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45)
E%들이 있어 촬영을 잘 마무리했기 때문인지.
오랫동안 서로만 가지고 있던 이야기보따리를 풀어서였는지.
은호와 은지는 그날따라 마음이 가벼웠다.
그 가벼운 마음은 영락없이 방송에서도 그대로 내비친 덕분일까.
그날 오후 도착한 ‘같이 쫌 살자’ 촬영장에서 두 사람은 굉장히 즐거운 분위기에서 촬영을 마무리 지었다.
* * *
“대표님.”
“응? 오, 슬기 씨 잘 다녀왔어?”
“네. 덕분에요. 그보다, 혹시 잠시 시간 되시나요?”
“왜?”
“일전에 여쭤봤던 은지랑 은호 씨 헤어 스타일 관련해서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같이 쫌 살자’ 촬영에서 복귀 후, NRY 엔터테인먼트 사옥으로 출근한 슬기는 창석이 있는 대표실을 찾았다.
창석은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로 자리를 옮기며 슬기에게 말했다.
“들어와서 앉아.”
슬기는 꾸벅 고개를 숙이며 자리에 앉았다.
“……은호 씨한테 이야기 들었어요.”
슬기는 자리에 앉은 뒤, 창석에게 보고 겸 차에서 들었던 은호가 이야기해 준 내용을 창석에게 그대로 전달했다.
창석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었다.
“은호가?”
“네?”
“은호가 이야기해 줬다고?”
“아, 네.”
은호가 이야기한 게 무슨 문제라도 되는 듯 창석이 몇 번이나 되물었다.
슬기는 혼란스러워하면서도 재차 고개를 끄덕였다.
창석은 그런 슬기의 반응에 오히려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창석과 남매가 처음 미용실에 가던 날.
그때까지만 해도 은지와 은호는 스타일을 바꾸는 데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단발은 안 돼요!”」
「“이미지가 많이 안 달라졌으면 합니다.”」
창석은 왜 그러느냐고 두 사람에게 물었고, 은지가 답했다.
「“많이 달라지면 아저씨가 우릴 못 알아봐요.”」
창석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은 건 처음 두 사람의 후견인이 되기를 자처했을 때 수녀님을 통해 들었던 이야기가 끝이었다.
이후에는 고깃집에 갔을 때도 흘러가듯 그 ‘아저씨’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은지가 떠들 때, 항상 조금 이야기를 꺼내다가 내용이 깊어진다 싶으면 은호가 그런 은지를 막아서며 이야기를 멈췄다.
창석에게는 그때마다 못내 아쉬운 감정이 들었다.
그림자처럼, 한때는 그 ‘아저씨’의 이야기에 서운한 마음을 느꼈던 때도 있었다.
“대표님?”
“…….”
그랬던 애가.
은지보다도 상세하게 슬기와 현우에게 그때 이야기를 털어놓았다는 건.
창석에게 상당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그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도…….’
두 사람이 그렇게 좋아하던 빵집 아저씨는 일찍이 세상을 떠났다.
창석은 수녀님의 부탁을 받고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
“두 사람이 알고 있는 줄은 전혀 몰랐는데…….”
은호와 은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니.
“알면서도 그렇게 했던 거구나…….”
사실 그에게 건강상 문제가 있었다면 같이 지냈던 두 녀석이 더 잘 알았을 텐데…….
영락없이 애들은 몰랐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 녀석들 나한테는…….”
몇 년이 흘러, 오랜만에 느끼는 서운한 감정이었다.
창석에게는 빵집 아저씨와 있었던 일화에 관해 이야기하던 때, 그가 자신들을 어떻게 도와줬고, 어떤 영향을 끼쳤었는지.
딱 거기까지였을 뿐.
벽에 붙어 있었다던 포스트잇이나 그런 약속을 했다던 세세한 이야기는 슬기를 통해 처음 들은 말이었다.
세상에 ‘빵집 아저씨’의 존재를 드러낸 이상, 슬기가 물어도 이젠 두 사람이 이야기해 줄 수도 있겠다고 예상은 했었다.
그러나 자신한테보다도 그렇게 상세하게 이야기해 줄 줄은, 그것도 은호가 말이다.
“슬기 씨랑 현우 씨를 애들이 많이 믿고 따르나 보네.”
“그런가요?”
창석이 애써 씁쓸함을 삼키며 슬기에게 말했다.
슬기는 의미를 모르겠는지 갸웃거리며 답했다.
‘그래도…….’
이건 은호와 은지에게는 창석만큼이나 슬기와 현우가 중요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증거기도 했다.
은호와 은지는 오랜 기간 본인들의 세상에 둘만 존재하던, 고립된 아이들이었다.
