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66)
은호는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곁에 있던 에이슬은 은호의 표정을 보며 느꼈다.
“구렸어, 진짜.”
말은 곱지 않았지만.
‘꿈속에서도 저렇게 웃는 건 못 본 것 같은데…….’
은호에게 있어서 은지의 케이크는 즐거운 기억인 것 같았다.
꿈에서 본 자신이 최악이었던 그 시간을 통틀어, 가장 환하게 웃고 있었으니까.
* * *
8월 29일.
은호의 생일 하루 전.
은호와 은지는 내내 녹음하고 2층으로 돌아왔다.
끓는 물에 계란을 풀어 간단하게 계란국을 만든 은호는 국그릇 두 개에 국을 퍼내며 상 위에 올려 뒀다.
은지는 즉석 밥 하나를 전자레인지에 돌린 뒤, 절반으로 나눠 밥그릇 두 개에 나눠 담았다.
양념 하나 되지 않은 삶은 닭가슴살 두 덩이가 올라간 접시가 상에 놓였다.
곧 무대 복귀를 위해 관리 중인 탓에 식사는 고작 이게 다였다.
“아, 닭가슴살 물려.”
“그럼 계란 꺼내 줄까.”
“계란은 더 싫어.”
“그럼 그냥 차려 줄 때 얌전히 먹어라.”
은지는 입 안에 닭가슴살을 밀어 넣고는 얼굴의 모든 근육을 이용하여 ‘맛없어’를 표현했다.
은호는 가볍게 은지를 무시하며 먼저 식사를 마치고 싱크대에 그릇을 넣었다.
이후 은호는 곧장 제 방으로 향했다.
질긴 닭가슴살을 껌처럼 씹던 은지의 시선이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가는 은호를 뒤따랐다.
후루룩.
빠르게 국물을 흡입한 후, 은지는 자리에서 일어나 설거지를 했다.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는 건지 손이 바빴다.
초고속 설거지가 끝난 뒤.
끼익.
은지는 은호의 방을 힐끔거리더니 슬쩍 싱크대 아래 선반을 조용히 열었다.
선반에는 ‘쪼코파이’라고 쓰인 붉은 박스 다섯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그것들을 숨죽여 꺼낸 은지는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자마자 문을 닫았다.
띵!
“아, 깜짝이야.”
밝은 카톡음에 화들짝 놀라며 박스 하나를 흘렸다.
바닥에 떨어진 빨간 박스는 마침 깔아 둔 잠자리 이불 위에 떨어졌다.
은지는 개의치 않는지 이어서 나머지 박스들도 엉망으로 놓인 이불 위에 내던져 버렸다.
그러곤 방 한구석을 차지한 디지털 피아노 앞으로 향했다.
디지털 피아노 위에 놓인 휴대폰을 챙기기 위해서였다.
화려한 걸 좋아하는 은지의 성격이 그대로 반영된 듯 은지의 휴대폰 케이스는 금빛 펄과 검은 장식으로 화려하게 꾸며져 있었다.
[잔소리 대표님 ― 일찍 자라 녹음은 지금도 진도 빠르게 나가고 있는 거니까 또 밤새워 가면서 뭐 만질 생각하지 말…….]
박창석 대표에게서 온 긴 장문을 읽어 내려가던 은지는 두 문장이 넘어가자 읽기를 포기했다.
일말의 아쉬움 없이 휴대폰 액정을 꺼 버렸다.
손을 떠난 휴대폰은 과자 박스와 마찬가지로 이불 위에 던져졌다.
“으어.”
걸걸하게 목을 긁으며 좀비 같은 소리를 내더니 비척비척 이불 속으로 들어간 은지.
이불에 올려 뒀던 쪼코파이 박스와 휴대폰이 은지의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흩어졌다.
이후 은지는 이불에 누운 채 손에 잡히는 쪼꼬파이 박스를 가져와 뜯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이해되지 않는 행동들이 이어졌다.
은지는 마치 따뜻한 이불 속에서 다 녹여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박스에서 꺼낸 쪼코파이들을 하나같이 이불 속에 던져 넣었다.
이후 작업은 도저히 누워서 할 수 없었는지 미적거리며 몸을 일으켰다.
바스락, 바스락.
개별 포장이 되어 있던 비닐을 벗긴 파이들.
은지는 그걸 입속이 아닌 또 다른 커다란 투명 비닐 안으로 던져 넣었다.
초콜릿이 녹아 비닐에 붙어 버린 쪼코파이들의 상태를 확인하더니 이걸 원했다는 듯 은지의 표정은 굉장히 만족스러워 보였다.
‘대체 뭐 하는 거지?’
지금까지 은지를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연탄의 머리 위로 물음표가 무수하게 늘어났다.
『저기. 은지야, 뭐 하는 거야?』
“쪼코파이 뜯어.”
