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54화 (254/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54)

멤버들이 그렇게 떠들던 사이에 세팅이 모두 끝난 건지, 이어서 태현의 녹음이 시작됐다.

톡신 멤버들은 언제 떠들었냐는 듯 두꺼운 창문 너머로 보이는 태현을 바라봤다.

태현은 다른 멤버들에 비해 파트가 하나 적었다.

워낙 독보적인 묵직한 보이스였기에 다른 멤버들처럼 함께 섞여 들긴 무리가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런 만큼 홀로 섰을 때 노래에 매력을 더하는 존재가 되기엔 부족함이 없었다.

은지는 태현을 브리지 파트에 몰아 주며 파트는 적지만 그만큼 존재감을 올릴 수 있도록 파트에 균형을 맞췄다.

트랙이 브리지로 넘어간 그 순간.

마치 지금부턴 태현의 무대라는 듯 몽글몽글한 느낌의 피아노와 드럼, 스냅이 한순간 시간이 멈추듯 모두 멎었다.

비어 버린 공간에는 단독으로 베이스만 깔렸다.

단순하기에 오히려 가장 화려한.

태현과 가장 닮은 것 같은 악기인 베이스의 묵직한 연주가 이어졌다.

둥, 둥―

3, 2, 1.

태현은 창 너머 은지의 손가락 신호에 맞춰 입을 뗐다.

뒤틀린 클리셰

좋을까 나쁠까

동전을 던져, 절대 네가

바라던 답이, 여긴 없어

중간에 파고든 예찬의 파트에는 아직 예찬이 녹음하지 않은 탓에 은호의 목소리가 자리 잡고 있었다.

(골라 봐)

앞 뒤

(뭘 골라도)

같지

(권선징악)

같이

태현은 은호의 가이드를 따라 옅게 화음을 쌓듯 애드리브를 던졌다.

이어서 다시 제 파트가 찾아왔을 때.

경력을 증명하듯, 태현은 은지의 신호를 보지 않고도 한 치의 오차 없이 박자를 파고들었다.

잊히는 조연 지루한 건 치워

목적지에 당도한 나

에게 떨어지는 이건 내게 응당한 할당

욕을 해도 남지, 나

주인공도 씹어 삼켜 희대의 악당

트랙 위에는 매력 있는 묵직한 목소리로 싱잉랩이 더해졌다.

태현은 생각이 많았다.

* * *

멤버들에게 이별을 예고하기까지는 절대 쉽지 않은 일이었다.

NRY 엔터테인먼트와 계약하던 당시 지정한 기간은 7년.

멤버들과 함께할 시간은 충분하다.

「“굳이 떠나야 할 이유가 있어요? 형님 정도면 그냥 활동하면서 충분히 작업하실 수 있을 것 같은데.”」

은호가 집에 놀러 왔던 그날.

은호의 질문에 태현은 많은 생각을 했다.

차에 관한 관심은 활동하는 중간에 생겨난 취미였다.

이리저리 이동하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도로 위를 달리는 차량을 바라볼 때가 많았다.

세계 각국을 돌아다니며 무대를 할 당시에는 도로에 보이는 차량의 종류나 색깔 분위기 등등.

국가별로, 지역별로 그 차이가 눈에 보여서 신기했고, 그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다 만났다.

‘저 차를 지금까지 타고 있어……?’

익숙한 올드카는 추억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가장 먼저 눈이 갔다.

지금은 나오지 않는 그때의 디자인.

하지만 그때 만난 올드카는 겉은 세월이 느껴지더라도 내부는 그렇지 않았다.

올드카는 최신 차량인 우리 차를 우렁찬 소리를 내뿜으며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쳤다.

이후 거기에 꽂혀 찾아보다 보니 그날 마주했던 올드카는 겉모습과 달리 내부는 최신.

그것도 ‘최고의 부품’으로 교체되어 있었던 해외의 한 유명 튜너의 ‘작품’이었다.

그때 차량은 부품으로 나뉘어 있기에 겉이 얼마나 낡았든, 내부만큼은 지금에 지지 않을 정도로 만들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그렇게 회춘한 올드카는 멋있게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도로를 달린다.

그 모습이 꼭 우리 그룹, 톡신의 모습과도 같아 보였다.

그래서 더 애정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차량을 튜닝하는 작업에 관심이 깊어졌다.

해 보다 보니 생각보다 훨씬 더 취향에 맞는 일이었고, 무엇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문제는 어느 정도 체험하는 것으로 만족하기엔…….

이젠 5년, 10년 후의 미래에 무대 대신 얼룩이 묻은 자신의 얼굴이 떠오를 정도로,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이 작업에 깊이 빠져 있었다.

