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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71화 (271/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71)

책임 없는

이게 어떻게 된 상황이냐면, 은지가 내 휴대폰을 빼앗으려고 손을 뻗었을 때 내 엄지는 대표님의 프로필 위 수화기 모양 버튼 위에 있었다.

놀리려고 했을 뿐이지, 정말 전화를 걸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은지의 손이 내 엄지를 눌러 버렸고, 이건 그 결과였다.

―달라진 난♬

내 휴대폰 스피커로 미세하게 대표님의 통화 연결음인 화랑 누나의 데뷔곡 하이라이트 부분이 흘러나왔다.

“빠, 빠, 빠, 빨리! 빨리! 빨리 끊어!”

“어, 어…….”

달라진 연결음에 당황하고 있던 것도 잠시.

난 은지의 다급함에 놀라, 나 역시 전화를 진짜로 할 생각까지는 없었던 터라 통화를 끊으려던 그때였다.

―“어~. 그래. 내 새끼들, 왜?”

대표님이 전화를 받아 버렸다.

그것도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의 대표님은 불길할 정도로 밝은 목소리였다.

은지도 나도 이건 예상했던 상황에서 벗어난 일이라, 대표님의 목소리가 들린 순간 우린 그 자리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여보세요? 얘들아?”

우리가 아무런 말이 없으니 걱정된 건지, 대표님이 재차 우리를 불렀다.

“아. 대표님, 그게.”

“이……!”

아무것도 아니라며 마무리를 짓고 통화를 일찍 끊으려고 입을 연 그 순간.

“이은호가 실수로 잘못 걸었어요!”

은지는 바보같이 재빠르게 내 휴대폰을 낚아채더니 아주 그냥 제 무덤을 스스로 삽질하며 파 버렸다.

―“은지야, 너 또 뭔 일 벌이려고 했구나?”

“에이, 일은 무슨요!”

대표님의 질문에 뻔뻔한 척 대답했지만, 상대가 누군데.

통할 리 없는 거짓말이다.

―“이거 100% 무슨 일이 있는 목소린데?”

아니나 다를까.

대표님은 은지의 수상함을 단번에 눈치채더니 의심하며 물었다.

‘뭐.’

그때, 은지는 도움을 청하려는 듯 나를 힐끔 쳐다봤다.

‘알아서 하셈.’

난 딱히 우리 호박이의 화려한 외출을 도와주고 싶진 않은걸.

벽에 기댄 채 여유롭게 팔짱까지 끼며 가능한 한 가장 재수 없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내 도움을 받을 수 없다는 걸 직감한 걸까.

은지는 입 모양으로 ‘X새…….’라며 욕을 중얼거렸다.

하지만 얘도 기대는 안 한 건지 곧 한숨을 내쉬며 대표님에게 말을 이어 갔다.

“그게요. 오늘 ‘친구’가―.”

“친구 아니고, ‘시우’가.”

말은 바로 해야지.

시우랑 언제부터 친구로 지냈다고.

나긋하게 말을 보탠 그때였다.

‘제발 그 입 좀 닥쳐라, 이은호! 쫌!’

은지는 도끼눈을 뜬 채 이쪽을 노려보며 입 모양으로 말했다.

근데, 사람이 말이야.

그렇게 욕하면 더 닥치기 싫어지는 게 인지상정.

“동생아, 도움을 청할 땐 고운 말을 써야지.”

“말이 곱게 나오게 좀 본인이 먼저 잘하든가!”

“하하, 너나 먼저 그래 보시지? 아, 아아! 아이고, 야 미안하다. 이은지, 네 말이 맞네.”

은지의 표정에서 ‘이 새끼가 또 무슨 말을 하려고?’라는 불신이 훤히 보였다.

“시우도 ‘남자’, ‘친구’이긴 하니까 ‘친구’는 ‘친구’지! 맞네.”

―“나, 남자 친구?”

은지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던 그때, 대표님이 마지막 홈런을 쳤다.

―“잠깐만, 시우라면 ‘같쫌살’ 멤버인 DI 뮤직 애 아니냐?”

“오, 맞아요. 대표님, 얘 생일나릅―!”

은지의 손바닥에 말을 하던 입이 틀어막혔다.

“아, 아아! 이은호, 진짜 너 때문에 내가!”

콱.

감히 오라버니 입을 틀어막은 손이 괘씸해서 힘껏 물었다.

“아야, 야, 니가 개냐! 아프잖아!!!”

“멍멍.”

은지는 선명하게 잇자국이 난 손을 들이밀며 소리쳤다.

무는 게 개라면 난 오늘부터 개 하지, 뭐.

“아, 아아, 아악! 이은호 진짜 짜증 나!!!”

내 도발에 못 이기겠는지 은지는 진심으로 폭발한 듯 버럭 소리쳤다.

