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70)
바닥에서 느껴지는 베이스의 울림.
베개를 치우고 바닥에 누워 있으면 이은지가 작업하는 곡이 미세하게나마 들린다.
특히 오늘처럼 저렇게 문을 열어 둔 날이면 더더욱.
ah― ah
쉬운 말은 아니야
You’re never alone
At least I was there
은지의 가사, 정확하게 말하자면 은지가 만든 가이드에는 유독 또렷한 가사가 한두 마디씩 들어가 있다.
‘넌 혼자가 아니야.’
‘적어도 나는 거기 있었다…….’
그리고 그건 곧 은지가 그 곡을 만들 때 짙게 가진 생각이기도 했다.
그래서 의미가 궁금했다.
가족으로서보다는 창작자로서.
내 가사를 사용할 이 노래의 저의를 알고 싶은 욕심이었다.
내 못난 고장 난 시계
이건 고쳐지질 않아서
고장이 난 시계.
어쩐지 우리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 같다고 생각하면, 이건 과한 생각일까.
그래도 이게 몇 주만인지 모르겠다.
꽤 마음에 드는 비트와 멜로디였다.
곧 이은지가 보내 줄 음악 파일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노래는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춰 버렸다.
“아.”
나도 모르게 조금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은지의 작업을 굉장히 오랜 시간 지켜봐 왔다.
지금뿐만 아니라 회귀하기 이전부터.
그리고 은지는 시도 때도 없이 기가 막힌 비트와 멜로디를 뽑아 놓고 많은 작품을 버린다.
말 그대로 그 좋은 파일을 지워서 없애버린다는 말이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대표님도 시달리고 있는 이은지의 큰 문제 중 하나였다.
대표님이 진행 사항을 확인할 겸 은지의 클라우드를 뒤적이던 날.
무심코 ‘휴지통’에 있는 곡들을 듣고는 충격에 빠지신 적이 있었다.
대표님은 곧장 은지를 찾아오더니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은지야, 이 좋은 걸! 이걸 대체 왜 버린 거야!”」
「“왜긴요, 구려서죠.”」
「“너, 넌 뭐 귀에 다이아몬드라도 끼워 놨어? 이게 어딜, 도대체가 어떻게 들어야 ‘구리다’라는 평이 나오는 거냐!”」
대표님의 절규 섞인 외침에 나는 옆에서 격하게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 ‘휴지통’에 들어간 것 중 내가 개인적으로라도 쓰고 싶을 정도로 아까운 곡이 정말 많았으니까.
「“버리지 말고 완성해 주라, 은지야. 제발, 제에에발 부탁이다. 응?”」
과연, 받아들일까.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싫어요.”」
은지가 듣는 척도 안 하니, 대표님은 나한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대표님과 시선이 마주친 난 어깨를 들썩이며 씁쓸하게 웃었다.
‘제가 뭘 어쩌겠어요.’
쟤는 이은지인걸요.
애초에 내 부탁을 귓등으로라도 들어주는 애였으면 진작 우린 첫 정식 앨범을 냈을 것이다.
내가 저 고집불통을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는 건 사실 대표님도 알고 있다.
대표님은 이후 은지한테 통곡에 가까울 정도로 휴지통 속 곡을 버리지 말라며 비셨다.
하지만 그런 절규에도 불구하고 은지는 1초의 고민 없이, 일말의 아쉬움 없이 ‘삭제’ 버튼을 눌러 버렸다.
그날 대표님은 사라진 파일들과 함께 절규했다.
나 역시 속이 쓰리긴 마찬가지였다.
「“갈아엎으면 엎을수록 오히려 더 구려진단 말이에요. 싫어요!”」
그렇게 안 하면 곡이 안 나온다는 말에 대표님과 난 눈물을 머금고 ‘그래, 네 마음대로 해라’라며 놓아 줄 수밖에 없었다.
어쩌겠어.
그게 우리 작곡가님 방식이시라는데.
반쯤은 비꼬는 말이기도 했지만, 은지의 말이 그렇다고 틀린 건 아니었다.
‘손을 대면 댈수록 구려진다.’
처음의 느낌에 이것저것 더해지면서 잡탕이 되어 버리는 건 창작의 영역에서 흔히 겪는 일이다.
내가 쓴 가사 또한 그랬고, 팬들의 평가가 좋은 곡을 보면 대부분 막힘없이 술술 써 내려가서 크게 만진 것 없이 완성된 곡이 많았다.
뮤직비디오 또한 같은 규칙인 것 같았다.
이것저것 더해진 것 없이 단순하고 직설적인 메시지가 전달될 때 반응이 가장 좋았다.
그런 의미에서…….
