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69)
“이거 써.”
싸늘한 공기에 당황하고 있던 그때, 지키가 조용히 물통을 건넸다.
“이건 왜……?”
물이라도 마시라는 건가 싶었다.
“시원한 거 여기, 있으면 붓기 괜찮아.”
아마 은지한테 맞았던 부분이 여전히 붉었나 보다.
지키는 부어 있는 부분에 찬 생수통을 대고 있으라는 의미로 준 것 같았다.
“사고?”
지키는 한국어가 아직 서툴다.
회귀 전 그녀라면 한국어로 설명을 해도 괜찮았겠지만…….
“음. 아니, 사고까진 아니고, 그냥 헤프닝이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돋움체”
지금 그녀에겐 이편이 오해를 덜 키울 것 같아서, 난 간략하게 지키에게 편한 영어로 대답했다.
“고마워, 은노우.”
지키는 이런 배려가 고마웠는지 밝게 웃으며 짤막한 인사를 남겼다.
근데 은‘노우’가 아니라 은‘호’인데.
“호. 은노가 아니라, 은호가 맞아.”
“응? 아, 응. 은, ‘호’.”
틀렸다는 걸 잡아 주자, 지키는 또 틀리지 않기 위해 신경 쓰며 ‘호’를 강조하며 답했다.
“땡큐, 지키.”
생수통을 들어 보이며 인사하자 지키는 도움이 되었다는 것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였다.
문득 뒤에서 시선이 느껴져서 돌아봤다.
‘아.’
역시, 에이슬의 시선이었다.
에이슬은 다소 굳은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제야 난 에이슬이 가지고 온 티슈 박스를 의식했다.
“너도, 고맙다. 휴지.”
지키에게도 했으니까.
에이슬에게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인사했다.
어쨌든, 곧장 휴지를 가져온 건 고마운 일이 맞으니까.
이후에 나는 잠시 고민했다.
내가 지금 하고 싶은 말이 ‘고맙다’라는 인사 뒤에 곧장 이어 하기에 좋은 내용은 아닌 것 같아서.
하지만,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지.
‘우리’ 일이니까.
“그런데 에이슬.”
“응?”
“놀라게 했다면 그건 미안한데, 앞으로는 우리 일은 우리가 알아서 할게.”
“…….”
“네가 은지한테 굳이 큰 소리를 낼 필요는 없어.”
“아…….”
“까불고 싹수없긴 해도 내 동생이거든. 그러니까 내가 알아서 이야기할 거야. 알겠지?”
확실하게 선을 그었다.
회귀 전에는 목줄이 잡혀 있어서 차마 긋지 못했던 그 ‘선’.
너는 우리와 가족이 아니라는 그 ‘선’.
대답하는 에이슬의 얼굴이 눈에 띄게 훅 붉어졌다.
“죄송해요. 제가 조금……. 죄송합니다.”
에이슬은 곧 창피한 듯 자리를 떴다.
저렇게 가 버리면 내가 나쁜 놈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
‘아닌가?’
하긴, 계속 불편하게 버티고 있는 것보다는 이편이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
난 뒤늦게 이은지를 돌아봤다.
그때, 은지는 심각한 얼굴을 하며 에이슬이 들어간 방 쪽을 가만히 노려보고 있었다.
* * *
둥, 두둥, 둥, 둥, 둥.
두둥, 둥, 둥, 끼익.
1층 녹음실에서 은지가 비트를 찍어 내고 있다.
문을 열어 놨는지 2층 제 방에 누워 있던 은호가 온몸으로 베이스의 울림을 전달받을 만큼 은지의 작업은 오늘따라 방음이 잘 안 되고 있었다.
은지는 한창 건반을 누르다 공중에서 손을 멈췄다.
“에이슬…….”
머릿속이 온갖 노래가 뒤섞여서 복잡하다.
이틀 전 연탄이의 행동 때문에, 오랜만에 내 머릿속에서 또 한 번 불협화음들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같이 쫌 살자’ 녹화를 마치고 돌아온 날 저녁.
2층 현관문을 닫자마자 난 연탄을 붙들며 물었다.
“어땠어?”
『뭐가?』
“니가 말한 ‘뒤틀린 시간’인지 뭔지 하는 그거 말이야.”
『……아!』
급하게 묻느라 본의 아니게 길이 막힌 이은호는 짜증이 난 얼굴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뒤늦게 시선을 의식하고, 난 재빠르게 신고 있던 부츠를 대충 벗어 던지며 연탄이를 품에 안아 들었다.
“일단 내 방으로 가서 마저 이야기하자.”
『엉.』
연탄이와 내가 그렇게 곧장 방으로 가려던 그때였다.
덥썩.
이은호 손이 내 뒷덜미를 낚아챘다.
