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65)
각각의 생일이 쓰인 카드를 챙긴 후 흉가를 벗어나기 위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발이 바닥에 떨어진 그 순간.
툭.
“히아아악!”
무언가 큰 그림자가 떨어지는 동시에 흉가에 굉장한 고음의 비명이 울렸다.
“……비명에 더 놀랐네.”
에이슬의 비명이 멎은 뒤, 난 검지로 귀를 막은 채 에이슬을 돌아봤다.
살짝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려서였을까.
에이슬은 순간 제 모습이 민망했는지 버럭 소리쳤다.
“아니, 어떻게 저걸 보고 안 놀라!”
“…….”
소리치는 에이슬은 무시한 채 난 그림자의 정체나 마저 확인했다.
그냥 귀엽게 생긴 곰 인형이다.
가발 같은 거라면 흠칫했을 법도 한데, 바닥에 굴러서 조금 지저분해진 귀여운 곰 인형일 뿐이라 긴장할 것도 없었다.
“그냥 곰 인형이잖아요. 귀여운 애한테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아니, 하, 그건, 그게 갑자기, 예상치 못해서 놀라는 그런 게, 아! 아무튼 오빠가 이상한 거지!”
“갑자기 말 놓네?”
한 번은 그냥 넘어갔는데, 훅 들어온 에이슬의 반말에 일부러 장난치듯 물었다.
“뭐, 놓을 수도 있잖아! ……요.”
흠.
대답 대신 눈썹을 들썩이며 장난스럽게 언짢음을 드러냈다.
“벌써 같이 지낸 지도 꽤 됐고…….”
삐친 건지, 에이슬은 중얼거리며 씩씩거리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무서운 듯 먼저 입구 쪽으로 앞서 나가진 않았다.
피식.
문득 어릴 적부터 이은지가 놀랄 때면 짓는 웃긴 얼굴이 떠올라서 웃음이 터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아. 젠장.’
옆에 있는 게 에이슬이기 때문일까.
「“무서우니까. 가지 마, 오빠.”」
「“명령이야, 이은호!”」
「“이은지, 나락 가길 바라?”」
떠올리고 싶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웃음이 나오던 기분은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닥을 찍었다.
트라우마라고 할 것까진 없지만, 괜히 안 좋은 기억을 건드린 곰 인형을 발끝으로 툭 건드리며 앞서 걸어 나갔다.
“가, 같이 가!”
먼저 흉가의 입구로 향하자, 이젠 말을 놓기로 한 건지 에이슬이 반말을 하며 다급하게 뒤쫓아 오는 소리가 들렸다.
“미션 성공입니다!”
“와!!!”
“…….”
흉가 앞에서 대기하던 스태프에게 생일 카드를 보여 주자 미션이 끝났음을 알려 줬다.
성공적으로 미션을 마치고, 카메라는 잠시 꺼졌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기 때문은 아니었다.
오히려 흙길 외에 주변은 논밭뿐.
「“낸테 돈 줄 거 아니면 내 땅에서 그 고물때기 켜기만 해 보슈! 확 기냥 고소해 버리려니까!”」
길의 주인이 돈을 내지 않는다면 촬영하지 말라며 제대로 못 박아 둔 탓에 허가가 나지 않았다.
그렇게 흉가에서 촬영지인 기와집으로 돌아가는 길.
에이슬과 나는 카메라 감독님들을 따라 말 한마디 없이 걷기만 했다.
* * *
생일
얼마나 지났을까.
고요함에 숨이라도 막혔던 건지 에이슬은 한참 내 눈치를 보더니 갑자기 입을 열었다.
“저, 오빠.”
“왜, 부르지 마.”
“…….”
아까 말도 놨겠다.
카메라도 꺼져 있겠다.
스태프들도 앞서 걷고 있다.
내숭 떨 이유가 단 하나도 없기에, 난 에이슬에게 성격 그대로 대꾸했다.
다시 조용해진 옆자리.
힐끔 옆을 보니 에이슬은 어지간히 당황한 듯 지진이 일고 있는 눈으로 날 보고 있었다.
“왜, 말해. 빨리. 뭐.”
“……아니, 그게.”
“할 말 없으면 부르지 마.”
“아니, 그, 그―!”
그냥 조용히 가지.
뭐 딱히 물어보고 싶은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으, 은! 은지 언니랑 오빠는 생일에 뭐 해요? 아, 아니, 어떻게 챙겼어요?”
조금 전 생일 카드 때문인가.
쥐어짜 낸 질문이 이건가 보다.
뜬금없이 생일 이야기에 미간에 주름이 졌다.
“챙기긴 뭘 챙겨.”
“생일이잖아요. 선물 같은 거요.”
“내가 걔한테 왜 뭘 줘.”
“……?”
이런 대답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건지 에이슬은 멍하니 날 보면서 걸음을 멈췄다.
“아니, 생일이고, 가족? 이잖아요!”