『그걸 묻는 게 아닌데…….』
은지는 더 대답하지 않은 채 파이들의 포장을 벗기는 것만 반복했다.
수작업 공장이 따로 없다.
은지는 끝내 다섯 박스에서 나온 파이들을 모두 뜯었다.
포장이 벗겨진 파이들은 은지가 준비한 커다란 비닐에 한가득 쌓였다.
잠시 후.
『뭐, 뭐 해?』
“쪼코파이 으깨.”
『왜, 왜……?』
“있어.”
『아까워……. 그럴 거면 나나 주지.』
실제 동물들에게 초콜릿은 독이다.
하지만 연탄은 ‘동물’이 아닌 존재이기에 팥과 닭 피 등 제에 쓰이는 ‘그런’ 쪽의 음식이 아니라면 딱히 주의할 필요가 없었다.
“이거 이렇게 문때야 잘 만들어져.”
『뭔가 만드는 거야?』
연탄은 달달한 초콜릿 파이가 으깨지면서 나는 단내에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도와줄까?』
“고양이 발로? 하핰. 됐거든. 비닐 구멍 뚫려.”
『바꿔서 도와주면 되잖아.』
‘사람 형태로’라는 뒷이야기를 이어서 꺼낼 수 없었다.
은지의 도끼눈을 마주한 연탄은 놀란 나머지 검은 꼬리털을 빵빵하게 부풀렸다.
“안 돼.”
살벌한 도끼눈만큼이나 냉랭한 대답.
은지의 경고에 쫄아 버린 연탄은 캣타워 꼭대기에서 주둥이를 숨긴 채 빼꼼히 귀와 눈만 내민 상태로 은지를 구경했다.
‘바 선생’ 사건 이후.
연탄은 다시 은지의 방에 들어와서 지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둘 사이에는 꼭 지켜야 할 규칙이 하나 생겼다.
은지의, 정확히는 ‘은지가 있는’ 방 안에서 연탄의 폴리모프는 금지라는 것.
특히, ‘인간’ 형태는 더더욱 말이다.
은지의 특별한 허락이 없는 이상 절대적인 규칙이었다.
다만, 이건 바 선생 사건 이후 곧장 생긴 규칙은 아니었다.
바 선생 사건이 있고 난 뒤로 며칠 뒤.
우연(?)하게 은지는 연탄의 중요 부위를 봐 버렸고, 그날부터였다.
도끼눈을 뜨고 있던 은지는 다시 쪼코파이로 눈을 돌렸다.
사건이 일어났던 ‘그날’이 떠오르기라도 한 건지 은지의 귀가 곧 떨어질 것처럼 붉었다.
바스락 바스락.
민망한 공기를 가르는 쪼코파이가 으깨지는 비닐 소리.
화풀이라도 하는 건지 파이를 으깨던 은지의 손에 눈에 띌 만큼 강한 힘이 실렸다.
그렇게 비닐의 소음은 이후로 몇 분간 계속됐다.
힘이 실린 반죽 덕분일까.
쪼코파이의 마시멜로와 초콜릿과 빵은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깔끔한 갈색의 반죽으로 바뀌었다.
은지는 비닐 속 퍼져 있는 갈색 반죽을 손날을 이용해 한데 모았다.
“아, 접시 놓고 왔네.”
중얼거리며 혼잣말을 하던 은지가 벌떡 일어난 그 순간.
조용히 구경하고 있던 연탄은 몰래 구경하다 화들짝 놀라며 캣타워 꼭대기에서 한층 떨어졌다.
은지가 주방에서 접시를 가져오는 그동안 연탄은 다시 꼭대기에 올라가서 언제 떨어졌냐는 양 뻔뻔하게 누웠다.
한편, 은지는 연탄에게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작업을 이어갔다.
갈색 반죽이 들어 있던 봉지의 끝을 잘라 냈다.
‘어, 어어……?’
봉지를 꾹꾹 누르며 접시 위에 정성스럽게 반죽을 짜낸 은지는 완성된 모습을 보며 뿌듯하게 이마의 땀을 닦아 냈다.
“완성!”
정말, 너무 완벽한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그’ 모양이다.
심지어 뿔이 세워진 끝부분까지.
은지는 여기서 끝이 아닌 듯, 그 갈색의 ‘그것’에 정성스럽게 초를 꽂았다.
10살을 뜻하는 큰 초를 두 개 꽂은 이후, 은지는 진지하게 지상 최대의 난제에 빠졌다.
“이은호가 몇 살이더라……?”
내가 95…….
이은호가 93이던가.
‘근데 회귀한 시간도 나이로 쳐야 하나?’
은지는 한참을 고민하더니 마지막은 대충 10살을 뜻하는 긴 초를 하나 더 박아 버리는 것으로 끝냈다.
초에 불을 붙인 채 은지는 뿌듯하게 웃으며 정성스럽게 만든 똥 모양 케이크 접시를 들고 은호의 방문 앞으로 향했다.
