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76)
홍대의 한 골목길 안, 펜션 같은 분위기의 한 식당 안에서 큰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은지만의 내적 갈등 방식을 처음 마주한 시우가 웃는 소리였다.
“……?”
시우가 거의 우는 것에 가까울 정도로 웃고 있을 때, 은지는 갸웃거리며 시우를 바라봤다.
은지는 진심으로 왜 웃는지 이해 못 하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아, 은지 너 진짜 엄청 특이하다. 하하하.”
“내가?”
은지는 현우를 돌아봤다.
‘왜요?’
현우는 입으로 가져가던 포크를 멈추더니 표정으로 은지에게 물었다.
“나 특이해요?”
“평범하진 않죠.”
“음. 그렇구나.”
무덤덤한 현우의 대답에 은지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그건 됐고.”
은지는 식사를 마치고 나니 그제야 본론이 떠올라서 주제를 돌리며 물었다.
“그래서 대답은 어떻게 할 거야?”
“응? 무슨 대답?”
은지에게 물으며 시우는 목이 마른 듯 엎어 둔 빈 와인 잔 세 개를 뒤집어 주전자의 물을 따랐다.
물을 채운 와인 잔 두 개를 은지와 현우 앞에 각각 하나씩 놓고서야 시우는 마지막 잔을 제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은지는 어딘가 못마땅한 듯 불만이 있어 보였다.
“몰라서 되묻는 거 아니지?”
“응?”
“내가 사귀자고 했던 거 말이야. 같쫌살 촬영 끝나고 나서 대답 달라고 했잖아.”
“아, 그거.”
시우는 그제야 은지의 질문을 이해하며 말을 이었다.
“나 그때 이미 대답했잖아.”
“뭐라고?”
“좋다고.”
“그랬나?”
은지는 정말 잊었던 건지 갸웃거리며 그때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럼 너랑 나랑 오늘부터 1일이라는…… 거, ‘맞다’라는, 그거지?”」
그랬었네.
생각해 보니 시우는 이미 사귀자는 말에 ‘YES’를 했었다.
하지만.
「“너도 나 동료나 선배로만 봐 왔을 텐데, 대답은 며칠간 이성으로 알아 가고 난 뒤에 하는 걸로 하자.”」
대답이 바뀌었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어서 확실하게 대답을 들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우리 이제 앞으로 애인인 거야?”
“하하, 응. 그래. 맞아.”
* * *
D-day +1일
그렇게.
나는 드디어 회귀 이후 처음으로 ‘연애’라는 것을 시작했다.
비록 매니저 오빠가 함께했지만, 그래도 첫 데이트였던 식사는 즐거운 분위기에서 마무리됐다.
“어? 벌써 간다고?”
“응. 저녁 먹자고 했고 먹었잖아?”
“그, 그게 그러기는 했는데…….”
“더 놀고 싶어?”
“당연하지! 그래도 우리 사귄 첫날인데.”
붙잡는 시우가 귀여워서 잠깐 웃음이 났다.
하지만 안 된다.
“나 대표님한테 혼나.”
하하.
입꼬리는 최대한 웃고 있었지만, 나도 사람인지라 눈치를 보긴 본다.
솔직히 뒤에서 쏘아보는 매니저 오빠 시선이 좀 따가워야지.
“그래도 조금만…….”
시우가 내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나는 옭아 오는 시우의 손에서 내 손을 빼내며 말했다.
“미안. 나 집에 연탄이가 기다리고 있어서 일찍 들어가 봐야 돼.”
“……어?”
시우가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봤다.
뭐. 왜.
“연탄이라면 촬영 때 본 그 고양이?”
“응.”
시우의 표정이 안 좋았다.
‘설명이 부족했나?’ 싶어서 시우가 이해할 수 있도록 난 약간의 설명을 덧붙였다.
“연탄이는 매일 문 앞에 앉아서 내가 오는 것만 기다리고 있거든. 그래서 얼른 가야 돼.”
“그런 거라면, 집에 형님도 계시잖아.”
“아, 그게 이은호랑 연탄이는…….”
어떻게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말하는 고양이와 진심으로 싸움을 해 대는 한심한 오빠 놈을 어떻게 설명할까.
“…….”
그때였다.
시우가 갑자기 다시 손을 잡으려고 했다.
왠지 불편한 기분이라 나는 은근슬쩍 시우의 손을 쳐 내며 말했다.
“연탄이한테는 온리 나밖에 없어서.”
말을 하는데 기분이 몽글몽글한 느낌이다.
왠지 부끄러운 사실을 말하는 것 같은 그런 기분.
거짓말이라거나 빈말은 절대 아니었다.
내가 없을 때 연탄이는 폴리모프를 풀고 거실에 드러누워서 허공만 보고 있다.
다만 그건 연탄이랑 나랑 ‘사고’가 있기 전이고, ‘사고’ 이후엔 내가 ‘나 있을 땐 변신 좀 하지 마!’라고 소리친 탓인지…….
