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57)
합동 콘서트 소식을 접한 이후.
톡신과 이응 남매가 NRY 사옥에서 마주친 건 ‘클리셰’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이후였다.
짤랑.
회사 입구에 달린 종이 소리를 내며 누군가 문을 열었음을 알린 그때였다.
“오, 은호야!”
종소리에 뒤를 돌아본 승연이 가장 먼저 은호를 반겼다.
뒤이어 예찬은 은지에게 손을 들었다.
“은지, 안녕.”
이후 은호와 은지에게 줄지어 멤버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은호, 은호, 은호, 이은호.”
“왜요. 왜요. 왜요. 아, 왜요.”
주송민이 여러 번 부르자, 은호는 무심하게 대꾸하다 마지막엔 미간을 구겼다.
“야, 야야.”
“…….”
은호가 자꾸 부르기만 하는 주송민을 쏘아보자, 주송민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으며 그제야 본론을 꺼냈다.
“너 그때, ‘7대 주선’이니 ‘죄악’이니 뭐니 했었잖아.”
“네.”
“그거 어디에 들어간 거야? 나 어제 내 뮤비만 몇 번을 돌려 봤는데 모르겠어.”
“…….”
주송민은 귀찮았지만, 질문엔 흥미가 있었는지 은호가 희미하게 웃었다.
그때, 은호의 표정을 보고 있던 승연이 크게 웃었다.
“야, 은호가 너 멍청하다고 비웃는다.”
“하하, 아니에요.”
“아니라기엔 너무 웃는데?”
“아, 진짜. 진짜로 아니에요.”
당황한 은호가 다급하게 양손을 흔들며 무고함을 주장했다.
“너…….”
놀릴 거리를 잡은 듯 주송민은 안면의 모든 근육을 이용하여 ‘충격받았어!’를 표현했다.
“아, 아니라니까요.”
“내가 그래도 너보다 대선배인데……!”
“아니. 갑자기요?”
“이응 리더 이은호가 대선배 놀리네. 아이고!”
“이은호가 왜 이응 리더예요!”
“…….”
은호는 발끈하는 은지를 돌아봤다.
이어서 송민에게 무어라 해명하려다 그냥 한숨만 내쉬었다.
은호가 귀찮은 상황에서 도망이라도 칠 것처럼 몸을 돌린 그때였다.
“알았어. 은호야! 알았어. 가지 마. 하하하. 안 놀릴게! 새꺄! 말해 줘. 진짜 궁금해.”
주송민이 다급하게 나가려는 은호의 가디건을 붙들며 소리쳤다.
은호는 문 쪽으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고 냉랭하게 주송민을 돌아봤다.
“그냥 곳곳에 들어가긴 들어갔어요. 앞으로도 들어갈 거고…….”
“……?”
“뭐, 그렇습니다.”
은호는 더 설명하려다, 놀림 받은 게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일부러 말을 아꼈다.
은호의 대답은 답보다는 수수께끼를 하나 더 던져 준 느낌이었는지, 주송민의 머리 위로 수십 개의 물음표가 떠올랐다.
“뭐야! 어디 들어갔는데, 힌트라도 줘! 나 이런 거 안 풀리면 잠 못 잔다고!”
“오, 그래요?”
주송민이 진심으로 궁금해하자 은호는 비열해 보이게 입꼬리를 걸며 입을 열었다.
“형.”
“어?”
“7대 주선이랑, 7대 죄악 뭐 뭐 있는지 알아요?”
“음, 탐욕, 식욕, 질투…… 또 뭐 있냐.”
주송민이 손가락 10개를 펼쳐 두고 하나씩 접었다.
“그거랑 비교해서 보면 얼추 맞을 거예요.”
“얼추?”
“네. 얼추.”
“맞는 거면 맞는 거지 애매하게 ‘얼추’는 뭐야.”
“다 공개돼야 맞는 거죠.”
“아직 다 공개된 게 아니야?”
“네.”
“그러면?”
짤랑.
그때, 현우와 도진이 NRY 사옥으로 들어서며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은호는 눈치껏 현우가 은지와 자신을 찾고 있다는 걸 알았다.
“나머지는 제가 예찬 형한테 PPT로 전달했으니까, 형한테 물어봐요.”
슬슬 출발할 준비를 해야 할 것 같았는지, 은호가 싱긋 웃으며 예찬을 돌아봤다.
무언의 신호를 알아들은 양, 예찬이 은호를 따라 싱긋 웃었다.
“형, 진짜 알아?”
“어. 다 알지. 앞으로 나올 이야기도.”
“나도 알려 줘. 왜 형만 알아!”
“알고 싶어?”
“어. 진짜 나 어제 은호가 했던 말 궁금해서 밤새 뮤비 돌려 봤었다니까.”
“그래?”
예찬은 눈을 휘더니, 잠시 후 사악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럼, 짖어 봐.”
주송민은 예찬이라면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으르렁거리며 ‘왈왈’ 짖었다.
문제는, 진짜 개 영혼이 빙의라도 한 듯.
“악!”
송민이 예찬을 진심으로 물어뜯으면서 난리가 났다.
