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68)
“오는 길에 무슨 이야기 했어?”
“별말 안 했는데.”
“그래?”
은지는 정면의 조잘거리는 승연과 태현을 구경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 것치고는 얼굴이 밝던데.”
“내 얼굴은 원래 밝았어.”
“X랄.”
“쫌.”
“…….”
은지의 입이 오리주둥이처럼 툭 튀어나왔다.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 말을 이었다.
“내 생일 이야기 했어.”
“웬 생일?”
“미션이 생일 카드 찾아오는 거였거든.”
“아. 그래서 ‘나’를 찾아오라고 했던가, 그렇게 말한 거구나.”
“응.”
짧은 대답에 은지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 것 같았다.
“근데 생일 때 우리 뭐 하는 거 없지 않나?”
“올해는 니가 케이크 해 줬잖아.”
“아, 그거. 그게 무슨 케이크야. 그냥 장난치려고 만들었지.”
“장난을 그렇게 치는 애가 어디 있냐?”
“요깅.”
은지가 혀 짧은 소리를 내며 검지로 자신을 가리켰다.
표정이 차게 식었다.
“하핰핰핰.”
정색이야말로 원한 반응이었던 걸까.
은지는 미간까지 구기며 깔깔거렸다.
“하여간 또라이, 또라이, 어으.”
도리도리.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리고 있을 때 갑자기 은지가 웃으며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근데, 그래도 그때 오빠 내 똥 케이크 다 먹었던 거 보면 마음에 들었었나 봐?”
그 윤기마저 반지르르하게 돌던 케이크가 떠올랐다.
“제발 부탁인데 더럽게 니 똥이라고 하지 마라.”
“알았어. 알았어. 하핰, 그래도 그거 오빠 아주 싹싹 긁어 먹었던데?”
“먹긴 뭘 먹어. 선물로 줘 놓고 니가 새벽에 다 먹어 놓고.”
“뭔…… 솔?”
우린 순간 서로를 황당하게 돌아봤다.
‘이거.’
‘뭔가, 데자뷰 같은데.’
왠지 모르게 익숙한 상황이었다.
그 순간, 스파크가 튀듯 우린 동시에 ‘아이스크림 실종 사건’을 떠올렸다.
그날 범인은 드디어 사람처럼 변할 수 있다던 걸 들킨 연탄.
“아.”
“연―!”
범인을 깨달은 그 순간, 이어서 은지가 버럭 소리치며 연탄을 불렀다.
정확히는 부르려다가 입을 닫았다.
사실 촬영장만 아니었다면 은지 성격에 달려가서 멱살부터 잡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람이 너무 많다.
그리고 예전처럼 시선을 신경 쓰지 않기엔 은지는 성장했다.
주변의 눈치를 본다는 말이다.
현재 촬영장에는 연탄‘만’ 주시하는 스태프가 열은 족히 넘는다.
“집에 가면 뒤졌다, 저거.”
은지는 연탄을 혼내는 일을 미룰 수밖에 없었다.
처음으로 ‘괜히 데려왔다’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니가 알아서 해라.”
난 사실 연탄 놈이 내 ‘허락 없이’ 먹었다는 것에만 화났을 뿐.
그다지 ‘먹었다’는 것엔 의외로 불만이 없었다.
‘애초에 관리 중인지라 초콜릿은 먹을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고…….’
관리가 끝난 뒤에 먹는다고 해도 그때까지면 이미 상하지 않았을까.
심지어 거북한 ‘그것’ 모양 때문에 거부감이 드는 것도 있었고 말이다.
하지만 먹고 말고와는 별개로.
‘난 왜 쟤가 마음에 안 들까.’
다시 따뜻해진 전기담요 위에서 뒹굴뒹굴하는 검은 고양이 녀석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언짢다.
티를 안 낼 때가 많아서 그렇지, 자주 이랬다.
연탄만 보면 기분이 좋지 않다.
특히 난 딱히 주변에 관심이 있는 편도 아닌데, 연탄 놈이 은지랑 하하 호호 하는 꼴을 보면 속이 역할 정도로 기분이 뒤틀리는 느낌이 든다.
‘꼭……. 그래.’
폐가에 살던 시절, 고양이가 재미로 새와 쥐를 잡는 모습을 상당히 흔하게 봤었다.
고양이들은 종종 장난감처럼 소동물을 잡았고, 시체는 먹지도 않고 버려 둔다.
고양이는 쥐를 먹기 위해서만 잡지 않는다는 걸 직접 본 그때.
연탄이 은지와 하하 호호 할 때, 그걸 지켜보는 내 기분은 딱 그 풍경을 보는 느낌이다.
