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246화 (246/309)

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46)

그날 은호와 은지가 싸우긴 했지만,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일까.

기자 간담회는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오히려 은호와 은지의 투덕거림을 보며 방송에서의 캐미도 기대된다는 기사가 많을 정도였다.

그리고 며칠 뒤.

유 PD가 예고한 날.

예고했던 시각에 맞춰 DI 뮤직이 일부 지분을 가진 tvH 채널에서 ‘같이 쫌 살자’의 첫 화가 방영됐다.

사실 실제 첫 방송은 기대만큼의 결과를 가져오진 않았다.

방영된 곳이 케이블 채널이라는 점과 애매한 시간대도 문제였지만, 가장 큰 문제는 비슷한 시각에 공중파 채널에서 방송하기 시작한 새로운 예능 때문이었다.

거기다 콘셉트 또한 굉장히 비슷한 탓인지 그 여파가 무시하기 힘들 정도로 강했다.

하지만 결과를 뒤엎기까진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존에 오튜브를 통한 활동 때문인지 은호와 은지는 10대 팬층이 상당히 탄탄한 편이었다.

10대 팬층의 소비 비율은 수익이 있는 20대 이후 세대에 비해 적었다.

하지만 커뮤니티 활동이 활발한 10대 팬층은 ‘입소문’이 강점 중 하나로, 그 영향력은 절대 무시하지 못할 만큼 강력했다.

[(시작부터 정신없는 <같이 쫌 살자> 1화, 레전드 모음편 동영상 링크)//폰트9

이거 본 사람 ㅋㅋㅋㅋㅋㅋㅋㅋ]

└낰ㅋㅋㅋㅋ이거 보고 똥 싸다가 오열함ㅋㅋㅋㅋ

└저거 뭐야? 처음 봐 ㅋㅋㅋㅋㅋ 개웃기네

[(에이슬을 들쳐 멘 은지와 시우를 들쳐 멘 태현이 마주치는 장면)//폰트9

왼: E-UNG라는 섹시 퇴폐 컨셉 아이돌

오: 톡신 카리스마 래퍼

겁나 깨는데 개웃기넼ㅋㅋㅋㅋㅋ]

└뭐야?ㅋㅋㅋㅋ 이은지 원래 저런 캐릭터였음?

└나 쟤 얼굴만 보고 ㅈㄴ 싸가지 없는 줄 알았는데 생긴 거랑 다르게 겁나 털털하넼ㅋㅋㅋㅋ

└우리 은지 언니 착해 빙구미 많아

└빙구미ㅋㅋㅋㅋ ㄹㅇㅋㅋ 매력 터짐

└헐? 저기 이응 동생보다 먼저 튀어 나간 거 ㄹㅇ 톡신 최댕댕임?

└ㅇㅇ

└ㅇ? ㄹㅇ? 미쳤다…. 톡신 소속사 바꾸더니 이제 예능도 나와? ㄷㄷ

└소속사에서 지원하는 거라던데 고멤(고정 멤버)인 듯 ㅋㅋ 대박

└저거 제목이 저거야? 같이 쫌 살자? 산다?

└ 산다 아님. 같이 쫌 살자 같쫌살

└오 ㄱㅅㄱㅅ

<같이 쫌 살자>에서 가장 화제를 모은 건 단연 ‘남매’의 장면들이 가장 많았다.

특히 종종 은호를 바라볼 때 나오는 은지의 ‘진짜’ 표정들.

등본상 혈육을 바라보는 진정성이 느껴진다며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고, 그중에서는 이응을 처음 보거나 팬이 아닌 사람들 또한 적지 않았다.

그 때문인지 풍부한 은지의 표정들은 여러 커뮤니티에서 단순히 재미있다는 이유에서 밈처럼 퍼져 나갔다.

그간 방송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톡신의 일상과 종종 무너진 모습까지 필터 없이 방송에 나오면서 ‘같이 쫌 살자’는 케이블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금세 화제의 프로그램이 됐다.

그런 와중에 ‘같이 쫌 살자’는 단순히 개그적인 요소로만 치중된 것은 아니었다.

저녁에 불을 피우며 흔히 ‘불멍’이라 부르는 시간을 가지곤 했는데.

그때 저녁 감성을 타고 나온 멤버들의 진솔한 이야기와 함께 그들이 겪은 많은 일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은호와 은지의 과거사 또한 다시 한 번 조명됐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방영된 ‘같이 쫌 살자’ 3회 차.

은호와 은지는 추억의 놀이를 재현했다.

―이은호 노래해! 노래해!

―갑자기 뭔 소리야.

―이런 캠프파이어 분위기에 노래는 필수라고, 콘서트 놀이! 셋, 둘, 셋, 둘, 셋!

―야, 누가 숫자를 그따위로 세냐.

―알았어. 한둘― 셋.

퉁 투둥 퉁 퉁

퉁 투둥 퉁 퉁

은지는 엉망으로 숫자를 세며 은호와 호흡을 맞추지 않고 평상을 손바닥으로 두드려 일정한 박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어서 은지는 박자 중간중간 ‘치키, 차!’ 같은 소리를 내며 화음을 더했다.