“가족이지. 근데 내가 이은지한테 선물 주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아, 아하! 주긴 줬는데 저한테 말할 필요는 없다…… 이런 말인 거죠?”
“아닌데? 안 줬는데? 내가 왜?”
잠시 벙찐 에이슬은 한참을 곰곰이 고민하더니 다시 물었다.
“생일이잖아요!”
무엇이 궁금해서 묻는 말인지 안다.
그냥 이은지랑 내 생일 날 어떻게 보냈느냐는 것이겠지.
에이슬은 회귀 이전 그때도 우리에 대해 대단한 호기심을 보였었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당시 에이슬에게 내 일상에 대해 입을 연 적이 없었다.
그러고 싶지도 않았고.
애초에 그땐 더더욱 그렇게 살가운 사이도 아니었다.
다른 시간이라 한들, 사람은 달라졌어도 궁금한 건 여전한 건가.
‘생일…….’
이은지 생일이면 해 준 게 있긴 하네.
“미역국 끓여 줬다.”
“오빠가요?”
“어.”
계속 캐물을 것 같아서 간단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에이슬은 오히려 갈증을 느낄 때 물 한 모금 마시면 더 많은 물을 원하는 것처럼 더 눈을 빛내며 물었다.
“직접요?”
“어.”
“우와. 정성!”
“정성은 무슨, 사 먹는 게 하는 것보다 더 비싸서 하는 거야. 은지한테 돈 쓰기 아까워.”
감탄하는 에이슬의 반응을 이해할 수 없었다.
‘미역국이 뭐…….’
대충 냄비에 참기름 약간과 함께 고기를 볶고 불린 미역을 넣고 조금 더 볶은 뒤 물을 넣고 마지막으로 간장 몇 숟가락으로 간을 맞추면 끝나는 건데.
‘정성’이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내가 끓이는 미역국은 너무 간단한 느낌이지 않나?
“그리고? 그리고? 선물도 줬어요?”
“…….”
미역국 차려 줬으면 끝인 거 아닌가.
그리고 아까부터 그놈에 선물을 왜 이렇게 찾아 대는 건지.
“케이크는요?”
“케이크는 어디선가 여러 개 얻어 와서 혼자 다 처…… 잘 먹던데.”
‘처먹더라’라고 말하려다 다급하게 말을 고치긴 했는데, 너무 늦었다.
“하하하하.”
에이슬은 내 대답이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옆에서 호들갑 떨며 웃었다.
“아, 오빠랑 언니 보면 되게 사이가 좋은 거 같아요.”
우리가?
사이가?
좋다고?
“이야, 좋은 사이 다 얼어 죽었는갑네.”
“하하하. 오빠 사투리. 하하하하.”
내가 하는 말이 뭐 그리 재미있다고 저리도 깔깔거리는 건지 이해가 안 간다.
양쪽에 늘어진 논인지 밭인지 모를 어두컴컴한 곳에서 풀벌레 소리가 듣기 좋게 울렸다.
카메라가 꺼진 탓에 조명도 없는 덕분일까.
하늘의 별이 평소 자주 보던 경기도나 서울의 밤하늘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보였다.
하늘을 구경하며 에이슬에게 대충 대답했다.
“저는 외동이라 형제나 남매가 있는 사람들이 궁금하더라고요.”
“궁금할 것도 없다. 사람 사는 게 그냥 다 똑같지, 뭘.”
“에이, 달라요.”
……다르긴 하지.
지금의 삶과 어릴 적 삶을 돌아보면 그야말로 극과 극의 삶을 겪고 있는 나나 이은지다.
내가 말을 꺼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람 사는 게 그냥 다 똑같다’라는 그 말을 인정하진 못했다.
“생일만 해도 전 삼촌밖에 없어서 밥 먹고 선물 고르러 가기만 하는데.”
“배부른 소리 하네. 생일날 선물은커녕 가족끼리 밥 먹는 사람 찾기가 더 힘들걸.”
“그래요? 그래도 오빠랑 언니는 서로 미역국도 해 주고 한다는 거잖아요.”
“뭔 소리야. 이은지가 미역국 하면 그건 암살이야.”
“너무해! 하하하.”
너무하기는.
진짠데.
미역국에 설탕을 두 숟가락 넣는 또라이가 어디 있나.
짜잔, 그게 여기 있네요.
그게 하필 내 동생이고.
정말, 끔찍한 그런 맛이었다.
만약 걔가 결혼한다고 하면 난 일단 남편 될 사람한테 이은지가 밥이나 국을 했다고 하면 도망치라고 먼저 이야기해 줄 것이다.
‘그것도 평소에 그냥 밥 먹으려고 끓인 건데…….’
만약 그걸 생일날 먹었으면 어마어마한 트라우마가 되지 않았을까.
“생일날 오빠네는 창석 대표님이랑 같이 식사하진 않아요?”
“밥…… 먹어.”