그사이 시간은 8월 30일, 은호의 생일이 된 지 2분이 지난 시간이었다.
‘음.’
손이 없어서 어쩔 수 없었다.
쾅!
은지는 발로 은호의 방문을 걷어찼다.
하지만 은호는 나올 기색조차 보이질 않았다.
슬슬 촛농이 떨어질 것 같아, 은지의 마음도 점점 초조해져 가던 그때.
쾅쾅콰라쾅.
“야, 이은호!”
발로 문을 걷어차며 목청껏 은호를 부르자 그제야 은호가 느리게 문을 열었다.
“잠 좀 자자. 미…….”
문을 열며 신경질적으로 한마디 뱉으려던 은호는 눈앞에 보이는 풍경에 말을 잃었다.
“생축!”
“뭔, 뭐 하, 하, 아핰, 핰핰핰핰핰. 아, 진짴. 아하하하핰.”
은호는 문손잡이를 붙잡은 채 주저앉았다.
웃음을 넘어서 꺼이꺼이 우는 수준이었다.
“핰핰, 빨리! 촛불이나 불어헠핰핰핰.”
대화인지 웃음인지 울음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서로 깔깔거리는 상황.
후―!
은호는 은지가 들고 온 똥 케이크 위 초 3개의 불을 껐다.
“아니, 근데 초는 왜 서른이냐?”
“회귀 전이랑 지금이랑 대충 나눠서 반올림한 걸로 쳐. 초 가지러 가기 귀찮아.”
“핰핰핰. 야, 그래도 너는 내 나이 기억해 줘야 하는 거 아니냐?”
“넌 내 나이 아냐?”
“아니. 내가 알 바야?”
“지도 모르면서. 자, 케이크나 빨리 받아. 무거워.”
“야, 이거 뭐로 만들었냐?”
은지는 겨우 웃음이 멎은 은호의 손에 몇 분간 정성스럽게 반죽해서 만든 케이크를 쥐여 줬다.
“잘 만들었지?”
“어. 좀 꼴 받을 정도로.”
마시멜로가 녹은 탓일까.
‘그’ 모양의 케이크는 윤기마저 좌르륵 흘렀다.
차마 모양 때문에 맛있어 보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어쨌든 여러 의미에서 퀼리티(?)는 뛰어났다.
“맛봐 봐.”
“싫어, 새끼야.”
“아! 왴.”
“쳐웃지나 말던가.”
“아핰핰핰.”
은호는 케이크를 그대로 냉동실에 밀어 넣었다.
“초콜릿 먹으면 안 되잖아.”
관리를 핑계로 입맛이 떨어지는 모양의 케이크 시식은 겨우 피했다.
“동생이 손수 준비해 줬는데, 안 고맙냐?”
“X나게 고맙네요. 앀. 참나, 하, 씨.”
은호는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는지 방으로 돌아가는 내내 피식거렸다.
은호가 그 자리에서 맛보지 않는 건 아쉬웠지만, 은지는 함께 관리 중인 처지인지라 이해는 했다.
그렇게 짧고 굵었던 생일 축하가 끝났다.
그리고 조금 더 시간이 흐른 뒤, 늦은 밤이었다.
그림자 하나가 거실에 나왔다.
그는 냉동실을 열더니 ‘그’ 모양 케이크를 꺼내 예쁘게 말린 끝부분을 똑 떼어 입에 넣었다.
한 입, 한 입.
그는 접시 위에 아무것도 남지 않을 때까지 케이크(?)를 뜯어 먹었다.
다음 날 아침.
먼저 일어난 은호는 아침 식단을 만들기 위해 냉동실 문을 열었다.
자연스레 닭가슴살을 꺼내다, 뒤늦게 비어 있는 접시의 존재를 깨달았다.
“쟤는 뭐 나한테 주는 거라더니 지가 다 처먹었네.”
오해의 시작이었다.
은호가 먼저 출근하고, 이후 한 시간 늦게 일어난 은지가 거실로 나왔다.
은지는 귀신보다 살벌한 꼴을 하고서 욕실로 향하다 걸음을 멈췄다.
제 작품을 다시 감상할 겸 은지 또한 은호처럼 어제 케이크를 넣었던 냉동실을 확인했다.
하지만 은호가 봤던 그대로 비어 있는 냉동실.
‘아, 이은호 짜식. 안 먹는다더니, 몰래 다 먹어 버리기는. 하핰.’
은지는 뿌듯하게 웃으며 욕실로 향했다.
두 사람이 녹음을 위해 집을 떠난 뒤 캣타워 꼭대기 층.
팔자 좋게 뻗어 있던 연탄은 터질 듯 빵빵한 배를 긁적이며 몸을 뒤척였다.
연탄의 입가에는 초콜릿이 한가득 묻은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