도…….
[여친님 ― ㅇ ]
‘ㅇ’ 하나.
그래도 은지 외모에 점수를 매기면 대한민국 상위권에 들 정도로 예쁘니까.
그래서 그냥 굽혀줬다.
[나 ― 밥은 먹었어?]
[여친님 ― 엉 이은호가 토마토 씻어 줬어]
[나 ― 맛있겠다 ㅎㅎ]
[여친님 ― 시원하긴 해 ㅋㅋ
― 시우 너는 밥 먹었어?]
[나 ― 응 회사 식당에서 ㅎㅎ]
[여친님 ― 오 DI 뮤직 사내 식당 음식 맛있다던데]
[나 ― 맛있어 ㅎㅎ 나중에 먹으러 올래?]
[여친님 ― 음~
― 아니야 너희 대표님 안 그래도 우리 회사에서도 하루 종일 보는데 더 보고 싶지 않아 ㅋㅋㅋㅋㅋ]
[나 ― 이슬이가 대표님 매일 거기 있다고는 하더라 ㅎㅎ
― 오늘 일정 있어?]
[여친님 ― ㅇㅇ 가이드 녹음 좀 하려고]
[나 ― 오 신곡 나오는 거야?]
은지랑 몇 안 되는 깨톡을 나누면서 알게 된 점이 있다.
은호 형은 아닌 것 같아도 은지를 엄청 잘 챙겨 준다는 것.
그리고 은지는 어석배 대표님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것.
마지막으로 은지는 굉장히 워커홀릭이라는 것…….
[여친님 ― ㅇㅇ 근데 마음에 안 들어서 내일 다시 찍어 봐야 할 것 같다 ㅠ]
신곡 나오는 거냐는 질문의 답은 족히 8시간이 넘어서야 받을 수 있었다.
내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모든 연애를 통틀어서 이렇게까지 무뚝뚝한 여자 친구는 생전 처음이었다.
‘그것도 본인이 고백했으면서!’
심지어 은지는 사귀기 전이나 후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
오랜만에 촬영장에서 만났을 때조차 말이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평범하게 ‘좋은 아침입니다.’ 같은 짧은 인사를 나눴고 촬영 준비를 할 뿐이었다.
‘좀 더 뭔가……!’
뭘 기대했냐고 물으면 할 말은 없다.
하지만 그래도 사귀는 사이인데.
‘오랜만에 만난 건데…….’
하. 어째 내가 매달리는 것 같은 입장이 되면서 자존심이 상한다.
“저, 안녕하십니까!”
그때였다.
평소 관심이 많았던 걸 그룹 멤버가 오늘 특별 게스트로 나왔다.
“엘핀의 마린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 *
“자, 그럼! 이 막대 과자를 가장 짧게 남기는 팀이 떡갈비를 가지고 가는 겁니다!”
“어? 혹시 얼굴 빼거나 도망치면 붙잡아서 짧게 만들기 가능?”
승연이 한쪽 팔을 번쩍 들며 물었다.
유 PD는 팔로 X를 만들어 보이며 규칙을 덧붙였다.
“팔은 무조건 뒷짐 지기! 자, 그러면 상자에서 공을 뽑아 주세요. 같은 색끼리 팀입니다!”
게스트인 마린을 제외한 대부분의 멤버들의 눈에 일제히 불이 켜졌다.
다들 상자 안에서 공을 뽑고, 하나둘씩 팀이 나뉘었다.
빨간 팀은 에이슬과 은지로 결정.
풀 반찬과 닭가슴살만 먹은 지 몇 주째.
은호와 은지는 관리 중이지만 유일하게 예외로 빠지는 중요한 규칙이 하나 있다.
‘방송 중에 나오는 음식은 자유롭게 먹을 수 있다’라는 것.
방송에서는 관리 중이라 안 먹겠다 했다간 대중들에게 인상이 나쁘게 보일 수 있으므로 주의하는 부분이었다.
문제는 은지는 현재 시우와 레스토랑 이후 집에서 닭가슴살과 소스 없는 샐러드만 먹었다.
‘같이 쫌 살자’에서도 뒷 마당의 풀을 뜯어서 우렁 쌈밥 등, 마찬가지로 풀떼기만 먹은 지 며칠 째라는 말이다.
그런 상황에 찾아온 ‘떡갈비’.
고기는 은지에게 단순한 식사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존재.
은지가 과하게 불타오르자 이슬은 빼빼로를 문 채 불안한 눈을 굴리며 빌었다.
“으…… 은니, 즈 읍슬믄 씁으 믑지 믈러 즈스요(언니, 저 입술만 씹어 먹지 말아 주세요)…….”
에이슬은 은지의 지금 기세를 봐선 과자뿐만 아니라 제 입술까지 뜯어먹을 것 같아서 빌다시피 부탁했다.
“노력은 해 볼게.”
“은느으으!”
돌아온 대답은 확신이 없었다.
에이슬이 울먹거리며 소리치는 그동안.
이어서 결정된 노란 팀은 류석현, 서승연이었다.
“형, 저한테 맡겨요.”
“에이, 무슨 소리냐. 당연히 아우가 물어야지. 형만 믿어.”
“에이, 형님 요즘 당 관리하신다면서요. 형님을 위해 과자는 제가 먹을게요. 저만 믿으세요, 형님.”
“무슨 말이냐, 나 이 정도는 아직 괜찮아. 그리고 나 막대 과자 좋아한다, 승연아?”
“오, 저도 좋아하는데! 아우한테 양보해 주실 거죠?”