먹기 싫어도 먹어야만 하는, 생일날만 되면 늘 찾아오는 루틴이 있었다.
“뭐 먹어요?”
“밥.”
“아니, 아니. 종류!”
“메뉴겠지.”
“어, 어쨌든요. 메뉴 뭐 먹어요?”
“그때그때 달라.”
“올해는요?”
“소고기.”
“맛있었겠네요. 박창석 대표님도 재미있는 분이라던데, 재미있겠다!”
“하. 하. 하. 재미는 무슨.”
‘하하하’ 소리가 끝나는 동시에 정색하며 말을 이었다.
“하하하하하.”
그런 내 대답에 오히려 에이슬이 더 빵 터졌다.
“아, 오빠 진짜 웃겨.”
“…….”
얘도 참, 세상에 웃을 일이 어지간히 없나 보다.
“우리 삼촌이 창석 대표님 이야기를 자주 하거든요. 참, 요즘은 매번 시간 날 때마다 NRY에 있다가 온다면서요?”
“자주 보이시긴 하더라.”
회사에 방문할 때마다 제집 안방처럼 항상 자리를 잡고 있던 어석배 대표.
DI 뮤직 어석배 대표는 다소 사람이 섬뜩할 때가 종종 있었다.
피부가 희다 못해서 회색에 가까운 데다, 잠을 잘 못 주무시는 건지…….
눈 밑 그늘이 매우 진해서 회사에 방문했다가 은지가 귀신이라고 착각하면서 비명을 질러 댄 적도 있었다.
“생일날 다 같이 놀면 좋겠다. 우리 삼촌 애교도 많거든요.”
그 시체 같은 사람이?
원하지도 않는 상상이 되어 버리면서 살짝 속이 울렁거렸다.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에이슬이 기대감 어린 눈으로 이쪽을 보면서 물었다.
“재미……는 딱히.”
“왜요?”
“우리 대표님은 잔소리만 하거든.”
“생일인데요?”
“생일이든 아니든, 매번 입만 열면 나오는 패턴이야.”
“하하핫.”
최근엔 다행이랄지, 화랑 누나가 생일 식사 멤버에 포함되면서 대표님의 잔소리를 막아 주긴 했다.
오래가진 못했지만.
“아, 오빠! 그럼 혹시 오빠 생일 땐 은지 언니가 선물 줬어요?”
“그러니까 아까부터…….”
어째 질문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이쯤 되니 답답해서라도 별수 없이 입을 열었다.
“내가 걔한테나 걔가 나한테 선물을 왜 줘?”
“생일이잖아요. 오빠는 미역국 해 줬으니까, 언니는 그럼 국 대신 다른 선물 안 챙겨 줬어요?”
“한다고 해도 하지 말라고 하는 판국…… 아.”
앞서와 같이 이번에도 ‘딱히’라고 대답하려던 그때였다.
지난해까지는 똑같았지만, 올해는 천하의 이은지 님께서 대단하신 선물을 준비하긴 했었다.
“엇! 뭐 받았구나!”
“‘뭐’를 받긴 했네.”
“와! 뭐 받았어요?”
에이슬 얼굴에 물음표가 가득해졌다.
올해 8월 30일.
내 생일날 이은지가 내밀었던 것이 떠오르자 어이가 없어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때, 부담스러울 정도로 이쪽을 빤히 보는 에이슬.
난 시선이 부담스러워서 빠르게 표정을 갈무리했다.
그때였다.
“오빠 웃는 거 처음 봐…….”
“뭔……. X친, 소름 돋게.”
“아아, 아! 못, 못 들은 걸로 해 줘요! 오, 오빠가 갑자기 웃어서, 그게……!”
에이슬은 저도 모르게 생각이 입 밖으로 흘러나와 버린 듯, 정작 그 말을 직접 들어 버린 나보다 더 민망해하며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허둥지둥했다.
“뭔 소리야, 나 안 웃었는데.”
“……그, 그래요.”
뻔뻔하게 거짓말을 했다.
하지만 에이슬도 어지간히 상황을 무마하고 싶었는지 깔끔하게 그런 걸로 치자며 인정해 버렸다.
그러곤 다급하게 주제를 넘겼다.
“그, 그래서 생일 때 뭐 받았는데요……?”
“너도 참 끈질기다.”
“제가 좀 질겨요. 헤헤.”
“하…… 똥 받았다.”
“예?”
흙길을 걷던 에이슬의 발소리가 뚝 멈춰 섰다.
“진짜요? 또, 똥이요?”
“진짜겠냐. 그냥 그거 모양 케이크 말이야. 케이크라고 인정하긴 싫지만…….”
“아, 놀라라. 언니 못 말린다. 하하, 언니가 직접 구운 거였어요?”
“아니, 굽진 않고 직접 반죽은 했다던데.”
“응? 안 굽는 티라미수 같은 건가?”
“그건 아니고. 있어, 그런 케이크가. 적어도 두 번 받고 싶진 않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