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55)
인터뷰가 마무리되고, 모든 조명이 꺼지면서 화면 한가득 ‘클리셰’ 뮤직비디오가 재생됐다.
뮤직비디오 속에서는 조금 전 장면처럼 수많은 기자들이 카메라를 들고 셔터를 터뜨렸다.
번쩍.
마지막 셔터 소리와 동시에 가장 가까이 있던 카메라가 번쩍이는 빛을 뿜어내며 화면을 집어삼켰다.
몸을 들썩이게 하는 드럼 소리와 일정한 스냅 박자에 중간중간 몽글몽글한 느낌의 피아노와 건반이 포인트처럼 얹어졌다.
눈을 뜬 순간
난 네 생각을 해
네 목소릴 들어
화면 속 승연은 아무도 없는 무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그 순간 한 스태프가 부름에 승연은 무대를 내려왔다.
승연은 아무것도 없는 흰 배경에 놓인 바 의자에 앉았다.
주변 배경에 이것저것 제품들이 세팅되고 있지만, 승연은 무엇 하나에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잠시 후.
승연의 손에 한 스태프가 다가오더니 줄을 묶었다.
승연은 손에 쥐여 주는 대로 쥐고 웃으라는 명령을 따라 웃었다.
몸은 줄에 묶여, 위에서 조종하는 대로 자동으로 제품이 잘 보이도록 들었다.
좋은 아침 밝은 인사
지금 내겐 없는 것
입에 걸린 이 미소는
대체 누구를 위한 걸까
그 순간, 승연의 머리 위로 엮여 있던 줄이 한순간 끊어졌다.
승연은 광고를 위해 들고 있던 물건과 함께 나무 인형처럼 쓰러졌다.
송민은 휴대폰에 푹 빠진 채 쓰러진 승연을 가볍게 뛰어넘으며 지나갔다.
오늘은 무슨 이야길 할까
넌 똑같이 흐르는 시간 속
내 유일한 하루의 낙이야
송민이 보고 있는 화면은 E-FAN 어플이었다.
톡신의 팬클럽인 ‘포션’의 이야기를 보고 있던 모양.
그때, 송민은 창가로 향하며 바깥을 바라봤다.
밖은 평범한 스튜디오 밖이 아니었다.
우리 이야기에선 내가 공주라도 좋아
송민은 마치 라푼젤이 갇힌 탑처럼 높은 곳에서 풍경을 바라봤다.
라푼젤 이야기 속에선 머리카락을 내리고 있던 것과 달리 뒤엉킨 긴 충전기 선이 바람 따라 흔들거렸다.
전선 끝에는 E-FAN 어플이 켜진 휴대폰을 충전 중이었다.
왕자는 공주를 구하니
아니
요즘 공주는 왕자도 구한대
송민이 얼굴에 의욕을 띠며 창문 난간 위로 폴짝 뛰어올랐다.
이후 굵은 전선을 타고 순식간에 아래로 내려왔다.
바닥에 발을 디딘 그 순간.
장면은 순식간에 다시 무대 위로 돌아왔다.
여전히 관객은 없는 무대.
비어 버린 무대를 마주하자 송민은 좌절한 듯 무릎을 꿇으며 고개를 떨궜다.
이어서 고개 숙인 송민을 오현이 지나쳤다.
그때, 화면도 송민에서 자연스럽게 오현을 뒤따랐다.
사진을 찍어 달라는 한 팬의 부탁에 오현은 곧장 웃는 얼굴로 사진을 찍었다.
팬은 아쉬움 없이 오현을 뒤로하며 떠났다.
네 미소만큼 나도 오늘은
이 불쾌한 햇빛이 싫지 않아
그때였다.
찰칵.
갑자기 터진 플래시.
오현은 인상을 구기다가 씁쓸하게 웃으며 예의 없는 기자를 지나쳤다.
답을 일러 줘
나를 구한 Heroine
No No 넌 Hero
맞아 이건 클리셰
오현은 어느새 승연이 쓰러져 있던 곳에 도착했다.
