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52)
은지가 파고들며 묻는 말에 연탄은 차마 바로 인정할 수 없었다.
은지는 당장이라도 다 물어뜯어 버릴 듯 분노하고 있었다.
그 분노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 연탄은 은지와 연결되어 있기에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면, 은지는 자신에게 그 어떤 해를 끼칠 생각도 없었다.
다만, 상처받았다.
진심으로 믿고 있었던 만큼.
자신의 모든 면을 다 받아들인 만큼.
크게 상처받았다.
“미안해…….”
인간이라는 존재와 가깝게 지내본 게 은지가 유일해서.
이 외에는 어떤 말을 해야 위로가 될 수 있는지를 배운 적이 없어서.
은지의 감정을 짙게 느끼고 있는 만큼, 연탄이 할 수 있는 말은 이런 게 고작이었다.
이런 것뿐이었다.
이렇게 상처받을 줄은 몰랐어.
고작 모습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이렇게 너한테 상처를 줄 줄은 몰랐어.
미안해.
미안해. 은지야.
“속여서, 미안해.”
내가 미안해.
* * *
톡신과 은호는 이미 배불리 짜장면을 다 먹었다.
식사를 끝마친 와중에도 고춧가루를 가지러 집에 갔던 은지는 돌아오지 않았다.
‘바로 위층인데도…….’
탕수육도 약 다섯 조각을 남기고 몽땅 비워진 지 오래였다.
그렇게 그릇이 비워지는 동안 식사하는 내내 형들은 단 한 번도 입을 떼지 않았다.
태현 형의 폭탄 발언 이후 스튜디오는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얘는 고춧가루를 직접 빻으러 갔나, 왜 이렇게 안 와.”
싸늘한 공기에 못 이겨, 은호는 은지를 핑계 삼아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난 은호를 예찬이 올려보며 물었다.
“다녀오려고?”
“네. 혹시 모르니까.”
“위험한 거 같아서?”
“아뇨. 뭐, 해 봐야 화장실에 박혀 있거나 고양이랑 놀고 있거나 하겠죠. 금방 데려올게요.”
“다녀와.”
간단히 인사하는 톡신 멤버들의 인사를 뒤로하며 은호는 1층 밖으로 나왔다.
2층으로 향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2층에 오르는 계단에 발을 올린 그때였다.
쾅!
익숙한 시끄러운 알루미늄 문소리에 한 칸씩 오르던 계단을 4칸씩 단번에 올라갔다.
살짝 차오른 숨을 가다듬으며 문을 확인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은지가 눈물범벅이 된 채 문에 기대 있다.
“너, 우냐?”
“아, X발…….”
놀란 은호와 눈이 마주친 은지는 도리어 더 화들짝 놀라더니 이내 욕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창피한 건지 드러난 목이 뻘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은지는 갑자기 날카롭게 은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잠깐만, 설마 너도 알고 있었어?”
“뭘?”
진짜 뭘 말하는지 몰라서 은호는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연탄이 비밀.”
연탄이 비밀?
“걔 비밀이 뭐 있는데, 말하는 거나 옛날에 신이었다고 떠들었다던 그거?”
은호가 태현의 집에 묵은 이후 집에 돌아온 날이었다.
은지는 연탄에게 들었던 이야기를 ‘적당히’ 이해한 만큼만 은호에게 전달했다.
하지만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은 은호는 은지가 알아듣지 못했던 부분도 모두 이해했다.
그리고 그건 ‘저주’ 뮤직비디오의 모자랐던 부분을 채워 주는 아이디어가 되었다.
그래서 그 부분에 대해선 잘 알고 있었기에, 뭐 더 놀랄 것이 있나 싶었다.
“어. 그거 말고.”
은지가 정색하며 뒤이어 말을 덧붙이기 전까진 그랬다.
“그거 말고, 뭐 더 있대?”
은호가 묻자, 오히려 그 질문에 은지는 한결 안심한 듯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직접 보든지, 난 내려가서 밥이나 먹을래.”
“지금 가 봐야 짜장면 다 불었을 건데.”
“됐어. 배에 들어가면 다 똑같아.”
은지는 왠지 지쳐 보이는 분위기를 풀풀 풍기며 은호를 지나쳤다.
‘고춧가루를 챙기러 올라왔으면서.’
정작 다시 1층으로 돌아가는 은지의 손은 올라갈 때처럼 그대로 빈손인 채였다.
대체 뭐에 그렇게 충격을 받은 건지.
‘왜 저러냐.’
은호는 호기심 절반, 걱정 절반 상태로 은지의 말대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알루미늄 문을 열었다.