작업실 1층 천장을 통해 2층으로 전달된 이번 곡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일렉 기타의 긁는 소음 뒤로 미묘하게 어긋난 베이스.
그걸 덮어 버리는 신나는 드럼.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과 더불어 가슴 한편에 뒤틀린 감정선이 느껴지는 그런 곡이었다.
하지만 노래가 끊긴 이후 더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봐선, 이번 곡도 은지에게 선택받진 못한 모양이다.
혹시나 해서 바닥에 귀를 대고 드러누운 채 휴대폰을 이용해서 클라우드를 켜 봤다.
‘이건 의외인데.’
없다.
클라우드 속에는 새로 업로드된 파일 같은 건 없었다.
추가된 파일이 없다는 건, 이번 곡은 저장조차 안 했다는 말이다.
그건 곧, 이번 곡은 아예 버려졌다는 말이었다.
‘아까워. X나 아까워!!!’
취향을 저격함에도 불구하고 버려지는 곡을 볼 때면 정말 과장 없이 진심으로 가슴이 쓰리다.
이럴 때면 진짜 그냥 ‘솔로로라도 활동할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은지가 마음에 안 든다던 곡들을 모아서 솔로로 미완성이라는 타이틀 걸고 혼자라도 이렇게 일이 없을 때 활동하면…….’
문득 스쳐 가듯 떠오른 생각이었다.
근데, 이거 의외로 나쁘진 않을지도?
작곡가도 작사가도 자체 생산…….
‘구름 쌤이랑 클라우드 댄스 팀이 고생하긴 하겠지만…….’
그것 역시 몸 굳는다며 투덜거리던 클라우드 형, 누나, 동생들을 생각하면 나쁘진 않은 느낌이다.
게다가 실제로 아이돌들처럼 여럿이 활동하는 그룹을 보면 개인이 솔로로 앨범을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거기다 난…….
어떻게 보자면, 이미 솔로 경험은 넘치게 풍부한 상황이기도 하니까.
자신은 있다.
은지가 살아 돌아온 이후 내 첫 목표는 우리 남매로의 ‘데뷔’가 목적이었다.
그리고 그건 지금 잘 해 나가고 있다.
노래뿐만 아니라 예능에서도 연락은 무수하게 오고 있으니 부족하진 않다고 생각한다.
‘내 예능감은 문제지만…….’
큼, 이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까.
아무튼, 꽤 괜찮은 제안인 것 같으니 날 잡고 대표님한테 말씀을 드려 봐야겠다.
혼자만의 계획을 짜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은지의 작업 소리는 여전히 멈춰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발소리가 계단을 오르는 것 같았다.
평소라면 적어도 네 시간은 더 붙잡고 있어야 할 은지가 일찍 작업을 끝마친 모양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솔로니 뭐니, 이런 딴생각을 할 시간에 내 행동이나 먼저 가다듬어야 했다는 걸.
아니, 적어도 내 방문이라도 빨리 닫아야 했다.
덜컥, 철컥, 쾅!
순식간에 계단을 올라온 듯 갈색 알루미늄 현관문이 시끄럽게 열렸다.
“……뭐 하냐?”
벌컥 문을 연 은지는 집 안으로 들어서려다 굳었다.
내 방은 현관에서 바로 정면으로 보인다.
방문을 열어 뒀던 탓에 본의 아니게 문을 열고 들어온 이은지랑 정확하게 눈이 마주쳤다.
나는 그제야 내 모습을 제삼자의 시선에서 생각해 보게 됐다.
어떻게든 1층에서 작업하는 소리를 들어 보겠다고 방바닥에 귀를 댄 채 드러누워 있는 모습.
오. 쉣.
차라리 평소대로 웃기라도 할 것이지.
“……?”
은지는 진짜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듯 갸웃거리면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내가 바닥에 귀를 대로 엎어져 있는 모습을 말이다.
“……어.”
뭐라고 핑계를 대려고 했다.
하지만 싹수없는 동생은 내 핑계는 듣지도 않은 채 누워 있는 나를 넘어 본인 방으로 튀어 들어갔다.
‘젠장.’
뒤늦게 민망함을 이겨 내고 바닥에서 일어나 봤지만, 이미 늦었을까.
벌떡 몸을 일으키자마자 난 은지의 방으로 향했다.
핑계도 댈 겸, 오늘 만든 곡에 관해 이야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이은지 방문을 연 순간.
‘……?’
이번엔 내가 현관문을 열었던 은지처럼 얼어붙어 버렸다.
‘쟤 뭐 해?’
이은지는 옷과 이불이 널린 잠자리 위에서 입술을 우스꽝스럽게 벌린 채 손거울을 들고 있었다.
