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매는 비즈니스로 일합니다 (243)
아저씨
성공적인 촬영을 마치고 ‘같이 쫌 살자’ 촬영장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언니, 나 머리 묶어도 돼?”
“응. 끈 줄까?”
슬기는 은지에게 손목에 걸린 머리끈을 건넸다.
은지는 슬기가 내민 머리끈을 받아 들며 방송에서 내내 거추장스러워도 관리하던 모습과는 달리 단번에 묶어 버렸다.
“아, 우리 촬영 남았지.”
“응? 남았지. 같이 쫌 살자 저녁 촬영은 참여해야 하니까.”
은지는 이후에도 촬영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자, 일부러 다시 머리를 풀어 헤치며 머리카락을 잘 모아 빙글빙글 돌렸다.
이후 완성된 머리는 동그랗게 틀어 올린 모습이었다.
이렇게 묶으면 풀어도 웨이브진 방향과 같아서, 촬영 전 간단히 드라이만 해도 이전과 큰 차이 없이 촬영에 임할 수 있기 때문에 종종 이용하는 방법이었다.
슬기는 은지가 같은 머리 모양을 고집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일전에 제대로 된 답을 듣지 못해서 대표님을 찾아갔다가, 되려 두 사람한테 직접 듣는 편이 좋을 거라는 답을 들은 그 질문이었다.
“은지랑 은호는 항상 같은 헤어스타일을 고집하는 이유가 있어?”
창밖을 보며 생각에 잠겨 있던 은호는 슬기를 돌아보더니 곧 은지와 눈을 맞췄다.
은지 또한 머리를 묶는 것에 집중하다가 슬기의 이야기에 은호를 바라봤다.
둘은 이내 씁쓸하게 웃으며 동시에 입을 열었다.
“약속했거든요.”
“약속했었지.”
“누구랑요?”
슬기가 묻자, 이번 역시 둘은 동시에 답했다.
“우리끼리.”
“빵집 아저씨하고요.”
우리?
빵집 아저씨?
슬기는 그 두 단어가 무슨 상관이 있는 건지 갸웃거리며 의문을 내비쳤다.
* * *
대표님도 들은 적 없는, 우리 서로만 기억하는 그 시기.
빵집 아저씨와는 아주 어릴 적부터 인연이 시작됐다.
다만, 시작은 그리 바람직한 만남은 아니었다.
그 시기 나는 어렸고, 당연하게도 돈이 없었다.
쓰레기통을 뒤져도 먹을 만한 것을 찾지 못해서 약수터의 물로만 배를 채운 지 꼬박 일주일째였다.
뭐라도 없을까 싶어서 숨어서 맴돌았던 시장 한구석.
동네 사람들이 이용하는 흔한 동네 빵집 앞을 지나가던 그때.
“오빠, 나 이거! 이거! 냄새 좋은 거 먹고 싶어.”
배가 고픈 은지는 빵 가게에서 나는 빵 굽는 냄새에 이끌렸는지, 어려운 사정을 알면서도 어린 마음에 떼를 쓰고 있었다.
나는 당시 ‘은지한테 바람직한 오빠이자, 당당한 ‘보호자’가 되기 위해 절대 도둑질은 하지 않겠다.’라는 나름의 신조를 지닌 꼬맹이었다.
하지만 배고픔 앞에서는 장사 없다고.
일주일이나 굶으니 신조고 자시고 살기 위해 도둑질을 감행했다.
그리고 그날.
빵 아저씨를 만났다.
“……잠깐, 너! 동네에 요즘 어슬렁거린다던 그 꼬맹이 남매지.”
“죄, 죄송합니다!”
아저씨에게 걸린 그 순간.
모순적이지만 그 살벌한 순간, 손에 움켜쥔 빵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듯 미지근한 온기가 남아 있었다.
그 으깨져 버린 빵이라도 악착같이 챙기겠다고, 나는 빵을 집었던 주먹은 절대 펴지 않은 채 온 힘을 다해 가게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도망쳤다.
금방이라도 아저씨가 우리를 잡기 위해 쫓아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빵 아저씨는 가게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나는 기대하고 있던 은지한테 주먹에 쥔 압축된 빵 쪼가리를 내밀었다.
그 작은 빵 쪼가리를 먹겠다고 그것마저 절반으로 나눠 입에 넣고 녹여 먹었다.
빵 조각이라도 속에 넣으면 괜찮아질 줄 알았는데, 잊으려고 했던 배고픔은 더 많은 음식을 내놓으라며 소리를 냈다.
하지만 더 이상 음식은 없었기에 우린 빵 조각을 끝으로 빈속 한가득 물을 욱여넣고 우리의 안전 구역이었던 폐가로 향했다.
