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53)
“이은지는 단순해.”
“은지는 단순하지 않아!”
“어쨌든 개, 아니. 묘새끼야. 사람 말 자르지 말고 들어라.”
“넴.”
은호는 연탄이 방심한 틈을 타, 재빠르게 발을 빼내며 말했다.
은호가 진심으로 짜증이 난 듯 싸늘하게 쏘아보자 연탄은 웬일로 깨갱거리며 머리를 숙였다.
“하, 야, 이은지는……, 아오…….”
은호가 나지막이 욕을 흘리며 머리칼을 헤집었다.
당장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도와달라고 하는 것만큼 또 싫은 일이 없는데, 연탄의 부탁이 딱 그런 ‘싫어하는 일’ 축에 속했다.
이은지의 상태는 정말 시간과 본인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으니까.
“야, 이은지는 기다리다 보면 알아서 생각 정리할 거니까. 그때 되면 솔직하게 말해.”
“소, 솔직하게?”
“어. 우리 남매는…….”
은호는 말을 이으려다 한숨을 내쉬며 말을 정정했다.
“특히 이은지는 거짓말 극혐하니까.”
“…….”
“그것만 조심해도 문제없는 애야.”
은호의 대답에 연탄은 생각이 많아진 얼굴이었다.
고양이 모습을 많이 봐서 그런가.
낯선 형태의 연탄임에도 불구하고 그냥 그놈이 그놈 같다.
“일단 난 다시 내려가 본다. 할 말 있으면 이따 일 다 끝나고 저녁에 말해라.”
“응…….”
연탄은 기운 빠진 대답을 흘리며 은호를 향해 뻗었던 손을 떨궜다.
은호는 그제야 아쉬움 없이 현관으로 향했다.
어차피 1층으로 내려가는 것뿐이기 때문인지 은호는 도망치듯 신발을 대충 구겨 신고 문밖으로 나섰다.
쾅.
시끄러운 알루미늄 문이 닫힌 뒤.
연탄은 은호가 떠나고서도 여전히 집안 살림 다 잃은 그런 모양새로 변함없이 거실 구석에 앉아 있었다.
* * *
‘연탄 놈 때문에 잠깐 잊고 있었는데…….’
은호는 1층으로 내려온 순간 한숨을 흘렸다.
여기도 어째 위랑 별반 다를 것 없이 폭탄이 떨어져 있긴 마찬가지였기 때문.
스튜디오에 발을 들여야 하는데 문을 열자마자 가라앉은 공기에 숨통이 아주 턱턱 틀어막힌다.
이 분위기.
우리 오후 녹음, 이래선 제대로 할 수나 있을까.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며 헤쳐 버리고 싶기도 했지만, 아직 태현 형과 예찬 형의 녹음이 남아 있어서 그럴 수는 없었다.
2층의 문제인 이은지를 돌아보자, 은지 또한 연탄 때문인 걸까.
얼굴에 수심이 깊어 보였다.
스튜디오 내부는 그야말로 폭풍의 눈과 같은 싸늘하고 고요한 분위기.
2층이나 1층이나 똑같은 분위기에 마치 고래 싸움에 등 터진 꼴이 됐다.
심란한 마음에 이마를 꾹꾹 눌렀다.
괜한 스트레스로 편두통이 몰려오지 않길 바라는 소소한 마사지였다.
그때, 테이블 위에 놓인 이은지의 짜장면 그릇에 눈이 갔다.
이은지는 시켰던 짜장면을 단 한 젓가락도 뜨지 않았다.
면은 이미 불었다고는 하지만 배고프다던 녀석이.
음식 남는 건 돈 아깝다며 배가 터질 때가 되더라도 쑤셔 넣던 그런 녀석이…….
‘진짜 심한가 본데?’
손 한 번 대지 않은 짜장면 그릇을 보자 갑자기 상황의 심각성이 확 와닿았다.
안 그러던 애가 저러니까.
난 식사를 마치고 뒷정리 중인 예찬 형과 막내 라인 형들을 잠시 돌아봤다.
태현 형의 폭탄 발언은 솔직히 톡신의 문제이기에 형들끼리 알아서 잘 해결하겠거니…….
난 집안의 평화를 위해 이은지한테 향했다.
“이은지.”
“어…….”
……이쪽을 돌아본 이은지 얼굴 보고 순간 진짜 놀랐다.
영혼이 가출한 것처럼 애 눈에 생기가 사라졌다.
심지어 눈도 눈이었지만 그사이 혼자만 세월을 때려 맞았나.
얼굴이 급격하게 초췌해져 있다.
무슨 말을 할까.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이 상황이 조금이나마 ‘해결’될까.
잠시 고민해 봤지만 끝내 답을 찾을 수 없어서 나는 한발 물러나야 했다.