오현은 조용히 쓰러진 승연을 다시 줄에 연결했다.
비틀고 뒤틀어
결국은 닿겠지
일어나지 못한 채 무표정한 승연의 얼굴이 입만 움직이며 가사를 읊었다.
사랑받는 클리셰
맞아 이건 클리셰
박자에 맞춰 승연의 몸이 다시 바로 세워지고, 정신이 돌아온 승연은 씁쓸히 앞으로 향했다.
해피 해피 엔딩 클리셰
승연이 향하는 곳은 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인파로 만들어진 벽을 뚫고 안으로 들어가자, 승연의 눈앞에 보인 건 열띤 무대를 뛰고 있는 은호와 은지였다.
소리가 존재하지 않지만 관객들은 하나같이 즐거운 표정을 하며 은호와 은지를 따라 신나게 뛰었다.
나만 홀로 동떨어진
해피 엔딩 클리셰
언제 따라온 건지 곁에는 송민과 오현도 함께 고개를 쳐든 채 E-UNG의 무대를 지켜봤다.
누군가에겐 해피 엔딩
나만 홀로 배드 엔딩
오현의 노래를 이어, 승연이 고개를 돌렸다.
승연이 돌아본 곳에는 박자에 맞춰 조명이 침대를 비췄다.
침대 앞에 선 승연은 파묻힐 듯 폭신거리는 침대에 몸을 내던졌다.
침대 속 Bed Bad 엔딩
이라면 그런 거라면
화면이 바뀌고, 송민은 검은 문과 하얀 문을 앞에 두고 있다.
흑백 논리로 나누기엔 우리 색은
찬란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문을 열자, 문이 무색하게 벽이 무너지며 지금까지 달려왔던 톡신의 기록으로 가득 메워진 다른 벽이 나타났다.
찬란하다는 말이 빈말이 아닐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찬 사진과 신문 기사들.
그때, 화면이 바뀌고.
답을 일러 줘
이건 나쁜 Habit
No No 난 Headache
오현은 녹음실 안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녹음실 바깥에는 디렉팅을 보고 있는 예찬과 함께 태현이 앉아 있었다.
맞아 이건 클리셰
나만 홀로 동떨어진
해피 엔딩 클리셰
오현이 노래를 멈추자 오현과 예찬을 비추고 있던 조명이 꺼졌다.
동시에 배경으로 깔리던 드럼, 피아노, 스냅 등 그 어떤 소리도 나지 않았다.
화면은 태현을 비췄다.
태현은 스튜디오를 나와 밖으로 향했다.
문을 열자, 문밖은 소원을 비는 분수인 듯 동전이 쌓여 있는 분수가 있었다.
뒤틀린 클리셰
좋을까 나쁠까
동전을 던져
태현은 가사에 맞춰 분수의 중앙으로 동전을 던졌다.
하지만 동전은 분수의 중앙에 닿기 직전.
마치 모든 게 꿈이었다는 것처럼 분수는 순식간에 모습을 감췄다.
절대 네가
바라던 답이
여긴 없어
남은 것은 검은 배경과 태현을 비추는 조명 하나.
골라 봐, 앞뒤
뭘 골라도 같지
권선징악 같이
태현의 걸음마다 물 위를 걷듯 파장이 퍼져 갔다.
잊히는 조연
지루한 건 치워
목적지에 당도한 나
조명이 켜지고 태현은 창밖 야경을 바라봤다.
떨어지는 이건 내게 응당한 할당
욕을 해도 남지, 난
그때, 노래가 잠시 멎었다.
도로 위로 달리는 자동차 소리.
숲속에서 넘어오는 풀 소리가 잠깐 귀를 메웠다.
태현은 테이블 위 와인이 채워진 잔을 단숨에 비운 후 읊조리듯 다시 노래를 이었다.
주인공도 씹어 삼켜
희대의 악당
으로 남더라도 다시 한 번
우리 다시 한 번
밤하늘로 달려 나가듯 솟아오르는 화면.
