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73)
세원이의 당황스러운 질문에 나도 모르게 수상할 정도로 주저리주저리 늘어놔 버렸다.
“은지가 연애 한 번 못했다니, 말도 안 된다. 정말.”
친구들은 오히려 내 말이 더 어이가 없다는 양 웃음을 터뜨렸다.
“서른까지 오히려 연애 한 번 안 해 보는 게 더 힘들지.”
“맞아, 서른 넘어서까지 모쏠은. 하하하.”
“네 얼굴에 모쏠이면 나는 진작 비자발적인 수녀였어, 은지야.”
“은지야, 넌 진짜 연애할 생각 있으면 그냥 마트처럼 막 골라 담을 수 있을걸?”
“하하, 맞아. 맞아.”
“그래도 진짜 막 담지는 마. 쓰레기 걸리면 어떡해.”
친구들은 내 이야기를 정말 농담처럼 받아들인 듯 별걱정을 다 한다며 웃었다.
나도 애들과 같이 웃었다.
「“……일에 푹 빠지는 쪽이니까, 이대로면 나, 서른까지 연애 한 번 못 하고 사고로 죽거나 그러면 막 인생이 좀 아쉬울 것 같다…….”」
내가 한 말은 예시 같은 게 아니라 정말 내 회귀 전 모습이었다.
한편으로는 그래서 속은 조금 쓰렸다.
그리고 친구들 덕분에 깨달았다.
이 세상은 나 빼고 다 서른 전에 연애 중이거나 연애를 해 보긴 해 봤구나라고.
30대를 넘어서도 연애 한 번 안 해 본 회귀 전의 나는 이미 마법 하나쯤은 쓸 수 있을 정도로 희귀 생물이었더라.
어떻게 그럴 수 있냐 묻는다면 하나다.
그만큼 음악이 고팠고, 나는 나만을 보며 쫓아오는 사람이 있었기에 달려야만 했다.
생각이 많아졌다.
다행이라면 이런 잡생각 따위는 안 들 정도로 내 친구들은 전 남자친구, 화장품, 가장 황당했던 이별 등 별별 주제를 다 꺼냈다.
케이크와 파스타 및 다양한 음식으로 배를 불리며 긴 수다를 떤 뒤였다.
“슬슬 나갈까?”
고은이가 천천히 가방을 정리하며 말했다.
“흩어지는 거야?”
“……?”
“왜, 왜?”
내가 묻자, 친구들은 일제히 무슨 그런 말을 하냐는 얼굴로 나를 돌아봤다.
그때 먼저 일어난 혜경이가 내 팔짱을 끼며 말했다.
“얼마 만에 만났는데 벌써 흩어지다니, 서운하게 무슨 말이야? 2차로 노래방 가야지!”
“아.”
2차라는 말에 괜히 아쉬웠던 기분이 다시금 들떴다.
“와, 오늘 드디어 은지 노래 듣는다!”
“나 찐 가수가 노래하는 거 가까이서 처음 들어.”
“별거 없는데…….”
“에이, 겸손 떨기는!”
친구들과 조잘거리며 레스토랑 계산대 앞에 섰을 때였다.
자연스럽게 내가 카드를 꺼내고 있던 그때, 세원이가 내 손을 막았다.
“어딜, 오늘 주인공 씨는 받기나 하셔.”
“맞아, 심지어 은지 너 오늘 서비스로 나온 샐러드밖에 안 먹었으면서 무슨 돈을 내.”
이게 무슨 기분일까.
이 친구들과는 종종 만났다.
다만, 나는 일정이 있었고 게다가 대표님이 통금 시간도 정해 놨었다.
덕분에 친구들과 만날 땐 보통 낮이나 저녁에 짧게 카페에서 시간을 가지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제대로 노는 건 오늘이 처음이라서…….
몽롱해진 기분에 나도 모르게 눈물샘이 차올랐다.
갑자기 차오른 눈물이 민망해서 어떻게든 가라앉히려던 그때였다.
“어머, 야! 은지 운다!”
“은지야, 왜 울어!”
“은지 뭐야, 설마 이거에 감동받은 거야? 미쳤어, 왜 이렇게 귀여워!”
혜경이가 내 눈물을 먼저 알아채 버렸다.
계산을 마친 친구들이 우르르 이쪽으로 오며 나를 끌어안았다.
나보다 키도 작은 친구들이라, 내가 안긴 것보단 모두를 끌어안은 모습이었지만 이것도 나쁘진 않았다.
눈물샘이 오래간만에 터지면서 고장이라도 난 걸까.
그만 그치고 싶은데 그쳐지지 않았다.
그것도 잠시.
“울지, 마. 은지, 야.”
갑자기 옆에서 나보다 더 서러운 끅끅거림이 들렸다.
감수성이 풍부한 고은이가 날 따라 울음을 터뜨리면서 자연히 내 눈물이 멈춰졌다.