“은호야.”
난장판의 계기였던 은호는 현우의 부름에 NRY 사옥 밖으로 나왔다.
“이제 출발해야 해.”
“예. 형.”
“은지는?”
“그러게요. 아까까지 옆에 있었는데.”
이응의 ‘리더’ 이야기가 나올 때까지만 해도 옆에 있었던 은지가 갑자기 사라졌다.
“내가 찾아볼게. 추우니까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
“네.”
현우는 은지를 찾기 위해 기숙사 방향인 골목 안으로 향했다.
그동안 은호는 뼈가 시릴 만큼 찬바람에 몸을 떨며 다시 NRY 사옥으로 들어왔다.
“뭐야, 뮤비랑 다르잖아. 아, 형이 짖으라는 대로 짖었잖아. 똑바로 이야기해 줘!”
“진짜 은호가 이야기해 준 내용이 이거라니까.”
은호가 다시 들어가니 조금 전의 연장선인지 주송민은 예찬에게 발끈하며 되묻고 있었다.
은호는 주송민이 무슨 이야기에 그렇게 반응하는 건지 알고 있는 듯 여유롭게 웃으며 멤버들에게 다가갔다.
* * *
“진짜요? 진짜죠!”
언제 온 건지, 다시 집에 돌아온 은지는 누군가와 통화 중인 듯 휴대폰을 귀에 붙인 채 환하게 웃고 있었다.
쾅쾅.
갈색 알루미늄 문이 시끄러웠다.
재질 때문에 현우가 살짝 노크했음에도 소리가 크게 났다.
은지는 기다렸다는 듯 웃으며 문을 열었다.
“매니저 오빠!”
“깜짝이야. 응?”
은지가 벌컥 문을 열며 현우를 불렀다.
“켄넬 사러 가요!”
“켄넬? 그, 강아지 이동장?”
“네!”
“지금?”
“네!”
“갑자기 켄넬은 왜?”
은지는 대답 대신 반짝거리는 눈으로 현우를 빤히 보더니 손을 뻗어 현관에 얌전히 앉아 있는 연탄을 가리켰다.
“촬영장에 연탄이를 데려가려고?”
“네! 방금 대표님이 멤버 언니, 오빠, 애들한테 다 연락해서 허락받았대요!”
“유명한 PD님은요?”
“유 PD님은 마침 마스코트가 될 친구가 필요했었다면서 너무 좋다던데요?”
“…….”
현우는 황당한 얼굴로 은지와 연탄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 고양이는 영역 동물 아니야?”
“아, 그, 그게 연탄이는, 특! 특이한 애라 괜찮아요!”
“특별하다는 거죠? 아무리 특별하다고 해도요. 장거리 이동인데, 그냥 평소대로 철수 PD님께 맡기고 가요.”
은지의 동공이 핑계를 찾아 이리저리 바쁘게 굴러다녔다.
그때, 은지의 눈에 불쌍한 표정으로 현우를 빤히 바라보던 연탄이 걸렸다.
“봐요! 연탄이도 이렇게 가고 싶다잖아요.”
현우는 연탄을 돌아봤다.
그때였다.
『아이야, 이 여인의 뜻이 곧 나의 뜻이니, 아무것도 묻지 말고 따르거라.』
현우가 연탄의 눈을 정확히 바라본 그 순간, 최면이라도 걸듯 연탄이 속삭였다.
“야, 말해도 괜찮은 거야?”
갑자기 들린 연탄의 목소리에 오히려 은지가 당황하며 물었다.
연탄은 걱정하는 은지에게 검은 먼지 뭉치 같은 손가락 하나를 세워 ‘쉿’을 표현했다.
은지가 걱정스럽게 현우를 돌아보자, 그 순간.
“일단 시간이 많이 없어서, 모셔 가다가 가는 길에 구매하죠.”
현우는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태연히 답했다.
“안 가시나요?”
“아뇨. 가, 가요.”
은지는 당황했지만 태연한 척 연탄을 안아 들며 현우를 뒤따랐다.
“연탄아, 개쩐다. 진짜 신은 신인가 보네.”
은지는 안아 들고 있던 연탄에게 속삭였다.
연탄은 능력을 보여 준 게 자랑스러운 듯 어깨를 으쓱거렸다.
조금 가빠진 숨소리는 은지에게 최대한 들키지 않게 감췄다.
“은호, 데려올게. 먼저 차에 타 있어.”
“네에―!”
현우가 차 키를 건네주자, 은지는 곧장 차 문을 열었다.
* * *
“그래서, 너희 콘서트에서 개인 곡은 뭐 하기로 했어?”
“일단 신곡인 ‘저주’는 무조건 들어갈 거고, ‘Wise’는 형들이랑 같이…….”
은호가 예찬과 한창 콘서트에서의 선곡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 현우가 사옥으로 들어왔다.
“은호 씨, 갑시다.”
“아, 네!”
“너도 ‘같이 쫌 살자’ 촬영 가는 거야?”
조금 전.