여기서 연탄의 ‘ㅇ’만 꺼내도 이은지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조차 되지 않아서였다.
“아무것도 아니야.”
“응.”
진짜, 진심으로 은지의 상태가 심각한 건 확실한 것 같다.
평소라면 ‘뭐야, 시시하게.’라든가.
‘X신인가?’라든가.
‘왜 또 X랄이야.’ 같은 거친 말이 하나쯤은 던져져야 정상인데, ‘응’이라니.
‘그’ 이은지가 그냥 얌전히 ‘응’이라니!
아침에 사 왔던 마카롱 박스를 돌아봤다.
혹시 남은 게 있다면 ‘당’의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마카롱 힘을 빌리기엔 사 온 즉시 은지가 다 털어먹어서 남은 것이 없었다.
“아아아아…….”
은지는 회전의자에 늘어지듯 등을 기대며 전등을 바라봤다.
눈이 타들어 가는 느낌일 텐데.
걱정과 달리 은지는 안구도 튼튼한 건지 한참을 그러고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정말 갑자기 ‘흐읍!’ 하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아.’
난 본능적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그리고 그 본능이 느낀 위험은 예상을 정확히 적중했다.
그때였다.
“으아아아아아악!!!”
이야, 얘는 장르를 헤비메탈로 가도 잘하겠다.
은지가 목을 긁으며 내지르는 우렁찬 소리는 귀를 막았음에도 불구하고 뚫고 들어올 정도였다.
‘예상한 나는 귀라도 막았다지만…….’
방어 체계 하나 없이 사이렌 같은 이 소리를 생 귀로 받아들인 톡신 형님들.
걱정되는 마음에 형들을 돌아보자, 형들은 놀라다 못해 휘둥그레진 표정으로 은지를 보고 있었다.
귀에서 딱히 뭐가 흐르지 않는 걸로 봐선 놀라기만 했지, 괜찮은 모양이다.
아마도.
“살다 보면……!”
“…….”
“이런 일도 있고 저런 일도 있어!”
회복.
은지는 스스로 늪을 벗어나는 녀석이다.
항상 이런 식이었다.
차츰 회복하는 나랑은 같은 혈육임에도 전혀 다른 성격.
그 속으로는 얼마나 깊이 있는 생각을 하고 있을지는 전혀 모르겠다만, 겉으로 보기에는 단세포 같은 녀석.
참 단순해서 작은 것에도 종종 크게 상처받으면서도 그만큼 잘 회복한다.
은지는 퍽이나 자신다운 명언을 뱉으며 트랙을 재생했다.
골라 봐, 앞 뒤
뭘 골라도, 같지
권선징악, 같이
이번 톡신의 신곡 ‘클리셰’에서 익숙한 내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가이드로 녹음한 부분들이었다.
하지만 한 트랙 가득했던 내 목소리는 어느새 막내 라인 형들의 녹음이 끝나면서 예찬, 태현 형의 파트에만 남아 있었다.
뒤틀고 비틀어 결국엔 닿겠지
배드 배드 배드 엔딩 클리셰
삐걱이는 클리셰
답을 일러 줘
은지는 트랙을 멈추며 앞서 막내 라인의 녹음 부분을 모두 체크한 뒤, 태현을 돌아보며 말했다.
“태현 선배, 먼저 지금 들어가는 거 괜찮죠?”
“그래.”
은지는 언제 우울한 얼굴을 했었냐는 듯 뻔뻔하게, 밝게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톡신 선배들도 저런 은지의 뜬금없는 행동 덕분인지, 다시금 웃음이 피어났다.
태현은 은지의 부탁에 곧장 일어나서 녹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 * *
예찬은 부스 안에서 헤드셋을 착용하며 목을 푸는 태현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다 할 말이라도 있는 듯, 예찬은 막내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너희는…….”
“……?”
예찬이 입을 열자 태현을 지켜보던 막내들 승연, 현, 송민은 행동을 맞춘 듯 리더 예찬을 돌아봤다.
“하하.”
그 모습이 재미있는지 예찬은 웃으며 자연스럽게 굳었던 분위기를 풀었다.
그리고 태현이 없는 틈을 타, 본론을 꺼냈다.
“너희는 태현이가 나간다고 했던 이야기 어떻게 생각해.”
“‘어떻게’라니…….”
“뭐…….”
“…….”
20대부터 서른의 중후반까지.
근 10년 이상 오랜 기간 함께해 온 그룹이기 때문일까.
잠시 생각에 잠긴 세 사람이 다시 입을 열었다.
“우리가 오래 해 먹긴 했지?”
한 걸음 멀리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기만 하던 은호는 짧은 감탄을 흘렸다.
한 직업을 으레 7년에서 8년을 열심히 판 그 사람을 우리는 ‘전문가’라고 부른다.
