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60)
“어! 은지 왔다.”
“오빠들은요?”
“최시우는 큰 거 급하다고 화장실 뛰어갔고, 톡신 선배님들은 차에 뭐 두고 왔다고 다녀오신대요.”
“금방 올 거랬어.”
에이슬의 설명 이후 지키가 이어서 말을 덧붙였다.
그때 은지는 갸웃거리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한참 전에 먼저 차에서 내린 은호의 모습이 넓은 마당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았다.
“이은, 아니. 오빠는요?”
“은호? 글쎄?”
지키가 어깨를 으쓱거릴 때, 에이슬이 말했다.
“톡신 선배님들이랑 같이 차에 다녀오시는 것 같았어요.”
“그래? 땡큐.”
에이슬에게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생각이 많았다.
‘이은호를 계속 지켜보고 있구나.’
에이슬이 만일 회귀 전의 기억이 있다면, 앞으로는 이런 시선조차 단순히 동료나 팬으로서의 눈길로 여기지 못할 것 같다.
“연탄아, 나와.”
씁쓸한 마음을 삼키며 평상에 캔넬을 올려 두고 문을 열었다.
캔넬 안에서 기지개를 켜는 건지 연탄은 검은 치즈처럼 몸을 늘이며 느리게 밖으로 나왔다.
“먀옹.”
“귀여워!”
“까맣다!”
연탄이 울음소리를 내자, 그 순간 지키와 에이슬이 동시에 외쳤다.
“와, 고양이 왔네? 얘가 연탄이야?”
그때였다.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리자 어느새 승연이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은지는 이제 도착했나 봐?”
“연탄이 챙기느라 조금 늦었어요.”
승연은 넌지시 물으며 넓은 평상을 빙글 돌아, 은지의 건너편 자리에 걸터앉았다.
“……까맣네.”
“그래서 이름을 연탄이라고 지었나 봐요.”
태현이 조용히 연탄을 바라보며 중얼거리자, 지키가 웃으며 말을 더했다.
이어서 승연이 물었다.
“혹시 연탄이 지금 몇 살이야?”
“……어, 몇 살, 아, 나이요? 그게, 그.”
갑작스러운 질문에 은지의 눈이 이리저리 바쁘게 굴러다녔다.
‘연탄이가 몇 살이지……?’
몇 살이라고 해야 하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에 당황하고 있던 그때였다.
“형, 걔 다 컸을 때 데려와서 나이는 물어봐도 잘 몰라요.”
어디를 다녀온 건지, 어느새 마당으로 돌아온 은호가 자연스럽게 은지를 지나치며 말했다.
은호의 대답에 승연은 ‘그렇구나.’라며 짧게 답한 뒤 연탄을 쓰다듬는 것에 온 신경을 쏟아 넣었다.
“연탄이는 은호랑 은지랑 같이 살아서 그런가? 되게 은호랑 닮았다.”
“햐악!”
“갑자기요?”
지키의 닮았다는 이야기에 연탄과 은호는 ‘어떻게 그런 말을!’이라는 듯, 거의 동시에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연탄이는 우리 대화 다 알아듣나 봐. 되게 똑똑한 친구네?”
와중에 연탄은 지키의 칭찬이 마음에 들었는지, ‘너 뭘 좀 아는구나’라는 의미의 약한 박치기를 했다.
다만, 연탄의 박치기가 지키의 심장에는 좋지 못한 행동이었나보다.
지키는 심장 부근을 부여잡더니 ‘귀여워……!’라며 중얼거렸다.
그때였다.
“안녕. 나는 에이슬이야. 연탄아.”
에이슬도 인사를 할 생각인지 연탄에게 다가오며 눈높이를 맞췄다.
에이슬이 연탄에게 손을 내밀었다.
연탄은 기묘한 눈빛으로 에이슬을 빤히 바라봤다.
“……?”
에이슬은 연탄의 샛노란 눈을 마주치자 깊은 곳을 꿰뚫리는 기분 탓에 바짝 긴장하고 있었다.
손을 가만히 바라보기만 하던 연탄은 느리게 에이슬 손에 뺨을 기댔다.
은지는 이 모든 상황을 한 걸음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가만히 지켜봤다.
예전부터 은지는 동물의 몸짓에 대해선 은호가 놀려도 놀렸다는 걸 모를 정도로 문외한이었다.
하지만 연탄과 함께 붙어 지냈기 때문일까.
은지는 적어도 연탄의 표현만큼은 어떤 감정과 기분을 뜻하는지 알았다.
‘왜 에이슬한테 꼭 ‘안쓰럽다’라는 듯이 행동하지?’
알아들어서 더 의문이 들었다.
당장 물어보고 싶었지만, 이곳엔 수많은 눈과 카메라가 너무 많았다.
거기다 마이크까지.