그런 두 사람의 호흡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뒤이어 승연이 간단한 비트박스를 얹었다.

에이슬은 조용히 눈치를 보다가 유리잔을 쇠젓가락으로 두드리며 맑은 소리를 더했다.

지키와 시우는 은지가 평상을 두드리는 박자에 따라 손뼉으로 리듬을 맞췄다.

거기에 태현은 낮은 목소리를 이용해서 베이스를 연주하듯 ‘둠, 두둠’ 소리를 냈다.

음악 쪽으로는 문외한에 가까운 류석현은 눈치를 보면서 시우와 지키를 따라 손뼉을 쳤다.

그때.

은지는 쌓이는 화음을 보며 은호를 바라봤다.

그리고 눈썹을 들썩였다.

‘와, 진짜 이렇게까지 판 깔아 줬는데 재미없게 빼면 넌 인간도 아니다.’

‘이게 오빠한테…….’

‘그래서, 빼냐? 뺄 거야? 와, 이은호 개노잼!’

은지는 무언의 신호를 보내며 은호를 약 올렸다.

“하…… 저거 진짜…….”

“므요. 그래서 노래 안 해?”

은호는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이내 못 살겠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누가 안 한대?”

자칫 오글거리는 상황이 될 법했음에도 예상보다 즉석으로 만들어진 멜로디가 의외로 상당히 좋아서 한다.

이은지가 시켜서는 절대 아니었다.

그렇게 은호는 지금 상황을 빗대며 노래를 시작했다.

호박 같은 이은지

블롭피쉬 내 동생

하하하하.

감미롭게 부르지만 누가 봐도 은지를 놀리는 가사.

숨죽이고 기대하며 상황을 지켜보던 스태프들은 일제히 웃음이 터졌다.

“아, 똑바로 해!”

“난 이게 똑바르게 하는 건데?”

“아!!!”

은호의 뻔뻔한 대꾸에 다들 웃는 와중에도 은지를 포함한 멤버들의 손은, 연주를 여전히 이어 가고 있었다.

은호는 어쩔 수 없었는지 어떻게든 멜로디를 만들며 가사를 이어 붙여 봤다.

못생긴 애가 나더러 노래하래

난 지금 가사도 없는데

뭘 원하는지도 모르겠어

어떤 노래를 할지도 모르겠는데

못생긴 애가 나더러 노래하래

감미로운 노래와 그렇지 못한 가사.

‘한국어를 모르면 좋은 노래’ 시리즈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 노래였다.

그때, 지키는 좋은 생각이 났는지 시우, 석현과 같은 박자로 치고 있던 박수에 슬그머니 박자를 하나 더 추가했다.

그 뒤틀린 지키의 손뼉은 마치 미국 감성의 포크송을 연상시키는, 어쿠스틱 기타로 연주하는 듯한 느낌을 만들었다.

은호는 지키가 만든 박자에 웃으며 새로운 멜로디를 더한 노래를 이어 갔다.

노래는 또 쓸데없이 좋아

어쩌다 이렇게 됐지

특별한 고음도, 좋은 가사도 그 어떤 것도 없었다.

장난에서 시작된 연주에 은호가 즉석으로 노래를 부를 뿐이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좋았다.

완성되지 않은 그 어설픈 느낌이 마당에 피워 둔 일렁이는 모닥불과 굉장히 잘 어울렸다.

어떻게 우리가 모였지

one by one by one

이렇게 우리가 모여서

We’re living together

은호는 이후 이 부분만 반복했다.

one by one by one

이렇게 우리가 모여서

We’re living together

몸속에 내장이라도 되어 있는 건지.

은호가 한차례 불렀던 부분이 반복된 그때였다.

여덟 멤버들은 일제히 이미 알고 있던 노래처럼 은호를 따라 노래했다.

이후에는 반복되는 가사가 입에 착 붙기라도 하는 듯, 뒤이어서 스태프들까지 ‘떼창’으로 목소리를 더했다.

덕분에 아닌 밤중에 시골집에서 콘서트라도 열린 기분으로 멤버들은 신나게 그 시간을 즐겼다.

3회 차는 그런 훈훈한 분위기에서 지원되는 광고들을 띄웠다.

노래가 멎은 후에는 PD의 센스인 건지.

이어서 은호와 은지의 신곡 ‘저주’ 중 은호 파트가 연결되듯 이어졌다.

너는 너 나는 나

우린 너무 달라

세상이 장난 같아

현실이 지옥이래

그래 그럼

난 이 지옥이 딱이라고

‘저주’의 노래가 흐르는 동안.

화면에는 노래를 끝마치며 웃고 떠들고 있는 ‘같이 쫌 살자’의 여덟 멤버들의 모습이 담겼다.

내 현실이 저주 같아

(그러니 저 주세요 저주)

나쁜 꿈 싫은 꿈

(응응)

그럴 때도 있어

비록 화면과 가사가 절묘하게 맞지는 않았지만, 이응 노래가 가진 특유의 아련한 분위기 때문일까.