톡신이 된 이후 처음으로 다른 ‘꿈’이 생겨 버렸다.

포기하기엔 너무 귀했고, 억누르고 살기엔 얼른 시작하고 싶은 그런 존재가 됐다.

지금까지는 잘 참아 오고 있었다.

은호와 은지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누구보다 ‘음악’을 하는 것에 진심인 남매를 보면서.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이 자리에 버티고 있는 게 맞나.’

의문이 계속 들었다.

하지만 동시에 긴 시간 끊임없이 함께해 온 멤버들에게 혼란을 주고 싶지 않았다.

마음은 그랬는데…….

막상 떠나겠다는 말을 입 밖에 낸다고 생각하니 이러나저러나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더 얼른 이야기해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난리가 나긴 하겠지만, 이별을 미리 준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말했다.

욕을 먹더라도, 멤버들을 위해서.

「“나 이번 계약 끝나면, 그룹에서 빠지고 독일로 갈 거야.”」

다소 갑작스럽긴 하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너무 늦을 것 같아서.

예상대로 난리가 나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이젠 준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이 사라진 뒤 톡신은 어떻게 지낼지.

7년이라는,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시간 동안 이별을 말이다.

그리고 녹음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 * *

이후 한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반갑습니다. 톡신 여러분! 이 자리에서 이렇게 다섯 분이 모두 모여 있는 모습을 뵌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오늘은 톡신 앨범 쇼케이스 날이었다.

MC를 맡은 상기된 리포터가 일부러 눈물을 훔치는 척 흐느꼈다.

“그럼 그간 어떻게 지내셨는지, 근황 이야기를 안 들어 볼 수가 없겠죠?”

“이번에 이 자리에서 인사를 드린다는 것 자체가 꿈만 같습니다.”

리더인 예찬이 마이크를 들었다.

예찬은 물 흐르듯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정말, 오랜만이네요.”

카메라를 돌아보며 인사하는 예찬의 눈가가 젖어 있는 것처럼 조명에 반짝였다.

“긴 시간. 우리 포션 여러분들을 기다리게 해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러게, 말이에요! 왜 이제 오셨어요!”

리포터의 호들갑에 예찬은 태연하게 웃으며 마저 인사를 이어 갔다.

“오랜만의 신곡인 만큼 많이 떨리지만, 이번 앨범,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많은 분께서 좋아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좋아할 수밖에요!”

리포터는 이후 멤버들의 인사도 한 번씩 듣고, 그 이후에서야 앨범에 대해 물었다.

“이번 톡신의 9집 미니 앨범 ‘스토리’! 특별히 우리 리더이신 예찬 씨께서 소개 부탁드려요!”

“이번 9집 앨범, ‘스토리’는 제목 그대로 저희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예찬은 곁에 앉은 다른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오랜 기간, 저희가 많은 분께 전하고 싶었음에도 전하지 못했던 많은 이야기를 눌러 담아 봤습니다.”

‘톡신’은 겉으로 보기엔 사이가 가까웠지만, 형들과 막내들 사이에 높진 않아도 넘어설 수는 없는 벽이 있는 그런 사이였다.

자주 만나서 술 한잔 기울이거나 게임을 하는 일은 종종 있었으나 상황이 상황인지라, 멤버들은 암묵적으로 음악과 관련된 이야기를 피해 왔었다.

은호와 은지와 함께 곡 작업을 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오현과 예찬의 껄끄러웠던 오해가 풀리고, 뮤직비디오 촬영차 함께 여행도 다녀오는 등.

이응 남매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자연히 톡신은 두 사람의 작업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그 말은 곧, 두 사람이 마치 놀이처럼 노래를 즐기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는 말이기도 했다.

가까이에서 마주하자 그간 억눌렀던 마음이 폭발한 듯 욕심이 났다.

여행 이후 톡신은 오랜만에 게임이 아닌 음악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너희랑 어떤 노래를 하고 싶다.

나는 형들과 어떤 앨범을 만들고 싶다.

몇 년 만에 초심이라는 친구를 되찾은 것처럼 많은 이야기가 오갔다.

「“하고 싶은 걸 해. 난 너희 감각을 가장 믿으니까.”」

TaKa 엔터테인먼트의 몰락 이후, NRY 엔터테인먼트와의 재계약.

박창석 대표에게 돌아온 톡신.

그런 톡신의 재도약을 위해 박창석은 은호와 은지를 톡신에게 붙여 줬다.

예찬은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어 보였다.

