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59)
“그래도 그럴 일은 정말 희박하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될 거야.”
에이슬이 수상하긴 했지만 그걸 굳이 수상쩍다고 입 밖에 낼 마음은 없었다.
이은호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기 전까지는.
“기억, 이미 있다고 의심되는 사람이 있어…….”
“어?”
조금 어리바리하게 이야기한 탓일까.
이야기를 들은 연탄은 앞에서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때 기억이 돌아온 것 같다고 의심되는 사람이 있다고, 근데 아무래도 확실하진 않아서…….”
확실하진 않다고 말을 덧붙였음에도 불구하고 연탄은 턱이 떨어질 것처럼 떡 하니 벌리고 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는 듯 진심으로 놀라 까무러치는 연탄의 표정은 긴 말을 대신해서 설명해 줬다.
“그래서 그런데, 혹시 내가 정확하게 확인할 방법이 있을까? 그…… 그때 기억이 있다는 거.”
연탄이 그제야 벌리고 있던 입을 다물며 고민했다.
진지하게 고민하기에 기대했는데.
“직접 물어보기?”
연탄의 대답은 허탈했다.
틀린 말은 아니긴 해.
직접 물어보는 게 확실하기야 하지.
나는 잠시 머릿속에서 간단한 시뮬레이션을 굴려 봤다.
에이슬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질문을 하고, 돌아오는 에이슬의 대답.
그런데 어째서일까.
여러 가지 상황을 굴려 봤음에도 해답이 나오지 않는다.
수많은 시뮬레이션 끝에 답을 내렸다.
‘직접 물어보는 건 오히려 안 좋은데?’
에이슬이 대답을 안 하면 안 하는 대로, 하면 하는 대로 나는 끊임없이 에이슬을 의심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에이슬의 말을 신뢰할 수 없다는 것.
“……직접 물어보는 건 좋은 방법은 아닌 것 같애. 그 사람이 ‘맞다’라고 하든, ‘아니다’라고 하든, 이은호도 아니고 난 걔 대답을 못 믿겠다.”
“그 사람은 은지한테 신뢰가 부족한 사람인가 봐.”
“뭐, 그렇지. 내 기억 속 애랑 지금은 좀 ‘많이’ 달라서…….”
기억을 되찾은 뒤, 다시 만난 에이슬은 팬 사인회에서였다.
하지만 나 또한 뒤늦게 많은 것들을 되찾았듯, 에이슬 역시 그때까진 회귀와 관계없이 정말 본인의 성격이었다면?
그렇게 예시를 잡고, 다시 한 번 내가 알던 에이슬의 성격을 ‘너 혹시 다른 시간의 기억이 있니?’라고 물어보는 시뮬레이션에 반영해 봤다.
그 순간.
상상 속 에이슬은 이전 버전보다 오히려 매우 익숙한.
특유의 오만함에 젖은 혐오 어린 표정을 지어 보였다.
이렇게까지 선명하게 생각나는 걸 보니, 걔가 나를 볼 때마다 저 표정을 얼마나 자주 지었는지 본의 아니게 깨달아 버렸다.
“역시, 직접 물어보는 건 안 되겠다. 무슨 미친 X 취급을 받으려고…….”
고개를 휘저으며 보기 싫은 에이슬 표정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연탄아, 다른 방법 없어?”
“글쎄, 다른 방법이라고 해 봤자 가장 정확한 건 내가 직접 보는 거지.”
연탄이가 직접?
에이슬을?
“직접 보면 뭐가 달라? 보이는 게 있는 거야?”
“딱히, ‘보인다’는 것보다는 ‘시간’의 손에서 벗어난 뒤틀린 존재는 내 시선에서 이질적인 개체로 인식되거든.”
시간을, 뭐시기, 시선에 이질적인 개체로 인식……. 뭐?
최근 내 방에는 32인치 정도 되는 작은 TV가 설치됐다.
예능을 좋아해서 이전까지는 모니터에 연결해서 시청하고는 했는데…….
우리가 일하고 있는 동안 혼자 있는 연탄이는 심심할 테니까.
외로움을 조금이나마 달래 주지 않을까 싶어서, 난 대표님한테 받은 용돈으로 TV 한 대를 샀다.
우리가 녹음에 정신없는 매일을 보내는 동안 그사이 연탄은 무슨 방송을 본 건지…….
TV를 놓은 이후로 연탄이는 날이 갈수록 어휘력이 늘어났다.
이상한 오래된 말투는 벗어던지고, 이제야 시대에 맞춰 가는 느낌.
다만, 문제는 그 성장하는 속도가 너무 빠르다 보니 저러다 오히려 내가 따라가기가 벅찰까 두려울 지경이었다.
일단, 지금은 대충 연탄의 눈엔 뭔가 달라 보인다는 정도로 이해하기로 했다.
