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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58화 (258/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58)

진짜 싸움

“알았다.”

“……어.”

이은호는 ‘무시’를 싫어했다.

특히 경고했음에도 같은 실수를 하는 건 더더욱 싫어하는 부분 중 하나였다.

그러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었는데.

선을 넘었다는 건 이은호 표정을 보자마자 눈치챘다.

사과한다면 이은호가 받아 준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묵어 온 자존심이 문제였다.

* * *

어린 시절.

이은호는 항상 나에게 ‘보호자’의 위치였다.

하지만 여자는 남자보다 생물학적으로 성장이 빠른 편이었고, ‘자존심’이 자라난 계기가 됐다.

95년생인 나보다 2살 많은 이은호.

찰나였지만. 내가 이은호보다 키가 컸던 시기가 있었다.

이은호가 내 마음속에서 까마득한 ‘보호자’의 위치에서 나와 같은 높이에 선 것도 바로 그때였다.

이은호는 항상 나를 지키려고 했다.

나는 그게 싫었다.

특히 그 내가 이은호보다 컸던 그 당시에는 ‘나보다 작은 주제에 뭘 지킨다고.’라고, 솔직히 같잖게 여긴 적도 있었다.

나는 이은호보다 강해졌었고, 키까지 더 컸을 땐 더더욱 그랬다.

납치를 당했던 이후, 싸움에서 이기는 법은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상대를 진심으로 쓰러지게 할 생각으로 덤비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

그리고 그 ‘마음가짐’은 상당히 편했다.

동네에서 껄렁거리고 다니는 놈들 중 진심으로 사람을 칠 수 있는 놈은 소수에 불과했다.

칠 수 있는 놈이라고 한들, 진짜 ‘길거리 생활’을 해 본 적 없는 놈들은 ‘살기 위해’ 싸우는 게 아니라 그런지 시시한 수준에 불과했다.

빵집 아저씨가 떠나고, 우리 남매가 보호소 생활을 시작할 무렵.

이은호는 아저씨가 사라지자 다시 내 보호자 노릇을 하려고 들었다.

하지만 이미 한 번 ‘이은호도 나랑 같은 꼬맹이’라는 인식이 생기니 그간 지켜 준 건 고마웠지만…….

‘굳이?’라는 비틀린 자존심이 자라났다.

「“찌질이 주제에 자꾸 내 보호자인 척하지 마. 똑같은 꼬맹이면서!”」

「“야! 쳐! 쳐 보라고! 오빠가 그렇게 잘났으면 싸워 보든가!”」

이은호는 어릴 때부터 항상.

정말 항상 답답할 정도로 조심스러웠다.

나는 그런 이은호가 겁쟁이 같아서 만만해 보였다.

끝내 나는 어른인 척하는 이은호한테 시비를 걸었고 코를 아주 박살 낼 생각으로 먼저 주먹을 휘둘렀다.

그때, 우리는 진심으로 피가 터질 때까지 싸웠다.

정확히는 내가 너무 이를 꽉 물어서 피가 난 거였지만…….

처음 한 대는 무조건 맞힐 자신이 있었다.

아닌 척 야비하게 치고 빠지는 건 아무것도 모르는 척, 그냥 능청 떠는 것만큼이나 쉬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이은호는 그런 내 주먹이 귀찮다는 듯 가볍게 피했다.

그때 당황한 게 문제였다.

이은호는 이어서 나보다 큰 손을 이용해서 내 얼굴을 덮으며 균형을 잡고 있던 내 다리를 걸었다.

시야가 보이지 않는 탓에 난 그대로 넘어졌다.

이은호가 손을 치웠을 땐 수치심과 무너진 자존심 때문에 울컥 눈물부터 차올랐다.

이은호를 겁쟁이라고 여겼던 생각은 그날 조금 바뀌었다.

이후에도 나는 복수를 위해 시도 때도 없이 이은호한테 싸움을 걸었다.

온갖 비열한 방법은 다 썼다.

얼굴에 흙을 뿌리는 건 당연했고, 함정을 설치하기도 하고 무기를 든 적도 있었다.

치사하든지 말든지.

살기 위해선 주변을 잘 이용하는 게 중요하다.

고로, 살아남기 위해 배운 싸움에서 ‘도구는 치사하다’ 같은 ‘기준’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얼마나 빠르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는지 또는 얼마나 빠르게 ‘안전거리’를 확보할 수 있는지.

오롯이 그것만 중요했다.

하지만 그런 내 무차별적인 공격에도 불구하고 이은호는 매번 주변을 경계하는 만큼 쉽게 당해 주는 법이 없었다.

