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44)
살면서 아저씨는 그 누구보다 우리가 가진 의심을 잘 이해해 주시는 분이셨다.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저씨는 그걸 풀어 나가는 법도 아는 것 같았다.
우리더러 믿으라거나 괜찮을 거라는 둥 말로 설명하기보다 우리가 몸소 깨달으라는 듯 아저씨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다른 사람의 괜찮다는 위로가 아닌 우리의 시선에서, 세상의 많은 것들을 파악해 나갔다.
아저씨의 가게에는 종종 도우러 오는 봉사자분들이 찾아왔다.
“다녀오마.”
동사무소에서 전화가 올 때면 아저씨는 김치와 쌀 한 포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우와! 어디서 난 거예요?”
은지가 들뜬 목소리로 물으면 아저씨는 무뚝뚝하게 “나라에서 줬다.”라고 대답했다.
처음엔 몸도 좋고 돈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이 아저씨가 나라의 도움을 받을 이유가 뭐가 있는 건가 싶었다.
“아스피린……?”
“이건 다 뭐예요?”
은지와 나는 청소를 하던 중 카운터 아래에 수북하게 놓인 약봉지들을 발견했다.
“약이야. 이리 가지고 와라.”
아저씨는 어디가 안 좋았던 건지, 먹고 있는 약의 종류가 굉장했다.
비타민과 같은 그런 약이 아닌, 병원에서 받아 온 ‘꼭 먹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약’의 종류가 많았다.
아저씨와 우리가 헤어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나는 그때 깨달았던 것 같다.
아저씨는 날이 갈수록 급격하게 살이 빠졌다.
근육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우락부락한 몸은 운동을 얼마나 하던지 서서히 그 부피가 줄었고, 가게에 붙여 둔 포스트잇의 양은 반대로 배가 됐다.
그 무렵.
가게에는 불만 있는 손님들의 수가 늘어났다.
대부분 아저씨가 빵에 이상한 이물질을 넣었다는 불만이었다.
“이봐요! 빵 안에 나무젓가락이 왜 들어가 있어요!”
내 시선에서 그들의 불만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물질들이 단순히 ‘실수’라기엔 너무 커다랬으니까.
이물질로 인한 민원 때문인지 이후 가게의 손님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동네 장사를 하는 만큼 소문도 빨리 퍼져 버린 모양이었다.
아저씨는 그런 상황에서 우리에게 어른들의 힘듦을 단 한 번도 티를 낸 적 없었다.
그 때문일까.
아직 어렸던 은지는 조금 비뚤어졌다.
우리를 마약 하우스에 팔아 버린 부모라는 존재에게 유일하게 감사한 부분이 있다면 ‘키’ 하나였다.
한창 자랄 시기에 아저씨가 잘 챙겨주신 덕분인지는 몰라도…….
그전까지 그렇게 못 먹고 힘들게 자랐음에도 하루가 다르게 자라 우리의 키는 평균을 넘어섰다.
정확히는 내가 커진 건 학창 시절 이후였고, 은지가 먼저 무서울 정도로 무럭무럭 자라났다.
몸이 커지면서 자신감이라도 붙은 건지, 은지는 수시로 밖을 나돌았다.
“은지야!”
“놀고 올게요!”
“저 녀석이 또…….”
일을 도우라는 아저씨의 명령을 무시하고 은지는 매일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리고 돌아올 때면 항상 상처나 핏자국을 달고 들어왔다.
그런 은지를 아저씨는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바라봤음에도 별다른 소리를 하진 않았다.
우리에게 복지의 존재를 가르쳐 줄 때처럼.
아저씨는 항상 한결같이 모두 우리가 직접 겪어 봐야 안다는 듯 그대로 두셨다.
여느 때와 같은 날.
은지는 뛰쳐나갔고, 나는 일상이라 여기며 가게를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은호야.”
“네. 아저씨.”
“나는 너희가 다 클 때까지 책임질 수 없다.”
가게를 정리하던 내 손이 멈칫했다.
티 내고 싶지 않았는데, 알고 있었음에도 막상 들으니까.
그냥 행동이 멎었다.
“……알아요.”
목으로 넘기는 침에 피라도 섞였는지 비릿한 맛이 나는 것 같았다.
“네가 고생을 많이 할 거야.”
“그렇겠죠.”
“은지는 너랑 달라. 다른 면이 강한 아이라서 많이 부딪힐 거고.”
나는 아저씨를 돌아봤다.
아저씨는 마치 해탈이라도 하신 표정이었다.
금방이라도 이곳을 떠날 것 같은 그런 불안한 표정이었다.
“아무리 싸워도, 힘들어도, 가족을 버리지만은 말아라. 땅을 치고 후회할 테니까.”
“……네.”