“어허, 아우가 양보해 줘야지. 이 형한테.”
석현과 승연은 누가 물고 있을 것인지부터 으르렁거리기 바빴다.
그동안 이어서 파란 팀은 최태현, 지키가 됐다.
“흉가 체험 때 이후로 또 팀이네요.”
“지키 씨가 물고 계―.”
“아뇨. 태현 씨가 물고 있어요.”
“……네.”
이쪽은 노란 팀과 달리 지키의 단호한 대답에 바로 결정이 된 것 같다.
이어서 녹색 팀은 시우와 마린이 걸렸다.
“저, 그럼 제가 물고 있을게요!”
“네, 네! 게, 게임이니까…….”
시우는 귀가 붉어진 상태로 빼빼로 하나를 마린에게 건넸다.
은호는 마지막으로 아무 색깔이 없는 흰 공을 뽑아 PD에게 들어 보이며 물었다.
“어? 저는요?”
“은호 씨는 꽝.”
유 PD는 은호에게 활짝 웃으며 답했다.
약 오르는 유 PD의 미소에 은호의 표정이 절로 굳어졌다.
“아, 왜 나만! 나도 떡갈비 줘요!”
은호가 쪼그려 앉으며 진심으로 좌절하자 기회라도 있는 다른 멤버들은 위로…….
……는 무슨.
“우리가 우승해서 잘 먹어 줄게, 은호야.”
“핰핰핰! 이은호 꼬시다!”
“안 됐네. 하하.”
다들 은호를 놀리기 바빴다.
“자, 그럼 다들 준비되셨죠?”
“네!”
“은호 씨는 못 드시게 되신 만큼 부정으로 이기는 사람이 없도록 잘 봐주세요!”
“다 각오해. 멈추는 순간 바로 탈락이다. 다들.”
은호가 혼자만 기회조차 못 얻은 설움을 담아 눈에 불을 켜며 소리쳤다.
“자, 준비! 시―작!”
PD가 신호를 주자, 오독오독 소리만 가득한 마당.
막대 과자가 점점 짧아지기 시작했다.
“탈락!”
은호는 석현과 승연에게 가장 먼저 탈락을 외쳤다.
“아, 내가 가겠다니까!”
“형이 멈춰 있었으면 되는데!”
두 사람은 서로 다가가겠다고 난리 치다가 균형을 잃고 중간에서 끊어졌다.
하지만 둘만 죽을 수 없다고 생각한 건지 잠시 후 승연과 석현도 은호와 같이 감시조에 뛰어들었다.
남은 건 세 팀.
일단 석현과 승연보다는 다들 척 봐도 짧기에 세 팀 중 하나가 이긴다는 건 확실했다.
“어, 어! 끊어져! 끊어진다!”
은지는 승연의 시비에도 불구하고 뒷짐을 진 채 오독오독 과자를 먹으며 에이슬에게 다가갔다.
에이슬은 떨렸다.
좋은 쪽이 아닌 나쁜 쪽으로.
은지가 다가올수록 은지의 떡갈비를 향한 열기도 강렬해졌다.
덕분에 에이슬은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
이제 정면으로는 더는 다가갈 수 없을 정도로 짧아진 세 팀의 막대 과자.
고개까지 틀어 가며 서로의 입술이 정말 닿을락 말락 하는 거리까지 가까워진 그때였다.
“음! 끝!”
“나도!”
“저, 저희도.”
하나둘씩 부스러기에 가까울 정도로 짧은 과자를 들어 보였다.
굉장히 가까운 거리까지 붙었었음에도 덤덤한 태현과 지키.
하지만 둘을 제외한 다른 팀은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에이슬은 입을 양손으로 가린 채 눈물을 울먹거리고 있었고.
또 한 명, 시우는 얼굴이 붉다 못해서 막대를 들고 있는 손끝까지 붉어져 있었다.
석현은 곧장 스태프에게 자를 받아와서 길이를 쟀다.
“빠, 빨간 팀 승! 엄청 짧아!”
“와, 말도 안 돼!”
“야, 이 정도면 닿았겠는데?”
멤버들은 은지가 남긴 조각을 보며 감탄했다.
그도 그럴 것이 조각의 크기가 새끼손톱의 절반 크기가 채 안 될 정도로 짧았다.
“언니가 이로 제 입술 찍었어요!”
“하하하하! 아, 닿은 게 아니라?”
에이슬은 붉어진 아랫입술을 보여 주며 아직도 아프다고 울먹였다.
“뚫리는 줄 알았어!”
“헤헤. 그래도 떡갈비 땄잖아!”
“그건! 그건 잘했어요…….”
아픈 건 아픈 거였지만 우승 상품을 얻은 건 좋은지, 에이슬은 금세 헤실헤실 웃으며 은지랑 어깨를 둘러맸다.
한편 그동안 승연은 녹색 팀의 막대 과자를 보고 있었다.
“근데 녹색 팀도 엄청 짧다!”
“맞아요! 최대한 짧게 한 건데! 아까워요!”
승연의 말에 마린이 웃으며 맞장구를 치던 그때.
찔리는 게 있는지, 마린의 옆에 서 있던 시우가 흠칫거렸다.
“와, 진짜네!”
은지도 녹색 팀이 남긴 막대 과자를 확인했다.
이후 은지는 시우를 돌아보며 웃었다.
“엄청 짧다! 이 정도면 자칫했으면 우리가 질 뻔했는데?”
은지의 말에 시우는 돌처럼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