문을 열자, 거실에는 익숙한 고양이 한 마리가 부드러워 보이는 검은 손등에 머리를 박고 있었다.
마치 넙죽 절이라도 하는 자세.
문이 닫히자, 연탄은 그제야 퍼뜩 고개를 들었다.
연탄의 눈빛은 기대감에 휩싸여 있었다.
집 안에 들어온 주인공이 은지가 아닌 은호라는 걸 확인하기 전까진.
『뭐야, 너냐.』
연탄의 시선은 은호를 확인한 순간 차게 식었다.
“뭐 하냐?”
은호를 확인한 연탄은 엎드려 있던 몸을 세우더니 만사 다 포기한 자세로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양이의 몸에 아저씨의 얼굴이 겹쳐 보이는 그런 우스꽝스러운 자세였다.
『에휴…….』
하지만 취한 자세와 다르게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한 듯 연탄은 땅이 꺼질 것 같은 깊은 한숨을 푹푹 내쉬어 댔다.
『은지, 많이 화났어?』
“어.”
연탄의 물음에 은호는 울고 있던 은지를 떠올리며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 성질 나쁜 애가 얼마나 화가 났으면 큰소리조차 치지 않고 집 밖으로 튀어나와서 속을 달랬겠나.
“나보고 뭘 알고 있냐고 묻던데, 그거 뭔 소리냐?”
『…….』
연탄은 샛노란 눈을 굴려 은호를 한 번 쳐다보더니 다시 푹 한숨을 내쉬었다.
그 순간, 연탄은 말로 설명하는 대신 직접 보고 판단하라는 듯 수상한 연기를 내뿜으며 몸을 바꿨다.
바꾸는 과정에서 연탄은 다급하게 주섬주섬 옆에 널브러져 있던 은호의 옷을 주워 입었다.
“이거.”
“…….”
“나, 모습을 바꿀 수 있어.”
옷을 다 입고, 은지가 봤던 그 모습으로 연탄은 은호를 마주 보며 말했다.
은호는 놀라기도 잠시.
오히려 이런 능력 하나쯤 없던 게 더 수상했던 터라, 의외로 은지에 비해서는 연탄의 비밀을 보고도 태연하기만 했다.
무엇보다, 굳이 감상을 말하자면 ‘신기하다’라는 쪽에 더 가깝달까.
“너, 되게 특이하게 생겼다.”
“댁 얼굴만 하겠니.”
“…….”
이 새끼가?
숨 쉬듯 튀어나온 시비에 은호는 황당한 눈으로 연탄을 바라봤다.
은지랑 그간 함께 붙어 있었다고 말투까지 똑 닮아진 건지, 아주 똑같이 재수가 없다.
원래도 재수가 없었지만, 사람도 아닌 것이 묘하게 사람 같은 모습을 하고 저런 소리를 하니까…….
더 재수 없어.
“너희 일은 둘이 알아서 해결해라. 귀찮을 것 같아도 신경 써 주려 했더니 ‘싹바가지’ 없는 소리만 하고 있고…….”
은호가 구시렁거리면서 몸을 돌리려던 그때였다.
“은호 님.”
……님?
연탄은 은지한테 어지간히 미움받기 싫었는지 평소 빳빳하게 세웠던 자존심을 다 꺾어 버리며 은호에게 넙죽 엎드렸다.
“야, 놔라.”
“도와주세요. 잘못했습니다.”
연탄은 엎드리면서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푸른 핏줄이 선 양손으로 은호의 한쪽 발목을 꽉 붙들었다.
은호는 붙잡힌 발목을 빼려 했지만, 연탄이 손톱까지 세우며 강하게 붙든 탓에 쉽게 빠져나갈 수가 없었다.
손톱은 또 왜 이렇게 날카로운 건지!
“아, 새꺄. 아파! 놔 봐! 알았으니까.”
손톱이 발목의 연한 살을 파고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따끔거리는 통증에 못 이겨, 먼저 항복을 선언했다.
“내가 뭐 어떻게 해 줬으면 하는데? 너 설마 내가 이은지 기분을 내가 풀어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아차.
연탄은 거기까진 생각을 못 했었는지 다른 의미로 충격받은 듯한 얼굴이 됐다.
“멍청아.”
그 맹한 표정을 보아하니, 미묘하게 연탄의 고양이 얼굴이 겹쳐 보인다.
그래서 그런가.
아주 조금.
아주.
조금.
안쓰러웠다.
스스슥.
그때, 연탄은 느릿하게 엉금엉금 거실 구석으로 기어갔다.
“……?”
갑자기 구석에 기어들어 가서 뭘 하나 했더니…….
