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75)
첫사랑
“어디로 갈까요?”
현우가 안전벨트를 매며 물었다.
“홍대로 가면 돼요.”
“전에 기다리던 곳?”
“넹!”
은지도 항상 앉던 제 자리에 앉아, 현우를 따라 안전벨트를 맸다.
손이 허전했는지 팔을 뻗어 조수석에 놓여 있던 토끼 인형을 가져오며 무릎 위에 올렸다.
“출발할게요.”
“네!”
현우의 출발하겠다는 말에 은지는 여느 때보다 눈이 반짝거렸다.
‘설레!’
마치, 마치…….
비유하자면, 그래!
첫 팬 미팅 때의 기분!
그때처럼 심장이 두근거릴 정도로 설레서 흥분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럼 다음 ‘같쫌살’ 촬영 끝나고 그때 다시 대답해 줘.”」
오늘은 드디어 촬영도 끝났겠다.
시우와 첫 데이트 날이자, ‘사귀자’ 했던 그 말에 대한 답을 듣는 날이었다.
촬영 당시 시우가 자신을 감싸 주던 행동들을 떠올리면 ‘사귀자’의 대답은 무조건 ‘YES’였다.
그렇기에 더더욱 은지의 심장은 바쁘게 뛰어 댔다.
‘드디어 나한테도 애인이라고 말할 남자 친구라는 존재가 생기는 날이다!’
현우의 차는 한참을 달렸다.
평소 차만 타면 졸던 은지였지만 오늘만큼은 잠이 오질 않는지, 반짝거리는 눈으로 창밖을 보고 있었다.
현우는 은지의 생일날 은지를 태우러 왔던 홍대의 한 골목길 인근을 한참 돌았다.
주차할 곳을 찾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은지는 창밖을 바라보며 바쁘게 눈알을 굴렸다.
그때였다.
상대가 먼저 은지의 차를 알아본 듯 마스크와 함께 모자를 깊이 눌러 쓴 남자가 슬쩍 손을 들어 보였다.
은지에게 ‘여기’라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였다.
은지는 수상한 남자의 신호를 받더니 또 한 번 눈을 반짝였다.
그사이 현우는 주차할 곳을 찾은 듯 수상한 남자가 있던 근처에 깔끔하게 주차를 했다.
당연히 현우 또한 진작에 그 수상한 남자를 발견했다.
현우는 그 상대의 몸만 보고도 시우라는 걸 금방 알아챘다.
건강보다도 ‘엔터테인먼트’를 위해 ‘미(美)’적인 요소로 철저히 관리된 몸이었으니까.
주차를 마친 현우는 시동을 끄며 백미러를 통해 은지를 바라봤다.
은지는 설렘에 눈이 멀어 곧장 차에서 내리려는 듯 다급하게 문손잡이를 잡았다.
현우는 바로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시우를 만난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모른 척 은지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나요?”
은지는 그제야 한 박자 늦게 박 대표의 경고를 떠올렸다.
「“가더라도 오늘은 현우랑 같이 가라.”」
은지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으음, 저기, 매니저 오빠.”
은지는 문을 붙잡았던 손을 놓으며 조심스럽게 현우를 불렀다.
하지만 대답은 현우가 더 빨랐다.
“개인적으로 저도 두 분의 데이트에 끼고 싶지 않지만, 대표님 명령이라서 안 됩니다.”
현우는 은지가 할 말을 이미 훤히 꿰고 있었다.
“…….”
현우의 예상이 맞았는지, 은지는 말문이 턱 틀어막혀 붕어처럼 입을 뻐끔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잠시 후, 은지는 마치 모든 얼굴 근육으로 ‘불만 있음!’을 표현하려는 듯 오리처럼 입술을 댓 발 내밀었다.
심통이 단단히 난 듯, 은지의 턱에는 호두 또는 복숭아 씨앗 같은 못난 주름이 나타났다.
“그래도 안 됩니다.”
“…….”
무언의 시위조차 통하지 않는다.
“흥!”
은지는 차에서 내릴 생각 자체를 접은 듯 거칠게 다시 의자에 등을 기댔다.
“안 내리시려구요?”
“네. 안 내려요.”
“그럼 돌아갈까요?”
“아뇨! 그냥 여기 있을 거예요.”
은지는 팔짱을 끼더니 또 한 번 ‘흥!’거리며 현우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 무언가 떠오른 듯, 휴대폰을 꺼내 바쁘게 화면을 두드려 댔다.
타다닥다다다닥타닥닥탁타닥.
긴 손톱에도 불구하고 자판을 치는 은지의 엄지손가락은 신기할 정도로 빨랐다.
그때였다.
한 건물 구석에서 모자를 눌러쓰고 기다리고 있던 시우.
시우는 진동이 울렸는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무슨 지시라도 받은 건지, 휴대폰을 보던 시우는 피식 웃더니 한참 기대 있던 자리를 떠났다.
