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51)
“……대표님은, 알고 계시는 거야?”
“아시지. 계약할 때부터 이야기했었던 거니까.”
“…….”
지예찬의 동안 외모는 하얀 피부 탓에 더 그런 부분이 도드라져 보였다.
하지만 그런 동안 외모에 그림자가 내려앉으니 여느 때보다 살벌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녹음 때 예민해서 두렵던 그때와는 또 다른 분위기인지라, 톡신 막내들은 뻣뻣하게 굳어 형들의 싸움을 말릴 수도 없었다.
“최태현.”
“…….”
태현은 조용히 예찬에게 시선을 맞췄다.
막내들은 기가 죽어 고개조차 들지 못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전혀 다른 반응이었다.
“말해.”
태현이 말하자 예찬의 미간이 사납게 구겨졌다.
“어떻게 나한테까지 숨길 수가 있어.”
“그건…….”
내내 태연하게 마주치던 눈을 돌리며 태현이 답했다.
“미안하다. 더 일찍 이야기해야 했는데.”
“설마, 계약할 때부터 생각했던 거……, 그래. 그랬겠지. 다른 애들도 아니고, 최태현 네가 짧은 생각으로 이렇게 나오는 애는 아니니까.”
예찬의 질문에 태현은 눈을 감으며 한숨과 같이 차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쾅!
지예찬은 홧김에 책상을 손바닥으로 내려찍더니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나, 잠깐 나가서 진정하고 올게. 밥은, 아까 이야기했던 어플인지 뭔지로 너희가 알아서 주문해 둬. 난 뭐든 괜찮으니까.”
“네.”
누구 하나 입을 못 열고 있을 때, 유일하게 은지가 대답했다.
예찬은 그런 은지에게만 씁쓸하게 싱긋 웃어 보이며 밖으로 나갔다.
스튜디오 방음 부스의 문이 닫히고, 안은 개미 한 마리만 기어 다녀도 그 발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해졌다.
길었던 침묵을 깨트린 건 이 침묵을 만든 장본인이었다.
“나도 따라 나갔다 올게.”
“지금? 진심이야? 형?”
승연이 놀라며 물었다.
“어. 지금 아니면 이야기할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
“다녀올게.”
태현은 조금 전 지예찬이 그랬듯 뒤따라 스튜디오 부스를 나갔다.
급하게 나간 건지 문을 닫는 걸 깜빡한 듯 스튜디오 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았다.
“가시밭이 따로 없네.”
“그러게, 지금 터뜨리실 줄은 몰랐는데…….”
은지가 열린 문 쪽을 바라보며 말하자 이어서 은호가 중얼거렸다.
그 순간.
은호를 돌아본 네 쌍의 눈.
왠지 모를 뜨거운 열기에 다시 앞을 돌아본 은호는 빤히 바라보는 네 쌍의 눈동자에 당황했다.
승연이 물었다.
“알고 있었어?”
“아, 네…….”
“언제부터?”
“그, 전에, 저희 게임 같이 했을 때, 그날 저녁에 들어서…….”
“그렇게 오래됐다고?”
“형님 이야기만 들었을 땐 더 오래된 것도 같은데, 제가 들은 건 그날이라…….”
은호가 당황하며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놓자, 도리어 승연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아…… 이런.”
“왜요?”
은호가 묻자, 승연을 대신해서 송민이 답을 이었다.
“그게, 예찬 형이라면 태현 형 생각을 어떻게든 돌리려고 할 거거든.”
“아.”
“근데 그렇게 오래전부터 해 온 생각이면 힘들겠다 싶어서.”
이어서 승연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이었다.
“맞아. 태현 형, 뭐 하나 고집 세운 건 끝까지 밀잖아.”
승연의 이야기에 오현까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톡신 멤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적어도 열린 문틈으로 나간 두 사람은 한 번쯤 큰 소리가 날 것 같았다.
하지만 의외로 바깥은 조용했다.
“스튜디오에선 짜장면이지!”
그때, 은지가 간단하게 짜장면을 주문할 거라며 분위기를 전환했다.
은지이기에 가능한 방법이었다.
“다들 콜?”
“콜.”
“어, 어어. 나도 괜찮아.”
“은지야, 탕수육도 하나 시키자.”
“오, 승연 오빠, 굿 아이디어!”
막내들과 은지는 이 부분에선 호흡이 척척이었다.
그렇게 은지는 어플로 짜장면 7개와 탕수육 하나를 주문했다.
잠시 후 20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짜장면 배달원과 함께 예찬과 태현이 돌아왔다.
두 사람은 많은 대화를 나눈 듯 한결 가라앉은 표정들이었다.
“이야기는 잘 됐어요?”
은지가 묻자, 태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름.”
“어쩌겠어.”
태현의 답을 이어서 예찬이 답했다.