“이 자리를 빌려, 저희의 이야기를 시작부터 끝까지 함께 온 힘을 다해 도와준 ‘이응’ 남매에게 정말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이은호, 이은지.

첫 만남에는 보잘것없던 이 두 남매는 예찬의 입장에선 정말 대단한 괴물들로만 보였다.

「“대충 오빠들이 하고 싶다고 했던 이야기랑 잘 어울리는 것 같은 느낌의 곡으로 골라 봤어요.”」

‘대충’이라는 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50곡이 넘는 괴물 같은 용량.

「“이런 느낌은 어때요? 진짜, 진짜로 대충했으니까, 느낌만. 느낌만 봐 줘요.”」

보물 창고 같은 파일을 흔쾌히 건네준 은지는 이후, 은지는 ‘느낌만!’을 강조하며 편곡을 직접 해 보이기까지.

그리고 20분이 걸리지 않는 시간 뒤, 은지는 ‘느낌만’이라기엔 상당한 퀄리티의 신곡을 선보였다.

‘얘, 이제 1년 아닌가? 이제 고작 1년 작곡한 애가, 맞나?’

그도 그럴 것이.

은지의 첫 곡 ‘듀오’를 공개했을 땐 강렬함과 함께 부족한 면도 많았다.

기술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경험에서 메꾸는 차이 말이다.

‘TIME’ 앨범이 발표될 때까지도 잘 다듬어지긴 했으나, ‘나쁘지 않다’라는 딱 거기까지.

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대체 그사이에 무슨 짓을…….’

‘저주’를 처음 들었을 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긴 시간 작업한다면, 이 정도 퀄리티는 충분히 나올 만하다 생각했다.

작업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고 이야기는 들었지만, 솔직히 빈말인 줄 알았다.

지금 눈앞에 ‘느낌’만 보라며 내준 가이드 곡을 듣기 전까지만 해도 그랬다.

‘어디 가서 작곡을 못 한다고 들어 본 적은 없는데…….’

예찬은 은지의 말도 안 되는 성장에 어이가 없어서 웃기만 했다.

「“은지는, 어떻게 20분 만에 그렇게 곡을 찍어?”」

기억이 모두 돌아온 은지의 곡을 처음 접하게 된 예찬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결국 궁금해서 은지한테 직접 묻기까지.

「“음, 쌓아 올렸던 10년이 넘는 시간의 기억을 되돌려 받으면? 하하. 되던걸요.”」

‘회귀’에 대해 일절 모르는 예찬은 은지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리 없었다.

그렇다고 능력을 거저 얻은 건 아니었다.

은지는 재능과 노력의 결과물이었다.

회귀 전 갈고 닦았던 그 시간이 있었기에 부족하지 않은 실력까지 성장할 수 있었다.

「“많은 경험을 했고, 경험을 말 대신 노래로 완벽하게 구현하려고 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 같아요.”」

은지는 농담을 뒤로하며 짤막하게나마 진지한 답을 했다.

은지도 대단했지만, 은호 역시 놀랍기는 마찬가지였다.

곡을 받고 멤버들과 많은 회의를 거치며 겨우 곡이 결정된 이후.

멤버들은 박 대표의 제안대로 은호에게 작사를 부탁했다.

「“이야기를 모르면 제 이야기만 쓸 게 뻔해서, 형들 이야기 좀 해 주세요. 단, 개인으로요.”」

앨범 주제로 ‘우리의 이야기’라는 것을 미리 전해 들었기 때문인지, 은호는 유독 ‘개인’을 강조했다.

이후 ‘저주’ 활동과 예능 고정 출연으로 바쁘던 와중.

은호는 일주일에 한 번, 많을 땐 그 이상으로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에서 톡신 멤버들과 돌아가며 개인 미팅을 진행했다.

다섯 멤버들의 개인 미팅이 끝난 뒤에는 은호의 부탁으로 톡신은 모두 한자리에 모였다.

톡신 멤버들은 서로 은호에게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모르는 상황.

다만, 하나 같이 굉장히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했다는 건 스스로가 그랬기에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건 은호 혼자만 알고 있는 상황.

「“형님들 이야기를 듣다 보니까, ‘7대 죄악’이랑 ‘7대 주선’이 생각나더라고요.”」

은호는 그날.

NRY 세계관에 추가할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와 동시에 타이틀 곡이 될 ‘클리셰’의 가사와 뮤직비디오 연출까지.

「“괜찮습니까?”」

은호의 질문에 톡신 멤버들은 그날.

한마음처럼 ‘말해서 뭐 하냐’라는 듯 제각각의 긍정적인 ‘OK’를 만들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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