「“항복.”」

「“내가 졌다.”」

지더라도 결정적인 공격은 막힌 개운하지 못한 승리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다 처음으로, 심지어 유일하게 나한테 ‘개운한 승리’를 맛보게 해 준 음악.

제대로 된 진짜 첫 승리였던 만큼, 나는 음악에서만큼은 이은호한테 지기 싫었다.

내가 나를 책임질 수 있는 이은호와 동등한 성인이 되었을 땐 더더욱 말이다.

이은호는 연습생 기간 내내 스파르타식으로 가르치는 구름 쌤에게 ‘힘들다’라는 말 한마디를 안 할 정도로 고집 하나는 대단했다.

같은 핏줄인 나도 그건 마찬가지긴 하지만, 쉽게 감정을 분출하는 나랑 달리 차분한 편인 이은호는 조금 그 ‘포인트’가 달랐다.

우리 남매는 대표님을 만나 연습생이 된 이후부터 서로에게 항상 라이벌과 같은 사이였다.

시간을 거스르기 전.

그러니까 ‘회귀’하기 전에는 매번 우리끼리만의 승부에서 승자는 나였고 이은호는 뒤처졌다.

그만큼 내 데뷔는 앞당겨졌고 이은호는 나한테 가려져서 눈에 띄지 못했다.

남매 데뷔가 무산된 뒤에는 더더욱 그랬다.

‘순위 킬러’ 같은 별의별 별명이 다 붙었을 때도 나는 순위에 별 관심이 없었다.

금방이라도 뒤따라오는 이은호한테 따라잡힐까.

나를 노력하게 만든 건 당시 데뷔조차 못 했던 이은호의 독한 면이었다.

‘귀차니즘’ 덩어리인 이은호는 목표가 생기자 마치 사냥개처럼 물고 놓을 줄을 몰랐다.

나는 원래 성격대로라면 항상 느긋하게, ‘적당히’만 하는데…….

적어도 그땐 노력 없이 승자가 된 건 아니었다.

그땐 조금이라도 늘어지는 순간 이은호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나를 밟고 오를 것 같았다.

고작 두 살 많다는 이유로 보호자 노릇을 하려는 오빠 놈에게 지고 싶지 않았다.

경력이 있는 만큼 말조심하는 법은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이은호가 옆에 있으면…….

괜히 지기 싫어서 진심은 점점 이야기할 수 없어졌고, 말은 점차 거칠어졌다.

이은호의 ‘회귀’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땐 더더욱 그랬다.

도중에 에이슬에게 내 과거를 숨기기 위해 노예 노릇을 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내가 나한테 당당한데. 지가 뭐라고!’

정말 진심으로 피가 거꾸로 솟는 기분이었다.

나는 그래서 ‘같이 쫌 살자’를 촬영하는 동안 에이슬을 주시했다.

앞서 경험으로 분명 그때와 다른 애 같긴 하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의심을 놓지 않았다.

그러다 촬영 중 의미심장한 일을 하나 겪게 됐다.

저녁 준비를 위해 에이슬과 지키 언니와 함께 밭에서 익숙하게 깻잎을 따고 있을 때였다.

다들 작곡하는 사람들인지라, 우린 자연히 작곡의 목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난 딱히 수상하고 말고는 크게 신경을 안 써서…….”」

주제가 자연스럽게 ‘수상’ 쪽으로 기울던 그때였다.

「“에이, 언니는 곡을 낼 때마다 수상을 지겨울 정도로 많이 했으니까 그렇죠!”」

에이슬이 한 이야기에 순간 소름이 돋았다.

「“하하, 무슨 소리야? ‘저주’ 말고는 상 받아 본 적이 없는데.”」

이은호와 나는 이 시간에선 수상 경력에 ‘디지털 싱글’로 발매한 ‘저주’ 단 한 곡이 유일했다.

곡을 낼 때마다 수상을 한 건 회귀 ‘전’이지, 지금이 아니다.

「“네? 아, 아아! 제가 은지 언니랑 은호 오빠 팬이라, 항상 노래가 좋아서 착각했나 봐요. 헤헤.”」

너스레를 떨며 되묻자, 에이슬은 굉장히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 * *

많은 고민 끝에 나는 ‘바 선생’ 사건이 있던 그날, 캣타워를 되찾은 연탄이에게 신경 쓰이던 부분을 직접 물어봤다.

“연탄아.”

『응?』

“이은호가 회귀하기 전 기억 있잖아.”

『뒤틀린 시간?』

“어. 뭐. 그거 맞는 거 같은데, 응.”

『그게 왜?』

캣타워의 꼭대기에 반쯤 액체 상태처럼 늘어져 있던 연탄은 기지개를 켜더니 한 층 한 층 폴짝폴짝 뛰어내리며 아래로 내려왔다.