배달원은 연예인들을 신기하게 두리번거리며 짜장면을 내려 뒀다.
“감사합니다.”
“예, 맛있게 드세요.”
은지가 화사하게 웃으며 인사하자, 배달원의 눈에 순간 하트가 그려진 듯했다.
은지는 화사한 인사와 다르게 배달원이 나간 즉시 거칠게 문을 닫고 자리로 돌아왔다.
“아, 배고파.”
“…….”
은호는 그런 내숭에 불만이 있는지 아니꼬운 눈길로 은지를 빤히 바라봤다.
그때 예찬이 갸웃거리며 물었다.
“계산은?”
“어플로 결제했어요.”
“오…….”
예찬은 정말로 어플 주문이 낯설었는지, 살짝 싸늘했던 표정이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아, 우리 고춧가루 다시 2층에 올려놨었나?”
은지는 짜장면을 한술 뜨기 전 은호를 돌아보며 물었다.
이미 한가득 면발을 입에 넣은 듯, 은호는 볼이 빵빵해진 채 고개를 끄덕였다.
“왜 올려놔.”
“…….”
은호의 표정에 짜증이 깃들었다.
은호는 빠르게 입을 오물거린 후 입속의 면발을 삼키며 대꾸했다.
“아니, 스튜디오에 고춧가루를 왜 둬.”
“내가 먹잖아.”
“집도 가까운데 직접 들고 오든가.”
“아, 귀찮단 말이야.”
“그럼 그냥 처먹어. 좀.”
그때였다.
드르륵.
은지는 정말 고춧가루를 챙겨 올 생각인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호는 ‘진심이냐?’고 묻는 듯 놀란 눈으로 일어난 은지를 돌아봤다.
“매콤한 거 땅긴단 말이야. 알잖아. 오늘 무슨 날인지.”
알기는 하다만…….
이럴 필요가 있나 싶다.
하지만 은지는 귀찮게 2층에 다녀와야 하더라도 짜장면에 고춧가루를 뿌릴 생각인 것 같았다.
그렇게 은지는 스튜디오 밖으로 나갔다.
은호는 황당한 눈으로 은지가 떠난 문을 빤히 바라보더니, 못 말린다는 듯 절레절레 고개를 저으며 다시 제 짜장면에 집중했다.
누구 하나 태현의 폭탄 발언을 다시 언급하지 않으며 식사는 평소와 다름없는 분위기에서 이어졌다.
* * *
은호와 은지가 ‘같이 쫌 살자’ 촬영을 가 있을 땐 연탄은 철수가 마련해 준 방에서 홀로 자유롭게 거닐었다.
하지만 아무리 좋다고 한들 제집만 할까.
이번에 톡신의 곡을 녹음하기 위해 은호와 은지가 몇 주간 휴일 아닌 휴일을 낸 그동안 연탄도 자연히 집으로 돌아왔다.
“역시 여기가 극락이로구나.”
은호와 은지는 한 번 녹음하러 내려가면 적어도 저녁까지 돌아온 일이 없다.
덕분에 연탄은 경계를 죽인 채 사람의 형태로 거실 바닥에 태평하게 뻗어 편안하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덜컹.
문이 열렸다.
“…….”
“…….”
오늘 은호와 은지가 있다고 외부인이 들어올 리 없다는 생각에 긴장을 풀었던 게 문제였을까.
아니면 오랜만에 돌아온 집이 너무 좋아서 편안하게 풀어졌던 게 문제였을까.
은지는 날카로운 눈을 커다랗게 뜬 채 익숙한 옷을 입을 입고 검은 더벅머리 꼴을 한 이상한 남자를 바라봤다.
은지는 놀란 눈이긴 했지만 이런 와중에도 남자를 찬찬히 뜯어 살피고 있었다.
남자의 피부색은 사람보다는 시체에 가까워 보이는 희다 못해 퍼렇게 질린 것 같은 ‘허연’ 색.
렌즈라도 낀 것 같은 샛노란 눈.
거기다 남자의 양쪽 눈꼬리 아래에는 마치 일부러 찍은 것처럼 검은 점이 콕콕 찍혀 있다.
남자가 입을 열자, 거실에 불빛이 들어와 있음에도 이상할 정도로 혓바닥이 검었다.
그때, 은지의 눈이 남자의 얼굴을 지나 상체와 하체로 내려왔다.
남자가 입고 있는 옷은 이은호가 얼마 전에 제 옷이 사라졌다며 자신을 쥐잡듯 잡았던 그 후드와 반바지였다.
“그, 그게……!”
남자는 굉장히 당황하고 있었다.
은지는 차분히 눈을 내리깔더니 조용히 문을 닫았다.
연탄은 알았다.
저 문이 다 닫힌다면, 은지는 자신을 미친놈으로 판단하고 무력을 쓰리라는 걸.
