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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48화 (248/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48)

“오늘 녹음 뒤졌다, 이은호.”

“뒤졌다느니 그런 말 하지 말라니까…….”

전보다 어느 정도 트라우마에서 벗어났지만 죽음을 언급하는 단어가 아직 불편했던 건지, 아니면 단순히 은지의 히스테리가 그 정도로 두려운 건지 은호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은지가 녹음실에서 완벽함을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는 수준이었다.

평소에는 은호의 스타일이라며 넘어가던 부분도 은지가 예민할 땐 은지의 기준에 ‘완벽하게’ 부합할 때까지 ‘다시 가자.’를 반복하기 때문이었다.

은호는 좋지 않은 기억이 떠오른 듯 안색이 파리해진 상태로 중얼거렸다.

“야, 거, 그거…….”

“그거 뭐.”

“권력 남용이야.”

“응. 남용 맞음. 억울하면 니가 작곡이랑 편곡까지 다 하시든가.”

“…….”

순간 발끈하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말이 없다.

권한이 있는 ‘작사’ 부분은 이미 한참 전에 마감된 상황.

즉, 가사는 이미 은지의 손아귀에 넘어갔으며, 오늘은 편곡을 위한 녹음 날.

그 말은 즉, 지휘 권한이 온전히 은지 손아귀에 있는 그런 날이라는 말이었다.

“이틀하고 쩜 오라도 더 받고 사 오든가, 녹음할 때 다 같이 개고생해 보시든가.”

은호는 그렇다고 은지가 제안했던 ‘2.5일’에 마카롱을 사 오자니, 노동에 비해 영 마음이 차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가 제안한 5일은…….’

통과는커녕 넘어갈 기미조차 없다.

“3일.”

은호는 고민 끝에 합의점을 찾은 마지막 제안을 던졌다.

“아, 이은호 더럽게 끈질기네. 진짜.”

“이제 알았냐?”

“쯧, ……오케이. 콜.”

이번만큼은 은지도 한 발짝 물러났다.

‘3일이면 나쁘지 않지.’

3일 동안 설거지 걱정 없이 그릇 막 쓰면서 요리를 할 수 있다.

복수는 설거지거리를 늘이는 걸로 대신하면 된다.

“근데 매니저 오빠 지금 회의 중 아니야?”

“어. 그래서 누님한테 연락해 보게.”

“아, 슬기 언니 지금 회사에 있다고 했었나?”

“어.”

은호는 늘 그렇듯 익숙하게 베이지색 카디건을 집어 들었다.

“그렇게 입으면 안 춥냐.”

“좀 쌀쌀하긴 한데, 괜찮아.”

대답과 다르게 은호는 이어서 걸친 카디건 위로 몸집의 두 배는 되어 보이는 패딩을 입으며 말했다.

은지는 그 모습을 보며 황당한 숨을 틔었다.

“쌀쌀은 개뿔……. 과하지 않냐. 북극에서도 그렇게는 안 껴입을 것 같은데.”

“어쩔. 내가 춥다는데 무슨 상관이야.”

“예이, 오라버니께서 그러시다는데 어련하시겠어요.”

은지의 시비를 은호는 가볍게 튕겨 내며 슬기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 누나]

[슬기누님 ― 응?]

[나 ― 주연 씨 가게 좀 다녀오려고 하는데요]

[슬기누님 ― 은지가 단 거 먹고 싶대?]

[나 ― 잘 아시네요]

[슬기누님 ― 은지가 나랑 주기가 비슷하거든ㅋㅋㅋ]

주기?

슬기의 대답을 곧바로 이해하기엔 그쪽으로 지식이 부족한 탓인지, 은호는 갸웃거리며 주제를 넘겼다.

[나 ― 그]

― 형님은 아직 회의 중인가요?]

[슬기누님 ― 웅넴]

― 오늘 도진 씨랑 같이]

중간 점검 날이라서]

― 아마 오래 걸릴 듯]

[나 ― 이런;;;]

난감한 상황인지 패딩에 파묻혀 슬기와 대화를 주고받던 은호의 한숨이 깊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은호는 운전대를 잡지 않은 지 오래됐고, 은지가 운전하자니…….

거래도 거래였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은지는 배가 많이 아픈 듯 책상에 녹아내린 수준으로 퍼져 있었다.

‘그렇다고 나중에 사 오자니…….’

은호는 시계를 확인하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 두 시간 뒤면 톡신 멤버들이 올 시간.

그 말은 곧 녹음에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었고.

‘이대로면 나뿐만 아니라 형님들까지…….’

은지가 했던 말대로 ‘다 같이’ 은지의 히스테리에 희생당한다.

이 상황을 타파할 방법이라곤 하나뿐이었다.

형님들이 도착할 2시간 전까지 은지가 원하는 단 간식을 내어 주고 평화를 얻는 것.

