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47)
주연은 일일이 보석이라도 튀어나온 듯 화들짝 놀라는 학생의 풋풋한 모습이 귀여웠다.
동시에 ‘성지’라는 표현에 그 ‘성지’의 주인으로서 어깨가 천장을 뚫을 것처럼 솟아오르는 기분이었다.
“저기, 언니, 언니! 혹시 이응이들 여기 왔을 때 어디 앉았었어요?”
“아, 저쪽에 앉았었어요.”
주연은 말려 올라가는 입꼬리를 겨우 붙들며 말했다.
주연의 손끝은 일전에 은호와 은지가 찾아왔을 때 앉았던 자리를 가리켰다.
“꺅, 대박. 잠깐 앉아도 되죠?”
“그럼요.”
학생은 주연의 허락이 떨어지자 가리킨 자리로 달려가서 앉더니 휴대폰으로 수십 장이 넘는 셀카를 찍어 댔다.
그 모습이 귀여웠던 주연은 서비스로 남은 마카롱의 꼬끄들을 내어 주며 말했다.
“서비스.”
“헉, 어떡해, 너무너무 감사합니다!”
반응 하나하나가 귀여운 친구였다.
주연이 내어 준 꼬끄들도 학생의 핸드폰 사진첩의 일부가 되었다.
“너무 맛있다앙!”
“맛있어요?”
“네! 최고예요. 진짜!”
학생은 주연이 내어 준 꼬끄를 찬양하듯 바라보다, “아!” 소리를 내더니 무언가 떠오른 듯 카운터 쪽을 휙 돌아봤다.
“언니!”
“네?”
주연이 화들짝 놀라자 학생이 꺄르륵 웃으며 다가왔다.
“혹시 은호 오빠랑 은지 언니도 여기 마카롱 먹었어요?”
“네. 먹었죠. 우리 가게 자랑인데.”
그때, 학생은 매대에 널린 마카롱 종류를 빤히 바라보며 주연에게 물었다.
“호, 혹시! 어떤 맛 좋아했어요?”
“아.”
주연은 잠시 고민하다 은호와 은지가 방문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관리 때문에 단 거를 별로 안 좋아해서, 아, 혹시 고소한 맛도 있어요?”」
「“고소한 맛 당연히 있죠. 인절미 맛이랑 피스타치오 맛이 고소하고 좋은데, 어떤 거로 드릴까요? 아니다! 그냥 둘 다 챙겨 드릴까요?”」
「“하하, 괜찮아요. 단 거 많이 가져가 봐야 쟤가 다 먹어서…….”」
은호는 그렇게 말하며 은지를 힐끔 돌아봤다.
이후 은호는 인절미 맛과 피스타치오 맛을 굉장히 고민하며 살피던 끝에 연둣빛을 띤 피스타치오 맛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피스타치오 맛인가요?”」
「“네. 맞아요.”」
「“전 이쪽이 더 취향인 것 같네요. 이걸로 포장해 주세요.”」
은호와 은지가 방문하던 당시를 떠올리던 주연은 피스타치오 맛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은호 씨는 진한 단맛을 별로 안 좋아한다고 피스타치오 맛을 좋아하셨었어요.”
“와! 뭐야, 뭐야. 은호 오빠 나랑 취향 비슷해! 그럼 은지 언니는요?”
“은지 씨는…….”
주연은 당시 파스타치오 맛을 고르는 은호를 불만스럽게 쳐다보던 은지를 떠올리며 웃었다.
「“대박 초코칩 올라간 브라우니 맛이라니, 언니 먹을 줄 아시네!”」
「“너 아까 초콜릿 맛도 먹지 않았냐?”」
「“먹었지. 근데 그건 그거고 브라우니는 또 달라.”」
「“……당뇨 올라.”」
찰싹.
은호가 조용히 읊조린 소리에 은지가 발끈하며 은호의 등짝을 후려쳤다.
「“우리 사랑스러운 브라우니 맛이 듣잖아!”」
은지의 대꾸에 은호는 영락없이 ‘얘가 미쳤나’라는 표정으로 조용히 바라봤다.
그때를 떠올리던 주연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키득거리더니 뒤늦게 학생 친구의 물음에 답했다.
“은지 씨는 청크 초코칩 브라우니 맛을 굉장히 좋아하셨었어요.”
“대박. 제가 산 브라우니 맛이랑 그거랑 같은 거죠?”
“네.”
눈을 반짝이며 묻는 학생에게 주연이 싱긋 웃으며 답했다.
학생 친구는 이후 은호가 좋아했다던 피스타치오 맛까지 추가로 구매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조심히 들어가세요.”
활기차게 인사하는 학생에게 손을 흔들던 주연은 학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어지고 나서야 카운터 구석에 놓인 의자에 앉았다.