다른 손에는 마스카라인 듯, 검은 솔을 속눈썹에 바르고 있는 것 같았다.
“뭐 하냐?”
“약속 있어서.”
아, 약속이 있구나.
근데 작업하다 말고 갑자기?
“근데 야 인간적으로 좀 씻기나 하고 화장하지.”
“시비 걸지 마셈. 그리고 나 씻었거든?”
“언제?”
“어제저녁에.”
“아, 그러셨어요?”
허허.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린 그때였다.
휙.
검은 가죽점퍼 하나가 머리 위로 날아들었다.
“나가. 옷 갈아입을 거야.”
“넌 뭐 던져도 꼭 골라도 니같이 묵직한 옷을 던지냐?”
“응. 안 들려, 안 들려~. 꼬우면 내 방에 들어오질 말던가.”
“유치하기는.”
“아, 나가기나 해!”
핑계고 뭐고 뭘 더 할 말이 없는 유치한 대화에 그냥 문을 닫고 나왔다.
은지는 학교 폭력 사건으로 우연히 동창생과 다시 연락된 이후 종종 친구를 만나러 나간다.
저 성격에 친구가 있다는 게 놀랍다.
‘……솔직히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지금 은지는 나보다 친구가 훨씬 많을지도…….’
아무튼.
이은지는 보통 이렇게 갑작스럽게 약속이 잡혔을 땐 대부분 편안한 차림으로 나가는 일이 잦았다.
‘저렇게 화장하고 나가는 경우는 최근에 생일날……?’
방문을 닫고 나니 문득 의문이 떠올랐다.
이어서 그 의문에서 ‘쎄―’ 하달까.
그다지 좋지 않은 직감이 느껴졌다.
“야, 너 오늘 누구 만나러 가냐?”
“…….”
직접 묻는 게 편할 것 같아서 문 너머에 들리도록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일부러 무시하는 건지 방문 너머의 은지는 대답이 없었다.
어정쩡한 은지의 대응 때문일까.
「“근데, 넌 무슨 상관이 있다고 왜 은지한테 소리치고 있냐?”」
‘같이 쫌 살자’ 촬영 쉬는 시간 벌어졌던 유혈 사태 당시.
에이슬이 선을 넘던 그때 문득 시우의 행동이 머릿속을 스쳤다.
이어서 우리가 투덕거리던 그때도.
시우가 끼어들었던 그 순간까지.
왠지 은지가 지금 누구를 만나러 가는지 느낌이 오는 것 같았다.
“이은지, 너 혹시 오늘 시우 만나냐?”
벌컥.
방문이 열렸다.
“X친, X나 소름 돋네, 어떻게 알았대?”
“찍었는데? 너희 뭐 썸 타?”
툭 던진 질문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예상치 못하게 보고 싶지 않은 장면을 봐야 했다.
“극! 그런 건 아니거든…… 아직은.”
무슨 순정 만화 속 캐릭터처럼 수줍어하는 낯선 은지.
와.
순간 진심으로 역하고 징그러워서 소름까지 돋았다.
“뭔데? 그 극혐하는 표정.”
“너 같으면 안 짓게 생겼냐. 어으!”
팔뚝을 쓸어내리며 섬찟한 기분을 털어 내자 은지의 신경질 섞인 발차기가 날아왔다.
“응, 안 맞아~.”
“아오, 씨.”
가뿐하게 날아오는 다리를 피하며 되물었다.
“이은지, 너 니 생일 때도 시우랑 놀다가 늦게 들어온 거지?”
“뭔 상관이야! 사고는 안 칠 테니까 걱정하지 마셔!”
사고? 뭔 사고?
과하게 발끈한 모습에 처음엔 놀릴 생각으로 휴대폰을 들었었다.
“오케이, 사고 안 치신다는 이은지. 그래 놓고 오늘 또 늦을 테니까.”
“뭐래!”
“나한테 불똥 안 튀게 난 대표님한테 보고해 놔야지.”
“아, X친, 이은호, 잠깐만! 대표님한테는 말하지 마! 잠깐 보고 오는 것뿐이라고!”
“잠깐? 자암까안? X랄하네. 잠깐이라기엔 니가 지금 하고 있는 꼴이―.”
그때였다.
은지는 내 휴대폰을 빼앗을 생각이었는지 손을 뻗어 왔고, 내 엄지는 대표님 프로필의 통화 버튼 위에 있었다.
―달라진 난♬
통화 연결음이 이어졌고, 은지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소리쳤다.
“빠, 빠, 빠, 빨리! 빨리! 빨리 끊어!”
“어, 어…….”
―어~. 그래. 내 새끼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