그랬던 애들이 이젠 저 몰래 자신들의 세상을 넓혀 가고 있다.
창석은 못내 서운하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두 사람의 성장이 기뻤다.
“앞으로 코디할 때 신경 써 줘.”
창석의 이야기에 슬기가 놀란 눈을 하며 바라봤다.
창석은 NRY 엔터테인먼트의 대표다.
냉정하게 보자면 창석에게 은호와 은지는 매번 새로운 시도를 하며 세상에 선보여야 할 ‘상품’과도 같다.
하지만 헤어 스타일을 고정하면 그 이미지의 표현은 한계가 있기 마련이기에 대표의 자리에서 욕심을 가지게 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한편, 창석은 애정 어린 씁쓸한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
“난 그 녀석들이 싫다고 한 이상 억지로 바꾸라고 할 생각은 없으니까, 슬기 씨도 항상 최우선으로 애들한테 먼저 맞춰 준다고 생각해.”
“네!”
창석의 부탁에 두 사람의 팬이자 동료인 슬기는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창석의 대답을 들은 슬기는 가벼운 마음으로 대표실을 떠났다.
이후 창석은 다시 제 자리로 옮겨 푹신한 중역 의자에 등을 기댔다.
“애들이 알면서 그랬구나…….”
수녀님에게 소식을 들은 이후부터 창석은 개인적으로 그의 연고를 쫓았다.
그러다 그의 이름과 함께 어떤 끝을 맺었는지, 이야기를 듣게 됐다.
가족이 없는 사람의 끝은 외롭다.
시신은 단순히 ‘처리’되고, 묫자리는커녕 세상에 그 어떤 흔적도 남겨지지 않은 채 장래조차 치러지지 않고 세상과 이별한다.
그는 그렇게 홀로 쓸쓸하게 떠났다.
두 생명을 살린 업적에 비해선 씁쓸하기만 한 끝이었다.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땐 마음이 아팠다.
왜 그렇게 외롭게 떠난 건가 싶었다.
하지만 이번에 슬기를 통해 들은 이야기를 통해 조금은 이유를 알게 된 기분이었다.
“끝을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살아 있다라…….”
* * *
그는 남매들에게 죽음을 감추는 대신 홀로 외롭게 떠나는 것을 대가로 살아 있는 사람으로 남았다.
「“아저씨, 잘 지내실까.”」
「“잘 지내시겠지.”」
「“아저씨 보고 싶다. 아저씨 지금쯤이면 결혼하셔서 애기도 있고, 잘 계시겠지?”」
은호와 은지는 둘만의 농담처럼 끊임없이 그의 미래를 그렸다.
그렇게 미래를 그리는 한, 은호와 은지에게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남매는 알고 있다.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그를 놓아 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래서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은호와 은지는 그를 기억해 줄 사람이 많아지도록 세상에 그를 알렸다.
그렇게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느리게만 보일지언정, 남매는 자신들만의 속도로 아저씨와의 이별을 준비하고 있었다.
* * *
같이 쫌 살자
“‘같이 쫌 살자’ 기자 간담회, 사회를 맡은 리포터 소영지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같이 쫌 살자’의 첫 촬영이 끝나고, 편집을 마쳤다는 소식이 들려온 며칠 뒤.
프로그램을 선보이기 전.
기자 간담회가 열렸다.
리포터가 자리에서 일어나 허리를 숙이자, 옆에 앉아 있던 PD를 따라 줄줄이 자리에서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크흠, 안녕하십니까. ‘같이 쫌 살자’를 의 유명한입니다.”
“이번 ‘같이 쫌 살자’ 프로그램에 대해 PD님께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리포터가 너스레를 떨며 말하자, 유 PD가 마이크를 들며 답했다.
“‘같이 쫌 살자’는 NRY 엔터테인먼트와 DI 뮤직사의 협업으로 제작하게 되었고, 지금까지 예능에서 쉽게 보기 힘들었던 ‘톡신’을 포함한 인기 있는 가수와 MC가 경북의 한 시골집에 정착하여 생활하는 리얼 버라이어티 힐링 예능입니다.”
“유명한 PD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라인업이 정말 대단한데요!”
리포터는 자연스럽게 ‘세계적인 스타’, ‘천재’ 등등 온갖 좋은 미사여구를 붙여가며 여덟 멤버들을 소개했다.
“첫 녹화는 어땠나요?”
리포터의 질문에 처음 마이크를 든 건 서승연이었다.
“처음에는 낯설었었습니다. 특히 저희가 첫 촬영 날까지 멤버들이 누구인지 전혀 듣지 못한 상태였거든요.”