“하핰핰…… 아.”

은지를 놀리는 일은 인생의 낙 중 하나다.

다만 이 재미있는 시간에 간과한 점이 하나 있었다.

휴대폰 너머에선 말 한마디 나오질 않았다.

“야, 야, 잠깐, 잠깐만!”

“잠깐은 무슨 잠깐이야. 이은호 오늘 뒤졌다.”

“악! 내 폰! 야! 통화 중이라고 우리 지금!”

은지는 한 박자 늦게 내 머리채를 붙잡고 나서야 뒤늦게 대표님의 존재를 의식한 것 같았다.

휴대폰 너머 대표님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차라리 말이 있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이건 그 어떤 말보다 두려운 고요함이었다.

은지는 쥐고 있던 내 머리를 놓더니 ‘헉’거리며 제 입을 막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내 휴대폰을 거실 상 위에 올려 두더니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내 휴대폰인데, 저게 곧 대표님의 얼굴인 것처럼 느껴져서 오늘따라 손을 대기가 무서웠다.

처음에 나는 은지처럼 무릎을 꿇진 않았다.

하지만 서서히 눈치가 보이자, 나도 스멀스멀 다가가서 조용히 은지 옆에 앉았다.

숨 막히는 침묵이 이어졌다.

실제로는 약 3분 정도의 시간이었지만, 체감상으로는 족히 30분은 된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대표님은 긴 한숨 뒤로 목소리를 냈다.

―“둘 다.”

“……넵.”

길었던 침묵에 긴장하고 있던 우린 딱히 맞춘 것도 아닌데 칼 같이 동시에 대답했다.

―“회사로 와.”

전화는 그대로 끊어졌다.

“X됐다.”

은지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바닥을 보며 중얼거렸다.

지금, 이 순간.

난 격하게 그 어느 때보다 은지 말에 공감했다.

그때, 은지의 어깨가 부들거렸다.

왜 저러나 싶던 그때.

“이게 다…….”

“뭐?”

뭐라고 중얼거리는 것 같은데 잘 들리지 않아서 되물은 그 순간.

“이은호, 너 때문이라고!”

조금 전에 싸워서 이렇게 된 건 금세 잊은 걸까.

아니면 어차피 혼날 거 오늘 한판 뜨겠다는 건지.

은지가 진심으로 공격적인 손을 뻗으며 달려들었다.

네일 아트 때문에 긴 손톱과 화려한 파츠들로 안 그래도 날카로운, 하나의 무기에 가까운 그 손이 내 얼굴을 덮을 듯이 뻗어 왔다.

“으악!”

겨우 손을 피해 내 방으로 도망치듯 들어간 뒤 문을 잠갔다.

몸은 피했는데 이어서 터져 나온 은지의 사자후까진 피할 수 없었다.

“이은호, 이 X새끼야!!!”

“…….”

이러면 은지가 더 화낼 것 같은데, 그래서 더 참을 수 없었다.

“멍!”

쾅!

* * *

둘과 오랜 시간 함께한 박 대표는 통화가 끝난 뒤의 은호와 은지의 행동이 눈앞에 훤히 보였다.

그래서 현우를 보냈다.

문제는 현우가 사옥의 문을 열고 나선 그 순간.

“……개X끼야!!!”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과 은호와 은지가 머무는 주택은 그리 먼 거리가 아니었다.

그 말은 곧, 은지가 내지른 사자후가 골목에 울려 퍼졌고, 그건 회사까지 매우 잘 들렸다는 것이다.

문을 열던 현우는 박 대표의 눈치를 보며 힐끔 고개를 돌렸다.

“다녀오겠습니다.”

박 대표의 상태를 확인하자마자 현우는 도망치듯 사옥을 빠져나가며 문을 닫았다.

잠시 후 현우가 집에 도착했을 때.

문을 연 순간, 현우는 멈칫했다.

“어. 형, 오셨어요?”

“앗. 오빠, 대표님이 저희 데리고 오래요?”

은호와 은지는 현우를 마주한 순간, 하던 행동을 멈추고 무슨 일 있었냐는 듯 뻔뻔하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태연한 인사와는 다르게 은호와 은지의 상태는 그야말로 말이 아니었다.

은호가 자주 입는 반팔 티셔츠는 오프 숄더로 변신해 은호의 어깨를 훤히 드러내고 있었고.

은지는―산발이 된 긴 머리도 문제였지만― 화장을 했던 건지 입술과 눈가의 화장이 심하게 번져 있었다.

그런 와중에도 이걸 프로라고 평해야 할지…….

은호와 은지는 서로의 얼굴엔 놀랍도록 상처 하나 내지 않았다.

‘이제 막 성인이 되었다고는 하지만…….’

현우는 어른스럽다가도 한 번씩 이렇게 꼬맹이들로 변신하는 남매들 때문에 잠시 머리가 아찔한 기분이었다.

