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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72화 (272/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72)

“그래서……. 은지한테 남자친구가 있다고?”

“아아, 아니요? 그거 완전. 이은호가 오해하게 잘못 말한 거예요! 근데, 왜, 왜요? 만나면 안 돼요?”

“만날 생각은 있다는…….”

은지의 질문에 답하는 박 대표의 목소리가 한결 우울하게 가라앉았다.

“아니, 뭐, 나중에라도 만날 수도 있는 거고…….”

은지의 수줍어하는 모습에 은호가 경악하며 멀찍이 떨어졌다.

이런 모습은 박 대표에게 역시 낯설긴 마찬가지였는지, 박 대표도 황당한 숨을 들이켜며 허탈하게 입을 뻐끔거렸다.

“……근데 은지야, 너 방송 볼 땐 시우랑 딱히 같이 활동하는 일이 많이 없던데, 대체 언제 둘이 그렇게 가까워졌어?”

“에, 에이! 저 시우랑 같쫌살에서 친해요! 자주 붙어 있기도 했었고―.”

“헛소리하네. 니가 언제 시우랑 붙어 있었냐? 나나 승연 형이랑 있는 시간이 더 많았지.”

은호가 반박하자, 틀린 말은 아니었는지 은지는 당황했다.

한편, 박 대표에게도 은호에게도 은지가 시우에게 보인 호감은 갑작스럽게 느껴졌다.

‘시우가 은지에게 회귀 전 고백을 했었다.’

이 정보를 알고 있던 은호 또한 그걸 잠시 잊고 지낼 정도로 촬영 당시 두 사람은 그다지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이번 촬영 전까지는 말이다.

“그게…… 하.”

잠시 후.

은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니, 나도 남들 다 하는 연애, 한 번은 해 볼 수 있잖아.”

박 대표와 은호는 벙찐 표정으로 은지를 바라봤다.

“갑자기…….”

“……연애? 니가?”

“아, 뭐! 몰라! 나 약속 있어. 갈 거야!”

은지는 두 사람의 반응이 민망했는지 도망치듯 자리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뜻대로 되진 않았다.

“가더라도 오늘은 현우랑 같이 가라. 생일날처럼 늦으면 그땐 제대로 혼날 각오 하고.”

“억…….”

은지는 현우를 돌아봤다.

현우는 어쩌겠냐는 듯 어깨를 들썩이며 고개를 저었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거, 저 약속 장소까지 태워 줘요. 오빠.”

“네.”

* * *

이은호는 싫어하는 단어지만, 나는 죽었었다.

이건 현실이다.

사고 당시 일어났던 순간.

고통과 함께 타이어가 아스팔트 바닥에 긁히는 소리.

고양이의 울음소리.

그리고 고통에 몸부림치던 내 울음소리.

두통을 만들어 내는 소음들.

나는 혼자 활동하던 당시 기댈 곳이 없었다.

힘들어도 말 한마디조차 누구에게 꺼낼 수가 없었다.

악플 같은 문제는 이은호나 대표님이 있었지만, 내 능력이나 ‘이 방향이 옳은 것인가’ 같은 답이 없는 고민에 대한 문제는 대화를 나눌 만한 사람이 없었다.

대표님, 배진수 작곡가 쌤, 이구름 쌤, 이하늘 쌤, 클라우드 멤버들, 가수 동료들.

심지어 이은호까지.

누군가는 이 사람들에게 털어 놓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겠지만, 글쎄.

나는 음악으로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

내 자랑 같긴 하지만 차트 줄 세우기는 매 컴백마다 벌어지는 일상이었고 콘서트는 항상 만석이었다.

회사로 전달된 팬들의 선물은 하루가 멀다 하고 쌓여 있었고, 디스팩트엔 내가 뭐만 하면 내 이야기가 찌라시처럼 떠올랐다.

그럴 뿐만 아니라 쓴 화장품, 입은 옷, 착용한 액세서리, 다니는 네일 숍, 마사지 숍 등등 내가 하거나 먹는 그 모든 것이 화제가 됐다.

배부른 소리처럼 보일 텐데.

아니,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고 한들.

그 누구보다 나를 응원하고 도와주는 사람들인데, 그런 사람들한테 어떻게 ‘힘들다’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렇게.

나는 데뷔 이후 단 한 번도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적이 없었다.

대표님이 철옹성처럼 지켜 주는 이 집에서조차 줌 인하여 촬영된 한 팬의 사진을 보고 곧장 이사를 결정하기도 했을 정도였다.

회귀 이전의 나는 항상 해맑게 있으려고 ‘노력’했다.

내 구멍 따위는 보이지 않도록 말이다.

오빠는 내 성공을 축하해 줬다.

