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74)
너라는 존재 하나 끊지 못해
Red Night
……Red Night
은지는 노래가 끝나고, 집중이 깨지면서 그제야 친구들이 보였다.
그중에서도 또 울 것 같이 울먹이는 고은을 보며 웃음이 터졌다.
“하하핰, 누가 보면 슬픈 발라드라도 부른 줄 알겠어.”
“힙합 R&B도 슬플 수 있지. 크흥!”
고은은 은지의 놀림에 대꾸하며 노래방 티슈를 뽑더니 거칠게 코를 풀었다.
그때, 노래방 스피커에서 은지에게 매우 익숙한 간주가 흘러나왔다.
지예찬이 작업할 때면 꼭 자신의 도장처럼 넣던 도입부였다.
때마침 화면을 가득 메운 곡의 제목 ‘시스투스’.
은지의 최애곡 중 하나인 오현의 곡이었다.
“어!”
은지는 반가운 얼굴로 화면을 돌아보며 웃었다.
“와! 이거 누가 예약했어?”
은지의 물음에 친구들은 일제히 손가락과 팔을 뻗어 시우를 가리켰다.
시우는 마이크를 집어 들다 자신을 가리키는 손들을 당황스럽게 쳐다봤다.
“왜, 왜? 나, 나 이거 부르면 안 돼?”
“아니! 오히려 완전 좋아!”
은지는 기대감 가득한 눈을 빛냈다.
“나 오현 선배님 솔로곡들 다 좋아하는데 그중에 이게 최애곡이거든. 기대할게, 시우야!”
부담을 한가득 끌어안은 상황에서 시우는 수줍게 마이크를 들었다.
노래가 시작되고, 시우의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실제로 시우의 노래 실력은 일반인 중 상위권에 속했다.
그래도 지금 활동 중인 가수니까.
어떻게 보자면 당연한 평가이기도 했다.
다만, 은지의 친구들 귀에는 어쩐지 모자란 것 같은 느낌을 차마 떨칠 수가 없었다.
‘잘하긴 하는데…….’
‘좋긴 한데…….’
‘왠지…….’
국을 시켰는데 간이 싱거운 느낌이랄까.
하지만 친구들은 같이 놀러 와 준 시우의 기분이 괜스레 상할까 봐 이런 생각을 굳이 겉으로 티를 내진 않았다.
세 사람은 은지가 노래할 때와 마찬가지로 팔을 흔들며 호응했다.
아프다고 외쳐 봐야 들어 주지 않아
내 한 몸 불 질러 불꽃이 피어올라
은지는 기대한다던 말만큼이나 몰입하며 시우의 노래를 들었다.
하이라이트에서는 마이크 없이 코러스를 얹어 곡을 풍부하게 꾸몄다.
노래가 끝나자, 점수가 나오지 않고 곧바로 다음 노래가 재생됐다.
괜한 시간 낭비가 아까워서 점수는 들어올 때부터 제거한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그렇게 은지와 시우 다음으로 마이크를 쥔 고은이.
그때였다.
“은지야, 나 진짜로 잘 부르진 못한다? 알겠지? 기대하지 마!”
“응?”
은지는 무슨 말인가 싶어, 뒤늦게 화면을 본 순간.
차마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Same day Same time
♬ 현재 음정 혼성 E 원음정 혼성 E
노래 이응
작사 이은호
작곡 이은지
은지가 특유의 웃음소리를 내며 자지러지게 웃자, 고은은 귀까지 붉어질 정도로 부끄러워했다.
‘Same day Same time.’
제목이 기니까 줄여서 ‘셈데셈타’의 도입부가 끝날 즈음 고은은 나름 용기를 내며 은지에게 물었다.
“은지야, 같이 부를 거면, 아니, 나랑 같이 불러 줘.”
“하핰, 그래! 내가 이은호 파트 해 줄까?”
“어! 오! 좋아! 안 그래도 네 오빠 고음 힘들었어. 너무 높아! 진짜로!”
“그게 이은호가 잘하는 부분이긴 하지.”
은지는 여유롭게 다른 마이크 하나를 더 챙겨 들며 고은이 옆에 섰다.
널 시리게 하지 않게 두 번 놓지 않을게
다신 잃지 않을게 곤잠 깨우지 않게
같이 가
은지가 은호의 파트를 맡아, 스타트를 끊었다.
이어서 고은은 비교적 은호에 비해 낮지만 다양한 기교가 들어간 은지의 파트를 흉내 내다 힘들었는지 자신의 담백한 목소리로 노래를 이어 나갔다.
나서야 했던 새벽길에
걸어야 했던 새벽길을
Same day Same time.
꿈만 꿨던 Prime 부족했던 Cash
그럼에도 놓지 못한 여전했던 Wish
그렇게 다가온 하이라이트.