아저씨의 한마디 한마디는 어렸던 나에게 법전과도 같았다.
긴 시간을 돌아 회귀했어도 그건 여전했다.
게다가 아저씨의 경고는 옳았다.
정말, 여러모로 이은지 고집 때문에 고생을 많이 했었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은지는 나랑 다르다.’라는 아저씨의 그 말은.
그 말의 진가는 아무래도 회귀를 거치고 나서야 이해했던 것 같다.
아저씨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며칠 뒤.
“은지야!”
“시끄러워요!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저씨는 은지가 밖을 떠돌고 집에 돌아온 그때.
은지의 부어터진 뺨을 본 순간, 들고 있던 물 잔을 놓치며 소리쳤다.
은지는 그날따라 공격적으로 아저씨에게 대들었다.
하지만 곧 자신이 했던 말을 후회했는지 아저씨와 눈도 못 마주친 채 고개를 돌렸다.
그날, 아저씨는 은지의 손을 붙잡아 가게 밖으로 이끌었다.
“나랑 어디 좀 다녀오자.”
“어디요!”
“따라오기나 해.”
“아, 말은 하고 끌고 가요!”
버둥거리는 은지를 이끌고 아저씨는 가게 문으로 향했다.
가게를 나가기 전.
아저씨는 그 상황을 놀란 눈으로 조용히 지켜보던 나한테 무심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부산에 횟집 하는 친구 좀 만나고 오마.”
“부산, 요?”
“은호도 갈래?”
“아뇨. 저는…… 그냥 가게 보고 있을게요.”
“그래.”
아저씨는 곧장 밖으로 나갔다.
“아, 아저씨! 내가 걸어갈 거야! 당기지 마!”
은지는 불만 가득한 얼굴로 아저씨를 따라 나갔다.
두 사람이 떠난 빵 가게에는 나 혼자 남아 있었다.
매대에 빵이 가득했음에도 찾아오는 손님은 없었다.
아침에 떠난 아저씨와 이은지는 저녁이 다 돼서야 다시 가게로 돌아왔다.
“우리 왔다.”
“오빠! 오빠!!! 나 오늘 광어랑 우럭이랑, 개불이라고 되게 똥과 같이 생긴 애도 보고 낙지랑 멍게랑 해삼도 봤다?”
출발할 때 불만 가득하던 애는 어디 갔는지.
이은지는 신세계라도 보고 온 듯 말똥거리는 눈으로 소리쳤다.
그날 이후 은지는 여전했다.
유일하게 달라진 점이라고는 은지의 욕에 해산물이 섞여 들었다는 것 정도.
그렇게 며칠이 더 흘렀다.
아저씨는 어느 날, 몸보다 큰 검은 봉지 두 개를 짊어지고 들어왔다.
“내 친구 놈이 이걸 재활용해서 이것저것 하는 사업을 시작하려고 하거든.”
“근데요?”
아저씨는 새로운 상처를 달고 들어와선 태연하게 TV를 보고 있는 은지에게 그 검은 봉지를 내려 두며 말했다.
“네가 아는 놈이야. 전에 횟집에서 만났던 아재.”
은지는 그 사람을 기억하는지 처음에 비해 다소 경계심을 풀며 물었다.
“근데, 이걸 내가 왜 해야 하는데요?”
“걔가 새로운 사업을 하려고 하는데 라벨 제거하고 이걸 밟는 작업에 사람을 써야 하거든.”
“아니, 그래서 내가 이걸 왜 해야 하냐고요.”
“걔가 해 달라고 했어.”
“그럼 아저씨나 해요.”
아저씨와 은지는 내가 모르는 대화를 나누며 페트병이 가득 든 봉지를 중간에 두고 기 싸움을 벌였다.
“너, 화난다며.”
“화나는데, 이딴 게 무슨 상관인데요.”
“이걸 밟으라고.”
“장난까요?”
“기왕이면 ‘장난쳐요?’라고, 말은 똑바로 하거라.”
“장난쳐요?”
피식, 난 쟁반을 닦다가 은지의 반항이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 터졌다.
이걸 착하다고 해야 할지.
이은지는 반항하는 와중에도 말 하나는 잘 들었다.
아저씨도 은지의 반응이 웃긴 건 마찬가지였는지 잠시 웃다가 말을 이었다.
“장난이냐고 묻기 전에 일단 밟고 말하자.”
“X발, 별 희한한 걸 다 시켜 대네.”
투덜거리면서도 이은지는 라벨을 떼고, 아저씨를 따라 페트병을 밟으며 찌그러뜨렸다.
“쓸데없이 밖에서 시비 걸고 싸울 힘이 있으면 필요한 곳에 그 화를 쓰라고.”
“잔소리하지 마요.”