‘불쾌하다.’
무감각하게 연탄을 지켜보고 있던 그때였다.
“그래도 어떻게 보면 좋은 게 좋은 거지.”
“갑자기?”
“우리 관리 때문에 먹지도 못했잖아. 상하기 전에 먹어 준 애가 있는 게, 어떻게 보면 다행이니까.”
내가 연탄이 녀석을 불쾌하게 느끼는 데에는 유독 저놈한테 너그러운 이은지의 태도도 문제였다.
“넌 보면 저놈한테만 유하더라.”
“연탄이잖아.”
“……니 오빠한테나 그런 너그러운 마음 좀 가져 봐라.”
“내가 미쳤냐?”
“이것 봐. 쫌.”
“…….”
은지는 눈을 피했다.
그때였다.
조금 전까지 생일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11월 11일, 은지의 생일날이 떠올랐다.
* * *
아침에 미역국에 거하게 밥을 말아 먹은 은지는 뜬금없이 쉬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감았다.
뭐 머리를 감은 걸로 그러냐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은지다.
쉬는 날에 이은지가 머리를 감는다는 건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것과 같다.
아무튼 이후 이은지는 머리를 감더니 갑자기 화장까지 했다.
그러곤 화장이 무색하게도 마스크와 모자를 깊이 눌러쓰더니 살금살금 집을 나갔다.
누가 봐도 수상쩍은 모습이었지만, 알아서 잘하려니 싶어서 내버려 뒀다.
쟤도 이젠 성인인 데다 회귀 전을 포함하면 절대 어린 나이는 아니니까.
‘그냥 나가지, 저건 또 뭔 짓거리래…….’
한편, 기척을 죽여 봤자 조심성 없는 은지의 걸음은 거기서 거기인지라…….
그 조심하는 모습이 오히려 웃기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생일날 외출한 은지는 평소보다 늦게 집에 들어왔다.
덕분에 대표님의 긴 잔소리는 덤이었다.
「“시우 어때?”」
「“어떻긴 뭘.”」
「“같은 남자가 봤을 때 말이야.”」
생각의 흐름은 왜인지 시우를 보며 뜬금없이 어떻냐고 묻던 은지 말이 떠올랐다.
이어서 갑자기 은지와 내 싸움을 말리던 시우의 모습까지.
이거, 혹시.
“야, 이은지.”
“엉?”
“혹시나 해서 묻는데, 너 생일날 시우 만납―!”
그때 일이 떠오른 겸 혹시 생일날 시우를 만났냐고 물어보려고 했다.
하지만 날아온 건 대답대신 은지의 손바닥이었다.
퍽.
내 입을 막으려던 것 같은데, 힘 조절 미스인지 얼굴을 제대로 맞았다.
아프다.
“어떡해, 괜찮아?!”
괜찮겠냐, 새끼야.
병 주고 약 주는 것도 아니고, 이야기를 이어 가기는커녕 얼굴이 얼얼해서 붙잡고 있기 바빴다.
“아, 어떡해. 미안, 이은호. 진짜. 갑자기 그 얘길 왜 해서…….”
이건 뭐, 사과를 하는 건지 내 탓을 하는 건지.
한편, 진짜 실수였는지 고개를 들자 은지는 울먹거리기까지 하고 있었다.
“아으, 니가 때려 놓고 울긴 왜 우냐?”
“아니, 끅, 아니. X발. 진짜, 미안해.”
“쫌…….”
어지간히 미안하긴 했나 보다.
거기에 ‘X발’은 왜 끼워 넣는 건지.
아무튼, 카메라가 꺼져 있고 쉬는 시간인지라 이쪽을 보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은지가 스태프들이 있는 방향에서 등을 진 덕분에 우는 건 들키지 않았다.
게다가 평소에도 자주 투덕거렸던 탓일까.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를 챈 사람들도 몇몇 있긴 했지만, 딱히 관심은 없었다.
그냥 우리가 또 싸우나 보다 하고 눈만 흘길 뿐이었다.
‘에휴.’
지가 때려 놓고 놀라서 우는 애한테 무슨 화를 내겠나.
“됐어, 괜찮아. 여기서 할 말은 아니라는 건 잘 알았다.”
“아, 진짜. 나 방금은 정말로 때리려던 거 아니었어, 진짜 미안.”
“오냐.”
이렇게 예민하게 구는 거 보니 그날 시우랑 무슨 일이 있긴 했나 보다.
얼얼했던 얼굴이 처음 맞았을 때보단 괜찮아졌다.
괜찮아졌다고 생각했는데…….