하지만 그 축하는 이은호 본인에겐 독이었다.

그리고 난 그걸 알고 있었다.

미안했다.

이은호가 있어야 할 자리에 내가 있는 것 같아서.

때때로 홀로 너무 많은 관심을 받을 때면 동시에 그 관심에 짓눌리는 것 같아서 숨이 막혔다.

하지만 나는 무너질 수 없었다.

날 응원해 주고 믿고 지원하는 사람들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이은호는 내가 지금 힘들어하는 이 자리를 누구보다 많이 바랐으니까.

항상 내가 있는 곳에 닿기 위해 피를 토하며 노력하는 이은호를 보고 있으면 나 역시 퍼져 버리고 싶은 마음을 접고 달려 나가야 했다.

쫓아오는 오빠한테 겨우 앞서나가는 이 한 가지는 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열심히 주변을 돌아볼 여유도 없이 앞만 보고, 음악만 보고 미친 듯이 달렸다.

그리고 나는, 내 마지막은.

끝내 세상에 그 이은호만 남겨 둔 채 죽었다.

하지만 지금 나는 다시 이 땅 위에 서 있다.

그것도 이번엔 둘이서.

조금 속도는 느릴지언정, 내가 있었던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다.

시간을 되돌아오고 난 뒤 나한테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여유’였다.

나는 두 번째 생을 살면서야 비로소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생겼다.

특히 오빠랑 같이 ‘이응’으로 활동하면서 그 여유는 더 늘어났다.

이번만큼은 굳이 내 힘듦을 감출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게 여유가 생기고 나자, 나도 사람이라 참 간사하게도 더 바라는 것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마음이 폭발한 건 바로 내 생일이었다.

내가 다니는 미용실 언니들은 회귀 전이나 이후나 자주 ‘은지는 학교 다닐 때 인기 많았겠다.’, ‘몇 명한테 받아 봤어?’ 등 이런 소리를 했다.

동창 친구들에게 물어보면 인기가 없진 않았던 것 같다.

「“나도 너 입 열기 전엔 잠깐 이성으로 호감 가진 적 있었어.”」

다만, 회귀 전.

잠깐 친했던 한 남자 사람 친구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한 적 있었다.

하지만 그런 녀석도 ‘친구’일 뿐, 이성 관계로 발전하는 일은 일절 없었다.

이유는…….

「“이은지 니가 입 열고 성격이 얼굴을 잡아먹어서 팍 식었지만.”」

내 입 때문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이 험한가?

……나도 양심이라는 게 있어서 차마 아니라고는 못 하겠다.

아무튼, 그땐 사실 그런 말을 들어도 별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응. 너 같은 놈 줘도 안 사겨.’라며 가운뎃손가락을 올리고 말았으니까.

‘이은호가 연애를 해 봤다!’라는 사실을 새로이 듣기 전까진 말이다.

알고 있다.

에이슬과 이은호 사이는 악연이었다는 것쯤은.

다만.

나는 보다시피 일에 미쳐 살았던 사람이라 연애 따위는 해 본 적이 없다.

애초에 남자는 죄다 이은호 같아 보여서 죄다 징그럽던 시절도 있었다.

말이 길었지만, 아무튼 결과만 놓고 보자면, 그래.

난 모태 솔로다.

그!

이은호도!

연애를!

해 봤는데!

나는……!

좀, 아니. 많이 억울했다.

이은호 같은 놈한테도 좋다고 매달리는 여자가 있는데, 나는 왜 없는지!

사실 그것조차 내 생일 전까지는 별생각 없었다.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등등 별별 기념일들이 지나갈 때 역시, 나랑은 관계가 없는 일이니까.

괜찮았다.

하지만 데뷔하고 자리를 잡은 뒤 여유가 넘치는 상황에서 맞은 내 생일.

11월 11일.

며칠 전부터 아주 그냥 온 도시가 빼빼로와 커플들의 이벤트로 시끌벅적했다.

그야말로 커플들의 기념일.

그날 난 시우랑 놀았다던 오빠의 오해와 달리, 학교 폭력 사건 이후 다시 연락하기 시작한 동창 친구들.

혜경이, 고은이, 세원이 이 세 사람을 만났다.

“사랑하는 우리 은지, 생일 축하합니다!”

“꺄악, 생일 축하해!”

“생일 축하해~.”

“헤헤. 고마워.”

주변에서 보내 준 케이크와 친구들이 챙겨 온 케이크까지.

케이크는 넘치게 들어왔지만 콘서트 전 관리 중이라 먹을 수는 없었던 시기.

수다나 떨 겸 내가 못 먹으니 친구들 먹는 거라도 ‘먹방’처럼 구경할 생각이었다.