―얼마 전에 수확한 거라 맛날 겨.
―와, 감사합니다. 어르신!
그때, 주연은 익숙한 목소리에 내내 틀어져 있던 ‘같이 쫌 살자’ 화면으로 눈을 돌렸다.
견과류의 고소한 맛을 좋아하는 은호의 취향은 ‘같이 쫌 살자’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났다.
며칠 만에 돌아온 시골집.
그간 빈집을 관리해 주신 어르신께서 얼마 전에 받았다며 멤버들에게 알이 큰 호두를 한 망 통째로 건넸다.
―이거 망치로 깨 먹어야 하는 거 아니야?
호두는 있지만, 껍질을 깰 만한 도구가 없어서 난감하던 그때였다.
화면에는 ‘콰직?’이라는 자막과 동시에 멤버들이 어딘가를 보고 놀라는 모습으로 멈췄다.
곧 화면에 비춘 건 맛있게 호두를 먹고 있는 은호였다.
―와, 호두 어떻게 깠어?
―네? 그, 그냥요.
맛있게 호두를 먹다가 시선이 몰리자 당황한 건지, 은호는 두리번거리다가 얼떨떨한 답을 했다.
그렇게 하나를 다 비운 뒤.
호두가 어지간히 맛있었는지, 은호는 뒤이어 붉은 망사 망에서 호두 3개를 더 꺼내 들었다.
이번엔 다들 어떻게 깨 먹나 확인하려는지 은호를 빤히 바라봤다.
―별거 없는데…….
은호는 몰린 시선이 민망한지, 귀가 붉어져 있었다.
그때 또 한 번 ‘콰직’ 소리가 났다.
―와, 저걸 저렇게 먹네.
은호는 단순히 호두를 여러 개 들고 주먹을 꽉 쥐어서 호두를 깨부쉈다.
류석현이 감탄을 흘리는 동안, 은호는 부서진 잔해를 뒤적이며 깐 호두를 입으로 옮겼다.
화면 속 은호는 은근하게 말린 눈꼬리 덕분에, 호두가 맛있다는 걸 굳이 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귀여워.’
주연은 금방이라도 꿀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화면 속 은호를 바라봤다.
이후로도 주연은 ‘같이 쫌 살자’ 3화가 끝날 때까지 TV를 보고 있었다.
이어서 3화의 끝을 알리는 E-UNG의 ‘저주’ 뮤직비디오가 나왔다.
주연은 손님도 없겠다.
‘같이 쫌 살자’를 다시 1화부터 정주행하려 했다.
그때였다.
짤랑.
가게 문이 열리면서 종소리가 났다.
“어서 오세요.”
버릇처럼 인사를 한 그때, 주연은 문을 돌아보고는 잠시 얼어붙었다.
“안녕하세요!”
“와, 가게 엄청 귀엽다!”
“여기에 이응이 왔었다고?”
손님이 들어왔으니 일단 버릇처럼 입꼬리를 끌어 올린 주연이었으나 당황스러움까지는 감출 수 없었는지, 그녀의 동공에 지진이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주연의 가게는 평균적으로 여섯 명에서 일곱 명밖에 방문하지 않는다.
더 있다고 해도 종종 한두 명만 더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교복을 입고 문을 열며 우르르 들어오는 학생 손님들은 그 평균치를 넘어가는 숫자였다.
덕분에 주연의 작은 가게는 순식간에 학생 손님들로 꽉 들어차 빼곡해졌다.
그때, 주연의 시선이 학생들이 챙겨 입은 남색 교복에 머물렀다.
‘저 교복…….’
몰려온 학생들의 교복이 상당히 익숙했다.
‘아, 조금 전에 그 학생…….’
조금 전에 방문했던 그 학생 손님과 같은 교복 차림인 여자아이들이었다.
“언니! 여기 피스타치오 맛이 어떤 거예요?”
“저는, 청큰 칩 프라푸치노 맛? 맞나? 뭔가 조금 달랐던 거 같은데.”
“바보야! 하하하하! 청크 칩 브라우니 맛이랬어!”
“언니! 이거 바닐라는 필링 무슨 맛 들어가 있는 거예요?”
“꺄, 이거 봐! 분홍색 짱 귀여워! 토끼 모양이야.”
우르르 몰려온 학생들의 정신없는 질문 세례에 주연은 영혼이 쏙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애써 정신을 차려서 대답해도 문제가 됐다.
“아, 그건 바닐라 맛이고 안에 크림은 땅콩…….”
“저기, 여기 딸기 맛은 안에 무슨 크림 들어간 거예요?”
“거기에는 바닐라 크림으로 채워져 있어요.”
질문이 멎을 때쯤에는 주문이 쏟아졌다.