그런데, 뒤늦게 연탄의 말을 이해하고 보니 의문이 조금 든다.
“혹시, 나도 그래?”
“뭐가?”
“그 이질적인 느낌이라는 거, 나도 어떻게 보면 음, 그, 벗어났잖아?”
스스로 명치를 가리키며 묻자, 연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은지 너는 괜찮아.”
“그래? 나는 오히려 ‘원인’ 같은 거니까 더 문제가 돼야 하는 거 아니야?”
“널 누가 엮었는데, 태가 날 리 없지.”
“누가 엮었는데?”
“나!”
아, 너무 당연한 질문을 해 버렸다.
다행히 연탄은 기분이 나쁘진 않았는지 오히려 웃으며 자랑하듯 턱을 치켜들었다.
“애초에 태가 났다면 벌써 ‘시간’이 찾아와서 네 꿈에 온갖 난리는 다 부렸을걸?”
시간.
그 시간이라는 것의 정체가 뭐기에.
‘꼭 사람을 가리키는 것처럼…….’
연탄은 ‘시간’을 칭할 때면 마치 시야에 보이지 않는 무(無)형의 흐르는 시간이 아니라 마치 유(有)형의 존재인 양 이야기한다.
‘시간’이라는 것에 의문을 가지던 그때였다.
“은지는 나랑 관련된 거 말고는 낯선 꿈 꾼 적 없잖아. 있어?”
연탄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묻는 듯 놀란 눈으로 돌아보며 물었다.
꿈…….
이은호는 희한한 악몽을 자주 꾸는 것 같았다.
최근에는 내 방을 찾아와서 예전처럼 뜬금없이 아련하게 ‘있구나…….’ 하고 중얼거리던, 그 X랄 맞게 역겨운 소름 돋는 짓은 안 하지만…….
한 번씩 옆 방에서 ‘흐악!’, ‘으으악!’ 같은 비명은 여전히 종종 들리는 것 같았다.
이은호야 원래부터 자기 힘든 일은 최악이 되지 않고서야 입 밖에 잘 안 내는 인간이라, 말하지 않아도 알아채는 건 독심술을 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웠다.
“있어?”
내가 대답을 하지 않아서인지, 연탄이 걱정하며 되물었다.
“……아니. 없어.”
나는 연탄을 안심시키기 위해 일부러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 * *
그로부터 며칠 뒤.
나는 대표님에게 연탄이를 촬영장에 데리고 가고 싶다고 이야기를 은근슬쩍 꺼내 봤다.
대답은 당연히!
“안 돼.”
대표님은 단호했다.
“허락 안 해 주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진짜 작업실에 박혀서 노래만 만들 거예요. 제발요.”
“아니, 넌 그걸 협박이라고 하는……!”
협박이라고 하는 거냐는 말과 다르게, 효과는 굉장히 좋았다.
오히려 효과가 너무 좋아서 하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락을 받기까지는 모자랐나 보다.
“……그래도 안 돼!”
“이유는요! 이유라도 말해 줘요.”
“고양이는 영역 동물이니까. 하물며 산책 같은 것도 아니고 촬영지라니!”
오, 그렇구나.
난 동물을 키워 본 건 연탄이가 처음이라, 정말 처음 안 사실이었다.
그런데 대표님의 조건은 연탄이와는 관계가 없었다.
연탄이는 그냥 고양이가 아니니까.
“괜찮아요. 연탄이는 완전 똑똑하고 본인이 집에 혼자 있는 거 외롭다고 같이 가고 싶다고도 했었으니까.”
자주 그랬었다.
이은호랑 내가 ‘다녀올게.’라고 인사만 하면 연탄이의 얼굴에 외로운 그림자가 뒤덮이는 그런 느낌이었으니까.
“너 말하는 것만 들으면 연탄이가 무슨 사람 말이라도 했다는 줄 알겠어.”
뜨끔했다.
‘아우, 씽.’
평소 대표님대로 단순히 비꼬는 말일 뿐이었는데…….
전혀 찔릴 말도 아닌데 찔렸다.
그때, 꼭 어린아이를 달래듯 대표님의 과장된 반대가 이어졌다.
“사람도 많은데 연탄이가 스트레스받으면 크으으은일 나요! 쓰읍! 안 돼.”
“…….”
아오, 속 터져.
훅 올라오는 성깔 때문에 절로 얼굴이 굳어졌다.
대표님도 내 기분을 눈치챈 듯 헛기침을 하며 말을 이었다.
“어, 어험! 은지야, 어른 그렇게 보는 거 아니다…….”
“제가 어떻게 봤는데요?”
“…….”
대표님은 마차 말을 더 잇지 못하고 내 눈만 피했다.
