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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49화 (249/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49)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후끈한 히터의 열기에 모자만 벗으면서 문을 열었다.

‘가게를 잘못 온 건가?’

당황한 은호를 한 발짝 뒤편에서 이상하게 바라보던 슬기.

슬기는 뒤늦게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은호가 바라본 풍경을 본 순간.

슬기도 은호를 따라 얼어붙었다.

3초.

모자를 벗지 말았어야 했다.

‘어차피 흔한 머리니까.’

괜찮지 않겠냐는 생각은 너무나 안일했다.

‘도망, 갈까.’

은호가 고민하던 그때.

슬기는 당황한 주연과 눈이 마주쳤고 재빠르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

2초.

‘아니야, 여기서 도망쳐 버리면 오히려 그림이 이상해지잖아. 팬분들 사이에서 말이 나올 수도 있고…….’

생각을 마친 은호는 판단을 내린 듯 놀란 마음을 가라앉혔다.

“저, 저 사람 설마…….”

“혹시……?”

그동안 은호를 알아본 건지 조용하던 여고생들의 틈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조금씩 피어올랐다.

그때, 은호와 정확히 시선이 마주친 한 여고생.

은호는 어떻게 반응할지 잠시 고민하다 은지가 자주 말하는 ‘재수 없는 웃음’ 중 하나인 온화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X……친”

그때였다.

“꺄악!!! 이은호다!!!”

마지막 1초가 흐르고, 은호와 눈이 마주쳤던 여고생이 비명을 지르며 소리쳤다.

“설마 했는데, 맞네!!!”

“내가 그럴지도 모른다고 했잖아!”

“대박!”

우르르.

은호를 눈치챈 여학생들은 처음 가게를 들어올 때 그 이상으로 정신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연의 시선에는 은호의 주위에 여고생들로 이뤄진 둥근 성벽이 세워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주연은 당황한 나머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한편, 슬기는 은호를 지키기 위해 다급하게 학생들을 막아 보려 했다.

하지만 슬기 혼자서 혈기 왕성한 여고생을 막기엔 턱없이 무리였다.

현우가 있었더라도 이건 무리였을 것 같은 화끈한 열기였다.

은호는 사인 해 달라, 사진 찍어 달라 외에도 온갖 질문을 던지는 학생들을 보며 주춤하더니 양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당황하던 그때였다.

“오빠!!! 날 가져요!!!”

“어, 아, 아니, 그건 범죄니까, 미안해요.”

은호의 대답이 재미있는지 여학생들이 까르륵거리며 웃었다.

“오는 줄 몰랐어.”

“전화했었는데, 안 받길래 평소처럼 tv 보는 줄 알고 그냥 올라왔더니…….”

슬기는 어느새 주연이 있는 카운터로 쫓겨났다.

“오늘 귀여운 친구 하나가 왔는데, 그 애가 여기를 이응이 방문한 카페라고 소문낸 모양이더라구.”

“그래서 학생 손님이 평소보다 많았구나.”

“응. 나도 당황스러워. 하하.”

주연은 슬기와 대화를 나누며 이 사이에 휴대폰을 확인했다.

“부재중 있네. 아까 막 저기 애들이 밀려 들어올 때 전화했나 보다.”

“응. 진작 알았으면 나만 올라오거나 했을 텐데, 은호 씨가 고생하게 됐어.”

슬기는 은호를 미안하게 바라봤다.

“시간 없는 거 아니야?”

“두 시간 정도 여유 있댔어. 그리고…….”

슬기는 다시 은호를 바라봤다.

정신이 없긴 해도 팬들을 좋아하기 때문인지 은호는 갑작스러운 깜짝 팬미팅을 꽤나 즐기는 중인 듯했다.

그때, 잠깐 열린 Q&A 시간이 다 끝났는지 이번엔 기념 촬영 시간이 열린 모양이다.

“오빠! 저 사진 찍어 주세요!”

“오빠! 다음은 저도 찍어 주세요!”

“하나, 둘!”

“아니! 오빠 그렇게 말구요!”

“아, 이거 아니에요?”

“네! 아니에요!”

한 여학생이 내민 휴대폰을 받아 든 은호는 학생의 부탁 그대로 학생을 찍으려고 했다.

은호가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행동하자, 학생은 다급하게 카메라를 막으며 은호 방향으로 돌렸다.

“저 혼자 말고 저랑 오빠랑 같이요!”

“하하하.”

은호의 장난에 주변 학생들은 또 한 번 까르륵거리며 즐거운 웃음을 터뜨렸다.

팬들과의 사진 촬영을 위해 어느새 모자처럼 마스크도 벗어 던지고 은호는 촬영을 이어 갔다.

정신없는 촬영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분위기가 진정됐을 때.

은호는 조심스럽게 학생들에게 부탁했다.

“여러분, 저 이제 은지가 부탁한 마카롱 사 가야 해서 비켜 주실 수 있을까요?”