그간 홀로 고생한 너를 위해

가진 짐 나눠 지고 함께 설게

다음에도

그다음에도

두 사람의 목소리에 묻어난 짙은 감성 때문인지, 노래는 방송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기억에 진하게 남게 됐다.

우리가 같은 하늘 아래

우리가 살아갈 수 있게

그거면

그것만

나는 바라

그렇게 ‘같이 쫌 살자’, 3화가 끝이 났다.

* * *

주연의 가게 한구석에 설치된 TV에는 ‘같이 쫌 살자’ 3회 차 방송이 틀어져 있었다.

주연이 엔딩에 나온 은호의 노래를 듣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IP TV 서비스를 질러 가며 가게에 방송을 튼 것이었다.

사실…….

노래만 듣는다면 오튜브로 많은 클립이 나돌아 다니는 만큼 그걸 틀어도 됐다.

하지만 일부러 찾아오는 손님들의 눈에 조금이라도 우리 가수가 알려지기를 바라는 팬심에 틀어 둔 게 컸다.

최근 주연의 디저트 가게는 인터넷 주문 외에도 SNS에 올린 홍보용 게시물 덕분인지 소문을 듣고 오프라인으로 찾아오는 손님이 하루 여섯 명 정도로 늘었다.

많은 인원은 아니지만 큰 발전이었다.

짤랑.

“어서 오세요.”

“와, 가게 엄청 귀엽다아! 안녕하세요!”

가게 문 위에 매달린 종이 울리고 근처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교복을 입은 학생이 찾아왔다.

“저 이거 바닐라랑 스트로베리 앤 블루베리랑 그리고……. 아! 저기 초콜릿 맛이랑 브라우니 맛도 하나요.”

주연은 귀여운 학생 손님의 주문에 맞춰 뚱뚱할 정도로 크림이 가득한 마카롱을 집게로 집어 들었다.

이후 가게 로고가 찍힌 예쁜 비닐에 화려한 마카롱들을 하나씩 집어넣고 포장하던 그때였다.

“오! 저거 같쫌살 맞죠? 지금 하는 거예요?”

“같쫌살?”

주연은 학생 손님이 가리킨 TV 속 ‘같이 쫌 살자’를 보고 나서야 이해했다.

“아, 저거……. 3화예요. 그나저나 요즘 친구들은 그렇게 부르나 보네요?”

“네! ‘같쫌살’이라고도 하고, 발음하기 힘들다고 ‘가쫌살’이라고도 불러요.”

학생 손님을 탓하는 건 아니고, 희미하게 느껴 버린 ‘세대 차이’에 야속한 세월이 씁쓸했는지 주연은 한숨을 흘렸다.

“아하…….”

주연이 짧은 감탄과 함께 어색하게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

“저거 재밌죠!”

“네. 좋아하는 프로그램이라 자주 이렇게 틀어 놔요.”

친화력이 좋은 친구인 듯 학생은 활짝 웃으며 조잘조잘 말을 이었다.

“저도 애들 사이에서 유명하길래 저번 주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이응 남매가 진짜, 너무 귀엽더라구요!”

주연은 그렇게 말하는 학생의 모습이 오히려 더 귀엽다고 생각하며 물었다.

“오, 손님도 이응 팬이신가요?”

“헤헤, 막 팬클럽까진 아니고요. 그냥 좋아하는 정도?”

“아하.”

“그래도 개인적으로 관심은 있어요. 언니도 이응 팬이에요?”

“아…….”

학생이 눈을 빛내며 주연과 시선을 맞췄다.

주연은 맑은 눈빛에 살짝 흠칫하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네. 저는 E%라고 이응 팬클럽으로도 활동도 하고 있어요.”

“와! 오, 헐, 설마. 그럼 혹시 저기 뒤에 있는 앨범이랑 이응 사인, 진짜 이응이들 거에요?”

뒤?

주연은 뒤를 돌아봤다.

카운터 뒤에는 이응 남매가 주연의 가게에 방문했던 당시 남겨 준 사인과 그간 슬기가 특별히 챙겨 준 EG 굿즈들이 빼곡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아, 네. 맞아요. 굿즈들이랑 방문했을 때 남겨 주신 싸인…….”

“호―억!”

정말 이런 소리를 내면서 놀랐다.

주연이 수줍게 이응 남매들의 사인을 자랑하자, 학생은 눈을 빛내더니 특이한 감탄을 흘렸다.

“대박! 이응이들이 실제로 왔었어요? 여기를?”

“네. 사진도 있어요.”

“우어엉……!”

주연이 벽에 붙여 둔 폴라로이드 사진 하나를 떼어 내며 학생이 잘 볼 수 있도록 카운터 테이블에 올려 뒀다.

학생은 보물이라도 만지듯, 조심스럽게 사진을 집어 들더니 눈을 빛내며 입을 틀어막았다.

“대박, 진짜 대박이다! 우리 집 근처에 성지가 있었을 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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