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64화 (264/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64)

무덤가 옆.

곧 쓰러질 것 같은 한 기와집 앞.

은호는 낡은 문을 열며 먼저 흉가 안으로 들어섰다.

은호가 거침없이 문틀을 넘어가자, 뒤이어 에이슬도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떨리는 걸음을 옮겼다.

끼익.

“우그악!”

낡은 나무 문 경첩에서 난 소리에 놀란 에이슬이 괴상한 비명을 지르며 후진했다.

“여기서 밤새겠어요.”

앞서 들어간 은호가 무심한 눈길로 에이슬을 돌아보며 도발했다.

에이슬은 민망했는지 슬쩍 눈치를 보며 흉가 안으로 들어갔다.

그것도 잠시.

기익, 쾅.

장치가 있기라도 한 건지, 은호와 에이슬이 흉가에 들어선 그 순간.

갑자기 흉가의 문이 닫혔다.

에이슬은 비명도 못 지른 채 놀라 튀어나올 것 같은 눈을 하며 문을 돌아봤다.

은호는 힐끗 닫힌 문을 돌아봤다.

하지만 별 반응 없이 이내 큰 보폭으로 휙휙 걸으며 흉가 안으로 들어섰다.

“가, 같이 가요!”

머뭇거렸다간 놓치기 딱 좋은 속도의 걸음.

은호의 빠른 걸음에 에이슬은 혼자 남을까 두려웠는지 다급하게 뒤쫓았다.

‘얼른 끝내자.’

뒤따라 오는 에이슬까지 신경 쓰기엔 은호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은호는 당장 지금 받은 ‘나’를 찾으라는 그 미션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만 가득했다.

‘솔직히 회귀 전 에이슬과 불편한 관계로 얽힌 탓이 전혀 없다고는 말 못 하겠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불편한 것을 넘어선 다른 이유가 있었다.

‘공포’라는 주제.

내가 미션 해결에 집중하게 된 이유는 그거였다.

무서워서?

아니다.

공포라는 소재에서는 단연 행동이 큰 사람이 편집 과정에서 가장 많이 살아남는다.

하지만 나는 나를 안다.

‘공포’와 관련된 콘텐츠에서 나는 대부분 편집을 당한다.

짤막하게 얼굴이라도 비추면 다행일 정도로 통편집.

일부러 리액션을 해 보려고 따로 연습도 해 봤다.

하지만 일부러 리액션을 크게 하니, 오히려 그게 더 어색해서 재미가 더더욱 반감됐다.

‘차라리 이은지였으면 놀리는 재미라도 있었을 텐데…….’

유 PD님도 그걸 기대했던 건지, 실패 미션을 공개할 때 아쉬운 눈길로 은지 쪽을 여러 차례 살폈었다.

옆에서 발발 떨어 대는 에이슬을 돌아보며 나도 아쉬운 한숨이 흘러나왔다.

굳이 꼭 이은지가 아니어도 사실 상관은 없다.

다른 형들이나 시우라든가.

그냥 다른 멤버들이기만 했더라도…….

‘어느 정도의 장면은 챙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하필이면 멤버들 중 가장 껄끄러운 에이슬이 페어로 뽑혔다.

“힉!”

한편, 에이슬이 놀랄 때마다 머리카락의 길이가 짧기 때문일까.

부풀어 있는 짧은 머리카락들이 마치 잘 삶은 문어 다리처럼 통통거리는 게 시선에 거슬렸다.

평소 관심도 없던 에이슬 머리에 눈길을 두게 된 건 얼마 전 이은지가 차에서 했던 이야기 때문이었다.

「“오빠, 나 나, 머리 단발로 자르면 어떨 것 같아?”」

「“이제 아저씨 보내려고?”」

「“아니! 그냥 묻는 거거든? 요즘 이슬이 단발 보니까 이쁘길래. 일상에서 가발 정도는 쓸 수 있잖아.”」

은지는 진지하게 긴 머리를 손가락으로 말아 보고, 접어 보는 등 이리저리 만지며 휴대폰 카메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당시 번잡한 이은지를 못마땅하게 바라보고 있던 그때.

‘아.’

문득 인터넷에서 유행했던 한 사진이 떠올랐다.

다만, 그 유명했던 사진이 회귀 후인 ‘지금’ 연도에 나와 있는 사진이었는지가 헷갈렸다.

「“아! 야, 그거 아직 안 나왔나? 그거 딱 너 단발했을 때일 것 같은데.”」

「“뭐, 어떤 거.”」

혹시 얘도 알고 있나 싶어서 이야기나 해 줄 겸 직접 물었다.

「“마블리 형님 단발머리 짤.”」

「“야, 이 XX끼야!!!”」

대답 대신 돌아온 건 강속구처럼 날아든 은지의 새우 모양의 목 베개뿐이었다.