‘컥!’
방으로 뛰어가다 말고 옷깃에 목이 걸려 그대로 엉덩방아를 찍었다.
확 열 받아서 한마디 하려고 했는데…….
“어딜. 손이랑 발은 씻고 가라, 좀. 너 발바닥에 지금 명태 냄새나거든.”
“명태는, 미친X아! 아니거든! 차라리 오징어라고 하든가!”
“그래, 그럼 오징어.”
다른 쪽으로 열 받아서 엉덩방아는 순식간에 머릿속에서 잊혀 버렸다.
태연하게 대꾸하는 이은호.
뒷덜미를 잡고 있는 이은호 손을 신경질적으로 쳐 내고 욕실로 향했다.
내 발을 씻는 동안 연탄이는 잠시 변기 뚜껑 위에 앉혀 뒀다.
“너도 닦아.”
『응.』
변기 뚜껑 위에 앉아 있던 연탄이 내 눈치를 보며 타일 바닥으로 내려왔다.
물을 쏴 주자 연탄은 바닥에 발바닥을 문지르며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서 발을 씻었다.
“자, 그래서 에이슬 직접 보니까 그 시간에서 벗어난 어쩌고가 맞아?”
본격적인 대화는 그렇게 사이좋게 발을 씻고 나와서 내 방에 들어간 이후부터였다.
건반에 씌워 둔 가상 악기를 로즈에서 일렉 기타로 변경했다.
일렉도 종류가 많아서 원하는 느낌을 찾아 마우스가 위아래를 오갔다.
한참을 뒤적거리다 다시 건반을 두드렸다.
C, D, Em, Bm.
느낌 따라, 머릿속에 들리는 소음을 따라 하나씩 음정을 쌓아 가다 보면 그제야 머릿속에서 들리는 이 음과 흡사해져 간다.
둥둥둥 둥…….
일렉 기타로 반주를 깔고 난 뒤, 처음에 깔았던 베이스를 통째로 삭제하고 다시 찍기 시작했다.
이렇게 작업을 하다 보니 문득 이은호 목소리가 귀에 아른거린다.
너무 자주 들어서 그런가?
「“니가 도자기 장인이냐? 뭐 하나 마음에 안 들면 다 삭제해 버리고 있어. 아깝게. 저장해. 저장을 좀.”」
이은호는 이렇게 작업하는 내 모습을 보고 이렇게 자주 말하곤 했다.
나는 응용에는 영 재주가 없어서 떠오르는 그대로 만든다.
그렇기에 내가 쓸 수 없어서 버리는 것뿐이다.
좋은 파츠와 보석이 있다고 무조건 예쁜 네일 아트를 만들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모든 것들이 어우러졌을 때 그제야 그 파츠는 제 쓸모를 다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음악 역시 그렇다.
재료가 많으면 좋지만, 빛바랜 재료는 결국 쓰지 않게 된다.
그때 가면 또 더 좋은 게 있을 거고, 없다면 없는 대로 음악은 나온다.
그게 나니까.
그게 내가 만드는 내 노래니까.
이런 잡다한 생각을 거쳐서 나온 지금 내 노래의 느낌을 표현하자면 음, 시끄럽다.
하지만 너무 시끄러워서 오히려 고요하다.
이게 그 백색소음인가.
혼자 별생각을 다 하며 손과 귀는 쉬지 않고 제 역할을 다했다.
헤비메탈과 재즈 그 어딘가.
하나하나 쌓아 가듯 가상 악기는 이후 드럼으로 변경했다.
이번엔 드럼 비트를 찍기 위해서였다.
발판을 한 번 밟자, 비트와 함께 내가 지정했던 구간으로 되돌아가며 그동안 쌓았던 것들을 한 번에 연주했다.
곁에 뒀던 마이크를 집어 들었다.
우리는 ‘같이 쫌 살자’에 같이 가기 전에 에이슬에 대한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그때 연탄이가 말했다.
「“너는 이번엔 괜찮을 거야. 넌 나랑 연결돼서 네가 위험해질 일은 없거든.”」
나는, 위험할 일이 없다.
「“시간은 너를 기점으로 뒤틀렸어. 그건 알고 있지?”」
시간은 나를 기준으로 뒤틀렸다.
연탄이 에이슬을 직접 마주하게 하기 전에 나눴던 대화들이 머릿속을 계속 어지럽히며 불협화음을 만들어 낸다.
ah― ah 쉬운 말은 아니야
You’re never alone
At least I was there
적어 다 다라 다다 다
벨라디 라비라 바라다
우린 그래
「“그런데 너희 오누이는 가족이 없잖아. 있어도, 함께한 시간이 없잖아.”」
ah- ah
이거 쉬운 말은 아닌걸
일렉 기타의 치직거리는 연주가 잠시 멎었다.