은호의 부탁에 마치 모세의 기적처럼 카운터로 향하는 길이 생겼다.

그 모습에 잠시 놀랐던 은호는 이내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은호가 카운터 앞으로 향하자 피리 부는 사나이가 따로 없을 정도로 학생들이 졸졸 은호를 뒤쫓았다.

“은지 언니가 마카롱 사 오래요? 언니 단 거 좋아해요?”

“네. 기분이 가라앉을 때 단 거, 매운 거, 짠 거 엄청 찾아요.”

“되게 다정하다! 우리 오빠는 사 오라고 하면 양말만 던지는데.”

“양말…… 하하. 다정하기보단, 살기 위해서 사러 온 거라서…….”

은호의 의미심장한 대답에 학생들이 갸웃거리다 꺄르륵 웃었다.

“오빠, 어떤 맛 살 거예요?”

“프라푸치노 맛 살 거예요?”

“아니, 프라푸치노가 아니라 피스타치오라니까, 멍청아!”

“그거나 저거나!”

“달라! 전혀 달라!”

은호는 정신없는 학생들의 대화에 고개를 젓다 이마를 짚으며 웃었다.

“어! 대박, 찐웃음이다!”

……찐 웃음이라니.

웃던 은호는 갑자기 민망해졌는지 이마를 짚었던 손으로 눈을 가렸다.

부끄러운 기분에 손등으로 눈을 짚으며 그만해 달라는 의미의 손짓을 취한 그때였다.

“어떡해, 나 심장 아파!”

“부끄럽나 봐!”

“꺄악, 귀여워어!!!”

‘부끄럽다’라는 단어를 생각만 하는 것과 상대의 말을 통해 듣는 건 천지 차이였다.

처음엔 살짝만 부끄러운 기분이었는데.

여고생 팬들의 과할 정도로 격한 반응이 쏟아지자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정도로 민망해졌다.

은호는 덕분에 카운터 앞에 섰을 땐 귀가 눈에 띄게 붉어진 채였다.

주연은 당장 코피를 뿜으며 심장을 부여잡아야 할 것 같았지만, 보는 눈이 많아 애써 이성을 붙들었다.

“어떤 걸로 드릴까요?”

“그, 은지가 전에 먹었던 게 어떤 맛이에요?”

“아…….”

은호의 질문에 주연은 당혹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없어요?”

“네…… 오늘 두 분이 전에 드셨던 게 워낙 인기가 많아서…….”

“아하.”

은호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럼 그때처럼 맛있는 맛으로 추천해 주세요. 인당 2개씩이면…….”

은호는 손가락을 펼치며 인원수를 확인했다.

오늘 스튜디오를 찾아올 톡신 멤버 다섯.

은지와 자신까지 총 일곱 명.

“14개가 필요하네요.”

“아, 사장님. 회사에도 사 가야 해서 20개 더 추천 부탁드려요.”

은호가 부탁하자, 이어서 슬기도 웃으며 창석이 건넸던 법인 카드를 내밀었다.

“저희 것도 대표님이 사 주신대요?”

“당연하죠.”

“감사하다고 전해 주세요.”

“네.”

은호와 슬기의 대화를 가만히 지켜보던 학생 중 하나가 창석의 소문을 들은 건지 눈을 빛내며 물었다.

“오빠, 대표님이 엄청 잘 챙겨 준다는 거 찐이에요?”

‘찐’이라는 단어에 잠시 머뭇거리던 은호는 웃으며 학생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버지나 다름없죠. NRY 엔터테인먼트 모든 직원들한테 그럴걸요.”

은호의 대답을 듣던 슬기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제가 다닌 대표님들 중 최고인 건 인정하지만, 대표님이 진짜 짱인 이유는 직원들의 칼퇴를 지켜 주는 거죠.”

“하하, 간식이나 복지도 잘 챙겨 준다고 하지 않았어요?”

“복지 챙기고 야근시키는 회사는 많아도 대표님은 칼퇴가 복지잖아요.”

슬기의 진지한 대답에 은호는 웃으며 다시 주연에게 눈길을 돌렸다.

주연은 그동안 부족한 마카롱을 채워 넣기 위해서인지 주방 안쪽에 다녀왔다.

“이번에 신제품으로 준비하고 있던 건데, 이건 어떠세요?”

돌아온 주연의 손에는 다양한 맛이 뒤섞인 마카롱 한 판이 들려 있었다.

“맛있어 보이네요.”

“맛은 장담합니다! 아시잖아요. 저 맛 없는 거 매장에 안 낸다는 거.”

은호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자, 학생들이 눈을 빛내며 또 한 번 물었다.

“오빠, 가게에 자주 오세요?”

“여기 가게 언니랑 친해요?”

하나둘씩 질문이 쌓이자, 다른 학생들도 궁금한 부분을 이것저것 물었다.