연탄은 거실 한구석 벽에 머리를 기댄 채 쭈그러졌다.
‘저 모습만 보면 꼭…….’
‘신’이 내가 아는 그 ‘신(神)’이 아니라 발에 치이는 ‘신발’ 할 때 그 ‘신’이 딱이다.
의문이 모락모락 피어난다.
“히잉……. 힝…….”
차라리 고양이 모습인 편이 좋았을지도.
웬 다 큰 사내새끼가 ‘힝힝’ 거리고 있으니 소름 돋게 꼴 보기 싫다.
“야.”
“힝.”
“야, 연탄.”
“히―.”
은호는 신발을 벗고 집 안으로 들어가서 연탄의 얼굴을 한 손으로 쥐어 들었다.
“좋은 말로 할 때 그 듣기 X 같은 소리 그만 내라. 징그러우니까.”
“눼.”
연탄은 본의 아니게 입술을 쭉 내민 붕어 주둥이 형태로 대답했다.
어지간히 놀란 듯 샛노란 눈이 곧 튀어나올 것처럼 커진 상태로 끔뻑였다.
양쪽 눈 끝자락에 콕콕 찍힌 까만 점은 연탄이 눈을 감고 뜰 때마다 함께 움직여 댔다.
허연 피부에 검은 점이 박혀 있으니 안 보려고 해도 절로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은호는 연탄의 얼굴을 못마땅한 시선으로 내려보다가 신경질적으로 붙잡았던 얼굴을 놓아 주며 말을 이었다.
“이은지 지금 예민해. 너도 몇 번 겪어 봤으니까 알잖아.”
“알지…….”
연탄은 은호한테 잡혔던 뺨이 얼얼한 듯 양 뺨을 감싸 쥐며 답했다.
“이은지는, 뭐든 혼자 알아서 잘 이겨 내니까. 애한테 생각할 시간 좀 줘라. 생각 정리하면 알아서 먼저 손 쓸 거니까.”
항상 그랬던 애니까.
은지는 힘든 일이 있으면 오히려 티를 내지 않는다.
속에서 굴리고 또 굴리고, 그러다 제 모습이 한심하다고 여겨질 때쯤 스스로 일어난다.
그땐 성격도 독해서 주변 사람들이 어떤 말을 하든 귀에 들어가지도 않는다.
나도 딱히 알고 싶지 않았다.
어릴 때나 회귀 전을 통해 그런 일을 몇 번이나 겪었더니 알 수밖에 없었던 거지.
그 결과로 은지가 나한테 도움을 청했던 일은 악플러를 고소했던 그 일이 유일했다.
그것도 그 전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해결을 해 보려고 했었고…….
제 방식으로는 해결이 안 돼서 그제야 도움을 청했던 거였다.
“집안의 평화를 위해 괜히 그 가시나 신경 긁지 마라. 녹음도 있으니까.”
“엉…….”
은호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연탄이 이 녀석이 자칫 신경 잘못 긁었다가 작업에 여파라도 끼치면 마카롱을 사 온 수고가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좀 이기적으로 보일진 몰라도 귀한 내 노동의 가치가 없던 일이 될까 봐 한 말이기도 했다.
“아무튼, 그러니까 생리 때는 애 건들지 마. 괜히 물릴라.”
“생리?”
연탄은 잠시 갸웃거리더니 대뜸 얼빠진 ‘아하’ 소리를 내며 되물었다.
“생리라면 달거리를 말하는 것이냐?”
“그 이상한 말투 좀 어떻게 안 되냐.”
“난 이게 더 편한걸.”
연탄은 고양이 상태이던 당시 ‘눈을 깜빡이며 웃는 표정’을 지금 이 이상한 사람의 형태로 똑같이 지어 보였다.
왠지 기분이 역하다.
이은지가 되지도 않는 징그러운 앙탈을 부릴 때랑 비슷한 기분이다.
“나 그냥 갈란다.”
“미안, 미안, 알았어. 이렇게! 이렇게 말할게. 이러면 되잖아!”
은호가 냉정하게 몸을 돌리자 연탄은 또 한 번 다급하게 엎어졌다.
문 앞에서 그랬듯 똑같이 은호의 바짓가랑이를 붙들었다.
“바지 구멍 나! 놔, 인마!”
“아, 도와줘! 뭐든 도와줘!”
연탄의 간절한 부탁에 은호는 이마를 짚으며 짜증 섞인 한숨을 흘렸다.
이마를 짚은 손은 흘러내리듯 마른세수를 하며 얼굴을 닦았다.
‘짜증 나네.’
이렇게 자신을 잡아 봐야 해결되는 일은 없어서 더 짜증이 솟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