은호는 고민 끝에 휴대폰 화면을 톡톡 두드리며 슬기를 불렀다.

[나 ― 누님]

[슬기누님 ― 넵]

[나 ― 혹시 운전 하실 수 있나요?]

[슬기누님 ― (‘지냥’이 갸웃거리며 머리 위로 ‘???’를 띄운 이모티콘)]

― 당연히 하지용?]

[나 ― 그럼 저희끼리 다녀오는 건.....]

― 안 될까요?]

[슬기누님 ― 그래요]

― 주연이 가게 ]

― 온라인으로 운영돼서]

― 가게에 손님도]

― 많이 없으니까]

― 같이 금방 갔다 오죠]

슬기의 긍정적인 대답에 은호의 표정이 밝아졌다.

하지만 슬기의 예상과 달리 그 시각 주연의 가게에는 이제 막 여고생들이 물밀듯 밀려 들어올 때였다.

주연조차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슬기는 물론, 은호가 예상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앞으로 일어날 일은 까맣게 모른 채, 은호는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누님이랑 같이 갔다 올게.”

“후딱 댕겨 오셔.”

“오냐.”

여전히 책상에 엎어진 채 녹아 있는 은지.

은지는 끝까지 얼굴조차 들지 않고 은호에게 손만 흔들었다.

“…….”

은호는 조용히 책상에 퍼진 은지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그냥 지나가기엔 너무 아쉬운 탐스러운 뒤통수.

‘……하나, 둘, 셋!’

빡!

은호는 마음속으로 3초를 센 뒤 장난기를 이기지 못하고 은지의 뒤통수에 시원하게 꿀밤을 쥐어박았다.

“악!!!”

은지가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양손으로 감싸며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은호는 이미 밖으로 도망친 지 오래였다.

은호가 밖으로 막 빠져나온 그 순간.

“아, 야 이 X친 새끼야!!!”

“하하핰.”

스튜디오의 방음 부스를 뚫고 은지의 찰진 욕이 더해진 비명이 골목에 퍼졌다.

은호는 속이 후련한지 개운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며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 방향으로 향했다.

* * *

“차 키요?”

“네. 은호 씨랑 주연이네 가게에 다녀오려구요.”

“아, 여기요.”

은호가 회사로 향하는 그동안.

슬기는 회의 중인 대표실에 잠시 들어가서 현우에게 차 키를 받았다.

그리고 몰래 빠져나가려던 그때였다.

“슬기 씨가 차 키는 왜?”

회의에 집중 중이던 창석에게 딱 걸렸다.

딱히 잘못한 것도 아닌데 슬기는 우물쭈물하다 은지의 마카롱 이야기를 꺼냈다.

“오늘 톡신 애들하고 녹음 있는 날일 텐데, 많이 예민한가 봐?”

창석은 은지의 상태를 꿰고 있는 듯 걱정하며 물었다.

“그건 잘 모르겠는데, 은호 씨가 현우 씨 회의 중이라고 했더니 저랑 둘이라도 얼른 다녀오자고 하긴 했어요.”

“은호가 못 기다리고 움직일 정도면 오늘 상태 무진장 나쁜가 보네.”

창석은 몇 마디 정보만으로 현재 상황 파악이 끝난 듯 갑자기 회의 테이블을 빠져나왔다.

창석이 향한 곳은 대표석이 있는 자신의 책상 앞이었다.

중역 의자에 걸린 자신의 외투 주머니를 뒤적이던 창석은 잠시 후 지갑을 꺼내더니 안에서 검은 카드를 뽑아 내밀었다.

“내 카드로 애들 사 달라는 거 사 줘. 그리고 주연 씨라면 그때 애들한테 커피차랑 디저트 보내 줬던 E%로 활동 중이라는 친구분 맞지?”

“네. 맞아요. E% 친구.”

“그러면 거기서 직원들 간식까지 다 긁고 와. 전에 먹었던 거 맛있더라.”

“네!”

슬기는 밝게 웃으며 창석의 카드를 받아 들었다.

들고만 있어도 든든하다는 그 ‘법인 카드’다!

“다녀와. 혹시 모르니까 마스크랑 모자 잘 챙기고.”

“네!”

창석의 경고에 슬기는 은호에게 씌울 모자와 마스크까지 챙긴 후에서야 밖으로 나왔다.

‘가게에 손님이 없긴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으니까.’

슬기가 회사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온 그때였다.

미리 도착해 있었는지 은호는 곧 눈이나 비가 내릴 것 같은 회색 구름이 가득 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리 가수지만, 잘생기긴 했어.’

슬기는 새삼 은호의 옆 모습을 감상하며 생각했다.

그때, 뒤늦게 인기척을 느낀 듯 은호가 옆을 돌아봤다.

“언제 나오셨어요?”

“방금요. 키랑 같이 대표님이 쏘신다고 해서 법카도 받아 왔어요.”