이어서 다시 화려하게 연주를 이어 갈 때, 타이밍에 맞춰 나도 아무렇게나 떠오르는 단어를 뱉어 댔다.
―레 같이 찢어진 페이지
내 이야기가 곧 네 이야기
튀어 나간 바늘이
「“만일 지금 그때의 기억을 가진 ‘타인’이라는 건, 은지, 네 생명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지.”」
「“그 시간에서 은지, 널 해한 인간일 확률이 높다고.”」
내 못난 고장 난 시계
이건 고쳐지질 않아서
Tik and Tok
Please 또 튀어 나간 바늘이 on
the 또 찔러
내 걸 Please
「“딱히, ‘보인다’는 것보다는 ‘시간’의 손에서 벗어난 뒤틀린 존재는 내 시선에서 이질적인 개체로 인식되거든.”」
그냥 아무 일 없이
uh, uh
제발 다음 장으로 가자
Please…….
……Please.
………Please
제발.
don’t leave me here alone
“제발…….”
어느 순간 가이드가 아니라 기도가 되어 버렸다.
나는 지금 너무 즐겁고 행복한데.
이 시간이 깨져 버릴까 봐 두려워서.
「“이질적인 개체가 맞아. 그 녀석.”」
그날, 연탄이는 대답했다.
연탄이가 한 대답의 의미는,
에이슬은…… 아니, 에이슬‘도’ 이은호랑 내가 기억하고 있는 ‘그 시간’을 알고 있다는 말이었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불쌍한 아이…….”」
연탄이 이어서 속삭이듯 혼잣말처럼 남겼던 그 말을 하지 않았다면 괜찮았을 것 같았다.
하지만 들어 버렸고, 그게 마음에 걸렸다.
‘누가.’
‘도대체 누가 불쌍한 건데.’
나는 곧장 연탄이에게 물었다.
그건 무슨 의미냐고.
하지만 연탄은 입을 다물었다.
이럴 때마다 솔직히, 좀 미쳐 버릴 것 같다.
「“애초에 태가 났다면 벌써 ‘시간’이 찾아와서 네 꿈에 온갖 난리는 다 부렸을걸?”」
시간.
째깍거리는 시계의 시간을 마치 형태가 있는 양 표현하는 것이라던가.
도대체가 이 망할 검은 고양이 놈은 숨기고 있는 게 몇 가지나 더 있는 건지.
그날 난 참다 못해서 터졌다.
이 비밀이 넘치게 많은 망할 검은 고양이 놈한테 화가 났다.
「“이 방에서 쫓겨나기 싫으면 말해 줘. 얼른!”」
당장 말해 달라는 협박을 했다.
화보다는 어린 투정에 가깝긴 했지만.
‘연탄이니까.’
나는 연탄을 믿었다.
지금까지 연탄이가 나한테 보여 줬던 행동들을 믿었다.
나의 연탄이니까.
연탄이라면 어쩔 수 없다는 듯 적어도 모른 척 힌트라도 이야기해 줄 줄 알았다.
숨기고 있는 것의 조금이라도 나한테 져 주며 이야기해 줄 줄 알았다.
해 주길 바랐다.
넘어와 주길 바랐다.
하지만 연탄이는 그날.
망설임 없이 내 방을 나갔다.
‘대체 왜.’
이슬이한테 뭐가 있기에.
‘걔한테 뭘 봤길래.’
뚝.
더 찍어 둔 비트가 없어서 노래는 연주가 되던 중간에 끊어졌다.
비트는 다시 처음부터 돌아와서 재생된다.
내 목소리가 더해져서 의미 없던 연주에 멜로디가 생겨났다.
허밍에 가까운 흥얼거림은 가사가 들어갈 음절의 힌트가 됐다.
하지만 이걸 이은호한테 보여 주진 않을 것이다.
이은호는 눈치가 좋아서, 아마 이걸 듣고 내가 앓고 있는 고민을 눈치챌 테니까.
망할 오빠 놈이 쓸데없이 의외의 부분에서 더럽게 세심해서.
가끔 이은호한테 가이드를 들려줬을 뿐인데 이은호는 내가 들키고 싶지 않은 부분을 예리하게 잡아 낼 때가 많다.
창피한 건 싫으니까.
나는 망설임 없이 거의 완성된 가이드를 삭제했다.
파일을 지워버리니 그간 고민도 노래랑 함께 휴지통에 처박은 걸까.
갑자기 머리가 비워지면서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하…….”
숨 돌릴 곳이 있었으면 하던 그때였다.
작업하는 동안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휴대폰을 무음으로 해뒀었는데, 보지 못한 메시지 하나가 와 있었다.
[시우 ― 은지야 바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