연탄이는 실수로라도 보이지 않도록 고양이 모습으로 있는 시간이 더 길어졌다.
내가 1층 작업실로 내려가면 언제 돌아올지 몰라서일까.
이은호 말로는 연탄이는 내가 돌아올 때까지 매번 문 근처에 얌전히 앉거나 엎드린 채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었다.
그러다 내가 늦게까지 안 돌아오고 바닥의 찬기마저 올라올 땐 내 방 캣타워 꼭대기에서 잠만 잔다고.
그렇게 오매불망 내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녀석이 있는데.
애인을 만들겠다는 목적도 달성했겠다.
대표님 잔소리도 싫고, 배부르니까 잠도 오고, 연탄이도 보고 싶고…….
얼른 돌아갈 수밖에…….
난 매니저 오빠를 앞서 나갔다.
그러다 한 세 걸음 걸어간 뒤에서야 인사를 안 했다는 게 생각나서 휴대폰을 높이 들며 소리쳤다.
“그럼, 연락할게! 시우야!”
“…….”
내 인사에 시우도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내 기준엔.
연락도 자주 했다.
내 기준엔.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약 2시간에서 3시간에 한 번꼴로 연락했다.
아, 물론 연습 시간도 제외.
참, 작업할 때도 제외.
온종일 작업을 할 때도 있다 보니 그럴 땐 자주 못 했던 것 같기도 한데…….
딱히 연락해 봐야 ‘밥은 먹었냐’, ‘뭐 하고 있냐’처럼 항상 똑같은 질문과 비슷한 대답뿐이라 그다지 상관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연애인가?’
솔직히 기대했던 것보다는, 뭐랄까.
좀 시시하고 재미도 없는…… 아니야.
아닐 거야.
조금 더 만나 보면 달라지겠지.
아직은 판단하지 말자.
D-day +3일
[최시우 ― 자기야 뭐 해?]
[나 ― 운동하러 가는 중]
[최시우 ― 오! 오늘도 파이팅!]
[나 ― (윙크하며 OK 하는 노란 눈에 검은 고양이 이모티콘)
― (슈퍼맨 자세로 ‘화이팅!’이라는 검은 고양이 이모티콘)]
현우 오빠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헬스장으로 향하던 중.
난 시우한테 오늘도 언제나 보내던 것과 똑같은 깨톡을 보냈다.
그러다 궁금한 게 생겨서 운전 중인 현우 오빠를 불렀다.
“저기 오빠, 저 궁금한 거 하나만 물어봐도 돼요?”
“네.”
노란 신호에서 빨간 신호로 바뀌기 직전이었는지 차가 천천히 멈춰 설 때였다.
“오빠는 슬기 언니랑 사귀는 거―억!”
갑자기 브레이크가 콱 밟히는 바람에 흔들리는 몸과 팽팽해진 안전벨트.
「“안전띠 꼭 매.”」
순간, 기억이 돌아오기 전에 이은호가 스쳐 가면서 했던 그 말이 떠올랐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찰나에 숨이 콱 틀어막혔다.
“미, 미안. 놀라서 실수했네. 은지야, 괜찮아?”
“괜찮…… 괜찮아요.”
교통사고의 후유증일까.
살짝 숨이 갑갑해져서 떨리는 손으로 입고 있던 트레이닝복 지퍼를 풀었다.
후우…….
조금 가빠진 숨을 내쉬고 있자, 매니저 오빠가 백미러를 통해 걱정스럽게 나를 살폈다.
매니저 오빠를 괜스레 더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서 하던 말이나 마저 했다.
“저기, 오빠는 슬기 언니랑 사귀는 거 대표님한테 말했어요?”
“무……! 어휴.”
혹여나 또 실수할까 봐 신경 쓰는 듯 현우 오빠는 정면에 시선을 고정한 채 심호흡을 한 뒤 입을 열었다.
“……아니야.”
“대표님한테 말 안 했다고요?”
“아니. 도대체 어디서부터 오해한 건지 모르겠는데, 나랑 슬기 씨, 사귀는 사이 아니라고…….”
오해라기엔 사귀는 사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점점 기운이 없어지는데?
“그래요? 난 둘이 항상 붙어 있는 데다 호흡도 엄청 잘 맞아서 사귀는 줄 알았지.”
“아니야. 그런 소리 하지 마. 슬기 씨 부담가지실라.”
“흠, 알았어요. 그래서 언제 고백해요?”
“혹시 시우랑 만나는 거 대표님한테 이야기하려는 거야?”
“네!”
현우 오빠는 더 난감해지기 싫었는지 갑자기 주제를 내 쪽으로 돌렸다.
그 돌린 주제가 마침 내가 묻고 싶었던 질문이라 나는 좋았다.
“…….”
그때였다.
오늘 하루 재수가 없나.
