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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67화 (267/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67)

딱히 느끼고 있던 건 아니었는데, 나도 그날 어지간히 들떴었나 보다.

생일 이야기로 본의 아니게 입이 트였다.

다른 사람도 아닌 에이슬 앞에서.

참, 별소리를 다 했다.

“…….”

급 현실감이 닥쳐온 이후로는 다시 입을 닫았다.

에이슬도 이만하면 된 건지 얼마 안 남은 돌아가는 길 내내 조용했다.

‘미션 할 땐 꺅꺅거리는 게 귀찮아서 전혀 눈치채지 못했지만…….’

에이슬 덕분에 통편집 걱정은 줄었다.

에이슬도 은지만큼이나 적잖은 겁쟁이라 많은 비명을 질러 댔다.

미션에 정신 팔렸던 터라 내가 뭐라고 했는지는 제대로 기억나지 않지만.

‘그래도 중간중간 받아치기도 했던 것 같으니까, 한 컷 정도는 건지지 않을까.’

통편집이라면 아쉽긴 하지만 예상했던 바였고, 그게 아니라면 이득이다.

“왔다! 형!”

“은호다!”

“은호야! 이슬아!”

우리가 뽑았던 빨간색 테이프가 감긴 막대기는 첫 번째 순서였다..

그래서일까.

“이슬, 어땠어? 은호는?”

“…….”

“은호야! 많이 무섭냐?”

“형, 무서웠어요?”

노란색 테이프를 가진 태현 형과 지키 뒤로 이어 파란색 테이프 팀인 시우와 석현 형까지 뛰어오며 물었다.

달려온 이유는 단 하나.

선발대의 후기를 듣기 위해서.

마당을 가르며 우르르 문 앞까지 마중하러 나온 후발대에게 해 줄 이야기는 하나뿐이었다.

“하나도 안 무서워요. 아무것도 없던데.”

여유롭게 웃으면서 말하자 그때였다.

“뻥치고 있네.”

왜 따라 나온 건지 은지가 이쪽을 보면서 킥킥거렸다.

“뭐.”

“오빠, 언니, 이은호 저거 지금 뻥치고 있어요.”

“쫌.”

방송에서는 호칭이라도 똑바로 붙이라고 몇 번을 말하는 건지, 이만하면 그냥 두는 편이 더 나을까 싶다.

“저 오빠 지금 구라 치는 중이에요!”

이걸 잘했다고 해야 할까, 다물라고 해야 할까.

경고를 들으면 고치긴 고친다.

또 실수해서 문제지.

아니, 이걸 ‘실수’라고 할 수 있는 문제인가?

아무튼.

“뻥 아니거든.”

틀린 건 정정해야 후련해서 결국 못 참고 반박했다.

정말 나는 안 무서웠으니까 거짓말은 아니다.

애초에 내가 무서워하는 건 귀신 같은 초자연적인 현상보단 현실에 더 많았다.

예를 들어 잘 해내야 하는 순간에 쏠리는 시선 같은 것들.

잠시 혼자만의 상상 우주를 떠돌아다니던 그때였다.

이은지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한 걸음 뒤에 있던 에이슬을 붙잡으며 물었다.

“이슬이도? 너도 안 무서웠어?”

에이슬은 아니나 다를까 고개를 저었다.

앞머리를 고정하던 용도로 꽂혀 있던 검은 핀 하나가 날아갈 정도로 격하게.

“봐, 무서웠다잖아!”

“에이슬이 무서웠던 거잖아. 내가 언제 이슬이가 안 무서웠다고 했냐?”

‘이슬이가’.

이 네 글자에 은지가 멈칫했다.

솔직히, 내가 뱉고도 나도 놀랐다.

고작 그거 이야기했다고 경계가 풀린 나 자신한테.

하지만 우리가 당황했다는 걸 눈치챈 멤버들은 없었다.

“와, 이은호 센 척하네! 풉!”

그리고 때마침 은지는 상황을 넘기기 위해 되지도 않는 도발을 했다.

“재밌냐, 모질아.”

“모질…….”

피식.

이은지 얼굴에 너무 훤하게 쓰여 있는 ‘모질……이 뭐더라?’라는 머릿속 물음표.

안 웃으려고 했는데.

아, 저것 때문에 표정 관리에 실패했다.

웃음이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는 우리 집 바보 때문에.

“…….”

“잘 생각해 봐. 모질이가 무슨 단어인지.”

“아, 알거든!”

“오냐, 널 위해 쉬운 말로 해 주마, 호박아.”

“아, 짜증 나! 이…….”

……?

은지가 한마디를 더 얹으려던 그때였다.