그 직감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는지, 은지는 신발을 벗는 것도 잊은 채 거실 안으로 발을 뻗었다.
은지의 눈은 회까닥해 버린 듯 이채마저 맴돌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은지는 바닥에 널브러진 연탄의 멱살을 틀어쥐었다.
은지의 힘이 얼마나 센지 연탄은 은지의 힘으로 상체가 일으켜진 지경이었다.
은지의 남아도는 오른손은 온 힘을 다해 내려찍을 기세로 중지의 두 번째 마디가 살짝 솟아오른 주먹이 만들어졌다.
“자, 자, 잠깐! 은지야! 은지야! 은지야! 나, 나, 나 연탄이야!!!”
연탄이 다급하게 소리치지 않았다면 그대로 날아들었을 주먹이 연탄의 코앞에서 멈춰 섰다.
“……뭐?”
은지가 옅게 이성을 차린 듯, 공중에 여전히 주먹을 움켜쥔 채 물었다.
꼴깍.
연탄은 긴장했는지 식은땀까지 흘리며 덜덜 떨었다.
“나, 나 연탄이야. 나, 시, 신이라고 했잖아. 사, 사, 사람, 그러니까, 사, 사람처럼, 아니. 내, 나는 혀, 형체를 바, 바꿀 수 있어. 지금 그, 그러니까. 지, 지금 나는 그, 그, 그, 그런 형태 중에 하, 하나라…….”
연탄이 말 그대로 덜덜덜덜 떨면서 말을 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은지다.
일전에 자신이 신이라고 밝혔다가 돌아온 대답이 ‘X랄 하고 자빠졌네.’였던 그 은지.
이번에도 믿어 주지 않고 욕부터, 아니.
저 말아 쥔 주먹이 떨어질까 봐 두려웠다.
‘신’이라는 대단한 이름에 비해 초라하지만, 연탄은 은지가 세상 그 어떤 존재보다도 무서웠다.
다른 사람들은 자신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
신수의 영역이기에 당연했다.
그러나 자신과 연결된 은지는 달랐다.
은지가 때리면 아프고, 은지가 죽이면 죽는다.
은지가 자신을 스스로 해를 입혀도 자신이 아프다.
즉, 은지는 연탄의 유일한 약점이자 검과 같은 존재였다.
“…….”
하지만 이번만큼은 믿어 주는 듯, 연탄의 멱살을 쥔 은지의 손에 서서히 힘이 풀렸다.
‘휴.’
연탄이 한숨을 내쉬며 안심하려던 그때였다.
휙.
은지는 다시 연탄의 멱살을 움켜쥐며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니가 연탄이라고?”
“으, 응.”
한 뼘이 안 되는 거리까지 은지의 얼굴이 가까이 다가왔다.
은지는 세세하게 연탄의 인간화한 얼굴을 뜯어봤다.
“너.”
“옙.”
연탄은 은지의 부름에 목을 움츠리며 얌전히 대답했다.
“언제부터 이렇게 할 수 있었는데.”
“이, 이렇게라면 어떤 걸…….”
은지는 살벌한 눈빛으로 연탄의 인어공주처럼 가지런히 모은 다리 쪽을 바라봤다.
“…….”
연탄은 꼴깍, 또 한 번 마른침을 삼켰다.
거짓말 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처음부터 할 수 있었다고 대답했다간 조금 전 날아오던 주먹이 그대로 다시 날아올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게…….”
거짓말을 해야겠다며 결심하고 입을 열려던 그 순간.
연탄은 은지와 눈이 마주쳤다.
그 눈을 마주하자, 연탄은 차마 거짓말을 할 수 없었다.
은지는 화가 나 있었다.
그리고 동시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눈이었다.
배신감이 들었던 걸까.
“미안해.”
연탄의 사과에 은지의 눈가로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렀다.
“다 사실대로 밝힌다고 했으면서.”
“……미안해.”
“거짓말은 더 없다고 했으면서!!!”
“…….”
“이, 망할 고양이 변태 새끼야!!!”
은지는 연탄의 멱살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풀었다.
온전히 은지의 힘에 들려 있었던 건지, 연탄은 힘없이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아야.”
다급하게 손으로 버텼지만, 손목에 오는 충격까지는 막지 못한 모양이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
그때, 은지는 마치 실성한 것처럼 웃음을 터뜨렸다.
“아, 뭐야, 이제 그 이상한 것들이 다 정리되네?”
은지의 목소리는 여느 때보다 날카로웠다.
“이은호가 갑자기 내 방에서 사람의 형상을 봤다던 그때 일도.”
“내가 잠결에 캣타워 앞에서 본 귀신도.”
“내 아이스크림을 다 털어먹은 것도!”
“이은호가 아니라 다, 전부 다 너구나?”
“……다 네가 한 짓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