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50화 (250/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50)

세계

“승연 선배 먼저 할게요.”

“요이!”

은지의 호명에 승연은 입가에 묻은 마카롱 크림을 닦으며 벌떡 일어났다.

“들어가면 돼?”

“네.”

“옼케, 옼케.”

승연이 장난기를 보이며 스튜디오 부스 문을 열었다.

“일단 선배님 느낌대로 가 볼게요.”

“그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리고, 톡신의 이번 신곡의 간주가 시작됐다.

승연은 몽글몽글한 느낌의 피아노가 드럼 박자에 맞춰 한 번씩 건반을 누르고 빠졌다.

그 리듬 위로 얹어진 ‘짝, 짝, 짝, 짝, 짝, 짝, 짝, 짝짝’ 스냅.

“바운스 좋네.”

승연은 리듬을 즐기며 고개와 발끝을 까딱였다.

은호와 은지는 작사, 작곡을 넘어 프로듀서의 역할까지도 임하고 있었다.

그 때문일까.

승연은 녹음실 안에 들어온 이후부터는 장난기를 지우고 프로듀싱을 맡은 은지의 역할 그대로.

오늘만큼은 귀여운 후배 동생들이 아닌 프로듀서로서 둘을 대했다.

둘의 귀에 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래했다.

한 트랙이 끝나고, 토크백을 누르지 않은 채 은호와 은지가 진지하게 무슨 대화를 하고 있었다.

승연은 살짝 긴장한 듯 바짝 마른 혀를 들고 온 물로 축이며 둘의 답을 기다렸다.

회의가 끝난 듯, 은지는 그제야 토크백을 누르며 이야기를 꺼냈다.

“선배님.”

“응.”

“시작 부분에서 지금 너무 힘이 들어간 것 같거든요?”

“응.”

“초반은 죽이되 B 벌스에서는 A처럼 힘 실어서 다시 한 번 부탁드릴게요. 그리고…….”

은지는 눈치를 보다가 은호에게 마이크를 넘겼다.

“형, 어깨에 힘 빼고 가요. 우리, 형 안 잡아먹어요.”

“하하하. 알겠어.”

승연은 속마음을 그대로 꿰뚫린 기분이었다.

사실, 프로듀서이긴 하지만 동시에 동생들이었다.

그리고 일전에 지예찬의 은근한 비교에 티를 내진 않았지만 적지 않은 질투심도 섞여 있었다.

그래서 더 잘하고 싶었고, 단번에 잘 해내 보이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면서도 말이다.

“다시 갈게요.”

“응.”

은호는 이후 다시 은지에게 마이크를 넘겼고, 은지는 간단하게 말을 한 뒤 다시 트랙을 재생했다.

처음에 박자를 타며 즐겼던 그대로, 승연은 리듬을 타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을 뜬 순간

난 네 생각을 해

승연은 은호와 은지가 말한 ‘힘’에 집중하며 노래를 불렀다.

네 목소릴 들어

좋은 아침

밝은 인사

은호와 은지의 귀를 만족시키기란 절대 쉽지만은 않았다.

다만, 그만큼 그 결과물은 눈에 띄는 차이를 보였다.

특히 함께 오랜 기간을 함께 해 왔던 멤버들은 그 차이를 더더욱 확연하게 느끼고 있었다.

“승연이 버릇이 오늘은 안 보인다.”

“어, 와. 그러네.”

“아까 은호가 긴장 풀라고 했을 때부터였지.”

“그게 쟤가 힘이 들어가면서 나오는 버릇이었나 보다.”

“난 그냥 애드리브처럼 넣는 건 줄 알았더니…….”

그간 디렉팅을 자주 맡았던 지예찬은 특히 더 놀랐다.

그간 오래 작업해 온 자신보다도 은호와 은지는 승연의 문제점이 어디서 시작된 건지 단번에 알아챘다.

승연은 노래할 때면 특유의 애드리브를 넣었다.

바이브레이션인 듯, 허밍 같은 희미한 떨림.

‘워낙 긴장한 걸 티를 잘 안 내는 녀석이라서 몰랐는데…….’

그걸 은호와 은지가 날카롭게 알아챘다.

비틀고 뒤틀어

결국은 닿겠지

사랑받는 클리셰

승연의 녹음은 길었다.

처음에 느낌을 보던 때와 다르게 몇 번이나 발음과 음정에 교정이 들어가면서 조금 더 길어지게 됐다.

승연은 진지하게 임하는 만큼 머리칼 틈으로 송골송골한 땀을 비쳤다.

해피 해피 해피 엔딩

클리셰

사랑받는 클리셰

승연의 머리칼에 맺혀 가던 땀이 방울로 떨어지기 직전에 은호와 은지의 “고생하셨습니다!”가 떨어졌다.

“흐어억. 너희 진짜 독하다.”

승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밖으로 나왔다.

“그래도 덕분에 많이 배웠다.”