피식.

그때 생각이 나서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씰룩였다.

통편집될 생각에 우울했는데, 이은지 놀릴 때 생각하면 좀 나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그나저나 쟤는 언제 다 하고 돌아가려고 저러고 있나…….’

여러 이유에서 어차피 대부분 편집이라면 미션이라도 얼른 해치워서 멤버들 중 최단기 기록이라도 가져 볼 생각이었다.

에이슬이 저렇게까지 겁이 많은지 알기 전까진 그랬다.

‘‘나’를 찾아오라니…….’

거북이보다 느린 에이슬을 기다리며, 나는 모호한 미션을 생각하면서 폐가를 훑었다.

‘오.’

그때였다.

척 봐도 ‘여기예요!’라는 듯 푸른 불빛이 새어 나오는 한 낡은 방문.

“빨리 안 오면 그냥 저 혼자 갑니다.”

“아, 안 돼!!!”

에이슬은 발발 떨면서도 혼자 남겨지는 게 싫었는지 종일 걸릴 것 같던 거리를 단숨에 뒤쫓아 왔다.

‘이 방법 나쁘지 않네.’

내내 세 걸음 정도를 겨우 왔던 에이슬은 단숨에 열 걸음 정도를 빠르게 달려왔다.

거북이도 왔으니, 거침없이 미션지로 추정되는 한 방문을 벌컥 열었다.

“히약!!!”

“그렇게 행동 하나하나 일일이 다 놀랄 거예요?”

“아니, 무서운 걸 어떡해요…….”

울먹이는 에이슬을 뒤로하며 앞을 돌아본 그때, 지저분한 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깔끔한 다섯 개의 상자.

척 봐도 수상한 상자들이었다.

거리낌 없이 한 상자를 연 순간.

푸드르르르륵.

웬 나방 같은 장난감이 튀어나오며 시야를 가렸다.

진짜 벌레인 줄 알고 흠칫한 것도 잠시.

그저 장난감이라는 건 저렴한 비닐 소리에 눈치챌 수 있었다.

“흐갸악!”

근데 뒤에서 주춤거리면서 들어오던 애는 아니었나 보다.

에이슬이 숨넘어갈 듯 비명을 지르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날아오르는 장난감 하나를 낚아채며 에이슬 손에 쥐여 줬다.

“자.”

“으힉! 익?”

“장난감이죠?”

“……네.”

장난감인 걸 직접 확인시켜 주니 조용해졌다.

방금 상자는 꽝인 것 같아서 나는 이어서 다음 상자를 열었다.

에이슬은 신기한 존재라도 보듯 이쪽을 흘겨보고 있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고 일부러 그쪽은 보는 척도 안 했다.

박스를 여는 것에 더 집중하고 있던 그때.

오.

이번에 연 박스는 꽝은 아닌 듯, 상자 안에 숫자가 쓰인 카드와 완충재가 가득했다.

‘숫자 카드?’

단순한 숫자 카드라고 하기엔 ‘XX.XX’식으로 중간에 수상한 점이 찍힌 카드들.

카드의 정체에 의문만 가득하던 그때였다.

조명 때문에 주변이 컴컴하기에 단순히 벽인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아니었나 보다.

벌컥!

“꺄아아아악!”

눈앞에 있던 벽이 열리며 붉은 조명이 번쩍 켜졌다.

자세히 보니 벽이 아니라 장롱이다.

장롱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 창백한 얼굴로 머리를 축 늘어뜨린 처녀 귀신도 나를 빤히 바라봤다.

‘뭐.’

고작 이런 것에 놀라기엔, 솔직히 어렸을 때 폐가에서 이것보다 더한 것(?)도 많이 봐서 그런가…….

“꺅!”

“아갹!”

“으학!”

한편, 뒤에서 고주파를 내뿜던 에이슬은 처녀 귀신이 살짝만 움직여도 괴상한 비명을 내질러 댔다.

아,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그 귀신은 여전히 에이슬이 아니라 나만 보고 있었다.

즉, 에이슬이 아니라 나를 놀라게 하려 다양한 포즈를 취하는 것이었다.

정작 뒤에서 호들갑 떠는 에이슬이 어이가 없어서 툭 한마디 던졌다.

“앞에 있는 건 난데…….”

에이슬을 힐끔 쳐다보자, 붉은 조명 때문일까.

조금 전보다 더 붉어진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처녀 귀신은 뒤에서 호들갑 떠는 에이슬 반응이 재미있었나 보다.

이제 그녀는 다시 장롱에 들어가면서도 일부러 몇 번이나 다시 벌컥 문을 열어 대며 에이슬을 놀라게 했다.

그때마다 에이슬은 넘치도록 풍부한 리액션을 보이며 처녀 귀신 역할을 맡은 아르바이트생의 직업 만족도를 높여 줬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어야지.