“나는 원래 그때의 기억이 없었잖아.”

『영혼이 제대로 그 몸에 붙지 못해서 일일이 꿰어 가며 이어 붙인 거지. 기억이 없었던 건 아니야.』

연탄이 해준 긴 설명에 살짝 아득해진 기분이 들었다.

설명이 조금…….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어서.

“어, 어쨌든! 아무튼! 혹시 있잖아. 그런 식으로 나 말고도 ‘그때’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있나 해서.”

그 순간.

연탄은 갑자기 신체 일부가 연기로 변하며 크기가 서서히 커졌다.

연기는 다급하게 상자 속으로 뻗어 가더니 몰래 챙겨 뒀던 은호의 옷을 꺼내 왔다.

“난 분명 고양이 상태로 방에 있는 것만 허락했던 것 같은데…….”

“아, 이, 이건 내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 조금 조절이 힘들어져서……!”

예상치 못한 변신인 건지, 당황한 샛노란 눈이 이쪽을 돌아봤다.

나름의 예의라고 생각해서 눈을 감아 줬다.

한참을 부스럭거리던 소리가 줄어들고 다시 방 안이 조용해지고 나서야 다시 눈을 떴다.

눈을 뜨니, 앞에는 사람이라기엔 다소 묘하게 생긴 존재가 앉아 있었다.

익숙한 검은 반바지에 후드를 걸친 연탄이었다.

연탄은 무슨 죄라도 지은 양 고개를 푹 숙이며 중얼거렸다.

“미안해. 조금만 이러고 있다가 회복하면 돌아갈 테니까…….”

‘회복?’

한 단어가 신경이 쓰여서 물었다.

“조절이 힘들어지고 있다는 건 어디가 안 좋다는 말이야?”

“아, 아니야. 그, 아무튼 조금 전에 물어본 거는…….”

연탄은 마치 다급하게 주제를 돌리며 말을 이어 갔다.

“뒤틀린 시간 속에서 너랑 깊은 연관이 있다면야, 기억을 되찾는 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야.”

“그래?”

“그런데 그게 은지, 너한테 그다지 좋은 일은 아닐걸…….”

“어? 그래?”

“정말 그런 존재를 만났다면 너희 오누이가 피했으면 할 정도야.”

“왜?”

“너는 이번엔 괜찮을 거야. 넌 나랑 연결돼서 네가 위험해질 일은 없거든.”

“…….”

은지가 갸웃거리자, 연탄이 노란 눈을 휘며 웃었다.

양 눈가 끝에 찍힌 매력 점이 눈웃음을 따라 위아래로 들렸다가 원래 자리로 향했다.

홀린 듯이 얼굴을 빤히 보고 있던 그때, 연탄의 표정에 씁쓸함이 어렸다.

“은지 너는 그렇지만……. 이은호는 다르잖아.”

호기심에 물어본 건데, 갑자기 이은호 이름이 나오면서 심장이 쿵 바닥을 찍었다.

“다른 사람이 회귀 전 기억을 떠올리는 게 이은호랑 무슨 상관인데?”

그때, 연탄은 뭔가를 숨기려는 듯 은근슬쩍 은지의 시선을 피했다.

“또 내 방에서 쫓겨나고 싶어?”

“아니! 절대로……!”

“그럼 얼른 말해.”

연탄은 어지간히 말하기 싫은지 한숨까지 푹 쉬며 입을 열었다.

“시간은 너를 기점으로 뒤틀렸어. 그건 알고 있지?”

“내가 죽었다가 살아난 거니까?”

“응. 혈연인 오누이인 너희 서로는 서로에게 영향을 받기가 쉬워. 너희는 어릴 때부터 끊임없이 같이 붙어서 자랐으니까.”

“그랬지.”

“그런데 너희 오누이는 가족이 없잖아. 있어도, 함께한 시간이 없잖아.”

“응.”

“그렇다는 건…….”

어지간히 나쁜 소식인 건지, 연탄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만일 지금 그때의 기억을 가진 ‘타인’이 라는 건 은지, 네 생명과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는 거지.”

“무슨 소리야?”

사실 딱히 다시 질문할 필요도 없었다.

그냥 이해하고 싶지 않았는데, 이해해 버리면서 버릇처럼 튀어 나간 말이었다.

그때, 이미 눈치챈 사실을 연탄이 입에 올렸다.

“그 시간에서 은지, 널 해한 인간일 확률이 높다고.”

나를 해한 사람.

내 생명과 연관이 있다는 건, 나를 죽였던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게 만일 에이슬이라면?

이번엔 이은호가 위험할 수도 있다.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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