“별말씀을요. 형님들보다야 부족하죠.”

“짜식, 추켜세워 주기는.”

승연은 녹음실에서 고생한 만큼 원망 아닌 원망을 담아 은호의 어깨를 주먹으로 약하게 쳤다.

배웠다는 건 빈말은 아니었다.

은지는 기분 나쁘지 않을 정도로 문제점을 직설적으로 이야기했고, 은호는 예의를 지키며 은지가 말한 그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어떻게 몇 년 활동하지도 않은 녀석들이 할 수 있을까 하는 뼈 있는 조언들이 정말 많았다.

“다음은 오현 선배가 들어오시면 진행이 편할 것 같은데, 괜찮을까요?”

“응. 난 언제든 상관없어.”

은지의 질문에 오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녹음실로 들어섰다.

“선배님, 선배님.”

승연과는 달리, 오현이 부스에 들어서자 은지는 곧장 토크백을 눌러 오현을 불렀다.

오현은 가사지를 보며 준비하려다 화들짝 놀라며 은지가 보이는 창 너머를 돌아봤다.

“기지개 한 번 켜 주실래요?”

“어? 갑자기?”

뜬금없는 부탁이었지만 착한 오현은 은지의 부탁을 그대로 따랐다.

오현은 일전에 은지의 응원을 받아 못난 점을 이겨 낸 적 있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일까.

오히려 은지와 작업을 한다고 하자 종이를 쥔 손이 떨렸다.

창 너머로 어떻게 본 건지, 은지는 그런 오현의 긴장을 눈치채며 기지개를 요청한 것이었다.

“선배님.”

“응.”

“제가 만든 노래 어때요.”

“어?”

기지개를 켠 뒤, 은지는 뜬금없는 질문을 던졌다.

“조, 좋지.”

당황스러운 질문이어서였을까.

오현이 당황하며 말을 더듬었다.

“좋아요?”

은지가 다시 한 번 묻자, 오현은 조금 전보다 한결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좋아.”

오현의 두 번째 대답은 만족스러웠는지, 은지는 웃으며 말했다.

“다행이네요. 선배님 솔로 곡인 ‘시스투스’에서 영감 받아서 만든 곡이거든요.”

오늘은 놀라서 눈이 커졌다.

“그러니까 이 곡은 선배님이 그냥 편안하게 부르면! 그게 가장 잘 어울리는 곡이라고요.”

말재주가 부족해서 이렇게까지밖에 이야기를 못 했지만, 이야기 그대로.

은지는 오현이 ‘시스투스’를 부를 때처럼 그 어떤 터치 없이 ‘오현’ 그대로의 모습으로 불러 주길 바랐다.

‘애초에 그런 선배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만든 곡이니까.’

오현은 은지의 응원에 웃으며 간주를 들었다.

이후 이전에 녹음한 승연의 파트가 흘렀다.

승연의 파트에 화음을 쌓으며 오현은 곧 나올 자신의 단독 파트를 체크했다.

그리고 하나, 둘.

오현은 드디어 자신의 파트가 도달했을 때 입을 열었다.

네 미소만큼 나도 오늘만큼은

이 불쾌한 햇빛이 싫지 않아

변화 없이 자신의 모습 그대로 하라던 은지의 응원이 통한 덕분일까.

답을 일러 줘

나를 구한 Heroine

No No 넌 Hero

맞아 이건 클리셰

긴장을 자주 하며 녹음할 때마다 긴 시간을 잡아먹던 오현은 그날따라 물 흐르듯 녹음을 이어 나갔다.

누군가에겐 해피 엔딩이

내겐 베드 엔딩인데

그땐 나 어떡해야 해

어떡해야 해

오현의 녹음이 끝나고,

이어서 들어온 건 막내 라인의 마지막.

주송민이었다.

오늘은 너랑 무슨 이야길 할까

그게 내 하루의 낙이야

주송민은 막내 라인에서 메인 보컬을 맡은 만큼 실력으로 가장 인정받는 멤버였다.

우리 이야기에선 내가 공주 할래

왕자는 공주를 구하니까

그 실력만큼이나 유려한 고음을 낸 주송민을 오현과 비슷할 정도로 문제가 없었다.

파트를 이어 가기 전, 은호는 트랙을 잠시 멈추고 토크백을 눌렀다.

“선배, 여기 다음 흑백 논리 파트에서 ‘나누기엔’ 할 때 발음 좀 씹어서 흘러가듯 부탁드려요. 뒤에 또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에서도 ‘을’을 묵음에 가깝게 부탁드립니다.”

“오케이. 해 볼게.”

은호의 요청을 재차 외우듯 중얼거리던 송민은 이어서 은호가 말한 부분이 나오자 은호의 피드백을 받아 재빠르게 파트를 치고 나갔다.

흑백 논리로 나누기엔

우리 색은 찬란해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트랙은 멈추지 않고 이어졌다.