연탄에게 실수로라도 말을 하지 않도록 여러 차례 주의시켰던 만큼, 적어도 이 궁금증을 해결하려면 촬영이 끝나는 내일에서나 가능하다는 말이었다.
잠시 후.
유 PD가 마당에 들어서며 바빠진 스태프들의 분위기 탓인지 주변이 분주해졌다.
“다들 오셨네요.”
“오셨어요. PD님?”
“이 친구가 연탄이라는 친구예요?”
“네. 허락해 주셔서 감사해요.”
은지가 유 PD에게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진심이었다.
유 PD가 허락하지 않았다면 에이슬이 내 죽음과 관련되어 있는지 아닌지 확인조차 할 수 없었을 테니까.
* * *
연탄은 에이슬과의 짧은 인사를 나눈 이후 능청스럽게 평상에 뻗은 채 멤버들의 쓰다듬는 손길을 즐겼다.
“좋냐?”
“먀옹.”
“징그럽긴.”
은호가 그런 연탄을 못마땅하게 바라보며 중얼거린 그 순간.
휙.
고개를 돌린 연탄은 은호를 사납게 째려봤다.
“하하, 연탄이 은호한테 화낸다.”
발끈하는 연탄의 반응이라도 멤버들 눈엔 귀엽기만 한 건지 다들 웃던 그때였다.
“근데 있잖아. 너희 남매 혹시 오는 길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어?”
승연이 은호와 은지를 번갈아 바라보다 갸웃거리며 물었다.
“아까 회사에선 둘 다 평소랑 똑같이 장난도 치고 그러는 것 같았는데, 뭔가 여기 오고 나서 얘들 평소보다 분위기가 딱딱하다랄까, 왠지 그런 느낌이지 않아? 나만 그래?”
한편 태현은 차이를 전혀 못 느끼겠는지, 고개를 갸웃거리기만 했다.
그때였다.
“저희 집은 누나나 저나 같은 집에 있어도 몇 달 동안 말도 안 하고 사는데요?”
언제 볼일을 다 마치고 온 건지, 다가온 시우는 자연스럽게 연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승연에게 반박했다.
“그런가? 아무리 그래도 평소랑 뭔가 다른 것 같은데…….”
시우의 대꾸에 승연은 나지막이 속삭이며 은지를 바라봤다.
은지는 마당에 은호가 들어온 직후부터 내내 은호의 눈치를 봤다.
한편, 은호는 사실 은지에게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정확히는 신경을 일부러 ‘끄고’ 있는 쪽에 가까워 보였다.
승연의 느낌은 사실 정확했다.
‘얜 가는 내내 뭐 마려운 똥강아지마냥 끙끙거릴 거면서 왜 X랄했대…….’
차에서는 사실 은지한테 화가 좀 나있긴 했었다.
경고도 무시하고 계속 싹수없게 행동하는데 보살도 아니고, 화가 안 나려야 안 날 수가 없었다.
다만, 촬영장으로 오는 내내 은지는 본인이 실수했다는 건 잘 알고는 있는 듯 옆에서 아주 그냥 미안한 티를 팍팍 풍겨 댔다.
‘으이그.’
그런 모습을 보는데, 차마 더 화를 내자니…….
그냥 그런 내 모습이 내가 싫어서.
그래서 그냥 단순하게 떨쳐 내는 쪽을 택했다.
나는 매번 그랬으니까.
‘게다가 닥치라고 이야기를 한 건 본인이잖아.’
은호는 그렇게 평소와 다름없이 은지가 어련히 먼저 말을 걸겠거니, 그러고 있을 뿐이었다.
반면, 그런 은호의 생각을 알 길이 없는 은지는 보고도 모른 척하는 은호를 보며 생각했다.
‘조졌다. 이은호 진짜 나한테 개 빡쳤나 본데, 어쩌지……?’
앞길이 막막하다.
은지의 한숨이 여느 때보다 길었다.
* * *
둘 사이에 어색하기 그지없는 투명한 벽이 세워진 와중에 촬영은 시간 맞춰 시작됐다.
간단한 오프닝을 진행하며 유 PD는 멤버들을 한 화면에 모두 모았다.
이후 그는 앞으로 ‘같이 쫌 살자’에서 달라질 부분과 오늘의 ‘특별 미션’을 전달했다.
“……앞으로는 1포인트씩 지급하던 10개의 미션 중 무작위로 3포인트씩 지급해 드리도록 할 겁니다.”
유 PD는 앞으로 달라질 포인트를 말하며 웃었다.
그 이야기에 은호와 은지가 유독 크게 놀라는 모습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포인트를 빌린 승연과 시우는 매번 이자를 갚고 저녁에는 실내에서 자기 위해서, 또다시 여유가 있는 은호와 은지에게 빌리고 다음 회차에 갚기를 반복했다.
덕분에 은호와 은지는 두 사람이 챙겨 주는 이자 덕분에 다른 멤버들에 비해 상당히 여유롭게 실내 취침을 위한 포인트를 모을 수 있었다.