투덜거리는 말과 다르게 은지는 라벨을 떼고 투명한 페트병을 줄 세우는 작업이 꽤 마음에 드는지 상당히 집중한 표정이었다.
“분노를 해소하는 방법에는 다양한 방법이 있어.”
“예예.”
싹수 없는 대답이었지만, 아저씨는 은지의 말투를 뭐라고 하진 않았다.
은지 또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새롭게 화를 푸는 그 방식이 마음에 들었는지 얌전히 며칠 동안 아저씨를 따라 그 작업을 반복했다.
보기엔 조금 이상했지만, 그건 은지 나름 억눌린 분노를 푸는 시간이었던 걸까.
산처럼 쌓인 페트병이 모두 사라졌을 때.
은지의 불같던 성격이 한결 유순해져 있었다.
페트병을 정리하던 날.
아저씨는 일을 돕는 우리를 가만히 바라보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너희가 짐승이 아니라 사람답게 살려면 아무리 못 살아도 사람처럼 행동해야 세상도 그렇게 봐 줘.”
짐승이 아니라 사람처럼…….
누군가는 너무한 말이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긴 시간을 짐승 같은 나날만 보내다 이제야 사람답게 살아가던 우리는 그 말이 마음 깊이 다가왔다.
“이제, 너희 이름을 이 나라에 공식적으로 올려 둘까 하는데.”
“우리 이름이요?”
“그래.”
아저씨는 ‘이’로 시작하는 아저씨의 이름과 아저씨의 사진이 박혀 있는 ‘주민등록증’이라는 것을 보여 주며 설명을 덧붙였다.
그날 아저씨를 통해 우리는 그간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그날.
아저씨는 폭탄 같은 말을 하나 더 던졌다.
“가게를 없앨 거야.”
“가게는 왜요? 아저씨 집 여기잖아요. 그럼 아저씨는 어디로 가는데요?”
“좋은 곳에.”
“우리도 따라가요?”
“아니, 최대한…… 늦게 와라.”
아저씨가 한 말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던 은지와 다르게, 아저씨가 말하는 ‘늦게 와라’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해버렸다.
그걸 인정하는 것과는 별개였지만.
“은호야.”
“네.”
“공짜를 좋아하지 말아라. 공짜를 밝히는 건 남의 것을 밝히는 것이랑 같은 거야.”
“네.”
우린 대화를 나누며 손은 바쁘게 찌그러뜨린 페트병을 주섬주섬 검은 봉지에 주워 담았다.
“네가 대가 없이 받은 모든 것이, 훗날에 네가 가진 것을 넘어서 너 자체를 집어삼킬 수도 있어.”
“네.”
“은호, 너는 똑똑하니까. 그런 것들 때문에 네 것을 허무하게 잃지 말아라.”
“네.”
나는 아저씨한테도 많은 속 사정이 있겠거니 싶어서 입을 닫았다.
하지만 눈치 없는 은지는 페트병을 줍던 것을 멈추고 아저씨에게 물었다.
“그거 아저씨 이야기야?”
“……그래. 공짜를 좋아하던 애가 있었어.”
아저씨는 화를 내기보다 조용히 옛날이야기 같은 이야기를 덧붙였다.
공짜에 눈이 멀어 돈을 바라고 가족을 떠난 소년은 이후에는 돌아갈 곳이 없어졌다.
……라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한 고아의 이야기였다.
이후 짐승처럼 살던 아이는 어느 수녀님을 만나 사람이 되었고, 이젠 과거의 자신과 같아 보이는 아이들을 도왔다.
하지만 끝까지 함께하기엔 하늘이 준 시간이 그리 길지 못해서…….
소년은 그 다른 아이들에게 자신이 할 수 있는 만큼만 노력했다.
……그런 이야기였다.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 있으려니 속이 답답해서, 숨통이 턱턱 틀어막혀서.
난 참다못해 입을 열었다.
“만화에서…… 봤는데요.”
“…….”
“다른 사람이 기억하고 있는 한, 그 사람은 계속 살아 있는 거래요.”
아저씨는 잠깐 말이 없었다.
이어진 대답은 덤덤하지만, 울음소리가 묻어난 것 같은 대답이었다.
“그거 멋있네.”
내가 숨이 막혀 말을 채 이어 가지 못하자, 그때 은지가 입을 열었다.
“근데, 아저씨 바보라서 내가 머리만 묶어도 나 못 알아보잖아.”
“그건…….”
“나도 알아. 아저씨 머리 아픈 거.”
은지는 거침없이 말을 던지더니 아저씨를 돌아봤다.
“그러니까…….”
그때, 은지는 자신의 머리칼 끝을 붙잡더니 긴 머리를 날개처럼 펼쳐 보이며 웃었다.
“아저씨가 알아볼 수 있게 적어도 난 항상 이 모습으로 똑같이 있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