송민은 잘 해냈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감은 채 집중하던 눈을 떴다.

눈을 뜨자 창문 너머로 은호와 은지가 엄지를 척 치켜들며 송민을 칭찬하고 있었다.

송민은 이어서 자신감이 붙은 듯 여느 때 보다 완벽하게 노래를 소화하며 끝을 장식했다.

답을 일러 줘

나를 구한 Heroine

No No 넌 Hero

맞이 이건 클리셰

이건 클리셰

송민의 녹음이 끝나고 이어서 태현으로 넘어가기 전이었다.

꼬르륵.

스튜디오 내부에 배고픔을 알리는 큰 소리가 울렸다.

“넌 무슨 아까 마카롱을 혼자 제일 많이 처먹었으면서 제일 먼저 배고픈 소리를 내냐…….”

은호가 신기한 생물을 보듯 은지를 놀리자, 은지는 발끈했는지 은호의 허벅지에 주먹을 휘둘렀다.

“악! 아, 뼈 맞았어!”

“그거 잘됐네.”

하하하하.

은호와 은지의 투덕거림을 지켜보던 톡신 멤버들.

그중 지예찬이 대표로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마침 점심때인데 밥이나 먹고 하자. 안 그래도 대표님이 너희 일 중독이라서 밥 안 먹는다고 나한테 챙기라고 하셨어.”

“아니, 대표님은 왜 오빠들한테까지…….”

“그만큼 너희를 아끼니까 걱정하시는 거겠지. 근처에 맛있는 집 있어?”

예찬은 주변을 둘러보다 소파 한구석에 놓인 ‘전단지’ 책자를 집어 들며 말했다.

“형님.”

“오빠.”

그런 예찬의 행동에 은호와 은지는 똑 닮은 얼굴로 장난기를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요즘 누가 전단지로 주문해요?”

“요즘 누가 전단지로―. 맞아.”

은호와 은지가 동시에 말을 맞춘 것처럼 비슷한 소리를 했다.

이어서 은지가 자연히 배달 어플을 꺼내 보였다.

“나 그거 쓰기 힘들어.”

“그거 찾는 거보다 훨씬 쉬운데요.”

“에이, 난 아직 전화가 편해…….”

은호와 은지는 그런 예찬에게 똑 닮은 얼굴로 서로 반대쪽 눈썹을 들썩이며 똑 닮은 표정을 지었다.

예찬은 그런 두 사람의 표정을 황당하게 바라보다 어이없는 숨을 틔었다.

“너희, 나 지금 아재라고 놀리는 거지.”

“에이.”

“아시면서.”

“아재인 거?”

그때였다.

딩동댕동~♬

은지는 건반을 눌러 짧은 연주를 했다.

심지어 어느 틈에 바꿔 둔 건지 가상 악기는 실로폰 소리를 내기까지.

“하하하하.”

“야, 하하! 이것들이……!”

철저한 준비성 때문인지 예찬은 투덜거리다가도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그도 그럴 것이, 톡신에서 예찬의 위치는 리더였다.

그것도 상당히 차분하지만 그래서 더 무서운 그런 존재.

하지만 그런 예찬도 단톡방에서 은호와 은지의 합동 공격에는 종종 이렇게 별것 아닌 걸로 무너졌다.

단톡방을 벗어났다고 해서 현실 또한 그러지 말라는 법은 없었다.

이런 예찬의 모습을 보며 가장 신난 건 아무래도 예찬을 가장 두려워하던 톡신의 막내 라인이었다.

“하하하하. 형은 요즘 젊은 애들 못 이긴다니까.”

“맞아. 액면가가 어리다고 마음까지 젊기는 힘들지?”

“은호랑 은지는 오늘 프로듀서라 못 혼낸다만, 너희는 다른 거 알지?”

예찬은 싱긋 웃으며 미래를 모르고 입을 털어 버린 승연과 송민의 정수리를 중지 마디로 콱, 콱 찍어 버렸다.

하지만 승연과 송민은 아파하면서도 웃는 걸 멈추진 않았다.

“얘들아, 나 있잖아. ”

그때, 그간 조용하던 태현이 입을 열었다.

은호와 은지를 포함해 정신없이 떠들고 투덕거리던 멤버들은 일제히 행동을 멈추고 태현을 돌아봤다.

태현은 그런 멤버들과 은호와 은지에게 찬찬히 시선을 마주치더니 한 박자 늦게 말을 이었다.

“나 이번 계약 끝나면, 그룹에서 빠지고 독일로 갈 거야.”

신나게 떠들던 스튜디오에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찬 공기가 내려앉았다.

은호는 알고 있었던 이야기였다.

다만, 언젠가 알려야 할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렇지만…….

은호는 불편한 분위기 속에서 제 속이 불타는 기분이었다.

한편, 태현은 태연하게 은호를 보며 인자하게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니, 형,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에바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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