현우는 그가 시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날 선 시선으로 그를 좇았다.
시우가 자리를 떠난 뒤.
현우는 은지가 무언가 행동을 취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예상과 다르게 은지는 이후로도 휴대폰만 바쁘게 두드릴 뿐이었다.
이후 차 안에는 은지의 긴 손톱이 화면에 부딪치며 타닥거리는 소리만 바쁘게 났다.
그렇게 약 10분 정도의 시간이 흐른 뒤.
은지는 여전히 자판을 두드리며 힐끔 백미러를 통해 현우의 눈치를 살폈다.
현우는 창밖을 보고 있었다.
은지는 이때다 싶었는지, 슬그머니 긴 팔을 뻗으며 차 문을 열었다.
정확히는 문을 열고 도망치려고 했다.
덜컥!
은지는 문이 열리면 곧장 시우와 약속했던 곳으로 달려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은지의 예상과 달리 문은 열리질 않았다.
현우가 예상하고서 운전석에서만 열 수 있는 ‘어린이 보호 잠금’ 장치를 작동해뒀으니, 당연히 열릴 리가 없다.
그때, 현우는 언제나와 같은 친절한 목소리로 물었다.
“어디 가시려고요?”
은지에게 그 순간은 웬만한 공포 영화보다도 섬뜩했다.
현우는 최근 은호와 은지를 가장 가까이에서, 박 대표보다도 더 오래 함께 있었던 인물이다.
그건 곧, 그만큼 은호와 은지의 사고를 제일 많이 수습한 사람이라는 말이다.
그런 현우도 여전히 은호의 머릿속을 알기는 힘들다.
하지만 은호와 반대로 얼굴에 대부분의 생각이 그대로 드러나는 은지쯤이야.
이제 은지의 사고 치는 잔머리를 간파하는 건 그야말로 식은 죽 먹기에 가까웠다.
은지는 까득거리며 이를 갈았다.
계획이 흐트러졌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조금 더 머리를 굴려 보면 현우를 떨어뜨릴 방법쯤은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시우는 벌써 오랜 시간 기다리고 있다.
시우가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은 은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 탓에 은지의 머릿속은 헤비메탈이라도 틀어 둔 듯 터질 것같이 시끄러워 ‘생각’이라는 걸 할 수가 없었다.
“알았어요! 그냥 같이 가요, 가!”
현우는 끝내 은지와 함께 차에서 내렸다.
“왔…… 어?”
시우는 다가오는 은지에게 손을 들며 반기다 멈칫했다.
은지의 한 걸음 뒤에 함께 있는 현우 때문이었다.
현우는 여유롭게 웃더니 시우에게도 친절하게 고개를 숙여 가며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십니까.”
“이응 팀 매니저님…….”
“대표님께서 은지 씨 걱정을 많이 하셔서 제가 따라오게 됐습니다. 오늘 하루만 양해 부탁드립니다.”
“아, 네…….”
시우가 은지에게 이게 무슨 일이냐며 빤히 바라봤다.
은지는 현우를 힐끔 보더니 어쩔 수 없다는 듯 깊은 한숨만 흘렸다.
둘은 결국 현우와 함께 인적이 드문 길을 걸었다.
“괜찮은 거 맞아?”
“괜찮아. 우리 매니저 오빠, 입 가벼운 사람도 아니니까…….”
“응…….”
시우는 실망 섞인 대답을 흘리며 은지 옆에 섰다.
“여기야.”
“아무것도 없는데?”
은지가 갸웃거리며 물었지만, 시우가 일단 따라와 보라며 앞장서서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시우는 오늘을 위해 홍대의 한 프라이빗한 가게를 빌린 참이었다.
가게의 간판조차 없는 그런 곳이었다.
‘괜히 사람들의 시선 쏠려서 좋을 게 없으니까.’
은밀하게 만나더라도 식사는 편하게 하고 싶은 마음에 잡은 가게였다.
‘다른 ‘무언가’를 바라지 않고 정말 식사만 생각한 거냐’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솔직히.
흑심이 제로인 건 아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한 직원이 입구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예약하셨습니까?”
“최현수.”
“예약자님 성함, 최현수. 확인 부탁드립니다.”
직원은 귓가에 착용한 이어 마이크를 통해 전달했다.
“실례했습니다.”
잠시 후 확인이 완료된 듯 길을 가로막았던 직원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옆으로 물러났다.
“최현수? 본명이야?”
“아, 하하. 아니. 그냥. 여기 예약할 때만 쓰는 가명이야.”
시우는 의식하지 못한 것 같았지만, 은지는 시우의 대답에 묘한 의아함을 느꼈다.
‘여기에 예약할 때 쓰는 가명이다. 그 말은, 나 말고도 여기 데려온 사람들이 있었다는 건가?’
어쩐지 껄끄러운 느낌이 드는 대답이었지만, 누구랑 왔다거나 등등.