매니저 오빠는 곧이어 또 신호에 걸리자 창밖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곤 이어서 백미러로 나를 봤다.
“어―휴…….”
뭔데.
왜 나를 보고.
다시 한 번 내뱉어진 현우 오빠의 한숨은 어째 빨간 신호보다 더 피곤함에 절어 있었다.
“은지야.”
“네.”
“하나 조언하자면, 시우랑 적어도 한 달은 넘기고 대표님한테 말해.”
“한 달? 왜요?”
“내가 보기엔 너나 시우나 한 달 안에 어디 한쪽에서 그만하자고 할 것 같거든.”
“에―이! 우리가 얼마나 잘 지내고 있는데요!”
……라고 했던 내 대답이 무색해졌다.
현우 오빠는 돗자리를 깔아도 될 정도로 미래 예지에 뛰어났다.
다만 한 달은 무슨.
정확히 7일이었다.
즉, 나는 일주일 만에 시우와 헤어지게 됐다.
갑작스럽게 시작됐던 내 충동적인 첫 연애는 이별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때 현우 오빠 말을 들었던 것이 내 인생 다섯 손가락 안에 든 잘한 일 중 하나였다.
D-Day +5일
헤어지기까지 이틀 남은 날.
사귀기 시작한 이후 찾아온 첫 번째 ‘같이 쫌 살자’ 촬영 날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촬영장에 울려 퍼진 낯선 여자의 목소리.
오늘은 ‘같이 쫌 살자’ 최초로 특별 게스트가 있는 촬영이었다.
그것도 잘나가는 걸 그룹 멤버.
“안녕하세요, 선배님! 예전에 ‘저주’로 활동하실 때 같은 날 출연했던 엘핀의 마린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어, 네…… 반가워요.”
160이 조금 넘을까 말까 하는 작은 키와 스치면 부러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가냘픈 몸.
탈색할 때 두피가 굉장히 아팠을 것 같은 밝은 회색 머리칼의 마린은 괜히 걸 그룹으로 활동하는 애가 아니구나 싶을 정도로 곱고 싹싹한 친구였다.
“그럼 다른 분께도 인사드리러 가 보겠습니다!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립니다!”
마린은 이후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사하기 위해 다른 쪽으로 달려갔다.
“쟨 누구냐.”
“아씨, 깜짝이야.”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온 이은호 때문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찔리는 거라도 있냐? 뭘 그렇게 놀래.”
“너 같으면 안 놀라겠냐?”
“쫌.”
아, 아아아악!!!
이은호. 짜증 나.
속으로 분을 토했지만 차마 입 밖으로 내진 못했다.
바로 하루 전에 대표님과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가 잔소리를 들으면서 ‘점심’이 ‘저녁’이 되는 경험 때문이었다.
“오빠 같으면 안 놀라겠냐? 됐냐?”
“나쁘지 않네. 통과.”
이성이 날아갈 것 같던 그 순간, 이은호는 다시 마린을 보며 물었다.
“그래서 쟨 누군데.”
“특별 게스트래.”
이은호를 따라 돌아본 마린은 승연 선배와 한 명의 소녀 팬처럼 입을 틀어막으며 격한 인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같이 마린을 보고 있던 이은호가 미간을 구기며 ‘끙’ 소리를 냈다.
“왜 여기서 똥 싸려고 그래.”
“제발, 이은지. 밖에 나와서만큼은 더러운 소리 좀 하지 마라. 제발. 좀.”
이은호가 여러 차례 ‘제발’을 강조했지만, 개인적으로 뭐가 ‘더러운 소리’고 ‘안 더러운 소리’인지 구분을 해 주고 저런 말을 했으면 좋겠다.
“그럼 왜 ‘끙’ 거린데?”
이은호가 내던 ‘끙’ 소리를 과장하며 흉내 내자, 이은호는 질겁하면서 나를 봤다.
“어디 아프나?”
혹시나 해서 아프냐고 물었더니 그제야 고개를 저으면서 답한다.
“아니. 그냥 뭔가 어디서 본 것 같아서.”
“우리 저주로 활동할 때 같이 무대 섰었다던데.”
“아.”
뭔가 떠오른 얼굴이다.
“기억나냐?”
“노래만. 그거 있잖아. 아네모네인가, 꽃 이름이었던 제목.”
아!
아네모네!
드디어 나도 기억났다.
‘저주’ 첫 1위를 시상하던 당시 함께 섰던 후보에 있던 제목이었다.
아, 엘핀이 그 그룹이구나!
“와! 이은호 쩌네, 그걸 기억하고.”
“응. 기억하는 게 정상이고 니가 빡대가리라 못하는 거란다, 악.”
옆구리에 그대로 팔꿈치를 박아 넣었더니 그제야 조용해진 이은호.
그때, 이쪽 소리를 들은 듯 인사를 나누던 시우와 마린이 동시에 이쪽을 돌아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