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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63화 (263/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63)

승연의 든든한 실드에 찔리는 구석이 많은 은호는 친절한 가면을 뒤집어쓰며 찔린 감정을 겨우 감췄다.

계약서에 사인을 마친 후.

은호에게 확인을 받은 은지는 약속대로 연탄에게 승연한테 가라고 말했다.

명령이 떨어지자, 연탄은 언제 그랬냐는 듯 온갖 애교를 떨며 승연에게 몸을 비볐다.

“냐옹!”

심지어는 그 허접한 병뚜껑 장난감이 마음에 들었다는 듯 신나게 그걸 가지고 놀았다.

연탄의 마음을 얻어야 하는 이번 미션에서 그렇게 승연은 멤버들 중 유일한 승자가 됐다.

“이번 미션의 우승자에게 주어질 상품은!”

유 PD는 조연출에게 패널을 들어 보이라며 신호했다.

[2일 실내 취침권]

[미션 실패 인원 × 3포인트]

매번 많아 봐야 1에서 5포인트 정도만 주던 방송국 놈들이 인원수×3포인트를 준다고?

유 PD의 푸짐하다던 그 말은 정말 빈말이 아닐 정도였다.

총 멤버 8명 중 미션을 성공한 사람은 이은지, 서승연 단둘.

그럼 총 18포인트를 받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다만, 당연히 성공할 줄 알았던 은호는 미션에 성공하지 못했다.

은호는 사실상 계약서 작성만 했을 뿐.

정작 미션이었던 ‘연탄의 행동을 예측’해 작성한 답안 제출을 잊어버렸다.

그래서 미션은 실패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진정한 승자는 은호였다.

“그, 그걸 다 왜 은호 줘요? 왜?”

승연은 ‘2일 실내 취침권’만 받은 채 제 손에 떨어지지 않는 포인트 주머니를 보며 스태프에게 물었다.

“계약서상…….”

스태프는 설명을 더 이어 가지 못했다.

승연은 계약서라는 말에 다급하게 은호에게 사인했던 종이를 찾았고 그제야 내용을 자세히 읽었다.

그리고 뒷덜미를 잡았다.

“이, 이은호오오!!!”

소리를 지르는 승연을 보며 이럴 줄 알았던 태현은 ‘쯧쯧’ 혀를 찼다.

“야, 이은호!!!”

그때, 소리를 지르는 한 사람이 더 있었다.

“쫌.”

“쫌은 무슨!”

은호가 포인트를 독식하는 모습을 본 은지는 발끈하며 소리쳤다.

“오빠! 그걸 왜 다 니가 받아! 내 거는? 내 거는 어디 갔는데!”

“할 거면 끝까지 똑바로 부르든가, 오빠라고 했다가 ‘니’라고 했다가. 그리고 네 거 지금 줄 거였어.”

제 것을 준다는 말에 은지는 언제 화를 냈냐는 듯 한결 가라앉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은지의 손에 떨어진 건 고작 2포인트를 뜻하는 구슬 2개.

‘……?’

은지는 얼빠진 얼굴로 눈만 끔뻑이며 제 손바닥에 놓인 두 개의 구슬과 은호를 번갈아 바라봤다.

“계약서대로면 1.4개인데, 이 오빠가 인심 써서 하나 더 챙겨 줬다.”

“……하!!!”

은지는 뻔뻔하게 웃는 은호가 황당해서 돌아 버릴 것 같은지 뒷덜미를 붙들며 헛숨을 들이켰다.

그런 은지에게 은호가 비열하게 웃으며 속을 긁는 말을 덧붙였다.

“그러게~. 대표님이 계약서에 함부로 사인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잖냐, 동생아.”

“…….”

약 올리는 은호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은 슬금슬금 은지의 주위에서 멀어졌다.

은지는 헛웃음조차 사라진 굳은 얼굴로 유 PD가 있는 방향을 돌아봤다.

그리고 잠시 후, ‘짝!’

카메라 앞에서 크게 손뼉을 친 은지는 상큼한 미소를 지으며 유 PD에게 말했다.

“편집 잘 부탁드려요.”

“어, 어……! 야, 야, 이은지. 방송이다?”

“알아. 그래서 손뼉 쳤잖아.”