「“동네에 요즘 어슬렁거린다던 그 꼬맹이 남매지.”」
폐가에 가기 위해 담을 타던 그때였다.
난 문득 그 아저씨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오늘은, 다른 길로 가자.”
“왜?”
“그냥.”
“싫어! 힘들어! 거기 멀잖아!”
난 싫다는 은지를 억지로 이끌고 끝끝내 먼 길을 돌아서 폐가에 돌아왔다.
먹은 것도 없는데 걷기는 더 많이 걸은 탓일까.
그날 은지는 폐가에 도착하는 순간 쓰러져 잠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바로 전날 고생을 해서인지 그날은 은지가 아팠다.
은지는 곧 숨이 넘어갈 듯 헐떡여 댔다.
“오빠야, 나 어제 먹은 거 또 먹고 싶다.”
그런 와중에 하는 부탁인데, 안 들어줄 수가 없었다.
은지의 부탁에 나는 다시 그 빵집을 찾았다.
꾀죄죄한 몰골에 곧장 티가 났을 텐데, 나름대로 어떻게든 정체를 숨겨 보겠다고 고개를 숙이며 빵 가게에 들어섰다.
그리고 목표물이었던 입구 바로 앞에 있는 빵에 손을 뻗은 그 순간.
“꼬마 도둑, 이 아저씨랑 이야기 좀 하자.”
아저씨의 큰 손에 보기 좋게 붙잡혔다.
나는 울었다.
폐가에 혼자 두고 온 은지 생각에 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하우스를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어린 이은지를 업은 나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술에 취한 노숙자가 말했었다.
이래서 나라가 문제라느니, 세상에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뇌리에 꽂힌 한마디.
“너희는 잡히면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될 건데, 뜨잉, 쯧.”
무료 배식 차를 이끌고 밥을 먹으라며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도.
누군가 우리를 도와주겠다고 손을 뻗을 때도.
‘살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라는 노숙자의 그 말이 우리를 더 단단하게 묶고 고립시켰다.
그 노숙자는 우리한테는 그런 말을 했으면서 본인은 편하게 배식을 받고 다른 사람의 도움을 쉽게 받았다.
“나는 어른이잖냐. 니들은 보호자가 없는 얼라들이고.”
항상 취해 있던 노숙자는 듣기 싫은 킬킬거리는 웃음소리를 흘리며 어린 나를 놀렸다.
나는 빵집 아저씨가 나를 붙든 그 순간, 당시 노숙자가 했던 이야기가 다시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래서 빌었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아저씨, 경찰은 안 돼요. 제발, 저희 돌아가기 싫어요!”
“…….”
“저, 제 동생 옆에 있어 줘야 해요. 걔, 저 없으면 안 돼요. 동생이 아파서 그랬어요. 죄송해요. 잘못했어요, 아저씨.”
제발 우리를 신고하지 말아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그때 아저씨 표정을 봤더라면 우리가 뭔가 이상하게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채지 않았을까.
하지만 당시 난 아저씨가 나를 놓은 순간, 도망치는 것도 잊은 채 바닥에 넙죽 엎드렸고.
바쁘게 양손을 비벼 대느라 고개를 들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때였다.
아저씨는 조용히 내 어깨를 누르며 갈색 종이봉투에 크림빵부터 이것저것 담더니 건넸다.
“공짜는 아니다. 네가 이 빵을 받고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할 줄 아는 놈이라면, 여기에 꼭 다시 오도록 해.”
얼떨떨해하며 빵이 한가득 담긴 봉지를 안아 들고 가게 밖으로 다시 나왔을 때.
난 혼란스러움과 함께 생전 처음 느낀, 가슴이 벅찰 정도로 행복한 감정이 밀려들었다.
“은지야!”
“오빠……?”
기운이 다 빠진 채 나를 반기는 은지한테 당당하게 빵이 한가득 들어 있는 봉지를 들어 보일 때.
곧 꺼져 가는 생명처럼 퀭하던 은지의 눈에 생기가 몰려든 그 순간.
나는 아저씨가 말했던 대로, 다시 그곳에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은 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처음으로 희망이라는 걸 걸었다.
다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면 우리는 어렸다.
빈속에 빵이 들어가면 오히려 탈이 난다는 사실을 몰랐다.
하지만 탈이 난 와중에도 음식이 들어가니 기운은 났다.
며칠을 꼬박 앓은 후였다.
나는 약속했던 대로 다시 아저씨를 찾아갔다.
“왔냐. 거, 그 더러운 몰골로 일할 수는 없으니까 일단 씻기부터 하그라.”