은호가 맡던 파트를 잔잔하게 불러 가던 은지는 흐읍 배에 힘을 주며 차츰 음정을 올려 나갔다.
두 번, 놓지 않을게
다신, 잃지 않을게
은호 특유의 서서히 올라가는 하이라이트 부분.
그 고지를 겨우 넘긴 그 순간.
“흐어어억―.”
은지는 힘이 모자랐는지 마이크를 쥔 채 괴상한 신음을 흘렸다.
하하 Same day Same time
Same day other Crime
노래를 이어 가던 고은은 은지의 괴성에 진지하게 부르던 와중에 웃음이 터졌다.
* * *
신나게 노래를 부르다 보니 목이 탔다.
들어올 때 정신없이 들어왔더니 물을 못 챙겼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은지야, 나 나가서 물 가지고 올게.”
“엇, 도와줄게!”
혜경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한 그 순간, 은지가 혜경이를 붙잡았다.
“생일 주인공 씨는 앉아 계셔요. 나중에 내 생일이나 다른 애들 생일엔 네가 오늘 나처럼 챙겨 줘.”
“하핰, 응, 알겠어.”
그렇게까지 말하는데, 차마 거절하기도 민망해서 받아들인 그때였다.
“그럼 내가 도와줄게.”
“그래. 고은아, 네가 따라와.”
고은이는 괜찮았던 건지, 혜경이는 고은이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한편, 한참 마이크를 쥐고 열창 중이던 세원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아, 잠깐만.”
세원은 곧이어 노래까지 중단하며 중얼거렸다.
“윽, 아까 먹은 크림수프에 우유 들어 있었나 봐…….”
“왜? 당연한 거 아니야?”
크림이니까…….
당연히 우유로 만드는 거 아닌가?
은지가 의문을 느끼던 그때.
“나, 유당불내증이라아아!!!”
세원은 대답과 동시에 다급하게 방을 뛰쳐나갔다.
세원이가 멈춰 둔 노래 덕분에 둘만 남은 노래방 안에는 어색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저기.”
“응?”
“안 불편해?”
“응? 전혀.”
은지의 걱정 섞인 질문에 시우가 순하게 웃으며 답했다.
“오히려 나 여자애들하고 이렇게 놀아 본 적이 없어서, 재밌어.”
“그래?”
은지는 시우의 대답에 안심했다는 듯 웃으며 휴대폰으로 눈을 돌렸다.
평소 듣던 플레이 리스트 속에서 다음에 부를 노래를 고르기 위해서였다.
“근데, 시우 너 매번 에이슬이나 언니들 대하는 것만 보다가 동갑끼리 있는 거 보니까 또 달라 보인다.”
“그래?”
“응. 이슬이한테는 자주 틱틱거리잖아.”
“걔는 오래 알기도 했는데, 그, 너도 알다시피 이슬이 성격이 오냐오냐 자라서 버릇이 없을 때가 있잖아.”
“하핰. 맞아, 그럴 때가 있긴 했지.”
은지는 회귀 전 에이슬을 떠올리며 웃었다.
시기는 다르지만, 시우 또한 에이슬의 나쁜 성격이던 때를 떠올리면서 은지의 웃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한편, 은지의 시선은 여전히 휴대폰 속 플레이 리스트를 향해 있었다.
그때.
은지의 말에 문득 궁금해진 건지 시우가 물었다.
“근데, 나 동갑인 친구들이랑 있을 땐 어떻게 다른데?”
“응? 아, 그냥. 되게 친절해.”
“아, 아무래도 연습생 생활하면서 그런 부분도 교육을 받으니까. 동갑인 친구들이랑은 아무래도 편해서 더 자연스럽게 나오나 봐.”
“DI는 그런 것도 가르치는구나…….”
“응? 은호 형도 배웠다던데?”
“어? 그래?”
정말 처음 듣는 이야기였는지, 은지가 진심으로 놀라며 시우를 돌아봤다.
“너 수업 때 집중 잘 안 하는 타입이구나.”
“엌. 들켰다.”
“하하, 들키긴 뭘 들켜.”
은지가 뻔뻔하게 말하자 시우가 웃으며 은근히 도발을 이어 갔다.
“근데, 은지 넌 안 그래도 그럴 것 같았어.”
“와, 너무하네. 나 그래도 작곡 수업 때는 빡 집중하거든!”
“하하하하. 그래서 작곡을 잘하는 거야?”
“아니, 이건 타고난 거지. 내가 좀 잘났어.”
은지가 뻔뻔하게 인중과 어깨를 들썩였고, 시우는 그런 은지의 표정을 보며 자지러지게 웃었다.
은지는 웃는 시우를 빤히 바라보다 고개를 기울이며 물었다.
“야, 시우야.”
“하하하, 응.”
“너 혹시 여친 있냐?”
훅 들어온 은지의 질문에 시우는 곧 튀어나올 것 같이 동그래진 눈으로 은지를 쳐다봤다.