“오.”

은호는 싱긋 웃더니 다시 하늘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하늘이 뿌연 게 곧 뭐든 내릴 것 같은데, 길 미끄러워지기 전에 얼른 다녀오죠.”

“네.”

슬기는 상당히 익숙한 모양새로 운전석에 앉았다.

항상 뒤에 타던 은호는 슬기를 배려한 듯 오늘은 조수석에 올랐다.

“누님, 뭔가…… 익숙해 보이시네요?”

슬기가 자연스럽게 안전띠를 매고 출발할 준비를 하자, 은호가 그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물었다.

“아.”

슬기는 조금 당황하며 사실 현우와 둘이 이동할 때면 긴 운전에서 종종 운전을 맡았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은호는 이야기를 듣자 신기했는지 몇 차례 눈만 끔뻑였다.

잠시 고민하던 은호는 조금 상기된 슬기의 얼굴을 보더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누나, 우리 회사요.”

“네?”

“대표님이 사내 연애 환영한대요.”

“네?”

처음에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한 슬기는 잠시 후 이해가 된 듯 얼굴이 천천히 달아올랐다.

“아, 아니. 아직 그런 사이는 아닌데……!”

“오, 아직? 아―직?”

은호가 장난스럽게 묻자, 슬기의 얼굴이 곧 터질 것처럼 붉어졌다.

“은, 은지한테는 말하지 마요!”

“하핰, 알겠어요.”

슬기는 푹 한숨을 내쉬더니 겨우 차분함을 되찾으며 운전대를 잡았다.

그러다 중간 신호에 차가 잠시 멈춰 섰을 때였다.

“와, 조만간 대표님에 이은 두 번째 사내 커플 나오겠다―.”

은호는 기다렸다는 듯 창밖을 돌아보더니 마치 들으라는 것처럼 다소 큰 혼잣말을 흘렸다.

“그러지 마요!”

“왜요. 저 혼잣말한 건데?”

억울한 척, 은호가 말하자 발끈한 슬기는 은호의 어깨를 가볍게 때리며 거칠게 소곤(?)거렸다.

“정말로! 현우 씨 블랙박스 확인한단 말이야.”

“하하핰.”

평소 어른스럽기만 했던 슬기한테서 의외의 면모가 보이는 게 재밌었는지 은호는 짓궂은 장난을 몇 차례 더 이어 갔다.

은호가 탄 차가 주연의 가게 앞에 멈춰 섰을 때.

슬기는 은호의 놀림이 어지간히 민망했던 건지 얼굴이 노릇하게 익어 보기만 해도 열감이 느껴졌다.

“그럼…….”

“아우, 그만. 그만! 주연이한테 전화할 거니까 조용. 쉿, 쉿!”

슬기는 장난기 넘치는 아이를 달래듯 장난치는 은호를 타박하며 주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전화를 받지 않는 주연.

“안 받네.”

슬기가 갸웃거리며 말하자, 은호는 닫힌 창문 너머로 보이는 건물의 2층을 바라봤다.

주연의 가게가 있는 곳이었다.

“가게에 불은 켜져 있는 것 같은데요?”

“어디 나갈 때 불 끄고 다니는 애라, 그럼 잠깐 휴대폰 안 보고 다른 거 하고 있나?”

“나중에 가는 게 좋을까요?”

“그럴 여유가 있어요?”

“없죠.”

“…….”

슬기가 황당해하는 눈빛으로 은호를 빤히 바라보자, 은호는 뻔뻔하게 어깻짓을 하며 도리어 웃어 보였다.

“나 그만 놀려요.”

“죄송해요. 누나 은근히 타격감이 좋아서…….”

“타격감이라니…….”

슬기가 원망스럽게 한숨을 흘리자, 은호는 직접 가 볼 생각인지 웃으며 차에서 내리려 했다.

“잠시만! 은호 씨! 모자랑 마스크 쓰세요!”

“아.”

은호는 진심으로 깜빡한 듯 슬기가 내미는 모자랑 마스크를 얌전히 착용했다.

“그리고 내리지 말고 있어요. 주차하고 나랑 같이 가요.”

“네.”

* * *

주연의 가게가 있는 건물 입구에 들어선 두 사람.

계단이 좁아서 은호가 앞장서서 올라가고 있던 그때.

‘뭔가, 북적거리는 느낌인데.’

은호는 오늘따라 2층의 소리가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주연이 평소에 TV를 틀어 둔다는 걸 미리 전해 들었던지라 자연히 TV 소리로 치부하며 가게 문 앞에 섰다.

주연의 가게 입구는 위에는 불투명한 필름이 붙어 있어서 허리 위치부터 투명했다.

잠시 후 일어날 일은 까맣게 모른 채 은호는 태연하게 문을 연 그 순간.

은호는 가게를 가득 메운 여학생들과 눈이 마주쳤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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