“어디서요……?”
아저씨는 검지를 뻗으며 빵 가게 구석으로 난 작은 방을 가리켰다.
“안에 화장실 붙어 있다. 너, 동생 있다며. 걔도 데려와서 같이 씻어.”
아저씨의 무뚝뚝한 명령에 불안하긴 했지만, 믿기로 했으니까 믿었다.
“다녀올게요!”
그렇게 은지를 데려와서 같이 샤워를 했다.
“검은 물이다. 하핰핰.”
“하하핰.”
따뜻한 물에 그간 끼어 있던 땟국물이 씻겨 내려가는 광경은 어린 우리에게는 그저 재미있는 놀이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렇게 깔깔거리며 웃으면서 씻고 나왔을 때였다.
“……쯧.”
아저씨는 우리 모습을 보며 와락 인상을 구겼다.
“다시 씻어.”
“다, 다시요?”
“목 뒤랑 정수리도 똑바로 안 닦았구먼, 씻긴 뭘 씻었다고.”
아저씨는 우리에게 샴푸와 비누의 용도를 그때 가르쳐 주셨다.
그렇게 두 번째로 씻고 나왔을 때.
아저씨는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또다시 욕실로 들어가서 때를 빼고 광을 냈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하던 샤워였는데, 더는 웃으면서 장난치기보다 전투적으로 더러운 곳을 지우는 데에 전념했다.
그렇게 내리 들어갔다 나갔다만 다섯 번을 넘었다.
“이제 좀 낫네.”
아저씨는 그제야 만족스럽게 웃으면서 말했다.
“빨가벗고 있을 순 없으니까, 이거나 입어.”
툭.
아저씨가 무언가를 던진 그때, 은지와 난 놀라서 질끈 눈을 감았다.
예상과 다르게 때리는 건 아니었는지, 다시 눈을 떴을 땐 바닥에 웬 비닐 포장이 된 별 무늬 옷과 두꺼운 옷과 바지가 던져져 있었다.
우리가 씻는 동안 아저씨는 시장 안에 있는 내복점과 아동용 옷을 파는 매장을 다녀왔던 모양이다.
“별 무늬가 그려진 옷은 내복이라고 안에 입는 옷이고, 다른 옷이랑 바지는 그 위에 입는 옷이다. 옷은 입을 줄 알지?”
“네!”
“손님 보고 오는 동안 입고 있어.”
아저씨는 간단한 설명을 해 준 뒤 손님을 보러 나갔다.
이은지랑 난 낑낑거리며 옷들을 입었다.
헌 옷만 걸쳐 봤던 만큼 새 옷의 냄새와 촉감은 낯설고 또 설렜다.
옷을 다 입고 옷의 촉감을 신기해하던 그때, 은지랑 난 눈을 마주쳤고 웃는 동시에 왈칵 눈물이 났다.
“……왜 우냐?”
“……오빠는 왜 우는데.”
“몰라.”
“나도 몰라.”
그냥 우린 서로를 바라보는 상태로 웃으면서 계속 울었다.
울먹이며 옷을 갈아입고 이제 아저씨가 다시 작은 방으로 돌아오길 기다렸다.
사실 기다리려고 했는데, 따뜻한 방바닥과 씻는 것에 온 기운을 다 뺀 탓일까.
우린 금세 기절하다시피 그대로 꼬꾸라졌다.
다시 눈을 떴을 땐, TV를 보다가 잠든 듯 빵 아저씨도 우리 옆에 같이 누워 잠들어 있었다.
당시 빵 가게 내부에는 아저씨가 붙여 둔 건지 곳곳에 메모가 쓰인 포스트잇이 많았다.
종종 우리가 포스트잇을 발견하고 이건 뭐냐고 물을 때면 아저씨는 깜빡했었다며 무언가를 챙기는 모습을 자주 보이기도 했다.
벽에 걸린 것 중에선 자격증인지 수료한 상장 같은 것에 분명 아저씨의 이름이 쓰여 있었다.
하지만 워낙 질문했던 게 많아서일까.
아니면, 사람의 기억력이 그렇게 뛰어나지 않아서일까.
시간이 지난 이젠 이름은 잊은 채 그저 ‘빵 아저씨’라고만 기억하는 게 고작이다.
그 때문인지 난 지금도 사람의 이름을 알게 되면 최대한 외우려 집착하는 면이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게 낯설었던 때였지만, 처음으로 안전하다고 확신이 생긴 빵집에서의 모든 경험은 즐거웠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저씨가 장사를 접기 전까지 우린 아저씨와 함께 지내며 ‘복지’라는 것을 배웠다.