“…….”

둘을 무대나 카메라 앞에만 둬야 할까.

현우는 잠시였지만 진지하게 고민했다.

“후……. 두 분 다 거울 확인하세요. 대표님 폭발하는 모습 안 보시려면 적어도 10분 안에 준비 마치고 내려오시고요.”

현우는 그래도 제 가수들이라고, 대표님한테 조금이나마 덜 혼나길 바라는 마음에 시간을 줬다.

현우와 함께 조금이나마 멀쩡해진 모습으로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에 방문한 은호와 은지.

“들어와.”

박 대표의 가라앉은 한마디에 은호와 은지는 얌전히 대표실 안으로 들어섰다.

NRY 엔터테인먼트는 회의실을 제외하고는 대표실과 사원들 자리 사이에 아치 형태의 문틀과 가슴 높이의 칸막이만 있을 뿐 문을 따로 두지 않았다.

소통을 중요시하는 박 대표의 생각이 담긴 인테리어 구조이기도 했다.

하지만 은호와 은지는 오늘따라 그 구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직원들이 박 대표에게 보고를 위해서든 지나가는 길이든.

이런 구조이기에 가까이 다가오기만 해도 대표실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훤히 보이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직원들은 대표실 앞을 힐끔거리더니 안의 풍경을 보고는 하나같이 도망치듯 자리를 피했다.

내부를 본 직원들은 누구 하나 다를 것 없이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붙들고 있기 바빴다.

은호와 은지는 둘 다 박 대표의 사무실 구석에 무릎을 꿇은 채 손을 들고 있었다.

회귀 이전을 포함하면 이게 세 번째 경험이다.

심지에 회귀 이후에는 처음일 정도로, 그 어떤 사고를 쳐도 체벌을 하지 않는 박 대표가 유일하게 체벌할 땐 은호와 은지가 선을 넘긴 싸움을 할 때였다.

“……안 그러니? 너희는 내가 몇 번을 이야기해야 너희가 들은 척이라도 하겠니. 얘들아, 너희 이제 20살이야. 특히 은호 넌 22살이나 먹은 애가, 이제 곧 23살이 나 될 애가 이게 뭐 하는 짓이야. 왜 웃니? 웃기냐. 은지야, 너도 마찬가지다. 너희는 이러다가 서른 넘어서도 애들처럼 쥐어뜯고 싸울 것 같아서 내가 걱정이―.”

랩이라도 하는 듯 박 대표의 잔소리가 숨 쉴 틈 없이 쏟아졌다.

‘서른 넘어서도 애들처럼’이라는 부분에선 실제로 은호와 은지는 할 말이 없었다.

남매들 중에선 나이를 먹고 철이 들어서 더 이상 싸우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고들 하지만…….

거기에 은호와 은지는 끼지 못했다.

박 대표에게 무릎 꿇고 손들기 체벌을 받으며 잔소리를 들었던 세 번 중 한 번은 20대 ‘후반’에 했던 경험이었으니 말이다.

미래라고 해야 할지, 은호와 은지는 그 시절 자신들의 모습이 겹친 듯 동시에 웃음이 터졌다.

“이놈들 봐라, 지금 혼나는데 웃어?”

화난 박 대표의 심기를 거스를까 싶어 웃음을 참으려고 인중을 당기며 애써 봤지만 큰 소용은 없었다.

“촤함나, 헛 참.”

“푸, 끅끅끅.”

박 대표 또한 지금 이렇게 다 큰 성인 둘을 혼내는 일이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일까.

“아핰핰핰핰핰!”

“하하하하핰!”

“하하하하하!”

잠시 후 얼굴이 벌겋게 될 정도로 웃음을 참은 은지를 시작으로 은호를 이어 박 대표까지 이런 상황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한참을 웃고 나니, 자연히 불편하기 그지없었던 상황은 풀어질 수밖에 없었다.

다시 화를 내기에도 늦어 버린 터라 창석도 앞으로는 그러지 말라며 상황을 넘겼다.

“에휴. 소현 씨, 잠시만 내 자리로 와 봐요.”

창석은 야근이 있는 날인지라, 직원들에게 법인 카드를 쥐여 주며 조금 일찍 저녁을 먹으러 가도록 내보냈다.

“아싸! 소고기 먹으러 갑시다!”

카드를 받아 든 소현이 법인 카드를 들고 소리치자, 창석은 진담 섞인 장난조로 사옥을 나가는 직원들에게 소리쳤다.

“출혈 커! 돼지갈비로 낮춰 줘!”

한편, 직원들은 들은 척조차 하지 않고서 우르르 건물을 나갔다.

박 대표는 회사 내부에 은호와 은지와 현우 외에 다들 나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그래서……. 은지한테 남자 친구가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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