“같은 회사이신 톡신 멤버들과 이응 남매분들도 몰랐나요?”
리포터의 질문에 이어서 은호가 마이크를 들었다.
“네.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첫 만남에 갑자기 형님들이 나오셔서 굉장히 놀랐었죠.”
그때 은지가 은호의 마이크를 채 가며 말을 이었다.
“깜짝 놀라다 못해서 이은, 아니. 오빠가 태현 오빠한테 뛰어가서 안길 정도로 반가워하더라고요.”
“야, 내가 언제…….”
은지의 이야기에 은호가 원망스럽게 은지를 돌아보며 말을 흘리자, 두 사람의 모습을 담으려는 건지 카메라 셔터가 눌리는 소리와 함께 플래시가 바쁘게 번쩍였다.
서승연은 이어서 마이크를 들며 하던 이야기를 마저 이어 갔다.
“한 명씩 모이면서 이렇게 함께하게 된다는 것을 알았는데, 다 모인 직후에도 도착할 때까지 마지막 멤버인 지키 씨의 존재는 모르던 상태였어요.”
서승연이 가장 끝자리에 앉아 있던 지키를 돌아보며 웃었다.
서승연의 미소에 지키가 대답하듯 싱긋 웃어 보였다.
“주제가 있어서 그런지 첫 만남에서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를 많이 나눴고, 그래서 굉장히 빠르게 가까워졌던 것 같아요.”
“오오, 그랬군요. 그럼 다음 질문으로, 톡신 멤버이신 태현 씨는 예능 촬영을 반기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는데요. 이번 예능 출연에 대해 혹시 톡신 멤버들과 주변 지인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태현은 느리게 마이크를 들며 입을 열었다.
“주변 지인들은 아마 방송할 때쯤 돼서야 알 것 같습니다.”
“철저하게 비밀로 하셨었나 보네요?”
“그렇죠. 유일하게 아는 사람은 예찬이뿐이었는데…….”
톡신의 리더인 지예찬 이야기가 나오자 또 한 번 무수한 셔터 소리가 파도처럼 쏟아졌다.
“예찬 씨께서는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
“제발 거기선 입 다물고 있지 말라고…….”
“하하하.”
예상치 못한 태현의 내숭 없는 솔직한 답변에 또 한 번 홀에 웃음소리가 찼다.
이후로도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특히 이야기가 많이 나온 부분 중 하나로는 ‘첫날을 함께 보낸 소감’을 물을 때였다.
촬영 일정이 촬영 중에 하루가 더 늘어나게 됐던 일을 이야기하며 유명한 PD가 입을 열었다.
“원래 일정대로면 단순히 느긋한 시골 생활 촬영으로 갔을 텐데, 촬영 중에 많은 아이디어가 더해지면서 굉장히 풍부해졌습니다.”
“풍부해졌다는 게 어떤 의미인가요?”
리포터의 물음에 유명한 PD가 이어서 마이크를 들었다.
PD는 포인트 제도를 포함한 ‘같이 쫌 살자’의 특징이 될 만한 부분들의 이야기를 이어 갔다.
그러면서도 “자세한 사항은 11월 12일 목요일, 오후 10시. 많은 시청 바랍니다.”라며 유 PD는 말을 아꼈다.
긴 질문 시간이 끝나고, 마지막으로 리포터는 멤버들에게 각각 프로그램에 임하는 각오에 관해 물었다.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임하겠습니다.”
“재미없는 태현 형을 동생으로서 많이 지원하면서, 많은 분이 재미있게 보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평범하고 간단하게 인사를 한 태현과 승연 다음으로 은호의 차례가 이어졌다.
“이번 ‘같이 쫌 살자’를 통해 저희의 새롭고 또 편안한, 재미있는 모습 많이 보여 드리겠습니다.”
은호가 말을 하며 마이크를 은지에게 넘기자, 은지는 조금 전 은호의 말을 비웃듯 웃으며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
“아.”
조금 전에 은지가 마이크를 빼앗았던 것의 복수인 건지, 은호는 은지가 했던 것처럼 마이크를 제 쪽으로 당겨 오며 한마디를 덧붙였다.
“팬분들이 가장 걱정하시는 은지의 ‘삐─’ 처리도 많이 줄어들었으니까, 편안한 마음으로 시청해 주세요.”
“아, 익! 이은, 아니.”
은지는 신경질적으로 은호의 손에서 마이크를 완전히 빼앗아 오며 말을 이었다.
“오빠가 뭘 모르네요. 팬분들은 제 ‘삐’ 처리보다 ‘노잼’인 본인을 더 걱정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