“저, 이응 멤버들이 먹었다던 세트로 주세요!”
“어! 나도, 나도! 얼마예요?”
“이응이들이 먹었다는 거 맛이 어떤 거예요?”
“자, 잠시만요! 금액은 아래 쓰여 있어요! 이응 멤버분들은 은호 씨는 피스타치오 맛이었고, 은지 씨는 청크 초코칩 브라우니 맛 드셨었어요!”
“저기요오! 이거는 뭐 들어간 거예요?”
“언니, 여기 프라푸치노 말고 이거 인절미 맛은 필링 뭐 들어갔어요?”
“꺄, 이거 쿠키 올라간 거야? 귀엽다!”
“저기, 이거 포장해 주세요.”
“네! 금방 포장해 드릴게요!”
혼이 쏙 빠져나가다가도 쏟아지는 주문에 그 혼도 낚아서 육체에 묶어야 하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주연이 한창 정신없이 몰려드는 주문을 받고 있을 때.
카운터 구석, 방석 깔린 의자 위에 놓인 주연의 휴대폰이 몸을 떨며 진동했다.
지이잉.
지이잉.
한참이나 울리던 진동은 곧 멈추며 부재중 한 통이 있다는 알림을 띄웠다.
[슬기♥ 부재중 1통]
* * *
“괜찮냐?”
“……니 눈엔 이게 괜찮아 보이냐?”
은호가 어색하게 걱정하듯 묻자, 책상에 엎어진 은지는 평소보다 사나운 눈초리로 은호를 올려보며 말했다.
은지의 눈가에는 눈에 띄는 그늘이 보였다.
“오늘 녹음 디렉팅 볼 수 있겠냐…….”
“봐야지, X발.”
“거, 욕은―.”
“뭐.”
은지가 도끼눈을 뜨고 돌아보자 은호는 손을 저으며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을 대신했다.
“대자연, 이 X발 새끼…….”
은호는 오늘만큼은 은지의 욕설을 막을 치트키나 다름없는 ‘쫌’을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 단어를 입에 올렸다간 제 머리가 쥐어뜯길 것 같은 본능적인 위험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은지의 상태를 보면 알겠지만, 오늘은 매달 일주일에서 길면 10일 이상도 찾아오는 그날이었다.
나흘 이상 흐르면 조금 거친 면이 다듬어지는데…….
오늘은 하필이면 은지가 가장 예민한 시기인 이틀 차.
“아, 다 물어뜯어 버리고 싶다…….”
“진정해. 너 인간이야.”
“…….”
은지는 대답 대신 조용히 눈을 굴려 은호를 바라봤다.
진심으로 은호를 물어뜯고도 남을 것 같은 맹수의 눈빛이다.
“마, 마카롱.”
은호는 생명의 위협을 느낀 듯 안전을 위해 뇌물이 될 만한 제안을 꺼내 들었다.
“마카롱 사 올까?”
“사 줄 거야?”
“사 줄 거 아니면 왜 말했겠냐.”
“…….”
은지는 어딘가 언짢아 보이는 눈빛을 보내며 갸웃거렸다.
그때, 아니나 다를까.
은호는 손 하나를 활짝 펼쳐 보였다.
숫자 ‘5’를 표현하는 중이었다.
은지는 은호의 펼친 손을 가만히 바라보더니, 이내 기운이 없는지 책상에 이마를 붙이며 손가락 한 개를 펼쳤다.
“야, 그건 아니지. 초콜릿도 아니고 마카롱인데?”
“…….”
은호가 발끈하며 말하자 은지는 불쾌한 기색을 보이며 손가락을 하나 더 펼쳤다.
은호는 고개를 저었다.
손 역시 여전히 손가락 5개를 다 펼친 상태.
“5일은 에바잖아.”
“싫으면 말든가.”
“2일. 아, 제발.”
은지는 성질을 내려다가도 기운이 없는지 다시 푹 꼬꾸라졌다.
그런 와중에도 손가락은 여전히 ‘V’ 모양으로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은호가 물러날 기색이 없자, 은지는 조용히 반대 손을 펼쳤다.
‘7?’
손가락 2개에 추가로 펼친 5개.
갑자기 훌쩍 뛴 수에 은호가 들뜬 목소리로 물었다.
“일주일 다 하겠다고?”
“내가 미쳤냐? 이틀하고 쩜 오(0.5)라고.”
“야, 이틀이면 이틀이고 삼 일이면 그냥 삼 일이지. 왠 쩜 오야.”
“내 맘.”
은지의 무성의한 대꾸에 은호는 와락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안 사 와.”
협상 결렬이었다.
그때, 은지는 여유롭게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사 오지 말든가.”
“그래.”
“오늘 녹음 뒤졌다, 이은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