화면이 멈춰 섰을 땐 톡신 멤버들이 진형을 맞춰 서 있는 검은 배경이었다.
그때였다.
멈췄던 드럼과 피아노 연주가 폭발하듯 다시 이어졌다.
검은 배경은 모두 스크린이었는지, 화려한 문양이 피어나며 화면을 가득 메웠다.
뒤틀고 비틀어
결국엔 닿겠지
내가 정한 엔딩
내가 원한 History
톡신 멤버들은 본격적인 활동은 오랜만임에도 불구하고, 그간 열심히 준비했다던 게 빈말은 아닌 듯 보였다.
헤아리기엔 헤매는 여기
따져 봐야 답은 없지
맞아 이건 클리셰
예찬의 보컬에 맞춰, 멤버들은 일제히 한 몸처럼 안무를 맞췄다.
뒤틀려도 뻔해도 Fun 하기만 한
해피 엔딩 클리셰
간단한 동작부터 복잡한 손동작까지 절제할 곳은 절제하며 힘을 줘야 할 때 멈춰야 할 때를 기가 막히게 맞췄다.
클리셰
예찬의 속삭이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화려한 문양이 있던 바닥에는 커다란 구덩이 영상이 재생 중이었다.
톡신 멤버들은 한 사람씩 바닥에 손을 짚었다.
마지막으로 예찬이 손을 올리자, 스크린인 줄만 알았던 화면이 유리 파편과 함께 와르르 무너졌다.
화면 너머로 보이던 커다란 구덩이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생생해지더니 잠시 후 화면과 함께 꿀꺽 삼켜 버렸다.
이제 정말 끝난 건지, 화면 끝에 붉은 펜으로 ‘Cliché’가 쓰였다.
e 위에 마지막 점이 찍히자 붉은 글씨는 마치 먹물이 번지듯 하얗게 변했다.
* * *
[(사진) 「곡 정보
아티스트 TOXIN
앨범 STORY
장르 댄스(국내)
작곡 E-UNG (이은지)
작사 E-UNG (이은호)
편곡 E-UNG (이은지)」//폰트 9,돋움체
이번 톡신 앨범 전곡에 작사 이은호 작곡, 편곡 이은지 싹 다 박혀 있는 거 ㅈㄴ 쩐다]
└ 클리셰 뮤비도 이은호가 짰대
└ㄹㅇ? 헐
└이번에 톡신 뮤비 2000년대 초 리즈 갱신했던데 찐이면 개소름 ㄷㄷ
[나 솔직히 학폭 터지고 이응 일진 남매라길래 관심 1도 없다가 톡신이 고맙다고 인사하는 거 인터뷰 보고 다시 봤다...]
└그거 루머라고 밝혀진 지가 언젠데
└아 루머임?
└ㅇㅇ 오히려 학폭하던 애가 이응 남매 뜨니까 둘이 묻으려고 그때 일진 쉑들이랑 짜고 쳤다 함
└헐;;;
└NRY 측에서 소송했고 이겼음 근데 가해자 걔는 벌금 못 내서 깜빵 감 ㅋㅋ
└ㅋㅋㅋㅋㅋ ㅁㅊ
[(톡신 ‘클리셰’ 뮤직비디오 장면 중 은호와 은지 등장하는 장면 캡쳐)
여기 쌍둥이 같은 남자랑 여자 CG임? 진짜 있는 그룹이에요?]
└이응이라는 실제 남매 아이돌 그룹이에요
└헐 감사합니다
└진짜요?
└네
└헐; 아이돌 소름;
└아이돌이 뭐요 ㅡㅡ
└아 처음에 봤을 때 배우인 줄 알아서 기분 나쁘셨으면 ㅈㅅ;
└아하 ㅎㅎ
[이번에 톡신 클리셰 뮤비보고 왔는데 NRY 대표가 이응 남매 왜 그렇게 끼고도는지 알겠다]
└왜?