그렇게 우리 넷은 11월 11일 늦은 점심시간에 한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하지만 장소가 문제였던 걸까.

레스토랑엔 우리 자리를 제외하고는 모두가 커플인 것 같았다.

샴페인 대신 탄산수나 홀짝이며 하트가 터져 나오는 주변을 보아하니 아닌 곳도 있었겠지만 적어도 내 눈에는 죄다 커플처럼 보였다.

가래떡 데이나 농업인의 날 등 11월 11일이 다른 의미를 가지기도 하지만, 솔직히 커플들한테 그날의 이름이 무슨 소용일까.

이들에겐 그냥 ‘특별한 날’이란 게 중요한 것 같았다.

그나저나…….

뭐가 그렇게 좋아서.

그래 봐야 남일 텐데.

가족도 아닌데.

나는 공감할 수 없는 그들의 감정이 궁금했다.

내가 단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감정.

그나마 비슷한 감정을 찾자면, 내가 아저씨나 우리 대표님한테 느끼는 감사함 같은 걸까?

그렇게 커플들을 구경하고 있으니 문득 궁금한 점이 생겼다.

나는 한창 케이크를 나눠 먹는데 몰두하던 친구들을 불렀다.

“저기, 얘들아.”

친구들은 일제히 바쁜 포크질을 멈추고 나를 돌아봤다.

“너희는 혹시 서른까지 연애 한 번 못 해 본 이성…… 어때?”

친구들은 오늘이 빼빼로 데이였던 데다, 내가 워낙 엉뚱한 질문을 종종 했기 때문일까.

이은호처럼 그걸 왜 묻냐는 말 대신 자연스럽게 답을 해 줬다.

“성격에 문제가 있나? 싶을 것 같은데.”

“서, 성격은 괜찮아!”

혜경이의 대답에 순간 발끈하면서 말이 먼저 나가 버렸다.

혜경이는 ‘그래?’라며 팔짱을 끼더니 다시 생각에 잠겼다.

“흠, 그럼 얼굴이 문제인가?”

얼굴은 솔직히, 나 정도면……!

성격보다 더 억울한 부분이라 차마 입을 닫고 있을 수가 없었다.

“……얼굴은 개쩔어.”

“나쁜 쪽으로? 좋은 쪽으로?”

“무조건 좋은 쪽으로.”

“흠, 그럼 다른 곳에 하자가 있나?”

쿨럭.

‘하자’라는 단어가 비수처럼 날아들었다.

그때, 옆자리에 고은이가 다급하게 말을 이었다.

“에이, 하자가 없을 수도 있지! 음, 서른까지면…… 그냥 일이 더 좋다거나, 집안 형편이 어렵다거나! 뭐 그런 사연이 있지 않았을까?”

“그렇지!”

“음, 난 사연 있는 남자 별로던데.”

조용히 듣고 있던 세원이가 말을 얹었다.

취향이 확고한 혜경이와 세원이는 제외하고, 난 그나마 긍정적인 대답이 나온 고은이에게 물었다.

“그럼 고은아, 넌 그 사람이랑 연애하게 된다면 어때?”

“으응? 음, 그, 글쎄? 우리 이제 스무 살인데 연애 한 번 안 한 서른은 좀…….”

“아, 그게 아니라, 고은이 너도 20대 후반에서 30대 쯤일 때! 응.”

“아하.”

고은이는 뒤늦게 질문을 이해하더니 손뼉을 치며 웃었다.

“음, 그런데 아무래도 난 연애 경험 있는 남자가 좋아.”

“맞아, 숙맥은 힘들지. 침대에서도 그렇고.”

엉?

침대?

예상보다 훅 깊어지는 이야기에 당황도 잠시.

“그래도 너무 경험이 많아도 좀 그래. 별로야.”

“전 여자 친구랑 연애 기간이 길었던 남자도 나는 좀 그랬어. 온통 집 안에 그 여자 흔적들이―.”

이제 겨우 스물인 내 친구들은 어떻게 벌써 경험이 많은 걸까.

대화는 순식간에 내가 끼어들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

“은지야.”

한창 이야기를 나누던 그때, 세원이가 나를 불렀다.

“너 연애 경험 없는 서른 살 좋아해?”

“엉? 아니, 그게, 뭔, 뭔 소리야! 아니! 아니야! 절대로!”

“그래?”

“그, 그냥 나, 일에 푹 빠지는 쪽이니까, 그게, 이대로면 나 서른까지 연애 한 번 못 하고 호, 혹시나 사고로 죽거나 그러면 막 인생이 좀 아쉬울 것 같다는, 뭐, 그런 생각이…… 갑자기 들어서,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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