톡신은 현재 이 수십 그룹이 뜨고 지는, 말 그대로 ‘별’들이 넘쳐 나는 아이돌 판에서 10년 이상을 굳건하게 버틴 그룹이다.
‘놀 땐 한 번씩 또래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철없는 형들 같은데…….’
그런 그룹 내 한 사람의 ‘마지막 활동’ 발언은 같은 배에 오른 멤버들끼리 큰 싸움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은 대화거리였다.
하지만 톡신이기 때문일까.
형들은 어른이었다.
* * *
“우리가 오래 해 먹긴 했지?”
“오래됐지, 벌써 10년 넘지 않았냐?”
“어. 넘었지. 서승연이 ‘드디어 마의 7년을 넘겼다!’라고 떠들던 게 벌써 몇 년 전이니까.”
“시작은 진짜 죽냐 사냐였는데.”
“솔직히, 세더티브로 활동할 땐 팬들한테도 그렇고, 우리 자체도 죽는 쪽에 더 가까웠지.”
“맞아. 진짜로…….”
톡신은 누가 뭐래도 힘든 길을 걸어왔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었으니까.
정말 오랫동안 멤버들은 항상 함께 무대에 섰다.
예찬의 눈이 씁쓸한 빛을 띠었다.
세더티브로 활동하던 당시 발표한 비운의 앨범.
그것을 띄워 보겠다고 멤버들 몰래 정말로 목숨까지 내걸어 보려 했던…….
말 그대로 힘든 시기를 겨우 넘어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우린 여전히 신곡을 내고, 이 판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
나이만 제외하면 그때랑 달라진 건 무엇 하나 없다.
하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수도 있다.
“아, 갑자기 생각났다. 야, 야, 그때 기억나냐?”
“뭐?”
“팀장님이 자기랑 도망치자고, 자기가 다 책임지겠다고 했을 때.”
송민이 가벼운 웃음을 틔며 물었다.
그때, 승연은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송민을 따라 웃으며 대꾸했다.
“야, 나 그건 기억나.”
“뭐?”
“주송민, 니가 박 팀장님 보고 ‘저거 미친 새끼 아니야?’라고 앞에서 욕부터 박았던 거.”
하하하하하!
감상에 잠겨 있던 예찬도 잠시 놀라다 막내들과 함께 웃었다.
“아, 맞아. 그랬었지.”
“야, 근데, 솔직히 그럴 만했어. 기억 안 나냐? 나 그날 그 쓰레기 대표 자식한테 배 걷어차여서 숨도 쉬기 힘들어하고 있을 때였잖아.”
별일 아닌 것처럼 송민이 떠들고 있을 때, 리더로서 동생을 지키지 못했던 순간이었기 때문일까.
“……그랬던 적도 있었지.”
예찬의 표정이 씁쓸했다.
한편, 송민은 예찬을 보지 못한 듯 여전히 밝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때 갑자기 일개 팀장 놈이 나타나더니 헛소리까지 하는데, 정신은 없지. 앞에 그 인간은 정상이 아닌 것 같지. 말이 곱게 나갈 리가 있겠냐.”
가까이에선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 듯, 지금이야 웃으며 할 수 있는 이야기지만, 그때 당시에는 정말 힘들었던 시기였다.
그렇게 송민이 가장 먼저 기억 속 이야기를 꺼내자, 같은 시간을 공유하고 있는 오현도, 승연도, 예찬까지도 그때의 일을 조잘거렸다.
한편, 그렇게 떠들며 함께 웃다가도 이내 몰려오는 씁쓸한 감정이 버거워진 듯 하나둘씩 다시 입을 닫게 됐다.
“크흠!”
승연은 눈가를 긁는 척 맺힌 눈물을 티 나지 않게 닦더니 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은 후 말을 이었다.
“있잖아, 형.”
“응?”
“태현 형 관두면, 팀장님, 아니. 대표님한테 나도 솔로 활동하고 싶다고 해 볼까 하는데.”
승연이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부터였다.
멤버들은 태현이 떠나는 것으로 인한 불편이나 불안을 이야기하는 것 대신 떠난 뒤의 미래 계획을 떠들었다.
“우리는 우리끼리 뭉치는 건 어때?”
“막내들끼리?”
“오, 서승연, 그거 괜찮다. 하하.”
“와, 너희 이제 형은 필요 없다 이거냐?”
“예찬 형은 지금도 솔로로 잘 팔리잖아.”
“지들은!”
막내들끼리 뭉친다는 말에 예찬이 발끈하며 소리치자, 막내들은 오히려 더 유치하게 굴며 예찬을 비웃었다.
‘옛날이었다면 바락바락 소리치며 싸웠을 저 철 없던 새끼들도 이젠…….’
꽤 어른인 티가 날 정도로 우리가 오래 살아남긴 했구나.
예찬은 막내들을 뿌듯하게 눈에 담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