눈앞에 낯선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

보통 이렇게 우리가 싸울 때면 몸으로 막아서는 건 태현 형의 역할이었다.

워낙 자주 싸운 탓인지, 형은 이젠 ‘그만해’라는 말도 힘들다는 듯 말 대신 몸으로 우리를 막았다.

정해진 건 아니지만.

굳이 나누자면, 형이 자주 보인 행동이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앞에 있는 건 평소 우리를 말리던 태현 형이 아니었다.

“시우야?”

시우가 있었다.

당황한 건 우리뿐만이 아니었는지, 석현 형이 당황한 목소리로 시우를 불렀다.

“아, 그, 싸우지시, 아니, 싸, 싸우시지 말, 마시라고…….”

시우는 뻘쭘했는지 뒤통수를 문지르며 말했다.

‘뭐지.’

시우는 나한테 있어서 특별한 사람은 아니다.

지키처럼 인연이 있던 것도 아니었고, ‘회귀 전’ 이은지랑 잠깐 ‘썸’ 타던 사이였다고 아는 정도?

일단 이은지를 좋아했다는 것부터 쟤도 그렇게 멀쩡한 녀석은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시우는 최근엔 멤버들 사이에서 잘 튀지도 않고 그렇다고 죽지도 않는, 딱 중간 정도의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다.

카메라 앞에서는 평소 승연 형과 어울리거나 하는데, 꺼지면 글쎄.

두루두루 사이가 좋은 편인데 깊이 친한 사이는 없는, 딱 그런 느낌.

그런 애가 갑자기 가장 눈길을 끌던 우리 사이에.

심지어 지금껏 그 누구보다 가장 어색하게 섞여 들었다.

이은지도 나도, 우린 당황한 나머지 투덕거리던 것도 잊고 말문이 틀어막혔다.

고요한 공기가 내려앉은 그때.

석현 형이 마당 안으로 내 등을 떠밀었다.

“자, 자. 그만 싸우고 들어가기나 하자.”

형 덕분에 다들 어색했던, 그 무겁던 공기에서 반강제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오빠.”

“뭐.”

“시우 쟤 봐.”

은지가 불러서 뒤를 힐끔 돌아보자 시우는 귀가 붉어진 채 느리게 우리를 뒤따라오고 있었다.

“하여간 저런 면이 귀여워. 하핰.”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어 다시 이은지를 돌아봤을 때 난 후회했다.

등본상 혈육의 사생활 따위 전혀 알고 싶지 않았다고.

시우를 돌아보는 이은지 눈빛이…….

‘으.’

소름 돋을 정도로 두 번 보고 싶진 않은 표정이었다.

회귀 이전에도 난 은지의 친구라든가.

특히 연애사 쪽에는 정말 일말의 관심도 없었다.

애초에 알고 싶지 않으니까 보여 주지도 말았으면 하는 유일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랬는데, 시우는 이 시간에서 다시 한 번 마주쳤으니까.

그게 신기해서.

단순한 호기심 때문에 첫 만남 당시 짧게나마 이야기를 나눠 봤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심지어 그 이후론 난 쟤가 회귀 전에 이은지랑 그렇고 그랬다는 것을 자주 잊는 정도였다고.

“시우 어때?”

“어떻긴 뭘.”

“같은 남자가 봤을 때 말이야.”

“내가 알 바냐. 남자한테 관심 없어.”

“이은호, 여자도 관심 없잖아.”

“너 같으면 있겠냐?”

에이슬 때문에 그 고생을 했는데?

내 대꾸에 할 말이 없어진 듯 은지의 걸음이 느려졌다.

난 도망치듯 이은지를 뿌리치고 먼저 평상으로 향했다.

평상 위에는 언제 준비된 건지 사람도 못 쓰는 전기담요를 연탄이 놈만 쓰고 있었다.

“이야, 고양이 팔자가 상팔자다.”

“냐옹.”

분명 고양이처럼 대답했지만 내 귀에는 ‘그럼 너도 고양이 되든가.’라는 연탄의 시비가 들리는 기분이었다.

괜히 속이 꼬이는 기분에 전기담요를 따라 길게 늘어진 멀티탭의 코드를 뽑아 버렸다.

혹여나 다른 것과 연결된 건 아닐지, 그런 걱정은 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연탄이 전기담요 전용으로 준비된 건지 1구짜리 긴 멀티탭이었으니까.

이후 우리에겐 다음 팀이 돌아오기 전까지 짧은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그사이 멀티탭에서 분리된 연탄의 전기담요가 점점 차가워졌는지 연탄이 조금 부산스러워졌다.

연탄은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멀티탭에서 코드가 빠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리고 녀석은 곧장 내 쪽으로 날아들었다.