현우가 은지를 찾으러 다시 집으로 향했을 때, 현우와 함께 온 도진은 같은 촬영이 잡힌 태현과 승연을 먼저 데리고 출발한 지 오래였다.
“잘 다녀와.”
예찬은 떠나는 은호에게 가볍게 손을 들어보였다.
은호는 꾸벅 허리를 숙인 뒤 NRY 사옥을 나와 익숙한 밴으로 향했다.
덜컥,
“아, 깜짝이야.”
밴 문을 연 순간, 은지는 연탄의 노곤한 온도에 눈이 감긴 건지…….
그 짧은 사이에 입을 벌린 채 깊은 잠이 들어 있었다.
은지의 비주얼에 놀라선지, 은호는 차에 오르고 난 뒤에도 은지의 품에 안겨 있는 연탄을 발견하지 못했다.
현우는 곧장 차에 올라 속도를 올렸다.
익숙한 길을 달려가던 그때.
벤이 갑자기 한 동물 병원 앞에 멈춰 섰다.
“여긴 왜요?”
“은지가 켄넬 사야 한다고 했어. 작은 걸로 사…… 중간 크기로 사야겠다.”
현우가 벤에서 내리기 전, 연탄의 크기를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중간……?”
현우가 벤에서 내렸을 때, 은호는 뒤늦게 은지의 품 안에 한가득 들어찬 검은 털 덩어리를 돌아봤다.
처음엔 ‘저게 뭐지?’라는 듯한 은호의 표정이 경악으로 바뀌었다.
“……이은지! 너 미쳤냐? 촬영 가는데 얘를 데려오면 어쩌자는 거야!”
은호가 버럭 소리치자 은지는 그제야 꿈나라에서 벗어나며 눈을 떴다.
“쓰읍. 뭐야. 다 왔어?”
“다 오기는, 돌았냐? 얘를 왜 데려와!”
은지는 은호를 빤히 바라보다가 품 안의 연탄을 내려다봤다.
“아, 연탄이.”
연탄은 어쩐지 기운 없어 보이는 동작으로 고개를 들어, 샛노란 눈을 끔뻑이며 은지와 눈을 맞췄다.
“있어. 그런 게.”
연탄을 확인한 은지는 다시 은호를 돌아보며 모호한 답을 했다.
은호의 눈썹이 신경질적으로 뒤틀렸다.
“이은지, 넌 촬영이 장난이냐?”
“뭐래. 허락받고 데려가는 거거든?”
“허락을 받는다는 것부터 정신 나간 거지.”
“대표님도 뭐라고 안 하는데 니가 뭔 상관이야.”
은지가 나이 차이를 무시하고 ‘니가’, ‘야’라고 부르는 일이야 한두 번도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흔한 일상이었던 호칭이 기분 나빴다.
“……가는 길에 대표님 댁 들러서 연탄이 맡겨.”
“싫은데?”
“맡겨라.”
“싫다고.”
“좋게 말할 때 맡겨라.”
“좋게 말할 때 싫다고 했다. 대표님도 허락했고, 유 PD님은 오히려 마스코트가 필요했다고 대찬성했는데, 니가 뭔데.”
평소와 다른 살벌한 분위기의 남매 싸움에 내부 공기가 차게 식었다.
따뜻한 조수석에 앉아 히터를 맞으며 꾸벅꾸벅 졸고 있던 슬기는 두 사람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말려야 하는데…….’
‘싫다’, ‘맡겨라’가 오가던 중간부터 슬기는 백미러를 통해 둘을 보고 있었다.
평소라면 싸우지 말라며 곧장 막을 텐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두 사람의 분위기가 장난처럼 투덕거리는 평소와 달리 무거웠다.
“다른 사람들이 다 허락했는데 이은호 니가 뭔데 ‘된다’, ‘안 된다’ X랄이야.”
“말 가려서 해라. 너야말로 카메라가 없는 곳을 더 찾기 힘든 곳에 얘를 왜 데려가.”
“있어, 이유가.”
“얘 실수해서 걸렸던 전적 있는 놈인 거 기억 안 나냐? 너 지금 카메라가 24시간 동안, 1박 2일 내내 도는 곳에 얘 데리고 가는 거라고, 제정신이냐?”
“제정신이거든? 아무것도 모르면 조용히 좀 해.”
은호는 싸늘하게 은지를 바라봤다.
“내가 뭘 모르는데.”
은지는 입을 열려다, 조수석에서 느껴진 슬기의 인기척에 다시 입을 닫았다.
“야, 내가 뭘 모르냐고.”
“…….”
“이은지, 내가 뭘 모르냐고.”
은지가 고개를 돌렸음에도 불구하고 은호는 차분하고 집요하게 되묻고 또 되물었다.
“아, 닥쳐! 좀!”
참다 못했는지 은지가 신경질적으로 은호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본인 때문인 것도 모르고!’
가설이 확실해지면, 그때 이야기할 생각이었다.
그 가설을 확인하기 위해 연탄을 촬영장으로 데려가는 거였다.
나중에 이야기하자고, 이어서 그렇게 말하려고 했다.
진짜 화난 은호의 표정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그랬다.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