“잠시만요. PD님.”
은호가 유 PD에게 물었다.
“방값만 랜덤으로 바뀔 수 있다고 했지, 포인트는 고정 아니었어요?”
“음, 저는 미션 개수가 ‘10개’라고만 했지, 지급되는 포인트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는 이야기한 적 없는데요?”
은호의 질문에 유 PD가 여유롭게 웃으며 답했다.
「“……앞으로 여러분이 밤을 지새울 방값은 랜덤으로 오르며, 내일 미션의 개수는 오늘과 같은 10개입니다.”」
혹시나 해서 다시 기억을 더듬어 보는데, 젠장.
유 PD의 말이 맞다.
그는 실제로 ‘포인트’에 대한 언급은 하지 않았었으니까.
은호가 실랑이를 벌이는 그동안, 드디어 빚을 굴레에서 벗어날 기회가 생긴 승연과 시우는 굉장히 신나 보였다.
잠시 후.
유 PD는 변동 사항에 관한 이야기는 끝난 듯, 연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공개해 주세요.”
그때, 유 PD는 두 명의 스태프에게 각각 손끝으로 신호를 보냈다.
한 카메라맨은 기다렸다는 듯 평상에 누워 있는 연탄을 촬영했고, 뒤집힌 패널을 끌어안고 있던 스태프는 멤버들에게 패널을 들어 보였다.
패널에는 두 가지 미션이 쓰여 있었다.
1, 연탄의 마음을 얻어라!
2, 연탄을 얼마나 알고 있나요?
첫 번째 미션은 은호와 은지를 제외한 다른 멤버들이 할 미션이었다.
두 번째 미션은 은호와 은지.
둘 만을 위한 미션이었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은호와 은지가 연탄에게 유리한 만큼, 미션 자체를 나눈 것 같았다.
두 번째 미션은 ‘연탄의 행동’을 최대한 많이 ‘예측’해야 하는 문제였다.
그때, 은호가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쟤 행동을 예측하라니…….”
연탄이와 함께 지내긴 했었다.
같은 집, 같은 지붕 아래에서 함께 지낸 건 사실이니까.
다만, 은호는 연탄이 뿜어 대는 털이 싫어서 매일 문을 닫고 잤었다.
심지어 연탄을 마주쳤더라도 열에 여덟은 캣타워 꼭대기 층에 퍼질러 자는 모습뿐.
‘온종일 잠만 자는 저놈 행동을 내가 어떻게 알아!’
은호는 한 가닥의 희망을 품고서, 자신은 이 미션에 유리하지 않음을 강조하며 혹시 미션을 교체할 수는 없는지 물어봤다.
“안 됩니다.”
희망은 유 PD의 단호한 대답에 바스러졌다.
“미안해요. 은호 씨.”
유 PD는 조금 미안했는지 ‘형평성’을 위해서라며 짧은 사과를 덧붙였다.
한편, 은호와 정반대인 은지는 집에 있을 때 대부분 시간을 연탄과 붙어 있다.
‘예측, 예측이라…….’
연탄의 버릇을 훤히 꿰고 있던 은지에게 이번 미션은 전문 분야나 따로 없었다.
“시, 작!”
잠시 후 PD의 신호에 맞춰 타이머가 숫자를 올렸다.
시간 초가 10초가 넘어가기 전에 멤버들은 일제히 집 안 곳곳으로 흩어졌다.
연탄을 유혹할 만한 것을 먼저 선점하기 위해서였다.
그동안 마당에는 은호와 은지, 둘만 남았다.
마당은 지켜보는 스태프들이 숨이 턱턱 막혀 오는 것 같다고 느낄 정도로 어색한 공기가 맴돌았다.
“저, 아, 뭐, 아까 좀, 그, 있잖아…….”
은지는 차마 먼저 이야기하기가 민망한지, 자꾸만 뒷말을 끌어 댔다.
‘하여간, 자존심 한 번 꺾는 게 그렇게 어려울까.’
은호는 피식 웃으며 이번만 져 준다는 생각으로 은지에게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다음부터는 그러지 마라.”
은호가 먼저 한마디를 던져 줬기 때문일까.
은지는 한결 마음이 편해진 듯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긴장을 풀고 말을 이었다.
“아깐, 내가 말이 좀 세게 나가서, 미안.”
“됐어. 뭐, 앞으로 같은 실수만 하지 마.”
“어…… 응.”
은호가 곧바로 사과를 받아 줄 거라고 예상하지 못한 듯 은지가 당황하며 되물은 그때였다.
“야, 이은지.”
“응?”
“그것보다, 지금은 더 중요한 문제가 있잖아.”
은호는 진심 어린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빨리 멤버들 돌아오기 전에 작전이나 정보나 뭐든 풀어 봐. 우리 이자 받아먹던 거 끊기게 생겼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