“하하핰.”

팍! 팍팍! 팍팍팍팍팍!

연탄은 화를 내는 건지 솜방망이 펀치를 엄청나게 날려 댔다.

하지만 통증은커녕 폭신한 발바닥 공격이 우습기만 하던 그때였다.

“왜 애 마음에 들어 하던 걸 뺐냐.”

“냥!”

은지가 제 편을 들어 주자 신나선 ‘냥냥’거리는 연탄 놈.

“뭔, 둘이 무슨 전생에 원수라도 졌어? 보면 오빤 자꾸 연탄이가 좋아하는 거에 항상 심술부리더라.”

음.

헛소리로 치부하고 넘길 법도 한데.

난 의외로 진지하게 이은지 말이 맞는 가설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싸해.’

그도 그럴 것이 연탄이 저 녀석이랑 처음 만난 이후, 난 저 녀석이 평범한 고양이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된 그때부터.

어쩌면 그 이전에도.

나는 항상 연탄을 불쾌하게 여겼다.

애초에 저 녀석이 거슬리는 짓을 많이 하기도 했지만, 뭐랄까.

본능적으로 녀석이 하는 모든 행동이 못마땅하게 느껴졌었다.

이건 감정적인 문제라기보단 생리적으로 불쾌한 쪽에 가까웠다.

“진짜 전생에 악연이었나?”

연탄은 내 말 따위는 들리지 않는다는 듯 이은지의 쓰다듬는 손에 얼굴을 비벼 대는 데 정신이 팔려 있었다.

아니면, 종종 그랬듯 본인한테 곤란한 이야기라 그냥 모른 척하는 거거나.

‘생일…….’

에이슬과 내내 생일 이야기를 했기 때문일까.

8월 30일 생일날, 별생각 없이 스쳐 지나갔던 연탄의 말이 떠올랐다.

「“내가 축하한다고 하기엔 양심이 없는 것 같은데, 선물로 내 수염이라도 줄까? 영물의 수염이라 귀한 건데 이거.”」

연탄은 오래전 ‘호랑이’였다고 했다.

정확하게는 산신이 되기 직전인, 영물이라고 했던가.

‘그딴 거 쓸 데도 없고 필요도 없다고 거절했었는데…….’

다시 생각하니 괜스레 오히려 그 앞에 했던 말이 걸린다.

「“내가 축하한다고 하기엔 양심이 없는 것 같은데……”」

내 생일을 축하하는 것에 왜 ‘양심’이 필요하지?

회귀 전 그 고생을 시켰기 때문에?

‘고생’을 시켰다면 은지에게 미안해해야지, 나한테 가질 감정은 아니었다.

어쩐지, 찝찝하다.

‘악연(惡緣)’이라는 그 단어가 입안의 모래알처럼 거슬리는 기분.

“우리 왔어.”

잠시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바깥에서 분주한 발소리가 났다.

벌써 지키와 태현 형이 돌아온 모양이다.

어라?

시간을 돌아보니 몇 분이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 정도면 그냥 바로 가서 미션 하고 나와야지 올 수 있는 시간인 것 같은데……?”

“응. 맞아. 그랬어.”

내가 중얼거리며 혼잣말처럼 흘린 말에 태현 형이 맞는 말이라며 고개를 끄덕거리더니 대답했다.

“벌써요?”

“지키도 이런 걸 딱히 안 무서워하더라고, 오히려 실망한 것 같던데.”

“맞아요. 나는 Original 한국 귀신 원했다!”

“아하…….”

지키는 회귀 전에 안내인을 자처하며 만났을 때도 한국 문화를 좋아했다.

기와집이라든가 궁이라든가.

전통과 관련된 것 외에도 괴담 같은 것도 영감을 얻을 수 있어서 좋아한다고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지키가 실망을 한 게 어쩌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이어서 간 파란 팀 석현 형과 시우는 태현 형과 지키가 미션을 깨고 돌아온 시간의 배가 넘어도 돌아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어디래요?”

“아직도 입구 근처래.”

“상자는 깠죠?”

“……아니.”

하하.

이 최고의 겁쟁이 팀 덕분에 오늘 12시 안에 자는 건 글렀다.

“이은호.”

“어?”

주변이 조금 시끌벅적할 때, 은지가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안 불편했어?”

“뭐가.”

“뭐긴.”

은지는 고갯짓으로 대상을 짐작할 수 있게 힌트를 줬다.

“아, 뭐. 딱히 불편할 필요가 없잖아. 공사 구분하면 돼.”

예상했다시피 에이슬과 팀을 이뤄 미션을 한 것에 관한 질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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