“어, 무, 뭐?”
“잘 들었으면서 뭘 못 들은 척해. 여자 친구 있냐구, 너.”
“어, 없? 없는데…….”
“그래? 그럼 넌 혹시 연애할 생각 없어?”
“어…… 어어, 있, 있기는 하지? 상대가 없어서 못 만나는 거니까…….”
시우는 입 안이 바싹 마르는지 마른침을 삼키며 은지를 바라봤다.
“그럼 나랑 만나 볼래?”
한편, 정작 직구로 질문을 던진 은지는 다시 휴대폰으로 눈을 돌리며 물었다.
고백이라면 너무나 뜬금없는 상황이라, 시우는 이게 꿈인가 싶어 괜히 구레나룻을 긁적였다.
“근데, 갑자기 왜?”
“싫으면 말고.”
진심으로 궁금해서 질문한 건데, 돌아오는 대답은 고백만큼이나 시원시원한 물리기였다.
“아니! 좋아!”
파격 행사가 끝나기 직전.
시우도 아예 마음이 없던 건 아니었는지, 이런 황당무계한 고백을 받아들였다.
시우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노래방 안은 다시 고요해졌다.
옆 방의 열창하는 소리가 벽을 넘어 들렸다.
하지만 이 방에 내려앉은 침묵을 깨기엔 소리의 크기도 실력도 턱없이 모자라기만 했다.
시우가 손목에 찬 시계에서 째깍거리는 시곗바늘 소리가 들릴 것만 같은 그때였다.
“물이랑 음료수 사 왔어!”
“와! 물 땡큐!”
“어? 세원이는?”
“화장실 갔어. 유당불내증? 그거 때문에 갑자기 배 아팠나 봐.”
“아, 맞아. 걔 크림수프 먹었지.”
혜경과 고은이가 한가득 물을 끌어안고 방으로 돌아오자, 은지는 언제 고백했냐는 양 태연하게 둘과 대화를 나눴다.
한편 폭탄 같은 고백을 받아들였음에도 달라진 게 아무것도 없는 상황.
그 때문인지, 시우는 은지를 빤히 바라보며 눈만 끔뻑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 황당했던 고백의 확실한 끝은 4차까지 놀고 난 뒤, 친구들도 다 제각각 갈 길로 흩어졌을 때였다.
“난 이따 매니저 오빠 오는데, 시우 너는?”
“아, 나는 여기 근처에서 사니까. 괜찮아.”
“알겠어. 그럼 조심히 들어가고!”
은지가 일말의 아쉬움 없이 몸을 돌리던 그때였다.
“저기, 은지야! 잠깐만!”
“응?”
“아까, 노래방에서 했던 이야기 말인데, 그거…….”
“응. 왜? 나랑 사귀는 거 취소하려고?”
“그게, 취소는 아니라…….”
자연스럽게 은지의 말을 따라 대답하던 시우가 당황하며 은지를 다시 바라봤다.
“어? 방금 뭐라고…….”
“‘나랑 사귀는 거 취소하려고?’라고 했는데.”
“그거 진심이었어?”
시우의 물음에 은지는 한쪽 눈썹만 찌푸리며 특유의 어이없어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진심이지.”
“어…… 그럼 너랑 나랑 오늘부터 1일이라는…… 거, ‘맞다’라는, 그거지?”
“응.”
“어, 어어…… 어…….”
얼떨떨한 시우의 얼굴을 빤히 보던 은지는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건지, ‘아!’ 소리를 내며 손뼉을 쳤다.
“그렇구나. 하긴, 뭐. 내가 생각해도 좀 갑작스럽긴 하겠다.”
“……아니라고는 못 하겠네.”
빈말 대신 솔직하게 답하는 시우를 보며 은지는 여유롭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그럼 다음 ‘같쫌살’ 촬영 끝나고 그때 다시 대답해 줘.”
“…….”
시간 여유가 생긴 덕분인지 시우는 긴장이 풀린 듯 어깨가 가라앉았다.
“너도 나 동료나 선배로만 봐 왔을 텐데, 대답은 며칠간 이성으로 알아 가고 난 뒤에 하는 걸로 하자.”
“아, 응.”
이야기를 막 끝마친 순간, 은지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현우의 전화였다.
“네. 오빠. 아, 아뇨. 제가 그쪽으로 갈게요. 여기 차 들어오기 힘들 거에요.”
은지는 현우와 통화하는 상태 그대로, 시우에게 간단히 손 인사를 건넸다.
이후 은지는 ‘오늘 고백한 사람’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가벼운 발걸음으로.
심지어 뒤 한 번 돌아보지 않고 깔끔하게 골목을 떠나 가 버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 거지…….’
도대체 자신한테 왜 고백한 건지.
그저 집 안이 심심해서 나섰을 뿐인데,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시우는 머리 위로 수천 개의 물음표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