거기까진 그다지 신경 쓰고 싶지도 않았고, 쓰이지도 않았다.
그럴 가치도 없고.
은지는 의심을 치우며 시우에게 물었다.
“좋은 곳 예약했나 봐?”
“응. 밥은 편하게 먹고 싶을 것 같아서.”
시우의 대답을 들으며 들어간 가게 안.
가게 내부는 어쩐지 식당이라기보단 예쁜 펜션에 가까운 분위기였다.
“편한 데 앉아.”
중간에 놓인 네모난 4인용 테이블 위에는 조금 전에 막 세팅을 마친 듯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스테이크와 음식들이 있었다.
“오빠, 앉자!”
고기를 보자 본능적으로 들뜬 듯, 은지는 시우가 아닌 현우의 손목을 붙잡아 이끌었다.
그렇게 은지의 옆자리에는 현우가 앉았다.
시우는 현우를 못마땅하게 보며 은지에게 자신의 옆자리로 오라며 시선을 보냈다.
하지만 고기에 정신이 팔린 은지에게 시우의 시선은 닿을 리 없었다.
시선을 보내던 시우도 결국엔 지친 듯 여러 의미가 담긴 깊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힘들 겁니다. 시우 씨.’
현우는 그런 시우를 보며 터질 것 같은 웃음을 애써 넘기며 인사했다.
“잘 먹겠습니다.”
“아, 잘 먹겠습니다! 잘 먹을게!”
은지는 해맑게 인사하며 양손에 각각 나이프와 포크를 들고 한동안 시우가 아닌, 고기와의 데이트를 즐겼다.
“휴!”
은지 앞에 놓인 고기는 순식간에 삭제됐다.
입이 트인 은지는 본능에 이끌려 곁에 놓인 감자튀김으로 손을 뻗었다.
겉은 바삭, 속은 포슬거릴 것 같은 정말 잘 튀긴 감자튀김이었다.
하지만 관리해야 하는 시기에 튀김은 단연 절대 금물인 음식 중 하나.
‘하지만 너무 맛있어 보이잖아……! 하나, 그래. 하나만! 딱 하나만!!!’
은지는 감자튀김을 쥔 오른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은지의 내면에서 ‘이성’과 ‘본능’이 서로에게 격렬하게 주먹질을 해 댔다.
하지만 그 순간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거기에 섞여 은지의 코끝을 간지럽히는 감자튀김 특유의 고소한 냄새.
퍽.
‘본능’이 감자튀김 냄새와 함께 날린 회심의 어퍼컷!
정통으로 맞은 ‘이성’은 그대로 꼬꾸라졌다.
승리한 ‘본능’은 발아래 차이는 ‘이성’을 두고 당당히 앞서 나가려던 그때였다.
쓰러진 ‘이성’이 쿨럭거리며 피를 토하더니 마지막 남은 온 힘을 다해 ‘본능’의 발목을 붙잡았다.
승자가 되어 감자튀김을 쥔 채 입으로 향하던 은지의 오른손(본능)을 왼손(이성)이 덥썩 붙잡아 멈춰 세웠다.
한편, 은지의 그 격한 내적 갈등을 옆자리와 건너 자리에서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된 현우와 시우.
시우는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었는지, 곧 입에 넣기 직전이었던 스테이크가 툭.
스테이크 조각이 접시 위에 떨어진 것도 잊은 채 시우는 은지를 어안이 벙벙한 얼굴로 바라봤다.
하지만 지금 은지는 그런 시우의 시선을 눈치챌 상태가 아니었다.
「“먹고 싶은 걸 참고 싶으면, 니가 그걸 참아야 하는 이유를 떠올려. 그걸 참았을 때 ‘결과’ 말이야.”」
은지의 ‘이성’이 떠올리라며 소리쳤다.
이건 떡볶이를 먹고 싶어 하던 은지를 말릴 때 은호가 스쳐 가면서 했던 말이었다.
은지는 심호흡하며 ‘이 감자튀김을 참아야 하는 이유’를 떠올렸다.
곧 있을 연말 콘서트.
첫 정식 앨범으로의 활동.
무대 위 자신을 바라보며 환호할 팬들.
그 순간, 은지의 가슴 속에서 ‘E%’와 눈앞의 감자튀김이 각각 저울에 올랐다.
그리고 저울은 한쪽으로 기울어졌다.
둘 사이에서 무거운 쪽.
즉, 더 중요한 존재.
‘감자튀김 vs E%’에서는 당연히.
‘E%’가 압도적인 승리를 거뒀다.
덕분에 겨우 이성을 되찾은 듯 은지는 도도하게 손끝을 뻗으며 감자튀김을 다시 제자리에 놓아 뒀다.
은지가 격한 갈등 끝에 감자튀김을 내려놓는 것을 모두 지켜본 현우와 시우.
현우에게는 익숙한 일이었는지, 현우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태연하게 식사를 이어 갔다.
하지만 시우는 그러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