사실 나도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어느 정도 알고 있긴 했다.
이은호의 말을 빌리자면, ‘표정으로 ‘짜증, 짜증, 짜증’을 표현한다‘라던 그 얼굴이겠지.
하지만 대표님이 반대한다고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이은호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나는 이은호처럼 말로 설득하는 건 잘 못한다
판을 깔아 줘도 힘들다.
하지만 고집하면 바로 나 이은지.
반대한다고 포기하면 이 은지님이 아니지.
이틀간 난 대표님을 멸치처럼 볶고, 볶고, 또 볶았다.
이후 또 이틀간은 경고했던 대로 밥까지 굶어 가며 밤샘 작업을 할 생각으로 작업실로 향했다.
밤샘의 효과는 아주 좋았다.
딱 하루 만에 그간 무시하던 대표님이 나를 직접 찾아왔으니까.
“은지야…….”
왠지 고작 사흘 사이에 세월의 풍파를 홀로 정통으로 맞은 듯, 대표님은 처연한 얼굴로 작업실을 찾아왔다.
“하아, 연탄이가 불편해하면…….”
“당장 돌려보낼게요! 네!”
“그것뿐만 아니라, 촬영은 여럿이 함께하는 거니까. 멤버들하고 PD님한테 전부 허락이 떨어져야 가능하다고 할 거야. 연락은 내가 해 보마.”
“네! 대표님 전화만 기다리고 있을게요!”
겨우 반쯤 허락을 얻어냈다.
그리고 오늘, ‘같이 쫌 살자’ 촬영장으로 향하기 전.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에 톡신 선배들하고 모여 있던 그때였다.
휴대폰 진동이 느껴져서 확인하자, 화면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이름이 찍혀 있었다.
[잔소리대왕님]
다급하게 NRY 사옥을 나와서 집으로 향하는 골목을 달렸다.
“네!”
“연락을 해 봤는데, 다들 괜찮다고는 하는구나.”
연탄이를 촬영장에 데려가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 * *
연탄이를 촬영장에 데려가는 건 좋은데, 문제는 이은호랑 싸우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건 솔직히 예상에 전혀 없던 방향이라, 당황스럽다.
‘대충 눈치껏 이해해 주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뭐, 욕심인 것 같긴 하네.
나라도 이은호가 그렇게 행동하면 열 받을 것 같긴 하니까.
싸늘할 정도로 고요한 차 안.
‘같이 쫌 살자’ 촬영장이 멀지 않은 곳이었다.
차가 신호에 멈춰 서자, 가는 길에 시장이 있기 때문인지 전봇대에 이런저런 광고지가 다양하게 붙어 있었다.
그중에는 가게 폐업으로 시계를 싸게 판매한다는 광고도 있었다.
시계, 시계, 시간…….
「“태가 났다면 벌써 ‘시간’이 찾아와서 네 꿈에 온갖 난리는 다 부렸을걸?”」
광고지는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던 그때, 문득 연탄이와 나눴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이은호는 종종 악몽을 꾸는 것 같았다.
이은호가 ‘나 악몽 꿨어.’라고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종종 옆 방에서 평소와 다른 소리가 들리면 그 주는 내내 이은호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럼 그때마다 악몽을 꿨다고 생각해 본다면, 그때마다 연탄이가 말했던 그 ‘시간’이라는 게 이은호를 건드렸다는 걸까.
‘그 ‘시간’이라는 건 그냥 흐르는 ‘시간’이랑 다른 건가?’
갑자기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많아졌는데, 차에는 이은호 외에도 슬기 언니, 매니저 오빠까지 두 사람이 더 있었기에 쉬이 입을 열 수 없었다.
그동안 차는 다시 속도를 올려 촬영장인 대표님의 고향 집 인근에 주차를 마쳤다.
그르르르르―.
시동이 멈추자 옆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렸다.
매일 밤 들리는 연탄이의 코골이였다.
옆 빈자리에 놓인 켄넬 안에는 연탄이 제 발을 품 안에 꼭 끌어안은 채 까만 식빵을 굽고 있었다.
‘많이 졸렸나 보네.’
연탄은 켄넬 입구에 이마를 기댄 채 깊이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몽글몽글한 기분으로 연탄이의 잠든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던 그때였다.
드르륵.
잘 사용하지 않는 방향의 차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이은호였다.
이은호는 보통 차에서 타고 내릴 때면 내 자리가 있는 방향으로 타곤 했다.
이은호 자리의 옆에는 바로 도로가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여기서는 밴을 주차했을 땐, 바로 옆에 가시덤불이 있기까지 하다.
그런데 오늘 이은호는 그 가시덤불에 찔리는 게 나한테 비키라는 말을 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선택인 모양이다.
“하……!”
왠지, 기분이…… X 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