“아하하하!”
“은지는 이해하는데 넌 갑자기 왜 우는 거야?”
내 눈물이 멎자, 혜경이는 웃음이 터졌고 세원이는 고은이를 장난스럽게 타박했다.
나는 세 사람에게 짤막하지만, 진심을 담아 인사했다.
“고마워, 다.”
“고맙기는.”
눈물을 그치고, 우린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을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워터프루프 제품으로 한 화장이었음에도 눈물에 완벽한 방어는 안 되는 걸까.
세면대 거울을 보자 꼴이 말이 아니었다.
다들 가방에서 각각 화장품을 꺼내 메이크업을 고친 뒤 언제 울었냐는 듯 다시 멀쩡한 모습으로 가게를 나왔다.
소란이 많았지만 모든 게 좋은 경험인 덕분에 내 머릿속에서는 발랄한 기타 연주와 함께 맑은 노래가 떠올랐다.
“노래방, 어디로 갈까?”
“세원아, 아는 곳 있어?”
“응. 로데오 쪽으로 가서 놀자.”
오늘 방문한 레스토랑은 홍대에 있는 가게라, 사람이 넘치도록 바글거리는 로데오 거리로 향했다.
곳곳에 사주, 궁합 간판과 옷들이 즐비한 거리를 지나갔다.
“여기가 더 싸기도 하고, 일단…… 사람이 적거든. 놀러 왔는데 구경거리 되는 건, 별로잖아.”
“신경 써 줘서 고마워, 세원아.”
눈길을 끄는 큰 노래방도 있었지만 나를 의식한 건지, 세원이는 비교적 사람이 적고 한적한 분위기의 노래방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세심하지 못해서 나 스스로조차도 놓치는 부분을 신경 써 준다는 점이.
우린 세원이가 아는 곳으로 가기 위해 사람이 바글거리는 거리를 나와 한적한 골목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때였다.
“어?”
“어……?”
여기서 보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사람을 마주쳤다.
“최시우,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어? 아, 하하. 나 여기 근처 살아서…….”
“와!”
고은이는 마주친 사람이 누구인 줄 알고 있는지 감탄하며 입을 틀어막았다.
한편, 연예계에 관심이 적은 세원이와 혜경이는 마주친 사람을 보고도 ‘아는 사람?’ 정도의 밍밍한 반응이었다.
“이쪽은 나랑 그, ‘같이 쫌 살자’에 출연 중인 내 동료. 최시우.”
“아, 안녕하세요.”
민망한 침묵이 생기자, 나는 이것도 인연이지 싶어 친구들에게 시우를 소개했다.
이어서 반대로 내 친구들 역시 시우에게 간단히 소개를 이어 갔다.
“이쪽은 내 동창 친구들, 고은이, 세원이, 혜경이야.”
“반가워요.”
“와, 시우 씨 실물 잘생기셨다.”
“왠지, 말티즈 닮았다.”
“그렇지! 나도, 나도 그렇게 생각했어.”
세원이 시우를 빤히 보며 중얼거린 소리에 나도 모르게 호들갑까지 떨며 긍정해 버렸다.
“말티……즈?”
갸웃거리는 시우의 시선이 이쪽을 향한 게 느껴졌다.
민망해진 나머지 난 다급하게 말을 돌리며 시우에게 물었다.
“어, 그, 시, 시우 너 어디 가는 중이었던 거 아니야? 길 막아서 미안하다, 야.”
“아, 딱히 그런 건 아니야. 나도 오늘 그냥 쉬다가 집 안에만 있기 답답해서 나왔어. 산책 겸.”
“그래? 아…….”
그럼, 산책 잘 해.
……라고 말을 하려고 보니 왠지 이상한 인사인 것 같다고 느끼던 그때였다.
“은지야.”
“응?”
“시우 씨도 노래방 같이 가자고 하자! 어때?”
“오, 맞아. 혹시 모르잖아, 은지 너 고민하던 문제 한 방에 해결될지.”
“하하하. 아까 연애 그거?”
“응응.”
친구들이 농담처럼 이야기했다.
누가 봐도 장난처럼 꺼낸 말이었지만 적어도 나는 꽤 진심이었다.
서른 전에 한 번은.
이번 생엔 무조건 연애를 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으니까.
[시우 ― 저 선배님 좋아해요]
[나 ― 내 노래?]
[시우 ― 선배님 노래도 좋지만 선배님도 좋아해요 ㅋㅋㅋ]
― 이성으로]
회귀 전 깨톡을 통해 받았던 시우의 고백.
그때를 떠올리며 나는 다시 시우를 봤다.
얼굴은 잘생겼다기보다 크고 동그란 눈이 귀여운 얼굴상이다.
‘목울대가 도드라진 건 조금 섹시할지도?’
‘최근까지 활동해서 상체가 좀 펌핑된 상태인 건가?’