└작사 작곡 싹 다 남매가 다 하고 뮤비 연출도 얘들이 했다잖아 능력자들;
└작사랑 뮤비에 참여한 건 은호라고 남매 중에 오빠 쪽이고 작곡은 동생 은지가 했대
└아하
[근데 이응한테 톡신은 대선배 아니야?]
└대선배지 엄청
└와.... 대선배 곡 만들어 주고 인정까지 받기는 힘들었을 텐데 개쩐다 부담감 오질 거 같은데
└ㄹㅇ
[톡신 신곡도 좋고 우리 이응이들 칭찬해 주는 것도 좋은데 ㅠㅠ... 저주 오프 활동 얼마 안 하고 들어가서 오프가 인생 낙인 이퍼는 너무 아쉽다....]
└마자ㅠㅠㅠ
└톡신 노래도 좋긴 한데 ㅠ 뮤비에서 얼굴 비춰져서 반갑기도 했는데에....
└이걸론 덕질 게이지가 모자라다구!!
└ㅋㅋㅋㅋ 완전 내 마음 ㅠ
└지랑아... 이응은 신곡 언제 나와...? 오프는 언제 ㅠㅠㅠㅠㅠ
└지랑이가 누구임?
└지지 > 은지
랑이 > 은호
└아 그래서 캐릭터 상품 이름이 지냥이 호냥이었구나 첨 알았음 ㄱㅅㄱㅅ
* * *
합동
톡신의 뮤직비디오가 공개되기 몇 주 전.
은지는 NRY 사옥에 들어오자마자 미리 한 자리를 꿰고 있는 어석배 대표를 언짢은 눈길로 바라봤다.
최근 ‘같이 쫌 살자’ 촬영 때, 에이슬의 행동이 일전과 비교해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많았다.
고로, 에이슬과 연관이 있는 어석배가 불편한 건 당연한 일이었다.
‘혹시라도 이은호한테 무슨 짓을 할지도 모르니까.’
은지는 어석배를 바라보며 은근히 불편한 감정을 내비쳤다.
“저분은 왜 또 오셨대.”
“쉿.”
“뭘 ‘쉿’이야. 내가 애냐?”
본인 걱정하는 것도 모르고.
말리는 은호에게 괜히 성질이 바짝 올라 투덜거리며 말했다.
“하는 짓은 애 맞잖아. 시끄러우니까 사탕이나 처먹어.”
은호는 은지를 상대하기 귀찮았는지, 회사 테이블 위에 놓인 사탕 하나를 집어 은지의 입속에 밀어 넣었다.
의도는 좋았으나 껍질을 전혀 까지 않은 비닐 상태라는 게 문제였다.
“푸……!”
은지의 입에 비닐과 함께 통째로 들어온 사탕은 잠시 후 그대로 은호의 얼굴에 날아들었다.
“하, 이 게토X이 같은…….”
은호는 사탕과 함께 얼굴에 날아온 은지의 침을 신경질적으로 닦아 내며 중얼거렸다.
차마 욕을 쓸 수 없어서 음료수 상표를 빌려다가 갑갑한 마음을 입에라도 올렸건만.
“개X발이라고?”
“아, 쫌! 뭔, 내가 언제!”
“니가 그랬잖아! 개X발이라고!”
“쫌! 사람들도 많은데 욕하지 마!”
“지가 먼저 했으면서!”
“안 했거든. 안 했다고. 게토X이라고 음료수 이름 말했다, 이 호박아.”
“구라 치지 마라, 이 우럭 새끼야.”
“아, 믿지 말든가.”
“응~. 안 믿어~.”
조용히 하려던 은호는 어느새 은지에게 휘말려 같이 큰 소리를 내며 투덕거렸다.
불타는 두 사람과 달리 정작 모인 사람들은 익숙한 일상이라는 듯, 누구 하나 남매들에게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였다.
“오, 다 모였나?”
한 사람의 목소리에 은호와 은지는 언제 싸웠냐는 듯 입을 닫았다.
사옥 안으로 들어온 창석의 옆에는 척 봐도 보통이 아닌 것 같은 낯선 직원이 함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