“야. 잠깐만, 야, 너 눈 돌아갔어. 야!!!”

은지는 눈에 살벌한 이채를 띠며 아주 천천히 은호에게 걸어갔다.

잠시 후, 은지는 한 마리의 들소처럼 허리를 숙인 채 은호에게 달려들었다.

그렇게 빛의 속도로 은호를 둘러업더니 은호와 은지는 집 뒤편으로 사라졌다.

카메라맨이 뒤따라가려고 했지만 유 PD가 제지하면서, 둘은 그렇게 카메라 사각지대로 사라져 버렸다.

늦은 저녁.

“아아아악!!!”

“살려 줘!!!”

산골 마을에 은호의 비명이 온 동네에 울려 퍼졌다.

한편, 계약서의 내용을 제대로 봤던 멤버들은 자업자득이라며 누구 하나 은호를 구하러 가는 사람이 없었다.

은지는 한을 어느 정도는 풀었는지, 이후 다시 마당으로 나왔을 땐 한결 개운한 얼굴이었다.

한편, 엉기적거리며 뒤따라 나온 은호는 마당 평상에 그대로 풀썩거리며 뻗어 버렸다.

그날, 은호는 간지러움과 고통이 공존하는 게 그냥 때려 맞는 것보다 훨씬 괴롭다는 걸 몸소 배웠다.

한바탕 정신없는 시간이 흐르고 난 뒤.

“크흠, 저, 이번 미션에 우승자가 있다면 반대로 탈락자가 있겠죠?”

유 PD는 눈치를 보더니, 헛기침하며 다시 겨우 진행을 이어 갔다.

“탈락하신 분들께는 안타깝지만, 벌칙이 있습니다.”

“벌칙이요?”

류석현이 걱정스럽게 되묻자, 유 PD가 여유 있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벌칙이라고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

“벌칙을 클리어하시면 우승자만큼은 아니지만 소소한 보상이 있을 예정입니다.”

‘소소한 보상’이라는 단어에 은호와 은지에게 놀아났던 다른 멤버들이 상당히 관심 어린 시선을 유 PD에게 던졌다.

하지만 이어서 유 PD가 든 패널에 쓰인 ‘흉가 체험’ 네 글자는 멤버들을 굳게 만들었다.

* * *

벌칙 미션도 모두 끝난 늦은 저녁.

이후, 포인트가 부족해서 홀로 야외 취침이 결정된 은지.

“아오, 열 받아서 잠이 안 와!”

은지는 다들 잠든 시각 벌떡 일어나며 소리쳤다.

불쑥불쑥 자꾸만 다시 화가 솟아나는지 결국 뒤늦게 은호와 작성했던 계약서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제야 마지막 조항인 ‘계약 파기가 가능한 조건’을 확인한 순간.

“저 망할 사기꾼 우럭 새……!”

차마 방송이라 ‘새끼’까지는 못하겠고, 욕을 안 하자니 화가 가라앉질 않는다.

은지는 텐트의 지퍼를 시원하게 열어 버리고 밖으로 나왔다.

은지의 힘 실린 발걸음은 곧 어느 방으로 향했다.

포인트가 남아도는 은호가 혼자서 하루를 지내는 방이다.

방 안으로 들어선 은지.

그날 새벽.

또 한 번 비명과 함께 남매는 진심으로 싸웠다.

* * *

흉가

[거우리 ― 저번 주 같쫌살 봄?]

[주에스더 ― 아 봤지 ㅋㅋㅋㅋ 이은호 배신 미쳤냐고ㅋㅋㅋ]

[이다 ― 난 당연히 둘이서 작전 짜길래 둘 다 포인트 얻을 줄 알았는데 ㅋㅋㅋㅋ]

[현찌 ― 계약서에 장난질해 둔 거 진짜 은호 오빠답더라ㅋㅋㅋㅋㅋ]

학교를 마치고 학원으로 가는 길.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던 수민은 정류장 의자에 앉으며 휴대폰을 켰다.

휴대폰 속 친구들과의 단체 톡방에 쌓인 스크롤을 내리다, 대화가 너무 많았는지 중간부터는 그냥 제일 아래로 향하는 스크롤 버튼을 눌렀다.