‘발은 나보다 큰 것 같은데…….’
‘성격도 그간 같이 방송하면서 느낀 바로는 나보단(?) 착한 것 같았으니까.’
찬찬히 뜯어 보긴 했지만, 그 시간은 시우가 느끼지도 못할 찰나였다.
아이쇼핑으로 단련된 눈에 장착된 스캔 기능 덕분이었다.
아무튼 스캔이 끝난 결과.
시우는 첫 연애 상대로 ‘나쁘지 않을 것 같다’라는 답이 나왔다.
적어도 이은호보다는 성공적인 첫 연애가 가능하지 않을까?
……라는 망상 아닌 망상을 하며 나는 시우한테 물었다.
“시우야, 우리 노래방 갈 건데 같이 갈래?”
“어? 갑자기? 어, 나는 괜찮지만…… 친구분들이 안 불편하실까?”
시우가 눈치 보며 묻자, 혜경이와 세원이는 능청스럽게 웃으며 말했다.
“우린 대환영이죠.”
“맞아.”
이어서 고은이는 만세까지 하며 행동으로 기쁜 마음을 보였다.
* * *
“생일 주인공이 스타트 끊어 줘야지!”
친구들의 요청에 ‘RED’을 재생했다.
“꺅! 은지 노래한다아!”
“어디, 크흠흠.”
은지가 걸걸하게 목을 가다듬으며 마이크를 집어 들자, 친구들은 걸쭉한 기침 소리에 웃음을 터뜨렸다.
둥― 두둥
둥― 두둥
익숙한 인트로가 스피커를 통해 울린 그 순간.
꺄―악!
친구들은 일제히 콘서트장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환호를 내질렀다.
베이스와 베이스 드럼으로 이뤄진 인트로가 끝난 동시에 은지는 지금까지 헤실거리며 웃던 애가 맞나 싶을 정도로 달라졌다.
벗어나, 려 했지만―
늦어, 나
우리 첫 만남이 실수였나
낯선 날카로운 표정을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본래 ‘RED’의 도입부는 지예찬이 맡은 파트였다.
그래서 가사도 박자도 모든 면이 지예찬에게 어울리도록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작곡가가 은지 본인인 만큼 자신에게 맞게 뜯어고치는 것쯤이야.
은지에게는 그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 번째 예약해요.”
“아, 감사합니다.”
“다 동갑인데, 말 편하게 해.”
“그, 그럴까?”
그사이 시우는 세원이 건넨 노래방 리모컨을 받아 들었다.
리모컨을 이용해, 은지 다음 차례로 이어서 부를 오현의 ‘시스투스’를 검색하던 그때.
두 번은 그러지 마
후회하기엔 이미 늦은
Red
앞서 담백하고 깔끔했던 은지의 목소리.
‘Red’의 가사를 읊는 순간.
은지는 순식간에 끈적한 것에 뒤덮이듯 목소리만으로 짙은 농염한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
시우는 은지의 목소리와 기교에 감탄을 터뜨리며 손까지 멈춰 버렸다.
덕분에 ‘시스투’ 뒤로, 커서가 깜빡거리기만 하고 ‘시스투스’의 끝에 있는 ‘스’를 채 이어 가지 못했다.
하루에 수십 번
달라지는 너
그게 날 미치게 만들어
은지의 친구들 역시 감탄을 아끼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감탄뿐만 아니라, 은지가 집중하며 노래를 이어 가는 내내 고은, 세원, 혜경은 당장이라도 노래방의 문을 열어젖히고 ‘여러분! 얘가 내 친구예요……!’라며 세상에 자랑하고 싶었다.
오히려 그 자랑하고 싶은 그 심정을 억누르는 게 더 힘들 지경이었다.
나 나나 나 Red Light
나 나나 나 Red Night
나 나나 흐트러졌어
너라는 작은 변화 하나조차
끊어 내질 못해
고은은 노래를 진심으로 즐기는 은지를 보며 은지와 처음 만난 그 시절을 문득 떠올렸다.
우연히 훌쩍 떠나 버렸던 은지를 TV를 통해 다시 보게 됐을 때.
고은은 은지가 잘되기를 진심으로 빌었었다.
은지가 누명을 쓴 당시에는 응원하는 만큼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 세원과 혜경의 도움을 받아 증거를 모았고 눈팅만 하던 인터넷에 글까지 썼었다.
그 연예계라는 살벌한 시장에서 낡은 노래방에서도 빛나는 은지가 가라앉지 않길 바라는 순수한 팬심에서 한 행동이었다.
‘역시 본업이 제일 멋있어, 우리 은지.’
고은은 가장 먼저 양팔을 들어 박자에 맞춰 좌우로 팔을 흔들었다.
이후 고은을 따라, 세원과 혜경.
막 예약을 마친 시우까지 양손을 들어 은지의 노래에 호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