은호는 일일이 이미지에 문제없는 좋은 답을 골라 대답했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주연의 집게가 바쁘게 포장을 끝마치고 종이봉투 여섯 개를 꺼내 포장된 박스를 담았다.

예쁘게 포장된 종이 가방들이 늘어진 걸 본 주연은 뿌듯하게 이마에 맺힌 땀을 닦았다.

“휴, 맛있게 드세요!”

“오, 이제 갈 시간이네요. 감사합니다.”

은호는 그간 학생들을 내내 상대하고 있었다.

주문한 마카롱이 나왔다는 말에 은호가 웃으며 이별을 언급하자 학생들에게서 아쉬운 소리가 터져 나왔다.

“즐거웠어요.”

“저희도요!”

“오빠, 방송 잘 챙겨 볼게요!”

“허엉, 전 노래 스트리밍 천 번 달릴게요.”

“감사합니다. 다들 조심히 들어가요.”

주연의 가게를 나와, 밴에 오를 때까지 학생들은 은호를 뒤쫓았다.

은호는 밴이 출발한 후에도 창밖을 보며 손을 흔들다가 어느 정도 멀어지고 나서야 창문을 닫고 등을 기댔다.

“아, 이런.”

정신이 없던 탓에 뒤늦게 눈치챘다.

조수석에 앉으려고 했는데, 급하게 타 버린 탓에 버릇처럼 원래 앉던 자리에 앉아 버렸다.

“미안해요. 누나. 말동무 되어 드려야 하는데.”

“됐어요. 또 놀리기만 할 거면 거기서 눈이라도 붙여요.”

“하하.”

가게로 가는 내내 놀렸던 게 가슴에 꽁하게 남았던 건지 슬기가 투덜거리며 답했다.

“정신이 없었네요.”

“그러게요. 안 피곤해요?”

“피곤해도, 저분들 에너지 덕분에 저희가 사는 거니까. 좋기만 해요.”

은호는 조금 전까지 조잘거리던 학생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웃었다.

“요즘 애들 무섭기만 한 줄 알았는데, 풋풋할 때 귀여운 건 여전하네요.”

은호가 생각에 잠긴 눈을 하며 중얼거리자, 슬기는 운전하다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누가 들으면 30, 40대는 된 줄 알겠어요.”

“……그런가요.”

살짝 뜨끔한 탓에 은호는 어색하게 웃으며 다시 창밖으로 눈을 돌렸다.

밴은 그렇게 왔던 길을 반대로 되돌아갔다.

* * *

슬기는 은호는 집 앞에 내려 주고 회사로 향했다.

은호가 묵직한 대문을 열고 1층으로 향하자 벌써 톡신이 찾아온 건지 방음 부스 너머로 많은 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 왔어.”

“어, 왔어? 뭐 사 왔어?”

“뭐긴, 마카롱 사 왔지.”

“아니, 무슨 맛 사 왔냐고.”

은호가 무뚝뚝하게 대꾸하자, 은지가 투덜거리며 미간을 구겼다.

그것도 잠시, 은호가 챙겨 온 종이 가방을 내려 두자 언제 그랬냐는 듯 은지의 표정이 환해졌다.

“이게 다 뭐야?”

인기척은 기분 탓이 아니었는지, 기둥에 가려져서 보이지 않았던 톡신 멤버들이 빼꼼히 고개를 내밀며 물었다.

“오셨어요?”

“온 지는 한참 지났지!”

은호의 인사에 주송민이 뻔뻔하게 대꾸했다.

“이제 막 도착해서 앉아 있었잖아. 은호한테 거짓말하지 마.”

그런 송민의 머리를 조용히 짓누르며 태현이 답했다.

“형들도 마카롱 드세요.”

“마카롱?”

“아, 마침 녹음 전에 슈가 하이가 필요했는데! 은호 나이스 초이스.”

서승연이 엄지를 척 세웠다.

은호는 웃으며 종이 가방에서 포장된 마카롱이 든 상자 두 개를 꺼내 내밀었다.

주연이 은지 것은 따로 보라색 리본을 묶어 둔 덕분에 파악이 쉬웠다.

“으음! 너무 맛있어! 아, 이제 좀 기운 난다.”

은호는 호들갑 떠는 은지를 돌아봤다가 눈이 커졌다.

“벌써 다 처먹었냐, 돼지야.”

“멧돼지는 육식도 한다는 거 잊지 마.”

은호의 ‘돼지’라는 단어가 못마땅했는지, 은지가 살갑게 웃으며 살벌한 말을 던졌다.

그러다 은지는 마지막 남은 한 조각을 입에 밀어 넣었다.

마카롱의 버프는 생각보다 좋았던 건지 은지는 언제 은호한테 기분이 나빴었냐는 듯 다시 행복에 겨운 표정이 됐다.

이후 은지는 단맛에 절어 버린 입안을 달래려 식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단번에 원샷한 뒤 톡신 멤버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 선배님들, 이제 녹음 들어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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