마지막엔 내가 신경 쓰여서 직접 장롱 문을 닫아 버렸다.

처녀 귀신도 사라진 뒤.

나는 다시 상자 속 카드들에게 눈을 돌렸다.

그렇게 가만히 카드를 보고 있던 그때였다.

숫자, ‘나’.

이번 미션에 대한 감이 잡혔다.

“이슬 씨.”

“이힉, 에, 네?”

귀신은 이미 한참 전에 사라진 지 오래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던가.

에이슬이 딱 그랬다.

바람 소리만 들려도 ‘흐악’, ‘히긱’, ‘익’, ‘힉’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제 다 놀랐으면 이것 좀 볼래요?”

“…….”

은근하게 놀리자 에이슬을 입을 비죽이며 이쪽으로 다가왔다.

“뭔데요?”

“이거, 숫자 카드들. 멤버들 생일이 적혀 있는 카드인 것 같거든요.”

“생일요?”

나는 ‘11.11’이라 쓰인 카드를 들어, 에이슬에게 보여 주며 말을 이었다.

“이거, 이은지 생일이에요.”

“아하.”

내 금고이자 사물함의 비밀번호이기도 한 이은지 생일.

집에 있는 내 사물함에게는 언제 들어올지 모르는 도둑보다 이은지가 가장 위험인물이다.

다만, 이은지는 거기 안에 든 내 카드나 지갑, 안경 등 값어치가 높은 그런 것을 훔쳐 간 적은 없다.

아니, 그런 거면 ‘탐났구나’ 하고 이해라도 하지.

이은지가 훔쳐 가는 건 이어폰과 같은 소소한 것들이다.

그것도 저렴하기 그지없는 것들.

왜 본인 걸 잊어버리면 ‘드럽다’고 별별 호들갑을 다 떨면서 왜 그렇게 매번 내 걸 가져다 쓰는 건지.

’뭐, 그건 됐고.’

잡생각을 떨쳐 내며 나는 에이슬에게 설명을 덧붙였다.

“이거 ‘나’를 찾아오란 미션이 내 생일 카드를 여기서 찾아서 가지고 오라는 건가 봐요.”

나는 이은지 생일 카드를 다시 상자에 넣으며 여러 카드를 뒤적였다.

난 ‘04.29’이라고 쓰인 카드를 찾아서 에이슬에게 건넸다.

“여기요.”

“……제 생일, 어떻게 알았어요?”

에이슬이 얼떨떨한 표정으로 멍하니 카드를 보며 물었다.

「“오빠 내 생일은 4월 29일이야.”」

「“근데.”」

「“당연히 오빠가 케이크랑 선물 줘야지. 거기에 데, 데이트도 해 주면 더 좋고!”」

자기 생일을 어떻게 알았느냐고.

그렇게 묻는 에이슬을 보고 있으니 별로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걸 어떻게 말하는 게 좋을까.

“멤버들 생일 찾아본 적 있어서요. 그때 본 것 같아서.”

어색한 핑계긴 하지만, 실제로 찾아본 적은 있었다.

물론 거기에 에이슬은 없긴 했다만, 핑곗거리로는 나쁘지 않은 선택인 모양이다.

에이슬은 내 핑계를 받아들인 듯 ‘아하’거리며 받은 카드로 눈을 돌렸다.

그렇게 상황을 넘긴 뒤.

난 다시 상자 속을 뒤적이는 데 집중했다.

상자 안에는 생일이 쓰인 카드들 외에도 완충재가 넘치도록 가득했다.

실제로 완충재 몇 개는 상자 밖으로 튀어 나갔다.

완충재 사이에서 이은지 생일 카드도 찾고 에이슬 생일 카드 외에도 다른 멤버들의 생일 카드도 많이 찾았다.

하지만 정작 찾으려는 내 생일 카드는 왜 이렇게 안 보이는지.

“저, 오빠.”

한창 상자를 뒤엎던 그때.

에이슬은 조용히 상자 한구석으로 팔을 뻗으며 날 불렀다.

에이슬의 손가락이 가리키고 있는 곳엔 ‘08.30’이라고 쓰인 카드가 상자 틈에 끼어 있었다.

내 생일이었다.

“아!”

드디어 찾았다는 기쁨과 동시에 왜 여기 껴 있고 난리냐는 불만 섞인 탄성이 절로 터졌다.

“내 생일 알고 있었나 보네요.”

“그, 그냥 찍었어요. 저쪽만 안 보시길래.”

“땡큐.”

거짓말.

일부러 모른 척하는 게 눈에 빤히 보였다.

하지만 굳이 이 상황을 더 끌고 가고 싶지 않아서 그냥 모른 척하는 쪽을 택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