‘어……?’
얼굴을 쥐고 있던 손을 떼고 고개를 내린 그 순간.
주륵.
유혈 사태가 났다.
은지는 얼었다.
그때,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건지 에이슬이 티슈 박스를 들이밀며 물었다.
“오빠 괜찮아?!”
* * *
은지는 놀란 눈으로 에이슬 돌아봤다.
싸한 시선을 느낀 에이슬은 도리어 발끈하며 소리쳤다.
“왜 때린 거야!”
“아, 그게…….”
‘사고였다’라고 하려 했다.
“그…….”
상대가 에이슬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내가 이걸 왜 얘한테 설명하고 있지?’
은지는 입을 떼려다 갑자기 등장한 에이슬을 의식하자 혼란스러워졌다.
심지어 평소 에이슬은 은지에게 존댓말을 했다.
반말로 대하던 건 회귀 전 에이슬의 모습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쟤, 뭐야.’
은호를 바라보던 에이슬의 시선에서 느껴졌던 기묘한 불쾌감, 그 불쾌감에서부터 오는 기시감이 순식간에 몸집을 키웠다.
그무렵 왠지 입구 쪽이 시끌벅적했다.
시끄러운 분위기를 따라 마당엔 찬바람이 불었다.
아직 눈물이 채 마르기 전인지 불어오는 바람이 눈물 자국을 따라 차갑게 느껴졌다.
“에이슬! 뭐해, 너!”
시끄러웠던 건 파란 팀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는지, 시우가 은지와 은호가 있는 곳으로 다가오며 에이슬을 불렀다.
시우의 얼굴은 말티즈를 닮았다.
활동하던 시기와 겹친 탓일까.
희게 염색한 머리 때문에 더 그렇게 느껴졌다.
순하디순한 외모라 해도 미간에 주름이 지니 그런 시우도 적잖이 험악한 얼굴이 됐다.
물론 그래 봐야 은지의 무표정에 비해선 전혀 위협적인 느낌은 없었지만.
그래서인지 에이슬 또한 화난 시우에게 딱히 다른 감상은 못 느끼는 것 같았다.
“오빠가 무슨 상관이야.”
에이슬이 시우한테 대꾸했지만, 시우는 에이슬의 말은 무시한 채 은지를 돌아보며 물었다.
“왜 울고 있었어?”
“아,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야.
은지가 대답을 끝마치기도 전이었다.
“야, 은지 언니가 오빠 때린 거거든?”
“…….”
에이슬이 발끈하며 시우에게 소리쳤다.
시우는 은호와 은지를 번갈아 바라보더니 다시 에이슬에게 눈을 돌렸다.
“근데, 넌 무슨 상관이 있다고 왜 은지한테 소리치고 있냐?”
“언니가 때려서 오빠 갑자기 코피 났으니까!”
“어. 그건 알겠는데, 그건 형이 화낼 일이지, 에이슬 니가 은지한테 화낼 일은 아니잖아. 그리고 은지가 너랑 친구냐? 선배 아니야?”
“…….”
은호는 물론 은지까지도 평소 순하고 존재감이 없던 시우가 맞나 싶었다.
시우가 냉랭한 목소리로 몰아붙이자 에이슬은 그제야 제 처지를 깨달은 듯 ‘아차’ 하는 생각이 얼굴에 드러났다.
* * *
이게, 갑자기 무슨 일일까.
갑자기 얘들은 왜 여기서 싸우고 있어.
은지를 돌아보자 당황스러운 건 쟤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동공에 지진이 일고 있다.
“무슨 일이야?”
뒤늦게 이 상황을 발견한 석현 형이 놀란 얼굴이 되어 이쪽으로 달려왔다.
석현 형을 따라 지키와 태현 형과 승연 형까지 온다.
‘우리끼리 조용히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는데…….’
상황이 이상하게 꼬였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왜 니들이 싸우고 있어.”
애써 침착함을 되찾으며 난 에이슬이 건넸던 티슈로 대충 코피를 정리하며 말했다.
다행히 한 번 닦아 내자 코피는 찔끔 터지고 말았던 건지 더 흐르진 않았다.
은지도 피가 더 흐르지 않는다는 사실에 한숨을 흘리며 안심하는 듯 보였다.
“너도 뚝 해. 큰일도 아닌데 왜 난리야.”
은지는 아닌 것 같아 보여도 본인이 한 실수는 마음에서 길게 가져가는 편이다.
그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일부러 더 별일 아닌 것처럼 은지를 달랬다.
한편, 어쩐지 우리 주변 분위기는 내 코보다도 출혈이 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