[거우리 ― 아 근데 난 은지 언니 좀 불쌍하더라]

[주에스더 ― ㅇ? 난 오히려 에이슬이 불쌍하던데 ㅋㅋㅋㅋ]

[현찌 ― 에이슬은 왜?]

[주에스더 ― 언니가 고양이한테 아무한테도 가지 말라고 명령 안 했으면 누가 봐도 에이슬이 이긴 미션이었잖아 ㅋㅋㅋㅋㅋ]

[거우리 ― 하긴 에이슬 정성스럽게 삼겹살 구워 갔는데 짜여진 판 ㅠ]

[주에스더 ― (휴대폰 배경 화면 속 연탄이 침 흘리던 장면 캡처 사진)]

[거우리 ― ㅋㅋㅋㅋㅋㅋㅋ커여어]

[이다 ― 연탄이 침 흘리는 거 졸귀 ㅋㅋㅋㅋ]

[현찌 ― 와 근데 쩐다 연탄이 이은지 명령에 본능 참은 거 아니야ㅋㅋ]

수민은 대화 중인 친구들의 깨톡에 무표정으로 ‘ㅋㅋㅋㅋ’를 입력했다.

[거우리 ― ㅁㅊ 그러네]

[현찌 ― ㄹㅇ.. 고양이 맞나 진잨ㅋㅋㅋㅋ 우리 집 주인님은 내가 빌어도 말 한마디 안 들어주시는데 ㅠ]

[이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휴대폰 자판을 빠르게 두드리며 친구들과의 대화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

[나 ― 마지막도 대박이었잖앜ㅋㅋ]

[현찌 ― 마지막? 나 알바하느라 못 봣는데 뭐 있ㅇ렀어?]

[이다 ― 아 마지막 ㅋㅋㅋㅋㅋㅋㅋ 기억났다]

[나 ― 보고 ㅈㄴ 뿜음 ㄹㅇ 현실 남매ㅋㅋㅋㅋ]

수민은 며칠 전에 봤던 ‘같이 쫌 살자’ 장면을 떠올리며 씩 웃음이 흘러나왔다.

은지는 은호에게 사기를 당하면서 부족한 포인트로 인해 결국 야외 취침을 하게 됐다.

은호는 그런 은지를 챙기기는커녕 그 누구보다 기뻐하며 비웃었다.

일반 멤버들이 아닌 친남매 사이라, 평소 ‘그런’ 장면에 불편함을 느끼던 엄마까지도 깔깔거리며 웃었던 장면이었다.

[주에스더 ― 아 나 그거 뒤에 보고 저녁 먹다가 빵 터져서 언니한테 밥풀 튀고 숟가락으로 처맞았엌ㅋㅋㅋㅋㅋ]

[현찌 ― ㅋㅋㅋㅋㅋ ㅁㅊ]

― 무슨 일 있었는데?]

[주에스더 ― 그게 새벽에 은지가 야외 취침하다가 갑자기 생각나서 급 빡쳤나 봐]

[거우리 ― ㅋㅋ아ㅋㅋㅋㅋ]

[현찌 ― 그래서?ㅋㅋㅋㅋ ]

― 은지 언니 뭐 했는데?]

[주에스더 ― 은지 언니 텐트에서 자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남]

[나 ― 그때 쿠궁 하는 브금 때매 개놀랐었는데 낰ㅋㅋㅋ]

[거우리 ― 나돜ㅋㅋㅋㅋ]

[현찌 ― ㅋㅋㅋㅋㅋㅋ????]

― 머야 그러고 어케 됐는데?]

[주에스더 ― 언니 계약서 읽다가 급빡]

― 텐트에서 뛰쳐나옴ㅋㅋㅋ]

[현찌 ― 그리고?]

[주에스더 ― 은호 오빠 방으로 튀어감]

― 들어가자마자ㅋㅋ]

―잘 자던 은호 오빸ㅋㅋㅋ]

[거우리 ― 그대로 찍어 버림 ㅋㅋㅋㅋㅋ]

[이다 ― 팔꿈치로 ㅋㅋㅋㅋㅋㅋ 곡괭이 ㄷ ㅗ랐다곸ㅋ]

TV 화면은 은지에게 팔꿈치로 공격당한 은호의 눈이 번쩍 뜨인 상태로 장면이 멈췄다.

잠시 후 컷이 바뀌며 장난기 가득한 은지의 얼굴이 클로즈업.

멈췄던 장면이 다시 흘러가는 그 순간.

[아아아악!!!]

은호의 비명에 시골 기와집 전체가 흔들리는 효과가 화면을 가득 메웠다.

흔들리던 기와집 화면은 잠시 후 파리의 에펠탑 미국의 자유의 여신상 등.

온갖 해외 대표 건축물에서 외국인과 관광객들이 갸웃거리는 장면으로 이어졌다.

수민은 주에스더의 깨톡에 그날 시청한 ‘같이 쫌 살자’ 장면을 떠올리며 웃었다.

[나 ― 진짴ㅋㅋ 편집 미친 줄ㅋㅋ]

[거우리 ― ㄹㅇㅋㅋ그러고 끝났엌]

[현찌 ― ㅁㅊㅋㅋㅋㅋ 다음 주 재밋겠네]

[주에스더 ― 예고편 보니까 흉가 체험 벌칙 한다던 것 같은데]

‘같이 쫌 살자’는 끝나기 전.

각 멤버들이 무언가를 보고 놀라는 장면을 내보내며 무서운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어서 은호와 에이슬이 으스스한 건물을 들어가며 낡은 문이 ‘쾅!’ 닫혔다.

그리고 예고편은 끝났다.

[나 ― 여름도 아닌데 흉가?]

― ㄷ무서울라나?]

깨톡을 치던 중 수민이 앉아 있던 버스 정류장 앞으로 버스 한 대가 멈춰 섰다.

수민은 깨톡을 치며 중간에 뒤늦게 버스 번호를 확인했다.

타야 할 번호의 버스였는지, 수민은 다급하게 깨톡을 마무리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한 상황을 보여 주듯 깨톡에 ‘ㄷ’이라는 어색한 오타가 남았다.

[주에스더 ― 뭔가 웃기게 놀래킬 거 같애 ㅋㅋㅋㅋ]

[거우리 ― 원래 이맘때 공포가 찐이지 ㅋㅋㅋㅋ]

[거우리 ― 공포보다 미션 위주로 굴러가지 않을까?]

[현찌 ― 미션 위주? 오]

[거우리 ― 근데 흉가에 에이슬이랑 은호 오빠 단둘이 들어가는 거 같던데]

[현찌 ― 아ㅠ 우리 은호 럽라 안 엮이길 바랐는데ㅔㅔㅔ]

― 이은호 내 남친인데ㅔㅔㅔㅔ]

“남친이래, 하하.”

버스에 올라탄 수민은 ‘현찌’의 호들갑을 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 * *

“벌칙은! ‘흉가 체험’입니다!”

11월인 지금 흉가라니?

유 PD의 외침에 멤버들은 일제히 당황했다.

“미션을 실패하신 여러분께선 지금부터 미션지에서 ‘나’를 찾아오시면 됩니다!”

“나?”

“‘나’가 뭐야?”

“나 자신을 말하는 건가.”

“글자 ‘나’를 말하는 거 아니에요?”

거기다 이해하기 힘든 미션까지 있으니 여럿을 혼란스럽게 만들기 충분했다.

멤버들 중 몇몇은 ‘흉가’의 존재를 두려워하는 건지, 안색이 좋지 않았다.

유 PD는 멤버들에게 수많은 나무 막대가 꽂혀 있는 컵을 내밀었다.

“미션에 실패하신 분들은 이쪽으로 오셔서 막대기를 하나씩 뽑아 주세요.”

막대기의 존재를 눈치챈 몇몇은 서로에게 눈짓했다.

이후 컵에서 막대기를 뽑은 은호의 손에 빨간 테이프가 감겨 있는 나무 막대가 쥐어졌다.

다른 멤버들도 하나씩 한 쌍의 막대를 뽑던 그때.

마지막 차례였던 에이슬.

컵에서 남은 하나의 막대를 뽑아 들자, 막대 끝에는 빨간 테이프가 감겨 있었다.

“같은 색상의 막대를 가진 분들이 이번 벌칙에서 함께할 페어입니다.”

화면 속에선 태연하게 유 PD의 장면으로 돌아갔지만, 당시 에이슬은 제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기분이었다.

반대로 은호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분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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